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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28화 (228/427)

건축의 신 228화

배려와 화해(01)

민수와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민수야. 미안하다. 학생회 일 때문에 너한테 전부 미뤄버리고.”

민수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것도 이제 거의 마무리 되었으니까, 박람회 일에도 적극적으로 임할게.”

“그러면 저야 고맙죠. 어차피 제 일이기도 하지만.”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어? 아까부터 얼굴이 안 좋아.”

“특별한 문제는 없는데…….”

말꼬리를 흐리는 그에게 물었다.

“뭔데 말해 봐. 알아야 가서 창피를 안 당할 거 아니냐?”

“별 건 아니고, 아직도 학생회에서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 불만이 있어요.”

“네 생각은 어떤데?”

“저도 특별한 사람이 아닌데, 같은 학생을 평가한다는 게. 좀 껄끄러워요.”

원체 내성적인 성격이다 보니, 그런 것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

말없이 걷다가 민수에게 물었다.

“만약에 그 평가를 너희 할아버지와 장인들이 한다고 하면 어떨까?”

“그거나 그거나. 결국은 형이 하는 거잖아요. 할아버지는 형 편을 들 테니까?”

툴툴 대는 녀석의 어깨를 감쌌다.

“적어도 학생들은 모르잖냐? 최 옹과 내가 무슨 관계인지.”

“에…….”

녀석이 나를 보는 눈이 딱 사기꾼 보는 시선이었다.

“조삼모사면 어때? 너도 평가한다는 부담을 덜고 말이야.”

“그렇기는 하네요. 확실히.”

녀석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그리고 장인들의 위신도 서고 좋잖아.”

“그렇게 해요. 그럼.”

“대신 특채 선정은 우리랑 대목장이랑 반반 나눠서 둘씩 하는 걸로 하고 말이야.”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도 많이 좋아하실 거예요.”

‘그래. 욕을 먹어도 반반 나눠 먹겠지.’

민수가 말을 이었다.

“피 터지게 싸우도록 할 거라면서, 그렇게 양보해도 돼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걱정 마. 싸우는 건 너와 내가 아니니까.”

“보람이나 보러 가자.”

“그 선배는 왜요?”

“박 목수랑 제대로 화해했는지 확인해야지.”

“그래요. 알았어요.”

학우들끼리 피터지게 싸우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트러블이 없어야 한다.

치열한 경쟁을 시작해야 하는데, 장인들과 마찰이 생기면 안 되잖아.

‘그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하거든.’

장인들은 대목장이 알아서 잘 제어하겠지만, 학생 측에서의 내 역할도 중요했다.

***

민수와 함께 강당으로 들어섰다.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네.”

“장인들과의 협업이 이제 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대목장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구나.”

민수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장인들께서 협조를 잘해 주신 덕분이죠.”

‘녀석! 쑥스러워 하기는.’

민수의 얼굴이 발그래졌다.

나는 최 옹이 부러웠다.

저렇게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 한국에서는 보기 쉬운 모습이 아니니까.

장인들에 대한 인식이 좋았었다면, 우리도 일본처럼 전통을 계승할 수 있었을 텐데.

예로부터 외침이 심했고, 가난한 나라였다.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이런 걸 전혀 모르겠지.’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한국은 IT 강국이었으니까. 한국의 옛 모습은 전혀 모를 것이며,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이전 세대만 해도, 생존이 문제였다.

생활의 질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니 돈이 되는 새로운 것만을 추구했고, 우리 것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바꿔야지. 뿌리를 모르는 민족은 비참해지지.’

잘 먹고 잘 살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뿐.

단상을 접으며, 작업장으로 눈을 돌렸다.

분주한 모습 속에 완성되어가는 모형들이 보였다.

어설펐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민수가 한쪽 탁자로 눈짓했다.

“아직은 실험작들이지만, 열정들은 대단해요. 저기가 보람 선배 자리예요.”

보람이 팀원들과 함께 모형을 만들고 있었다.

큰 탁자에 한 팀씩 자리를 차지했는데, 가장 가운데 자리가 보람의 자리였다.

의자 아래로 톱밥과 나무 부스러기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내가 온 줄도 모르는지, 자기들끼리 열중해서 토론 중이었다.

“야. 저런 건 민수 네가 진짜로 잘하는 건데. 손이 근질거리지 않냐?”

‘모형 만드는 건, 그동안 모두 민수가 조장이었는데. 그게 벌써 일 년이나 지났네.’

민수가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저야 뭐. 저런 거 워낙 좋아하니까요. 회장실에 조각해 둔 것 보니까. 형도 실력도 많이 늘었던데요.”

“아. 조각상? 그냥 심심해서 만든 거야.”

손에 익었더라도, 자꾸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니까.

‘귄터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만들었지.’

“여자던데, 누구에요?”

“소피아.”

“아! 그때 독일에서 만났다던 여자 분이요? 그렇게 미인이에요?”

‘예쁘기만 하냐? 천사지. 천사!’

하지만 그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어깨를 으쓱하며, 멋쩍게 웃었다.

“응. 좀 예쁘기는 하지.”

녀석이 나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인상을 빡 쓰며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냐?”

“아니에요.”

민수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냥 여동생처럼 생각할 뿐이야. 딴 생각은 하지 마.”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전혀 믿지를 않는 눈치였다.

하긴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그런 미녀를 두고, 마음이 설레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남자라 할 수 있겠는가?

‘안 되겠군. 화제를 돌려야지.’

“민수야. 우리도 이거 할까?”

그는 나를 뻔히 보더니 말했다.

“화제를 돌리고 싶은 거잖아요.”

내 속셈을 녀석이 모를 리가 있나?

“하지만 손이 근질거리는 것도 사실이지.”

녀석의 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민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저도 하고 싶기야 하죠. 그런데 주최하는 우리가 끼어들면, 학우들이 달가워하지 않을 걸요. 특채 때문에 다들 민감해요.”

보람이 했었던 말이 생각났다.

학생회에서 특채를 미리 챙기는 것 아니냐고.

“그러니까 더 해야지. 잘 설명해서 의혹도 지우고! 좋잖아. 안 그래?”

“그렇다고 우리 둘만 팀을 짤 수도 없는 거잖아요.”

하긴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특채에는 관심이 없는 우리와 누가 팀을 짜려고 하겠는가?

민수가 다짐하듯 말했다.

“형, 손이 근질거리는 걸 모르는 건 아녜요. 그치만 겨우 정상궤도로 올려놨는데, 쓸데없는 분란은 일으키지 말아요.”

당분간은 참아야 할 것 같네.

일단은 다른 학우들이 전통건축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보람의 테이블로 가서 보니, 사찰로 보이는 평면도 위에 기둥들을 줄 세워두고 있었다.

아직은 조각이 익숙지 않은 듯, 면처리가 거칠었다.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고 있었다.

“보람 선배. 이제 기둥머리 올려야 하는데, 어떻게 파야 되요?”

기둥 깎기에 열중하던 보람이 고개를 들었다.

“어제 공부했었는데, 뭐라더라?”

익숙하지 않은 용어가 머리에 쉽게 떠오르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그 기둥 위에 십(十)자 모양으로 걸치는 거 있잖아. 양쪽으로 주먹장으로 걸치는 건데. 그게 뭐더라.”

아직 깊이는 부족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기특하지 않은가?

보람의 등 뒤에서 작게 속삭였다.

“사개…….”

“엉? 사개…… 그렇지! 사개맞춤!”

보람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 너 공부 많이 했……. 어이쿠. 깜짝이야!”

“그때는 사개맞춤으로 가야지.”

사개맞춤은 전통건축에서 기둥머리를 이을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었다.

(※작가의 말 사진 참조)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해야 할 것 아니야!”

그의 말에 눈썹을 으쓱하며 대응했다.

“어. 지금 왔어.”

“흐흐흐. 이 자식이…….”

인상 쓰는 보람에게 물었다.

“박 목수 어른은 어디 계시냐?”

“대목장께 들렀다 오신다던데.”

나를 보며, 보람이 투덜거렸다.

“야! 별 거 아닐 수 알았는데, 뭐 이리 복잡하냐?”

“뭐가 그리 복잡한데?”

“이거 보라고.”

그는 아까 만들던 기둥에 연필로 선을 그으며 말했다.

“이 기둥하고 보를 일일이 다 손으로 파내야 한다고. 이게 안 복잡하냐?”

십자로 교차되는 보를 한 기둥에서 잡아주는 데 복잡하니 않을 리가 있다.

‘그것도 못 하나 없이 결합해야 하는데.’

하지만 사개맞춤은 한옥의 기둥과 보의 결합을 긴밀하게 하는 중요한 맞춤공법이었다.

“그게 어때서? 그렇게 해야 빠지지 않을 거 아니야?”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보람이 투덜거렸다.

“대충 못으로 박으면 될 걸. 이렇게 복잡하게 나무를 깎아서 만드느냐 그 말이지.”

‘자식아. 거기서 못을 박으면 전통건축이 아니게 되지!’

보람의 말이 이어졌다.

“게다가 저렇게 끼워 넣었는데, 툭하고 빠져버리면 어떡하냐?”

주변을 둘러보니, 일부 학생들도 그의 말에 동조하는 눈빛이었다.

“그럴 리 없어.”

장담하는 나를 보며, 보람이 끼워 맞춘 사개맞춤을 아래쪽에서 툭 쳤다.

데구루루.

끼워뒀던 보가 튕겨 나왔다.

“이거 보라고.”

의기양양해 하는 그를 보며 말했다.

“사개맞춤 위에 뭐가 올라갈 것 같아?”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툭 치면 빠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제야 녀석이 제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아하. 지붕이 올라가는 구나.”

“그래. 절대로 빠질 일은 없어.”

벽이나 기둥보다 지붕이 훨씬 더 무겁다.

그 육중한 무게감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으랴?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어.”

보람이 이마를 닦으며 눈을 두리번거렸다.

아마도 박 목수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리라.

‘녀석. 제 발 저리기는…….’

보람이 억울한 듯 항변했다.

“야! 어리석다고 안 했다구…….”

“하지만 잘 생각해 봐. 이건 수천 수백 년을 이어 오면서 검증된 거야. 우리 짧은 지식으로 가볍게 판단해서는 안 돼.”

“그렇군. 내 생각이 짧았네.”

깨끗하게 승복하는 자세는 좋았다.

“만들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직접 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못이나 피스 없이도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튼튼한지도 말이다.

‘세상엔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이니까.’

보람에게 물었다.

“그런데 화해는 했냐? 그 어른이랑.”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하다고 했어.”

“박 목수는 뭐라시든?”

“그분 화내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 앞으로는 조심할게.”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응. 없으셨어.”

‘하긴 거기서 네 잘못이 뭐라고 말하면, 훈계하는 것처럼 들릴 테니까, 아무 말씀을 안 하셨던 건가?’

나름 보람의 체면을 신경 써 주신 것이리라.

여기서 하나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보람이 정말 자신의 잘못을 알고 사과했을까?

‘관계 회복을 위해 건성으로 한 건 아닐까?’

반드시 내 생각이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것은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보람이 박 목수와 기 싸움을 했을 리는 없고, 의사소통이 잘못된 것뿐이리라.

그러나 그의 잘못을 박 목수가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보람은 똑같은 잘못을 또 반복할 것이다.

녀석은 잘못했다고 생각지 않으니까.

‘똑같은 잘못을 또다시 반복하면, 화는 두 배로 난다고.’

보람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보람아. 그 어른이 왜 화를 내셨는지, 이유는 알아?”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아냐고 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

당사자인 박 목수도 하지 않은 말을, 제 삼자인 내가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어른 말마따나 생각 없이 전통 건축을 가볍게 생각했던 게 기분 상하셨던 거겠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난 좀 다르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내게 모였다.

“그래? 넌 뭐라고 생각하는데.”

“네가 설명이 부족했어.”

“뭐가?”

설명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설명할 거리도 없었다는 말이 어울리겠지만.

보람에게 확인 차 물었다.

“보람이 네가 지붕을 열기로 한 거, 네가 말한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있었어?”

“아니. 왜?”

건축의 이유가 아닌, 자신만의 이유였기에 박 목수를 설득할 수 없었던 거지.

고개를 젓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왜 그 아이디어가 좋다고 했는지는 생각해 봤니?”

“그러네? 그때 물어보려고 했는데, 흥분하는 바람에 까먹었다. 이유가 도대체 뭐냐?”

“아마 네가 모르는 그것 때문에 그 어른이 역정을 내지 않았나 싶다.”

“그게 뭔데?”

“넌 가장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어.”

“…….”

“왜 지붕을 열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그게 지금에 와서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너보고 설명도 없이, 중요한 전선을 끊으라고 하면 넌 어떻겠니. 더구나 너보다 전기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말이야.”

보람은 입꼬리를 씰룩이고 있었다.

‘또 사과하려니까 자존심이 상하겠지.’

하지만 이 행동은 젊은 학우들과 장인들 간의 예의와 행동의 경계를 긋는 일이 될 것이다.

“그분에게는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게 전통건축이야.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이래라 저래라 했을 때, 그분의 기분이 어땠겠어. 무시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미 화해를 하고 끝난 일을 또 들추면 더 불쾌해 하시지 않을까?”

어중간한 사과보다, 확실하게 매듭을 짓는 것이 백배 나을 때도 있다.

그 행동은 때로는 적이 될 자를 아군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해야 해. 이따 다시 뵙거든, 박 목수님께 제대로 사과해라.”

단호한 내 말에 보람이 답했다.

“알았어.”

“그분이 왜 네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지도, 스스로 이해하고.”

그의 배려를 우리는 예의로 받아야 했다.

적어도 어른들에게 싸가지 없는 놈들로 찍히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사개맞춤

(네이버. 알기 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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