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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30화 (230/427)

건축의 신 230화

심사의 자격(01)

박 목수가 물었다.

“내게 할 말이라니? 그게 뭔가?”

“실은 오늘 아침에 대목장 어르신께서 다녀가셨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네. 보이찬가 하는 걸 선물로 드렸다면서?”

박 목수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방금 한잔하고 왔네. 잘했어. 어르신께서 욕심이 없으신 분인데, 자네한테 받은 차는 맘에 드시는지, 자랑을 엄청 하시더군.”

“저도 선물 받은 겁니다. 어르신도 하나 챙겨드려야지 싶어서.”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선물 받으면 나도 하나. 알지?”

“네.”

‘언제 또 곽 이사가 중국에 가게 되면요.’

그의 장난에 웃음으로 응수했다.

“그런데 어르신, 대목장께서 좀 힘드신 것 같던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가?”

최 옹은 ‘다 늙은 것들이 무슨 반발을 하겠느냐?’며 큰 소리를 쳤지만, 늙은 생강이 더 매운 법이거든.

내게는 그 말이 최 옹,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으로 들렸다.

약해진 자신을 다잡으려는 각오랄까?

해결이 잘 되었다면, 자신이 부른 사람들인데 ‘다 늙은 것들’이라며 비하하지 않았겠지.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랬나. 정확히 봤네.”

박 목수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께서는 강제적으로 밀어붙이셨네.”

“그랬습니까?”

“어르신을 믿고 오기는 했지만, 아직 우리는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 않나? 이해해 주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더구나 이번 일 같은 경우라면, 아무리 어르신의 말씀이라도 무작정 따르기는 어려운 일일세.”

향후 전통의 향방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라, 작은 일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르신께서 협력을 하는데, 조건을 내거셨다네.”

“어떤 조건 말입니까?”

“만약 이번의 일이 잘못되면, 우리 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무조건 따라주시기로 말일세.”

“젊은 사람이라면 누구 말씀이신지?”

박 목수가 자신을 가리키며 웃었다.

“우리도 전통 쪽에서는 젊은 편이라네. 하하하.”

그는 웃었지만, 나는 속이 씁쓸했다.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50이 넘은 박 목수가 젊은 축에 속한다는 말인가?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박 목수는 환갑이 넘어도 선배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겠지.’

그 고집을 꺾는 한이 있어도 나를 믿어준다는 말이었다.

또한 일이 안 될 경우에, 얼마나 상심이 크실 텐가?

“박 목수님은 어느 편에 서셨습니까?”

“나야. 뭐 항상 어르신 편이지. 물어볼 것도 없어. 내가 그 어르신께 신세진 게 얼만데.”

그의 손을 잡으며 확신했다.

“만의 하나라도 대목장께서 젊은 분들의 의견에 따라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절대로!”

오히려 이번 일이 끝나면, 아무도 대목장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말이 이 계통의 법이 될 테니까!’

확신의 말에도,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자네 말처럼만 된다면야, 나도 원이 없겠네만…….”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 모양이다.

“어르신. 특별 채용 인원 중 둘을 대목장께 양보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 된다면 애들 구슬리기에는 더없이 좋지. 그런데 그건 왜?”

당연히 대목장에게 힘을 실어줄 의도였다.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실은 학우들과 말을 하다 보니, 박람회의 관건은 전통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느냐?’와 ‘어떻게 잘 보여주느냐?’가 되더군요.”

“그래서?”

“저보다 어르신들께서 더 잘 보실 것이니, 권한도 비율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만드는 건 제가 어떻게 독촉을 하면 되지만, 보는 건 오랜 안목이 필요하잖아요.”

“그건 맞는 말일세.”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는 잠시나마 대목장들을 존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건설로 가는 직통 티켓 두 장을 대목장이 쥐고 있는 거니까.

물론 교수들도 자신의 제자들에게 원망 받지 않으려면 자중해야 할 것이고.

‘특채 심사권!’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닐지 몰라도,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좀 더 세밀한 얘기를 나누려는데, 강단 쪽에서 고성이 들었다.

불만 가득한 목소리였다.

“심사권한이 바뀐다기에 기대하고 들었더니, 별로 바뀌는 것도 없잖아.”

“그건 학생회 재량이라고 말했잖아요. 전통건축 학과장, 대목장에게 권리를 양도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양보한 거라고요.”

격하게 대응하는 경호의 목소리였다.

“뭐가 충분하다는 거야? 사실 학생회에서 면접 보는 것만으로도, 주최 측의 권리는 다 썼다고.”

그는 동의를 구하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안 그래? 우리도 교수님들도 충분히 양보한 거라고. 이 이상은 학생회 측의 오바라고.”

민수가 그를 달래는 소리도 들렸다.

“주승범 학우. 그건 그렇게 생각하실 게 아닙니다.”

“부회장, 말을 바로 합시다. 우리가 불러달라고 했습니까? 그쪽에서 불러서 도우미로 왔습니다. 면접도 이해했구요. 그런데 또 일방적인 심사라니, 과한 처사 아닙니까?”

“그래서 전통건축과에…….”

“누가 모르는 줄 알아요. 대목장 어르신이 학생회장이랑 사이가 얼마나 좋은지?”

경호의 볼이 씰룩거렸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안다니까. 기회를 줬는데도,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죠.”

‘경호 녀석. 함부로 나서지 말랬더니.’

말리라고 붙여놓은 놈이 기름을 끼얹고 있었다.

경박하다. 경박해.

젊으니 그런 거겠지만.

“박 목수님. 전 저쪽으로 가봐야겠네요.”

“그러게. 어서 가 봐.”

경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특히 당신! 당신은 절대로 특채로 안 뽑을 거니까, 그런 줄 알아!”

어린 만큼 불 같고, 뒤를 생각하지 않는다.

경호의 말이 기회라도 된 양, 그는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저거 봐! 완전 우릴 자기 하수인처럼 취급하잖아. 경호 학생. 그게 건축과의 입장이야?”

“그럼 어쩔…….”

민수가 흥분하는 경호를 말리며 나섰다.

“경호야. 너무 앞서간다. 그만해.”

“민수 형. 손 치워요. 그렇게 양보를 해 줘도…….”

내가 가는 것을 봤는지, 민수가 말했다.

“성훈이 형 온다. 그만해.”

경호가 즉시 입을 닫았다.

‘경박한 녀석!’

작업장이 도떼기시장마냥 시끄러웠다.

민수들을 뒤로 물리고, 강단에 섰다.

“학우, 이름이 뭡니까?”

“주승범입니다.”

말투를 들으니, 아까 빈정거리던 녀석이었다.

그에게 물었다.

“우리가 심사하는 게 불만입니까?”

아마 이때, 내가 희미하게 웃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렇잖아요. 면접도 그렇고…….”

“명확하게 이유를 대세요. 얼버무리지 마시고.”

아직도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많았다.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받았다 생각했는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학생이 학생을 심사한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건 면접 때도 나왔던 말인데, 어찌 되었든, 불만이 그만큼 많다는 말이겠지.’

소수였다면, 쫓아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웅성거림과 분위기로 봤을 때, 내재된 불만들이 꽤 많아 보였다.

자존심이 되었든.

학생회의 편협한 관점 때문에 자신에게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든.

‘가만 놔두면 언제가 되어도 터질 거야.’

방법은 두 가지였다.

의견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제압을 하든지.

그럼 심사를 누가 하라고?

교수들? 학생들? 선거?

‘흥! 웃기는 소리.’

이런 말을 했다가는 분란만 일으킬 뿐이다.

그렇다고 전통건축과에다가 특채의 권리를 모두 준다?

‘이번 한 번이면 그렇게 하겠어!’

하지만 현재의 지원이 계속 된다고 가정하면, 이것은 분명히 좋지 않은 관례가 될 것이다.

‘그럼 내가 한 교수를 대학에 박아두는 이유가 없어진다고.’

분명 전통건축학과도 중요했지만, 어디까지나 메인이 되는 것은 건축과였고, 그중에서도 한 교수는 확실한 배경이 되어줘야 했다.

‘그것도 힘 있는 배경이.’

그럼 방법은 한 가지네.

좀 귀찮지만, 실력으로 제압하는 것.

그에게 물었다.

“분명히 합시다. 학생회가 심사를 본다는 게 불만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심사를 볼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겁니까?”

공격적인 내 물음에 그는 버벅거렸다.

“그, 그게…….”

내 성질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을 터!

그를 쏘아 보았다.

‘말 잘해라.’

“당연히 학생이…….”

“학생은 자격이 없다는 겁니까? 학생이라서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건 아닙니다.”

대안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니까!

“잠깐!”

손을 들며 말을 끊은 사람은 보람이었다.

“뭡니까? 보람 학우.”

‘엉뚱한 소리하기만 해 봐! 바로 박살을 내줄 테니까.’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보람이 피식 웃으며 단상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좌중을 향해 말했다.

“우리 냉정하게 생각하자고. 나도 승범 학우의 말처럼 불만이 없는 건 아니야.”

승범이 물었다.

“그래서?”

“너희들 자꾸 학생회장을 나쁜 놈으로 몰고 가는데, 난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심사 자격 가지고 자꾸 말들이 나오는데, 승범이 너한테 대안이 있어?”

“그걸 찾자는 말이잖아.”

“아니 아니. 넌 그냥 학생회에서 심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싫은 거야.”

“아니거든.”

“그럼 대안을 대봐. 각 과의 교수님들?”

“우리는 학생이라,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그러니 안목에도 허점이 있을 테니, 그분들께 맡기는 것도 좋지.”

“하하하. 어이없네.”

“비웃는 거냐?”

“미안. 어이가 없어서. 그럼 하나 물어보자. 교수님들 중에 학생회장만큼 꼼꼼하게 보실 분이 계실 것 같아. 건축의 건 자도 모르는 분들이?”

좌중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회장 말하는 거 봤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분이 계셔?”

좀 전의 웅성거림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도저히 안 되실 걸.”

“우리 교수님도 그래. 완전 교과서적인 분이라서, 새로운 관점하고는……. 음. 역시 안 돼.”

보람이 그들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또 하나 문제가 있지.”

“또 뭔데?”

승범이 화난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의 의견이 정면으로 거부당했으니, 수치스러웠으리라.

보람이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너희 과 교수님은 누굴 선택하실 것 같냐? 우리 교수님은 나부터 찍으실 것 같은데?”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안 그럴 것 같아?”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말을 이었다.

“생각하고 자시고가 어디 있어? 손은 안으로 굽는다고.”

승범의 눈가가 꿈틀거렸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그럼? 건축과 교수님들한테 부탁할까?”

아무도 말이 없었다.

“건축과 학생들로만 특채를 채워도, 불평 안 할 자신 있어?”

중인이 웅성거렸다.

“그건 미처 생각을 못해봤네.”

“하하. 우리 손으로 족쇄를 채우는 거잖아.”

보람이 물었다.

“그럼 선거로 할까?”

“풋!”

좌중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전대미문의 결과가 나올 거야. 전원 후보, 각자 한 표!”

보람이 손뼉을 치면서 주의를 끌었다.

“너희들이 생각해도 그렇지?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대안이 없어.”

“그런 네 생각은 뭔데?”

“지금까지처럼 학생회장한테 맡기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심사 자격은 충분해.”

작업실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뒤에 박 목수님도 계시지만, 새로운 걸 보는 관점에서는 학생회장이 낫지 않을까 싶어.”

보람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그냥 제 의견입니다.”

뒤에서 우리의 토론을 보던 박 목수가 고개를 옆으로 갸웃하며 웃었다.

“허허허. 자네와 내 의견이 일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구만 그래.”

“이건 대목장 어르신께서 하신 말씀인데.”

사람들의 눈이 모두 뒤로 쏠렸다.

“만드는 건 우리 장인들이 잘 하지만, 보는 건 너희 앞에 회장 녀석을 못 따라갈 거라 하시더라.”

들릴 듯 말 듯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저 성질 드러운 양반이?”

“그보다 대목장 어르신이 말씀하셨다잖아.”

“이거 이러면, 두 번 다시 심사 가지고는 말 못하겠는데?”

“승범 선배, 좃된 거 아냐? 아까부터 깐죽거리고 시비 걸더니.”

“그러게. 저 회장 성질 드럽기로 유명한데. 혼자 잘난 척 하더니. 쯧쯧.”

박 목수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알다시피, 대목장 어르신이 성훈이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농담은 절대 안 하신다.”

승범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언젠가 또 터질 문제, 여기서 확실히 하는 게 낫겠어.’

좌중에게 물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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