건축의 신 235화
현장실측(02)
“오랜만에 오니 감회가 새롭구만.”
법주사 금강문을 지나며, 흐뭇하게 웃는 박 목수에게 농담을 건넸다.
“별로 그리 불심이 깊어 보이시지는 않는데요?”
“당연하지. 내가 불심은 무슨. 초파일에도 절에 한 번 갈까 말까 하는데.”
“그래도 용케 여기는 와 보셨나 봅니다.”
“불공드리러 왔겠나? 일하러 왔지. 벌써 십오 년이나 지난 일일세.”
“그때부터 실력을 인정 받으셨나 봅니다.”
절간의 수리를 아무에게나 맡길 수가 있을까?
더구나 이런 절이라면 하나하나가 문화재다. 아무 장인에게나 맡길 수가 없는 것이다.
“실력은 무슨, 그때 대웅전 공사하러 왔을 때, 대목장 어르신을 따라 왔었다네. 섣불리 자재들 건드렸다가, 혼도 많이 났었지. 허허허.”
그의 추억을 들으면서 발걸음을 빨리 했다.
팀이 도착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거기 사다리 제대로 잡아봐. 흔들리잖아.”
“사다리가 낡아서 그런 걸 어쩌라고?”
“그럼 네가 올라올래?”
“아냐. 승범아. 제대로 잡고 있을게.”
우리는 지금 법주사에 도착해서 팔상전의 부지를 실측하고 있다.
다른 과에서는 건축학과와 달리, 현장에서 실측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리라.
기단과 기둥의 실측을 끝내고, 서까래의 폭을 측량하기 위해 학생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줄자로 길이를 재고 있었다.
‘그래도 겨우 허락은 받아냈네. 이래서 인맥이 중요하다고 했던 것인가?’
물론 처음부터 실측을 허락했을 리가 만무했다.
젊은 중이 나지막하게 언성을 높였다.
“다짜고짜 그런 부탁을 하시면 저희도 곤란합니다. 시주.”
팔상전의 실측을 부탁했더니, 문화재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면서 극구 거절을 했다.
“절대 훼손시키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젊은 중은 완강했다.
‘이거 이러다가 오늘 못 끝내는 거 아니야?’
나는 안내하는 스님과 실랑이를 벌이며 속이 바짝바짝 타고 있는데, 박 목수는 옆에서 경내 구경만 하고 있었다.
‘실측은 우리가 한다, 그거야?’
박 목수를 쿡 찔렀다.
“왜 그러나?”
“아까 이 절에 아는 분 계시다면서요?”
“허허! 벌써 십오 년 전 얘기야, 강산이 한 번 반은 변할 시기라고. 그리고 그 중은 오지랖이 넓어서 벌써 쫓겨났을 게야.”
“그래도 한 번 물어보세요.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그래도 안 되면 최 옹이나 시장에게 압박을 해서라도 인맥을 동원해 봐야지.
너무 급한 일정이었고, 내 마음도 급했다.
민수에게 팀원들과 실측 도구를 챙겨 오라고 하고, 나와 박 목수만 먼저 선발대로 내려왔었다.
그래봐야 한두 시간 차이겠지만…….
내려오면서 전화를 했지만, ‘실측에 대한 지시는 받은 적이 없다.’는 경비실의 틀에 박힌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일단 내려와서 부딪쳐보자는 생각을 했고, 지금까지 왔다.
내게 떠밀려 박 목수가 입을 열었다.
“이 절에 지공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십니까? 한 십오 년인가 전에는 계셨었는데.”
웬일인지, 젊은 중의 태도가 정중해졌다.
“네. 어찌 그리 여쭈시는지요.”
“태풍이 심하게 불어서 대웅보전이 훼손되었을 때, 손봐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스님께 잠시나마 절밥을 얻어먹었습니다. 혹시 계신가 하여 물어보는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는 젊은 중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성훈 형. 저희 도착했어요.”
그때 민수와 팀원들이 실측 도구를 들고 경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직 허락 못 받았다. 잠시만 기다려 봐라.”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아까의 젊은 중과 그보다 나이든 스님이 안채에서 걸어 나왔다.
온화한 인상의 노승이 박 목수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무아미타불. 박 시주,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박 목수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하이고! 지공 스님. 오래간만입니다.”
“대웅보전 보수를 하신 분이시라 길래, 대목장 어르신이 아닐까 했었는데, 제 또래이고 말이 가볍다 하시기에 대뜸 박 시주인줄 알았습니다. 허허허.”
“가볍다니 누가…….”
박 목수가 젊은 중을 향해 눈을 부라렸지만, 그는 시선을 외면하며 먼 산을 보고 있었다.
‘오지랖이 넓어 쫓겨났을 거라는 말 때문이겠지. 크크.’
서로 정중하게 인사하는 둘의 얼굴에는 반가운 웃음이 만연해 있었다.
“차나 한잔마십시다. 안으로.”
그가 박 목수의 손을 끌며 안채로 안내했다.
박 목수가 뒤 돌아보며 말했다.
“성훈 군. 뭐 하는가. 따라오게나.”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뒤를 향해 민수와 팀원들에게 말했다.
“민수야. 금방 들어갔다 나올게. 실측할 준비하고 있어라. 알았지?”
“허락해 주실까요?”
“아마 될 거야.”
확신하는 내게 민수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둘을 뒤따르는 젊은 중을 힐끗하며 말했다.
“내가 저 스님한테 물어보니까, 주지스님이란다. 저 노스님이.”
“언제 또 그건 물어봤대요?”
“아까 저 젊은 스님이 고개 굽실거리는 거 못 봤냐? 그럼 당연히 높은 사람이지. 어떤 사람이기에 그럴까 싶어서 물어본 거지. 그런데 주지라고 하더라고.”
“하하하. 동작도 빠르시네요. 전 포기한 줄 알았는데.”
민수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당연하지. 안 될 것 같으면 다른 수를 강구해야지. 편하게 차나 마시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
“들어보니 주지승이랑 너희 할아버지께서 잘 아는 것 같은데, 실측 같은 부탁 하나 안 들어주겠냐?”
“알았어요. 이 친구들한테 제가 설명하고 있을게요.”
“응. 준비 잘하고 시간 남으면 경내나 설명해 줘라. 사진도 좀 찍고.”
***
나가는 내게 주지승이 손을 꼭 붙들고 부탁했다.
“성훈 시주. 원래는 허락하지 않는 것인데, 최 시주 어른의 부탁이 있었으니, 특별히 허락하는 것이외다.”
부탁은 무슨 부탁?
그게……. 최 옹의 이름을 빌려서 부탁을 했다.
‘혹시라도 허락이 안 떨어지면, 지공 스님께 부탁을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어른께서 저 같은 빈승을 기억하고 계시던가?’
얼굴이 환해지는 주지승이었다.
내친 김에 약간의 칭찬도 늘어놓았다.
‘그럼요. 마음이 하늘처럼 넓고, 성정이 부드러우시다고, 아마 살아있는 부처가 있다면 지공 스님이 아닐까…….’
옆에서 박 목수가 인상을 찌그려뜨렸지만, 뭐 어쩌겠나.
최 옹이 그런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지!
박 목수가 퉁명스레 물었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스님.”
“이딴 것이 어찌 무리라 하겠습니까? 그 어른이 아니었으면, 우리 부처님이 비를 맞으셨을 텐데요. 나무아미타불.”
“그거야…….”
“그 은혜 어찌 다 갚겠습니까?”
‘얼른 끝내고 나가야겠군.’
어설픈 연기는 오래 보면 들통 나는 법이다.
얼른 주지승에게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스님.”
고개를 꾸벅 숙이는 내게 주지승이 합장을 하며 말했다.
“박 시주도 특별히 신경 써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주지스님. 걱정하지 마시래도.”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성훈 시주. 이곳에 있는 것들은 보물 아닌 것이 없다네.”
그의 말처럼 법주사에는 보물이 아닌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문화재의 보고였다.
팔상전은 그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팔상전을 포함한 국보 3점, 그리고 보물 6개.
2003년 이후에 6개가 더 보물로 추가될 것이다. 그 외에도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재들이 스무 개가 넘게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물은 개수가 아니라, 얼마나 보존 상태가 좋으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니, 그의 염려가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부디 시주께서도 부디 우리 절을 부처님 몸이라 생각하고, 소중하게 다뤄 주시게나.”
“알겠습니다. 아무런 손상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나가는 우리에게 합장하며 말했다.
“최 시주 어른께 제가 꼭 안부 전하더라고 말씀드려 주십시오.”
‘이런 곳까지 인맥이 퍼져 있다니, 도대체 끝이 어디야?’
내가 진정으로 얻어야 할 것은 최 옹의 실력도 그렇거니와, 그가 전국에 퍼트려 놓은 인맥의 네트워크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리 보수 한 번 하지 않은 사찰이 어디 있겠으며, 전통 건축물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거의 모두 인연이 있다는 말이고, 최 옹의 인품으로 보아, 좋은 인연일 터.
경내로 들어오며 말했다.
“박 목수님. 감사합니다.”
“내가 뭘 한 게 있나? 대목장 어르신께 감사를 드려야지.”
“그런데 이곳 주지스님과는 어떻게 아시는 사이십니까?”
“어르신과 함께 대웅전 보수를 하다가 만났었지. 그때는 천방지축 젊은 스님이었는데, 벌써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구만.”
그 시절을 회상하는 모습이었다.
“그 해 여름에 유난히 태풍이 심하게 왔었지. ‘셀마’인가? 아마 그랬을 거야. 전국이 홍수로 난리가 아니었지.”
“저도 기억나네요. 열 살 약간 넘었었던 것 같은데. 태풍이 심해서 슬레이트 지붕이 날아가고 했었죠.”
“그래. 맞아. 그때야. ‘사라’이후로 제일 피해가 컸다고 뉴스에서 말하더군.”
‘매미’와 ‘루사’도 있었지만, 그건 몇 년 후에나 우리나라를 방문할 것이다.
“저기 대웅보전 보이지?”
그를 따라 다니다 보니, 어느덧 대웅보전 앞에 도달해 있었다.
“네.”
“자네가 보기에 왼쪽 처마지. 그게 심하게 훼손되었거든. 그때 스님들이 안달복달을 하고 있더라고. 자네도 알다시피 나무가 물을 먹으면 빨리 썩잖나.”
“그렇죠.”
“다른 사람들이 와서 다 고개를 젓고 갔는데, 그때 대목장 어르신께서 나 같은 젊은 목수들을 대거 동원하셔서 보수하셨지.”
“그래서 그렇게 감사를 하시는 거군요.”
“그런 거라네.”
흐뭇하게 웃더니, 내게 물었다.
“어떤가? 티가 나는가?”
“아뇨.”
그의 말처럼 새로 보수했다는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태풍이 몇 번을 더 와도 이제는 끄떡없을 거야. 그만큼 신경을 쓰셨거든.”
그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때 대웅보전은 실측을 해서, 따로 도면을 만들어 뒀었는데.”
“아쉽네요. 팔상전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래도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도면과 우리의 도면은 그 수준도 다를 것이다.
“그러게. 자네를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나?”
아직 실측에 대한 허락이 떨어지지 않은 탓인지, 사진의 플래시 터지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승범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민수가 하는 말 들었지. 한군데도 빠짐없이 몽땅 사진을 찍어둬! 어디에 쓰게 될지 모르니까.”
‘민수가 일은 꼼꼼하게 시켜뒀군.’
왜 이렇게 찍어대느냐고?
‘혹시 또 알아? 이 건물이 태풍에 날아갈지?’내가 아는 미래에서는 팔상전이 날아가는 일이 없었지만, 사람의 후일은 모르는 법이다.
누군가가 투덜거렸다.
“도면으로 그려놓으면 되죠. 뭐 하러 그렇게 사진까지 다 찍어요?”
승범의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렸다.
“말대답할 시간 있으면 하나라도 더 찍어!”
승범이 사라지고, 누군가가 말했다.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이라더니.”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아무리 도면을 잘 그린다고 해도, 자료는 도면만큼의 가치를 가진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전통건축처럼 자로 잰 듯 완벽하게 가공을 거치지 않은 목재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가치가 더더욱 커진다.
그 자연미의 곡선은 도면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