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226화 (226/427)

건축의 신 226화

세대 차이(04)

박 목수가 말했다.

“어르신. 급하게 먹는 떡이 체한다고. 저 친구 말에 너무 끌려가시는 것 아닙니까?”

“우리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들어봐야지. 그리고 맞으면 실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르신께서 정히 그리 원하신다면야…….”

내가 들어도 말의 앞뒤가 안 맞는 게 있었다.

하지만 사정의 다급함을 들어 당장의 위기는 넘겼다.

일단 방침을 정하고 질주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반론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기호지세(騎虎之勢)처럼 몰아붙일 테니.

그리고 결과가 나오면, 내 말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나를 믿어주는 최 옹이 고마웠다.

‘휴. 최 옹이 지금은 넘어가 줬지만 나중에 자세히 설명을 드려야겠군.’

최 옹이 차를 재차 따르며 물었다.

“자네가 원하는 방향을 소상히 말해 보게나.”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까지의 전통은 정적이었습니다.”

정적(靜的)이라는 말.

그것은 지루함과 이어지기도 한다.

가만히 있으니 마음은 고요하나, 움직임이 없어 금방 싫증이 난다.

유교주의가 지배하던 구세대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X 세대’라 하여 튀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잘 융화될 수 있을까?

그들은 곧 다음의 기성세대는 될 것이다.

성향이 다른 것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난 삶에서 봤듯이, 전통은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다, 도태된 건지도 모르지.’

“정적이라……. 과연.”

“물론 사물놀이나 농악처럼 흥겨운 것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건축에서는 움직임을 시도한 적이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우리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어 가고자 했으니 말일세.”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어림도 없지요.”

지금 전통건축이 처한 상황이 결과를 말해 주는 것 아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신세가 더 처량해집니다.’

“전통은 그저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관심 속에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보존이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확신하는 연유가 있으렷다?”

예를 들 것은 많았다.

“지금 씨름을 보십시오. 10년 전 만해도 이만기같은 기라성 같은 선수가 나와서 흥행을 이끌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건 국가의 지원도 미흡하려니와, 다른 경기에 더 열광하니 그런 것 아니겠나?”

맞는 말이지만, 내게는 핑계로 들렸다.

목숨 줄이 달린 건 나 자신인데, 왜 국가를 탓한다는 말인가?

믿을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지 않을까?

박 목수의 말에 반론했다.

“그렇게 따지면 일본의 스모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라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일본이라고 국가의 지원을 엄청나게 받을까?

그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라서 확언할 수는 없으나, 더 중요한 것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흥. 그 동네는 외국인도 ‘요꼬즈나(천하장사)’를 한다고 하더구먼. 외국인들에게 다 빼앗기고. 몇 년이나 가겠어?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무너뜨렸어. 자존심도 없는 놈들.”

‘하지만 그 말은 틀렸습니다.’

씨름이 고전을 하던 십여 년 후에도, 스모는 흥행했었다.

“박 목수님의 말도 한편으로 맞겠지요.”

“그려. 잔나비 같은 왜놈들이 전통을 뭘 알겠어? 자부심도 없는 놈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스모에 외국인이 웬 말이던가?

피부색이 전혀 다른 선수가 마와시(스모의 샅바)를 매고 등장하는 것이 어울리기나 할까?

하지만 그들은 그 선택을 강행했다.

‘그리고 옳았지. 끈질기게 살아남았으니까.’

운이 좋았다기보다는, 스모 협회의 생존 열의가 만들어낸 쾌거였다.

보수적 단체로 유명한 스모 협회가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내부적으로 얼마나 많은 몸살을 겪었을 것인가?

흥행을 위해서 외국인 선수를 데리고 들어오고, 따분한 승점 따기가 아닌 치열한 격투를 유도하며, 국민들의 관심을 받으려고 몸부림치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 씨름은 스모처럼 변신에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은 지금의 꼴이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 씨름 선수들도 흑인이나 백인이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냐? 그게 전통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어? 외국인들이 천하장사를 하면,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 살아나겠느냐! 이 말일세.”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요.’

이미 사라져버린 전통문화들은 그 뿌리조차 찾기 어렵다.

훨씬 더 다양할 수 있었던, 미래의 전통문화는 단조로워졌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씨름이나 전통건축이나,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면에서는 오십 보 백 보다.

차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어르신들. 저는 씨름의 쇠퇴 원인을 대중의 무관심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뭐라고 생각하는가?”

소비자는 냉정하다.

아무리 씨름을 사랑하자고 외쳐봐야, 재미가 없으면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먹고 살기 바쁜 사회에 시간을 쪼개가며 즐길 거리를 보며 쉬기를 원하는데, 누가 재미도 없는 것에 채널을 두겠는가?

‘한두 번이야 할 수 있겠지. 계속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이리라. 아무리 황금시간대를 씨름으로 채운대도, 보지 않지.’

이런 상황임에도 일방적으로 국민들을 탓할 수 있을까?

대목장들을 보며 말했다.

“무관심은 결과일 뿐입니다.”

“원인이 아니고, 결과라고?”

“네! 무관심 때문에 씨름이 쇠한 게 아니라, 재미가 없어서 관심이 사라진 겁니다.”

최 옹은 아까부터 듣기만 했고, 박 목수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이거나 그거나 똑같은 말 아니냐?”

“전혀 다른 말입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결과는 바뀌지 않습니다.”

“무슨 결과?”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사라지는 것은 전통이지, 대중은 아니라는 거죠.”

최 옹이 처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어르신들의 빈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더 화려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들이겠지요. 아까 말씀하셨던 퓨전이 될 수도 있고요.”

“끙. 어찌 그런 잡스러운 것들이…….”

박 목수의 신음성이 들렸다.

“그것들이 자리를 잡게 되면, 기존의 전통공예들은 더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될 겁니다.”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프신 거 압니다.’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리라.

어렴풋이 예감한 죽음이 확정되어버리면 이런 느낌일까?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의 심정이 이러할까?

말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그들에게 말했다.

“그 무관심의 다음 차례는 전통건축이 될 겁니다.”

사실은 이미 무관심하다.

하지만 그런 독한 말로 이들의 사기를 죽일 필요가 있을까?

‘대중의 잘못?’

대중은, 존재 그 자체로 법이며 진리이다.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중을 비난하는 것은 대세를 거스르는 것과 같다. 이보다 어리석은 게 세상에 또 있으랴?

여전히 최 옹은 무심하게 차를 들이켰다.

박 목수는 어지간히 내가 맘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끄응. 네 녀석! 날이라도 잡은 게냐? 쓰디쓴 말만 골라서 하는구나.”

“원래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입니다.”

박 목수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심각하려고? 일부러 과대 해석하는 것 아닌가?”

이들은 젊은 세대를 모른다.

그것도 심각할 정도로.

살아온 세월이 다르고, 보는 관심사라 다르니, 세대 차이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심각한 문제의 원인이 된다.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오히려 줄여서 말씀드린 겁니다. 전통문화 중 절반이 사라지는 시간은 지금부터 10년이 채 안 걸릴 겁니다.”

둘 다 ‘설마?’하는 표정으로 미간을 모았다.

“어르신들이 기억하시던 전통공예 중에, 십 년 전과 비교해서 남아 있는 게 뭔지를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사라져서, 없어지는 줄도 몰랐겠지.

내 아버지세대의 혼수품목 일 순위였던 나전칠기 장롱들은 신식 붙박이장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사회는 발전하고 생활은 부유해졌지만, 전통공예인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들의 작품은 싸고 세련되어 보이는 것들에게 자기 자리를 빼앗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생각이 잘 안 나시면, 더 단순한 예를 들지요.”

최 옹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애들 중에서 ‘자치기’가 뭔지 아는 아이가 있을까요?”

“…….”

“굴렁쇠 굴리기는요?”

굴렁쇠 굴리기는 올림픽에 등장했었다.

그렇다는 말은 그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놀이라는 말이 아닐까?

정작 나는 많이 즐기지 않았었다.

지금은 남아 있는가?

이들은 대답할 수 없으리라.

‘요즘의 아이들이 뭐에 관심이 있는지, 전혀 모를 테니까.’

최 옹은 말없이 찻잔을 들었다.

박 목수도 차를 마시며 최 옹의 심기를 살폈다.

“어르신. 오늘 차가 유난히 씁니다.”

나도 찻잔을 들며 말했다.

“‘세대 차이가 난다.’는 말이 나오면, 이미 늦은 겁니다. 기회는 지금 뿐입니다.”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젊은이들의 해외 진출이 더욱 활발해지면, 세대 간의 골은 좁힐 수 없게 된다.

박 목수가 나를 보며 쏘아붙였다.

“자네. 너무 말을 안 거르고 하는구먼.”

“저는 그저 사실만 말했습니다.”

선택은 그들의 몫.

그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지금이라면 아직 방법이 있어요.”

두 중늙은이들이 나를 쳐다본다.

최 옹은 묵묵부답, 박 목수가 나섰다.

“어떻게?”

“스모의 지나간 길을 따라가면 돼요.”

박 목수가 벌떡 일어났다.

상황을 알았다고 해도, 내키지 않으면 하기 싫은 법.

“지금 왜놈들처럼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스스로 무릎을 굽히라는 말인가?”

말없던 최 옹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박 목수. 자리에 앉게나.”

“어르신. 이런 건방진 소리를 참고 들으라는 말씀이십니까? 구천에 계신 어르신들께 부끄럽지 않습니까? 뭐라고 말씀을 좀 보십시오. 왜 아까부터 꿀이라도 드신 마냥, 한 마디도 없으신 겝니까?”

분을 참느라, 얼굴이 벌게진 박 목수가 제 가슴을 텅텅 친다.

허나 최 옹은 다른 생각중인 듯, 눈을 지그시 감고 큰 숨을 들이 쉬었다.

최 옹이 말했다.

“성훈이 말대로 하지. 자네는 건너가서 장인들을 건너오라 하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선대 어르신들이 이어오신 고고한 정신을 여기서 굽히자는 말씀이십니까?”

‘역시 오늘은 차가 쓰네.’

최 옹이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자네들 말을 들으며 자문자답을 해 봤네. 우리 늙은 것들이 어리석게도, 전통 쇠퇴의 원인을 남에게만 돌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일세.”

“우리가 할 일을 등한시 했다는 말씀입니까?”

그는 납득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노력한다고 말하겠지.

그게 그분들의 최선임도 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리도 더 빨리 변할 겁니다.’

“그게 아닐세.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만 들었지. 아이들이 장성한 것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말일세.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예로부터 그래왔으니 너희도 그래야 한다고 떼를 써온 것이 아닌가 말일세.”

“어르신. 장유유서라 했습니다. 어른이 가면, 아이가 따르는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최 옹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우리보다 잘 배우고, 더 똑똑한 아이들일세. 아무렴 우리보다 시대를 모를까?”

최 옹의 말이 이어졌다.

“이런 아이조차도 전통의 생존에 대해 염려하고 있건만, 우리는 타성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는지 진중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네.”

“어르신!”

최 옹이 호통을 쳤다.

“박무진이. 네 이놈! 더벅머리 아이에게 배웠으면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벽력같은 호통에 박 목수의 몸이 굳었다.

“어, 어르신…….”

“그리고 배웠으면, 행해야지!”

최 옹의 준엄한 말이 이어졌다.

“내, 하나 묻겠네.”

“말씀하시지요.”

박 목수가 머리를 조아렸다.

“대를 이을 제자를 찾았는가?”

“그야…….”

“여기서 대(代)가 끊어지면, 자네는 구천에 계신 스승께 뭐라 변명하겠는가?”

“…….”

“‘자존심은 지켰다!’ 그리 말할 텐가?”

“허나. 어르신.”

대목장이 언성을 높였다.

“그 입! 자존심(自尊心)을 챙기려다, 자존(自存)을 잃어버릴 뻔 했다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

“그러고도 자네는 저승에 가서 스승을 뵈올 낯이 있는가?”

최 옹의 주름진 눈가가 촉촉해졌다.

“적어도 나는 얼굴을 뵈올 자신이 없다네.”

박 목수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자네는 내가 시킨 대로 하게. 당장!”

“네. 말씀 바로 받자옵지요.”

그가 자리를 비우자, 최 옹이 말했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 이 일은 우리 늙은이들끼리 합의를 볼 것이네. 자네가 제시한 대로 될 터이니, 염려 마시게.”

“반대하시는 분들도 꽤 있을 것 같습니다만…….”

나의 염려에 최 옹이 말했다.

“만장일치야 되겠는가? 안 되면 나 혼자라도 해야지. 힘들게 이어왔는데, 내 대에 끊어져서야.”

작게 한숨을 내쉰 대목장이 말했다.

“자네 말대로 진행될 터이니, 준비나 하러 가시게. 그리고 더 이상 장인들과 마찰은 없을 것이네.”

“그럼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어르신.”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자리를 피했다.

대목장이 나서서 솔선수범한다면, 확실히 마찰은 줄어들 것이다.

오늘 따라 발걸음이 천근만근, 입에서 단내가 올라온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이 속삭인다.

‘네가 좀 더 준비되었더라면, 할 수 있는 게 더 있었을 텐데, 네 사정 때문에 그분들께 너무 급한 선택을 강요한 건 아닐까?’

머리를 흩트리며, 바람을 쫒아냈다.

‘항아리로 원숭이를 잡는다고 했던가?’

자존심이란 항아리 속의 밤과 같다.

꽉 움켜쥐고 있는 한, 항아리에서 도망칠 수 없다.

마지막 결정의 순간.

밤이 아까워 움켜쥔 주먹을 놓지 못하는 어리석은 원숭이가 될 것인가?

일단 놓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영리한 원숭이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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