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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27화 (227/427)

건축의 신 227화

곽 이사의 선물

며칠 후 아침.

최 옹이 내 방을 찾아왔다.

‘이제야 결론이 난 모양이군. 시간이 좀 걸렸네.’

소파에서 민수와 얘기를 나누다가 일어나 인사했다.

“어르신, 그러지 않아도 찾아뵈려고 했었는데.”

“바쁜 네가 걸음 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에게 자리를 권하며 민수에게 말했다.

“오늘 아침에 온 차 있지? 그걸로 부탁한다.”

“곽 이사님이 보내신 거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최 옹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성훈이 자네 말을 따라주기로 했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반발은 없었습니까?”

“다 늙은 것들이 반발할 힘이나 있겠나? 설령 있다고 한들, 자네가 걱정할 일은 아닐세.”

‘하지만 어르신 말처럼 그리 간단한 거였다면, 이렇게 며칠이나 시간이 걸렸을 리가 없죠.’

며칠 새, 그의 이마에 주름이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하는 사이, 민수가 다기를 내어왔다.

최 옹이 물었다.

“이건 못 보던 건데, 어디서 났는가?”

고풍스러운 다기를 보며, 최 옹이 물었다.

“저번에 왔었던 곽 이사가 보낸 겁니다. 중국에서 귀한 차를 구했다고, 생각이 났다면서 같이 보내 왔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민수가 차를 따르며, 작게 피식 웃었다.

어제 곽 이사와의 통화를 들었기 때문이지.

“한국 사람이 정 없게! 보내려면 두 개를 보내야지. 쪼잔 하게 하나가 뭡니까? 예!”

곽 이사 나름대로는 호의를 보인 것인데, 그걸 내가 뺏어왔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었다.

‘최 옹에게 하나를 드리고 나면, 나는?’

남은 게 없잖아!

***

그저께 있었던 일이었다.

“곽 이사님. 어쩐 일이십니까?”

-그게 중국 출장을 다녀왔는데, 좋은 차(茶)가 들어와서 말이지요.

“저 때문에 사 오신 건가요?”

-하하. 그건 아니고 중국 거래처의 사장이 선물을 하더라고요. 제가 우리 회사에서 잘 나가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하하하하.

‘기, 승, 전, 제 자랑이지.’

하긴 작년에 압둘의 몰딩 가격을 두 배로 올리고, 알리의 호텔을 수주한 이후부터 곽 이사의 역량이 재평가되었다는 소문은 들었다.

“그거 짝퉁 아니에요? 중국엔 그런 거 많다던데.”

그가 펄쩍 뛰듯이 말했다.

“그게 무슨! 이게 얼마나 귀한 차인 줄 아십니까? ‘송빙호(宋聘號)’라고요. 중국 부자들도 없어서 못 먹는 거란 말입니다.”

그는 보이차 중에서도 극상품이라며, 차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지난 삶에서 저렴하게 살았던 내가 보이차 같은 것을 알 리가 있나?

‘그저 고급차려니 하는 거지.’

그의 말을 백분 신뢰하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있었다.

곽 이사 정도 되는 자에게 선물할 때는 절대로 싸구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물이라기보다는 뇌물에 가깝겠지. 그리고 많이 받아봤으니, 품질은 더 빠삭할 것이고.’

중국 거래처의 사장의 정성이 담긴 것이리라.

곽 이사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보이차 전문가에게도 확인을 받았습니다. 한 움큼만 팔면 안 되냐는 걸, 제가 성훈 님 드리려고 안 된다고 했단 말입니다.”

아직 보이차 열풍이 불기도 전이었다.

‘보이차라……. 한동안 몸에 좋은 차라면서 인기를 끌었는데.’

그의 말에 장난기가 돌았다.

‘그런 귀한 차가 있으면, 귀빈이 왔을 때 대접하기 좋잖아. 최 옹께도 한 통 드려야지. 신세를 졌으니, 갚아야 하잖아.’

곽 이사에게 물었다.

“저한테 선물하시려고 전화하신 거예요?”

“그렇습니다. 제가 아니면 누가 성훈님을 챙기겠습니까?”

“얼마나 주던가요?”

“두 통을 받았습니다. 둘 다 극상품입니다.”

“흠.”

그가 자랑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음 같아서는 두 통을 다 드리고 싶지만, 성훈 님께서 부담스러워 하실 것 같아서…….”

냉큼 그의 말허리를 치고 들어갔다.

“곽 이사님.”

-네. 말씀하십시오.

“부담 갖지 마십시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한테 주는 걸 부담 갖지 마시라고요.”

-어! 어! 그게…… 거시기…….

“압둘 왕자, 한 건으로 끝내실 겁니까?”

옆에서 민수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형. 그건 선물이 아니라 갈취잖아요.”

재빨리 수화기를 막고, 입에 검지를 붙였다.

“곽 이사한테는 그래도 돼! 사우디에서 기억 안 나냐?”

“하지만 곽 이사님이 불쌍해 보이잖아요.”

나는 생각이 달랐다.

‘그 정도 이득을 봤으면, 선물을 해도 진즉에 했어야지. 어디서 딸랑 차 두 통으로……. 산 것도 아니고, 선물 받은 걸로 생색을 내고 있어? 괘씸하잖아!’

좋은 게 있으면, 내 주변을 먼저 챙겨야지.

곽 이사는 이것 말고도 거래처에서 갖다 바치는 게 얼마나 많을 건데.

권력의 자리라는 게 그런 거 아니던가.

곽 이사에게 물었다.

“혹시 부담되세요?”

-하하하. 그럴 리가요.

말과는 달리 이마를 소매로 훔치는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하지만 결정은 금방이었다.

그에게는 보이차보다, 실적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지금 바로 보내드리지요.

곽 이사에게 말했다.

“이사님. 그거 어떻게 마시면 돼요?”

눈치 빠른 곽 이사, 바로 응답을 했다.

-다기도 차에 어울리는 것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최고급으로요

“그것도 두 개로 부탁드려요.”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선물 잘 쓰겠습니다.”

-맘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에 부탁을 했다.

“이사님.”

-네. 말씀하시지요.

“이런 선물 종종 부탁드립니다. 저한테 선물하는 거 전혀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명심하지요.

통화를 끝냈을 때, 민수가 웃음을 참고 있었다.

“현재 건설 이사님들께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마 형밖에 없을 거예요. 날강도도 아니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흥. 곽 이사가 진짜로 호의로 그러는 것 같아?”

“그럼요? 선물이 그런 의미죠.”

“기름칠이지.”

“기름칠이요?”

“그래!”

압둘 왕자 건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생길 일도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기름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절대로 이유 없는 호의를 베풀 사람이 아니거든. 곽 이사는.”

***

그런 내력이 있는 차였다.

최 옹은 내게서 미소를 거두고 민수에게로 눈을 돌렸다.

“오랜만에 손주가 타주는 차를 마셔 볼까?”

최 옹이 갈색으로 우러난 차로 입을 적셨다.

그리고 감탄사를 토했다.

“호오. 이런 차도 있었나?”

새로운 맛에 미간을 좁힌 그에게 물었다.

“입에 맞으십니까? 어르신?”

그는 다시 입김을 불며 한 모금을 마셨다.

“이것 참. 씁쓰름하면서도 감칠맛이 입안에 도는 구나.”

다시 한 모금을 하고야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허허. 이것이 무슨 차인고?

“운남 보이차라고 하던데요.”

최 옹이 민수를 보며 웃었다.

“민수가 그걸 어찌 아누?”

“며칠 전에 형이 통화하는 걸 들었어요.”

“그래?”

이번에는 나를 보며 물었다.

“이름이 있을 텐데, 무슨 차라 하던가?”

“저도 잘 모릅니다. ‘송빙호(宋聘號)’라는 차라는데, 중국에 갔더니, 거래처 사장이 주더랍니다. 귀한 차래요.”

“호오. 그래?”

그는 ‘송빙호’를 몇 번 입으로 되뇌고는, 입을 다시더니, 다시 한 잔을 마셨다.

“마실수록 당기는 구나. 좋은 차야.”

좋아하는 그를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다 가져오길 잘했어.’

내 입맛에는 별로지만, 나이든 사람의 입에는 맞는 것 같았다.

‘참! 살면서 곽 이사 덕을 다 보다니.’

차를 음미하는 최 옹에게 말했다.

“혈압에 좋고, 노화 방지에도 좋은 차라고 합니다.”

이건 한동안 ‘귀한 차’라고 매스컴에서 떠드는 바람에 기억하고 있었다.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차가 아니라, 보약일세. 그려.”

함박웃음을 짓는 그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역시 내 눈이 정확했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 생각했는데, 현재 건설의 높은 사람에게 선물을 받을 정도라니.”

“어디 저를 보고 보냈겠습니까?”

“그럼?”

“제가 어르신 곁에 있으니, 제게 보낸 거죠. 사실은 어르신께 드리라고 보낸 겁니다. 저는 덤으로 선물을 받은 거구요.”

그에게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덕분에 이런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최 옹이 양손을 저으며 말했다.

“허허. 자네가 덤이라니, 어림없는 소릴! 내가 덤이겠지.”

“아닙니다. 곽 이사가 어르신을 꼭 챙겨 달라며 두 통을 보내던 걸요.”

“정말? 현재 건설 곽 이사가 나를 알던가?”

그의 의혹스러운 물음에 웃으며 답했다.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이번 박람회의 주역이신데.”

최 옹이 기분 좋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빈 말이라도 기분이 좋구먼.”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사실입니다! 어르신.”

‘거짓인들 어떠하리. 당신의 흔들리는 자존심을 다시 세울 수만 있다면요.’

학교에서 인정받는 것도, 울산시장에게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대기업에서 그를 주목한다면, 그건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 또한 그의 자부심을 추켜세울 다른 수단이 될 것이다.

민수도 옆에서 거들었다.

“맞아요. 할아버지. 저도 옆에서 들었어요.”

그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허허. 나이를 헛먹지는 않았나 보이. 이 늙은이를 그리 좋게 보고, 이런 귀한 차를 선물 받게 되다니.”

그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염치없지만, 귀한 선물 잘 받겠네.”

“이따 가실 때, 민수에게 들려 보낼게요.”

민수도 웃으며 말했다.

“네. 같이 가요. 할아버지. 들어다 드릴게요.”

최 옹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허허허. 괜찮다. 내 너희들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안 늙었다. 내 손으로 들고 가련다.”

최 옹이 당부했다.

“곽 이사라는 양반에게 꼭 ‘감사하더라.’고 전해다오. 그리고 박람회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말이네.”

“네. 알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최 옹을 배웅하며, 고개를 숙였다.

들어가라 손짓하며,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에 힘이 넘쳐 보였다.

그걸 보며, 민수가 말했다.

“형. 고마워요.”

“아니. 뭘.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저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눈물이 다 나네요.”

민수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이제부터는 힘찬 발걸음만 보게 될 테니까.”

그리고 여담이지만, 곽 이사의 선물이 최 옹의 어깨를 으쓱하게 세울 줄은 나도 몰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

최 옹을 배웅하고 소파에 앉았다.

“보람이는 잘 하고 있냐?”

민수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그게 좀 애매해요. 보람 선배가 열심히는 하는데, 아직은 어려운 모양이에요.”

“그래? 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민수가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냥 그럴 거라고 예상했어. 보람이가 팀을 이끄는 건 처음일 테니까?”

민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아닌데요. 보람 선배 팀 작업 많이 해 봤대요.”

“정말?”

“네!”

확신하는 민수의 말에 작게 웃어주었다.

팀!

민수가 알고 있는 팀과 내가 말하는 게, 과연 같은 의미일까?

직장 생활에서 팀은 학교의 것과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자신들의 안이 채택되지 않으면, 그 팀의 실적은 제로가 된다고.

열심과는 상관없다.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게 되지.

학교에서의 팀은…… 뭐랄까?

일시적으로 학점을 얻기 위해 잠시 뭉치는 조별 모임 수준이 아니던가?

교수는 적당히 채점을 할 것이고, 당연히 탈락도 없다.

점수만 좀 적게 받을 뿐.

민수에게 말했다.

“녀석이 해 왔던 팀과는 사뭇 다를 거야.”

“어떻게요?”

“지금처럼 교수가 학점을 주는 게 아니거든.”

민수도 아직 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안을 낸다고 해서 전부 채택되는 게 아니거든. 아니! 거의 채택되지 않는다고 봐야지.”

민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요?”

“모두의 안을 다 실행할 수는 없으니까.”

“아! 그렇겠네요.”

“당연한 말이지만, 실적을 내며 승승장구하는 팀은 얼마 안 될 거야.”

나머지는?

그 팀의 실적을 빛내줄 들러리로 전락하겠지.

“아직은 실감이 안 나겠지.”

“네. 저도 그런데요. 뭘.”

“보러 갈까? 피 터지는 싸움의 시작을?”

민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과연 우리들이 잘할 수 있을까요?”

그의 말에 눈썹을 으쓱하며 답했다.

“그럼! 걱정하지 마.”

잘 안되면, 그렇게 만들면 된다.

장작들은 모아뒀다.

스스로 타오르지 않는다면?

‘불 질러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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