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233화 (233/427)

건축의 신 233화

딜레마(02)

“보람이 걱정할 정도란 말이지.”

경호와 민수를 불렀다.

아까 잠시 훑어본 것만으로는 분위기를 알 수 없었다.

“경호야. 분위기는 어떤 것 같니? 넌 처음부터 가 있었잖아.”

“보람 선배 말대로 패잔병들 같아요. 믿었던 팀원들에게 밀려났다는 게 충격인가 봐요.”

“누구든 겪을 일이야. 자기가 떨궈지지 않았으면, 자신이 찍은 사람이 밀려나왔겠지.”

“그럴 거예요. 다들 똑같이 한 표씩 행사했을 테니까.”

경호가 물었다.

“선배님, 그냥 새로운 사람으로 대체하시지, 왜 이렇게 팀을 짜신 거예요?”

새로운 사람을 들이는 것.

사실상,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 문제였다.

처음 뽑을 때, 가장 최적의 인재를 골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조리 방법의 문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뱉는다는 건, 나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실패를 인정하다니, 부끄럽지 않은가?

‘그렇게는 못해! 지금까지 들였던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안 돼!’

민수도 경호와 같은 의견이었다.

“형. 보람 선배도 걱정하는 것 같던데, 꼭 이 팀으로 해야겠어요?”

“이 팀이니까 더 좋은 거지. 자격을 증명 받는데, 최고의 팀으로 해서는 쓸데없는 말이 나오지. 그건 누가 해도 당연한 결과일 테니까.”

어차피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온다고 한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기존의 인재들로 최대한 잠재력을 살리는 것이 나았다.

‘쫓아버리는 건, 자격을 증명한 뒤에 해도 충분해.’

뽑았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 이전에, 이건 자존심의 문제라고.

민수가 히죽거리며 웃었다.

“왜 웃어?”

“형. 말로는 내쫓아버리겠다고 해도, 막상 버리지는 못하시네요.”

“어쩌겠어. 내가 뽑았는데,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 저 사람들에 대한 예의 아니겠어?”

시작이 삐걱거려서는 내년에도 이런 오류가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이러기도 뭐하고, 저러기도 뭐한 것. 그게 형의 딜레마네요.”

“어쨌든 확실한 건, 녀석들이 특별히 실력이 없어서 축출된 건 아니란 말이지.”

지금 팀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보람의 말에 의하면 예비 패잔병들이었다. 단지 지금 밀려나지 않았다는 게 다를 뿐.

“선배님. 그래도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요.”

“그냥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야. 여기 모인 녀석들은 전부 과수석을 도맡아 하던 녀석들이거든. 언제 꼴찌를 해 봤겠어?”

분야는 다르지만, 항상 과의 중심을 차지하던 인재들이었다.

‘밀어냈으면 밀어냈지, 밀려본 적은 없었을 걸.’

그런 그들이 이런 말 같지도 않은 투표로 인해, 변두리로 밀려났다.

그것도 더 이상 밀려나면 안 되는 벼랑 끝으로.

그 충격을 이루 말할 수 있으랴!

‘하지만 어떡해. 극복해야지.’

“극복이 안 되면 어떻게 하죠. 그럼 당장 형의 팀이 위태로운 상황이잖아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왜요?”

“기본적으로 수석을 할 정도로 독기가 있는 놈들이야.”

노력과 성실이 생활화 된 사람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이런 곳에서 탈락한다?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하지만 충격을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좀 시간을 주는 게 어때요? 그 선배들도 시간을 좀 달라고 하더라고요.”

민수가 걱정하며 말했다.

‘그런데 어떡하니? 난 기다려줄 생각이 전혀 없는데.’

건드렸으면 각오를 해야지.

어디서 자기들 사정만 이야기하고 있어?

“형. 지금 그 표정. 굉장히 사악해 보여요.”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나 보다.

민수가 새초롬한 눈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큼. 큼. 그래 보이냐?”

귀밑까지 찢어졌던 입을 가렸다.

“녀석들이 측은해서 그런 건데. 쯧쯧.”

“제가 보기엔 즐거워 죽으려는 것 같은데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냐! 이건 새로운 걸 만들 생각을 하니까 즐거워서 그런 거야. 조각칼 가져 왔지! 얼른 이리 내.”

민수는 여전히 불신에 가득 찬 눈빛이었지만, 뭐 어쩌겠어.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민수가 물었다.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뭘 어떡하긴, 딴 생각 못하게 몰아 붙여야지.”

이미 방침은 정해져 있다.

“그렇게 몰아붙여서 되겠어요? 아직 충격을 못 벗어난 것 같은데.”

“여기서 그 녀석들보다 딱히 뛰어난 사람도, 떨어지는 사람도 없어. 이미 정예 중의 정예라고.”

민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도 면접 볼 때 같이 있었으니까, 잘 알죠. 다들 과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죠.”

“그리고 지금 이 상태에서 다른 특별성을 보이지 못한다면, 이들의 탈락은 정해진 거라고. 내가 팀장으로 있는 이상, 그건 용납을 못 해!”

내가 보는 그들의 문제는 정신적 충격이나 실력 따위가 아니다.

분위기 파악이 아직 덜 된 거지.

“그 사람들 모두 저나 경호처럼 생각하지 마세요. 형처럼 실전으로 덤비는 타입은 아직 만나보지도 못했을 텐데.”

“알고 있어. 바탕은 좋은데, 실전 경험이 없는 신병들이라는 게 문제지.”

“그러니까 좀 살살…….”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신병 딱지는 의미가 없다.

“아냐! 이럴 때 일수록 몰아붙이는 거야! 다른 생각 일체 못하고, 일에만 집중하도록.”

***

“팀장, 분명히 민수 학우를 통해서, 잠시 쉴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만.”

“네. 저도 그 말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급히 소집을…….”

“의견을 묻고 싶었습니다. 다른 팀과 동일한 속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는, 제가 여러분을 평가할 기회가 한 번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게 뻔하구요. 그래서 그릇된 평가를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입니까?”

자포자기에 가까운 승범의 말이었다.

‘자기가 하자면 하는 수밖에 없는 걸 뻔히 알면서! 동의는 무슨!’

불만 가득하지만, 차마 발산은 못하는 표정.

“저는 여러분께 두 번의 평가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 학우가 물었다.

“그럼 기회를 한 번 더 주신다는?”

“그렇습니다.”

학우들끼리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래도 들리는 소문처럼 그렇게 독한 인간은 아닌가 봐! 기회를 한 번 더 준다잖아?”

“뭔가 미심쩍은데, 내가 알고 있는 정보로는 저렇게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다고.”

“뭔데? 무슨 정보?”

비밀스레 소곤거리는 소리에 중인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앞에서 떠들어 대는 회장에 대한 정보였다.

“내 고등학교 후배 하나가 건축과였거든, 한석이라는 놈인데, 지금 군대 가 있거든.”

“그런데?”

“걔가 저 인간 욕을 얼마나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열심히 하자고 살살 격려하더래.”

“열심히 하자는 게 어때서?”

“그게 함정이라는 거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한마디로 족쇄에 묶이는 거지. 일단 시작하면, 잠도 안 재운대. 잠 와서 죽겠다고 한 마디 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대. ‘잠! 잠꼬대 같은 소리 하고 쳐 자빠졌네. 죽으면 영원히 잘 수 있으니까, 닥치고 일이나 해!’라고 개쌍욕을 하더래.”

“그걸 놔뒀대? 한 판 붙지 그랬어?”

“그 녀석이 얼마나 양아치인데, 그냥 놔뒀겠어? 덤볐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발차기가 얼마나 찰지게 들어오는지, 한 방에 설설 기었다고 하더라고. 그 다음부터는 뭐, 알아서 기었다고 하던데?”

그 말을 듣던 학우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그래도 열심히 하자고 하는 게, 뭐 그리 나쁜 거라고, 덤비기까지 했대? 건축과 군기가 그것밖에 안 돼?”

그의 반론에 한석의 선배가 코웃음 쳤다.

“제 죽을 줄 알고 덤볐으니, 오죽하면 그랬겠냐구? 한석이 녀석, 끽소리 못하고 5일 밤샌 다음에 병원에 실려 갔잖아.”

“그렇게 빡시게 굴린대?”

“농담 아니고, 좀만 늦었으면 심장마비 올 뻔 했다던데?”

“정말이냐?”

“그래. 원래 그 녀석 졸업하고 군대 가려고 했는데, 바로 그 해 겨울에 지원해서 갔잖아!”

“진짜?”

“저 인간이랑 붙어있으면 목숨이 간당간당하다고 확신했던 거지.”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한석에 의해 부풀려진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고 반응이 갈라졌다.

‘야! 진짜 지금 관두는 게 나은 거 아니냐? 똥 밟은 셈 치면 되잖아! 안 그래?’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냐? 우리가 건축과 학생도 아니고. 그건 아닐 거야.’

‘그래도 일단 확인은 해야 되지 않아? 기회를 한 번 더 준다잖아.’

‘그럼 누가?’

순식간에 승범에게로 눈길이 모아졌다.

‘어차피 미움 받았으니, 끝까지 미움 받으라 그거냐? 젠장!’

무언의 압박에 떠밀려 승범이 손을 들었다.

‘이것들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어떤 말이 되었든, 내게 유리한 말은 아니리라.

나를 힐끗힐끗 훔쳐보며 말을 옮기는데, 호환마마를 보는 듯한 눈초리였다.

승범이 손을 들었다.

“팀장. 질문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승범 학우.”

“그런데 기회를 왜 한 번 더 주시려는 거죠?”

“솔직히 말씀드리죠. 다른 팀들은 여러분들이 나가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를 바랄 겁니다.”

팀원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어쩔 수 없죠. 자기들 손으로 내보냈으니, 계속 얼굴 마주치기는 껄끄러울 겁니다.”

“그런 이유도 있지만, 문제는 조만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겁니다. 잔류와 탈락자의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 시간은 길게 끌어봐야 일주일 정도가 한계일 겁니다.”

승범은 씁쓸한 표정으로 수긍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죠.”

“잔류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필요합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니 잔류를 시켜야 한다.’는 명분이 필요해요.”

“하지만 한 번으로 여러분의 실력을 평가하기엔. 제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한 팀원이 옆 사람에게 귓속말을 했다.

“진심인 거 같은데?”

“응. 내가 봐도 그래.”

“저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니까?”

‘넘어가면 안 된다고?’

한 학우의 말이 유난히 잘 들렸다.

‘아까 한석이 어쩌고 하던 녀석이잖아.’

“그래도 기회를 한 번 더 준다는 건 사실이잖아. 저 말에 무슨 문제가 있냐?”

‘근거 없는 의혹이 확산돼 봐야 이득될 건 없어.’

“승범 학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부러 그를 지목했다.

‘하기 싫다고 하기만 해 봐!’

정말 내가 싫어서 시비 걸었던 것이 아니고, 그 일에 대한 미안함이 남아 있다면, 내 편을 들어줄 것이다.

나와 다른 학우들을 번갈아 보다가 승범이 말문을 열었다.

“팀장의 말에 동의합니다.”

한 명의 동의를 얻어냈다.

“다른 분들도 동의하십니까?”

각각의 면면을 바라보며 호소했다.

‘제발 동의하라고. 너희들 그대로 데리고 박람회를 가고 싶다고.’

자격을 증명할 거면, 처음에 이의 제기한 녀석에게 보여줘야 한다.

승범을 비롯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사람들에게.

‘엉뚱한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봐야 의미가 퇴색할 뿐이지.’

내 진심은 통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제가 여러분과 끝까지 박람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팀이 한 마음이 되는 것, 그것보다 더한 시너지 효과가 어디 있나?

내 열의가 그들에게 전해진 듯, 눈동자들이 열정으로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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