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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29화 (229/427)

건축의 신 229화

배려와 화해(02)

성훈이 한창 이야기를 할 무렵.

대목장과 박 목수가 작업실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대목장이 슬며시 문을 닫으며 말했다.

“박 목수. 좀 있다가 들어가세.”

“왜 그러십니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지만, 지금 딱 시간 맞춰서 들어가면 상황이 민망하지 않겠는가? 사과 받으러 온 것도 아닌데.”

박 목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좀 더 들어보시죠.”

***

보람이 물었다.

“그럼 네가 내 아이디어를 좋다고 한 이유는 뭔데?”

“네가 말한 것과 같아. 움직이니까.”

“그럼 나하고 똑같잖아.”

결과가 같다고 해서, 과정이 같을 수 있을까?

“난 이유가 두 가지나 있지. 첫 번째는 지금 말한 맞춤을 더 잘 보이게 하려는 거지.”

“잘 보이게 한다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나라 건축의 특징이 거기에 있으니까.”

“어떤?”

“우리나라는 대대로 가난했었다. 물론 근면했지만,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는 관계로 외침이 빈번했지.”

“네 말대로 못을 박으면 간단하게 끝날 것을 왜 어렵게 맞춤공법으로 했을지 생각해 본 적 있어?”

“그야…….”

외침이 잦은 나라에서 자주국방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었을까?

최대한 날붙이는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맞춤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던 거지.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우리 조상들은 멋을 내고 싶었던 거야. 견고하기도 했어야 했고. 그들의 열망이 담긴 것이 바로 맞춤이라고 생각해.”

“아. 그럼 네 말대로라면, 맞춤공법이 우리 전통건축의 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지.”

“뭔데?”

“맞춤의 디테일과 아름다움은 지붕을 얹으면, 안 보여. 어떻게 결합이 되는지를 보여줄 수가 없다고.”

보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지붕을 열면 그게 보이겠구나.”

“응. 보여줄 수 없는 곳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에서 그 의미가 있는 거지.”

내 설명에 이끌린 좌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의 아이디어를 높이 샀는지 이해했겠지?’

이 설명은 그들이 작품을 구상하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학우들에게 말했다.

“난 굳이 전통을 뜯어고치며,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어.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기초실력이 부실했다.

실제로 그런 것을 시도하는 것은 몇 년 후가 될 것이다.

보람이 물었다.

“그럼 우리한테 뭘 원하는데.”

“내가 원하는 건, 젊은 생각이야. ‘아름다운 우리 건축을 어떻게 외국인이 보게 할 것인가?’가 주안점인 거지. 아마 특채에 대한 심사도 그걸 기준으로 이뤄질 거야.”

보람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하긴 우리나라 건축만큼 아름다운 게 어디 있겠어.”

누구나 느끼는 자국 문화의 자긍심이다.

하지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 밑에 경련이 일었다.

“그것과는 다른 말이야.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거니까.”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은 좋지만, 자국 문화의 편애처럼 보기 싫고, 저급한 것도 없다.

그런 마인드가 있으니까, 잘못된 전통과 관습도 이성의 여과 없이 따르게 되고, 발전이 없는 것 아닐까?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우리는 박람회에서 ‘한국의 전통건축은 외양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내부의 이음도 아름답습니다.’ 라고 어필해야 하는데, 지붕을 여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또 있을까?”

물론 있을 수도 있겠지.

허나 이것이 가장 직관적이었다.

보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해했어. 다른 이유는 또 뭔데?”

“이것도 연장선상의 이야기야.”

“연장선상이라. 하지만 의미는 다르겠지?”

그의 말에 수긍하며 말을 이었다.

“보람아. 전통건축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 어디라고 생각해?”

“음…….”

생각이 많을 것이다.

화려하지 않은 듯 하면서도 화려한 곳 투성이니까.

‘하지만 깊이 생각할 건 없지. 제일 손 많이 가는 곳이 가장 화려한 곳이니까.’

“질문을 바꾸지. 어디가 가장 만들기 어려웠어?”

“음……. 천정.”

그런 답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왜 어려운데?”

그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면 말했다.

“크. 용어도 어렵고, 주두, 소로, 살미, 첨차, 뜬장혀. 으으. 그리고 그거 만들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어지럽다. 안 그래? 얘들아?”

보람의 말에 다른 팀원들도 머리를 끄덕였다.

다들 조각할 생각을 하니, 진절머리가 나는 모양이었다.

‘나도 그래.’

한국 건축에서 화려한 부분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천정을 꼽을 것이다.

절에 가보신 사람들은 알 걸.

사찰의 천정들이 얼마나 화려한지.

색깔뿐만 아니라, 그 구조도 화려하기 그지없지 않던가?

특히나 기둥 위에 올려친 공포들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리라.

‘난 처음 보고, 기둥에서 산호초가 튀어나온 줄 알았다고.’

“좋아. 잘들 알고 있네. 그렇게 신경 써서 만들었으니,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겠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일수록, 더 다양한 풍미를 즐길 수 있지 않던가?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부분을 가장 부각시켜야겠지.”

내 말에 보람이 힘을 주며 응했다.

“그럼. 당연하지. 고생한 대가는 받아야지.”

하지만 모형에서 지붕은 보여도, 천정이 보이던가?

보람을 포함한 모두에게 물었다.

“평소대로 모형을 만들면 보일까? 천정이?”

실제로도 천정이 잘 보일까?

사람의 눈높이보다 높은 것에는 눈이 덜 가게 마련이다. 고개를 들어야 하니까.

굳이 고개를 아프게 하면서, 일부러 천정을 볼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눈높이 아래에 있는 벽과 기둥은 소박하기 그지없거든.’

전통건축의 건축학적 진수는 모두 천정에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지붕 기와의 무시무시한 하중을 분산했는지는, 한옥의 대들보를 봐야 할 수 있다.

“고로 우리 건축의 진수는 모두 건물 속에 숨어 있다는 말이지.”

숨겨진 아름다움은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다.

보여야 아름다움이지, 보이지 않는 대서야…….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럼 한국말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각 나라 말로 ‘이 작품은 천정이 제일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허리를 낮추고 모형의 열린 창틀 사이를 주시하십시오. 그러면 아름다운 천정이 보일 겁니다.’라고 수십 개국 말로 적어둘까?”

“그건……. 곤란하겠지.”

“누구나 귀찮은 것은 싫어해.”

고객의 정의는 ‘떠먹여주길 바라는 자’이다.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방법은 하나야. 보이게끔 하는 것.”

보람이 손을 딱! 튕겼다.

“아. 그래서 지붕을 연다고 했을 때, 좋은 아이디어라고 했었구나.”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작품의 백미는 지붕입니다.’라고 지붕을 열어 보여주는 거지. 굳이 긴 설명이 필요할까?”

“아!”

“포인트는 ‘어떻게 하면 한국의 미를 눈에 띄게 할 수 있느냐?’하는 거지.”

애초에 나는 전통을 비틀어 다른 무언가를 만들 생각은 없었다.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미래에 시작될 전통한류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런 행위는 이미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

저급한 싸구려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

조악한 물건을 바가지 씌우고, 당장의 이득을 취하지만, 그들로 인해 관광객들은 한국에 실망해 버린다.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건너뛴 것은, 그 어떤 것도 저급한 싸구려가 될 뿐이다.

내 의도를 이해한 학생들이 들썩거렸다.

“히야. 그런 뜻이 있었어? 난 이유도 모르고 그냥 따라했는데.”

“당사자도 몰랐던 것 같으니까, 우린 모르는 게 당연해.”

“우리 진짜로 대상 타는 것 아냐?”

“학생회장이 우리 팀에 오면 어떨까? 그럼 특채는 따 논 당상인데.”

“야! 주최 측이 끼어들면, 심사가 공정하게 안 되지.”

“그건 걱정하지 마. 보람 선배가 그러던데. 학생회 측은 특채 제외래?”

“진짜?”

“응! 확실해.”

“그럼 더 좋지.”

“왜?”

“성적이 좋으면, 우리 팀에서 특채인원이 나올 거고, 학생회는 제외라며?”

“그러네. 너 천재 아니냐?”

“안 되면 다른 건축과 학생이라도 끌어들이자.”

학생들의 태도가 승범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심사를 왜 학생회에서 하냐고, 지랄하지 않았냐? 쟤네들?”

“그러긴 했지.”

“아. 진짜 한국인 냄비근성,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리고 저 정도는 건축과면 다 아는 거 아니냐? 너도 건축과잖아.”

“하지만 난 저렇게 생각해 본 적 없다. 모형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지. 저 정도 안목이면 심사해도 난 말 못하겠다.”

“너, 이 냄비같은 새끼야. 너도 아까 학생회에서 심사하는 건 잘못된 거라고 선배로써 따끔하게 한 마디 하겠다며!”

“주승범! 이 망할 자식아. 인정할 건 좀 인정해. 저기다 대놓고 무슨 말을 하냐?”

“쳇. 건축과라고 편드는 거냐? 아예 니네 과에서 다 해 처먹기로 한 거냐?”

“뭐? 이 자식이. 빈정거리지 마라. 한 대 쳐 맞기 전에.”

“학생회에서 네 명 다 심사한다고 했지?”

“당연한 거 아니냐? 성훈이가 데리고 왔는데, 지 맘대로 하겠지. 어쨌거나 난 심사에 불만 없다.”

“선배가 되어 가지고. 쯧쯧. 도대체 쟤보다 나은 게 뭐냐? 병신아.”

“입 닥쳐. 짜식아. 너도 가산점 제대로 따고 싶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시키는 거나 잘해. 성훈이 저 자식 승질 드럽기로 유명하니까.”

“냅둬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백이면 백, 사람들의 생각은 다 달랐다.

‘심사에 대한 문제는 대목장에게 일부분 토스했으니까, 말이 덜 나오겠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들으며, 새삼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저것 보게. 박 목수. 내가 뭐랬나?”

가볍게 질책하는 대목장의 말이었다.

“어허. 녀석이 전통을 흩트려 놓을 거라 생각하고, 오해를 한 것이군요.”

“암. 괜한 우려였어.”

‘어르신이 녀석에게 기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군.’

사실 자신은 성훈처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며칠 전이었던가?

대목장의 말이 생각났다.

‘성훈이 저 녀석이 하는 말에는 다 이유가 있어. 가만히 기다리면 알게 될 터이니, 기다리게. 그리고 목적한 바를 반드시 이루는 능력이 있는 놈이니. 걱정 말게.’

성훈의 의견에 반대하는, 자신을 설득하면서 했던 대목장이 했던 말이었다.

“그럼 이 자리는 자네가 마무리 하도록 하게. 자네가 이끌어 갈 재목들이 아닌가?”

대목장이 그에게 슬쩍 바통을 넘기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젊은 녀석들이 스스로 반성을 하는데, 내가 어른입네 하고 사과를 받았다가는 부끄러움을 금치 못할 거야.’

적어도 아이들보다는 너그러운 모습을 보이겠다며, 그는 결심을 다졌다.

박 목수가 문을 열며, 헛기침을 했다.

“흠. 흠.”

성훈이 그 소리에 박 목수를 돌아봤다.

“박 목수님. 오셨습니까?”

막 들어온 것처럼 연기하며 그가 말했다.

“어흠. 이야기 중이었군. 방해가 되었다면 미안 허이. 할 얘기 남았으면 마저 하게나.”

성훈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뇨. 이제 이야기 끝났습니다.”

“오다가 밖에서 잠시 들었네. 나는 회장 자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잠시 오해를 했었구먼. 허허허.”

“그저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을 뿐입니다.”

“그래도 오랜 시간 생각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말로 들리네만.”

“감사합니다.”

보람이 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어르신. 제가 생각이 짧아서…….”

“아닐세. 내가 미안하지. 자네 생각은 묻지도 않고, 대뜸 소리부터 질렀으니. 이제 자네들 생각을 알았으니, 이제 앞으로는 서로 말로 풀어보도록 하세나.”

***

둘의 화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더는 그런 다툼이 없었으면 좋겠네.’

민수에게 말했다.

“아까 나하고 오면서 했던 말들 있지?”

“아. 특채인원 심사 건 말이죠?”

“응. 그거 얘들한테 잘 좀 설명해 줘. 불만 있으면 잘 다독거리고. 그리고 경호 넌,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경호가 투덜거렸다.

“제가 민수 형 따라서 얼마나 열심인데, 그런 말씀을 하세요? 민수 형만 챙기지 마시고, 저도 좀…….”

“쓰읍!”

민수가 투덜거리는 경호를 다독이며 물었다.

“형은요?”

“나는 박 목수님께 여쭤볼 말이 좀 있어서.”

“네. 알았어요.”

민수에게 학생들을 맡기고, 박 목수와 뒤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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