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225화 (225/427)

건축의 신 225화

세대 차이(03)

성훈이 일어섰다.

“민수야. 난 대목장 어르신 만나러 갈 테니까, 팀 인수인계 확실하게 해라. 알았지?”

보람이 물었다.

“그 어르신은 왜 만나러 가는 거냐?”

“네가 사고친 거 마무리 지으러 간다. 앞으로 또 이런 일 생기면, 그대로 안 넘어가니까. 조심해!”

“걱정 마. 싸나이 윤보람! 약속은 지킨다!”

성훈이 나가고, 보람이 물었다.

“민수야. 성훈이 쟤. 나랑 동갑 맞냐?”

“왜요?”

“얘기하는 게 전혀 내 또래 같지 않잖아.”

“선배가 봐도 그렇죠. 저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형. 말이나 생각하는 게 우리랑 많이 다르죠?”

“그렇지?”

“네. 저번에 현재 건설 쪽과 계약을 할 때도 보니까, 직장 생활 많이 해 본 것처럼 꼼꼼하고 빈틈이 없더라고요.”

“흠. 그렇단 말이지?”

보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선배. 아까는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신 거예요?”

“아! 별거 아냐. 성훈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무슨 뜻으로 말한 건지 생각하고 있었어.”

민수가 도우미 명단을 펼치며 물었다.

그걸로 팀을 구성할 모양이었다.

“선배가 보기엔, 이번 프로젝트가 어떻게 끝날 것 같아요?”

“왜 그런 걸 나한테 묻는 거냐?”

“성훈 형은 대상을 탈 거라고 확신하지만, 전국에서 날고 기는 사람들이 총 출동할 텐데, 전 솔직히 쉽지 않아 보여요. 말하기야 쉽지만.”

보람이 민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민수야. 이 형만 믿어라.”

지금 당장 제 앞가림도 하기 힘든 사람이 큰 소리는.

그러면서도 듬직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성훈이가 날 믿고 이렇게 팀을 맡겼는데, 기대에 부응해야 하지 않겠어? 나도 할 때는 한다고.”

아까 성훈이 나가기 전에 귀띔을 했었다.

가장 문제 칠 것 같은 녀석들만 모아서 보람에게 주라고 말이다.

잘 되든 못 되든, 고생은 원 없이 하게 될 걸.

“긍정적인 생각 보기 좋은데요. 이번에 선배가 잘 하면 성훈 형도 대충 넘어가지는 않을 거예요. 일에는 혹독한 대신에 그 보상도 확실히 주는 사람이거든요.”

“정말 그러냐? 난 아직 성훈이를 잘 몰라서 말이야.”

“건축학과 어느 사람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 나올 거예요. 성훈 형처럼 논공행상이 확실한 사람은 없다고요.”

민수가 보기에 성훈은 돈욕심이 없어보였다.

스타타워 건만 봐도, 성훈의 역할이 제일 컸으니까, 비율을 더 가져가도 될 텐데, 정확히 네 명분을 나누어 분할했었다.

‘인당 일억이 넘는데, 나라면 욕심났을 텐데.’

하지만 성훈은 그러지 않았지.

보람이 물었다.

“민수 넌, 어떻게 성훈이랑 만나게 된 거냐?”

“성훈 형을 만나기 전의 전…… 말해도 안 믿으실 거예요.”

민수는 보람과 발을 맞추며, 작년부터 시작된 성훈과의 인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보람이 감탄 섞인 말을 내뱉었다.

“히야! 녀석은 아주 학과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

민수가 멋쩍게 웃었다.

“현재 건설도 들었다 놨다 하는 걸요. 성훈 형한테 걸리면 다 그렇다고 봐도 돼요.”

“든든하겠네.”

“그럼요. 형이 뒤에 버티고 있으면, 이번처럼 큰 프로젝트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니까요. 진짜로. 누가 공과대 전체를 끌어들일 생각을 했겠어요.”

“듣고 보니 나랑은 스케일 자체가 다르구나.”

보람이 민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부럽다. 저런 녀석을 형으로 둬서. 나도 건축학과로 들어올 걸 그랬다.”

“하하. 그럴 것까지야.”

“말이 그렇단 말이지. 저런 사람을 평생에 한 명이라도 만나면 나는 소원이 없겠다.”

인연이 닿았지만, 너무 늦었다.

보람은 안타까웠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제 졸업에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만날 시간도 얼마 없으리라.

‘쩝. 그래도 만났으니,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어둬야지.’

입버릇처럼 말하던 목숨 바쳐 함께 하고픈 사람을 만난 것이다.

‘아직은 그렇게 마음을 줘선 안 되지.’

조금 더 검증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렇게 주변을 챙길 줄 알고 안목이 있다면 열 목숨이 아까우랴! 옆에만 있어도, 민수처럼 성장하는데 말이야.

민수 말에 따르면, 성훈을 만나기 전에는 내성적이고, 과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도 그런 모습이 가끔 보이기는 하지만, 민수는 실질적인 프로젝트 매니저였다.

성훈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나도 그 녀석과 함께 일해 보고 싶어. 가급적이면 오랫동안.’

속으로 실망을 하고 있는데, 민수가 말했다.

“하지만 성훈 형도 선배를 좋게 보고 있으니까, 큰 실수만 하지 않으시면 될 거예요.”

민수가 말을 이었다.

“혹시 또 알아요? 나중에 현재 건설에서 같이 일하게 될지도 모르구요.”

보람의 눈동자가 커졌다.

“정말이냐? 성훈이 현재 건설로 갈 거래?”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현재 건설에서 성훈 형에서 쓸데없는 짓만 하지 않으면요.”

“현재가 유력하긴 하지만, 녀석이 꼭 그리 갈 이유라도 있는 거냐?”

“성훈 형하고 관련된 이사만 셋이예요. 그때 왔던 양 이사님이랑 곽 이사님, 그리고 또 한 분은 별로 사이는 좋지 않지만, 최 이사님도 있죠.”

‘아! 현재도 들었다 놨다 한다는 게 이 말이었구나.’

“야! 그게 가능해? 혹시 성훈이 현재 그룹하고 무슨 연관 있는 거 아니냐?”

민수가 고개를 도리 치며 부인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은데, 전혀 아니예요.”

“그럼 실력으로만?”

“네! 확실해요.”

“그런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짓을 진짜로 하는 인간이 있구나.”

하긴 민수가 생각해도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보람에게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성훈 형 없을 때, 학생회실로 놀러오세요. 제가 형하고 관련된 얘기들 해드릴게요.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더 많거든요.”

민수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시겠지만, 선배와 관련된 특채 건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괜한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거든요.”

“알았어. 걱정 마. 성훈이가 특별하게 기회를 준 거란 건 나도 아니까. 반드시 이 미션 성공시켜 볼게.”

민수가 확신하며 말했다.

“성훈 형 따라가서 손해 보시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예요 오히려 적대하다가 박살나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나도 건축과 소문은 들어서 알지.”

“그런 의미에서, 아까 선배가 참으신 건 잘한 거예요. 괜히 자존심 세웠으면, 이런 제안도 못 받았을 걸요.”

“어쩔 수 없지. 나로서는 다른 대안도 없었거든.”

***

매점에서 사과 한 박스를 사들고 대목장의 사무실로 향했다.

“어르신. 저 성훈입니다.”

“기다렸네. 들어오게나.”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런 곳에 오면서 그냥 오면 되지. 사과는 뭐 하러 들고 오는가?”

“하하. 사과하러 왔으니까요.”

“그래서 사과를 사왔다고?”

“사과를 받아주세요.”

“허허허. 젊은 사람이 농담은.”

박 목수의 피식거리는 얼굴이 보였다.

“박 목수님. 기분은 좀 풀리셨습니까?”

“에잉. 어르신께서 저리 싸고도시는데, 어쩌는가? 내가 풀어야지.”

“보람이가 성격이 좀 급해서 실수를 했습니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앞으로는 녀석도 조심할 겁니다.”

박 목수도 아까보다는 확실히 부드러웠다.

“나도 아까는 말이 심했네. 나잇살이나 먹어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구만.”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말일세. 녀석의 지붕을 열자는 말은 도무지 납득이 안 가는군.”

박 목수의 말에 대목장을 보며 물었다.

“어르신께서도 그리 생각하십니까?”

“음. 전통을 살리자고 사람들을 모았는데, 젊은 녀석들은 전통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바꿀 생각을 먼저 하니, 이걸 어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구먼.”

“네. 그렇군요. 실은 어르신께 그 문제를 상의를 드리러 왔습니다.”

이들이 오해를 하면, 이번의 프로젝트는 물론이요, 차후의 전통부활 계획도 물 건너간다. 한번 잃은 신뢰를 되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던가.

박 목수가 말했다.

“대목장 어르신께서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들어줄 것처럼 말씀을 하신다만, 나로서는 영 내키지 않는다네.”

“뭐든지 궁금한 게 있으시면 여쭤보십시오.”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응당 찬성하는 바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에 충실한 상태를 전제하는 걸세.”

“당연하지요.”

“그런데 전통에 조예도 없는 학생들이 제멋대로 변화만 추구하는 것은 찬성하기가 어려워.”

그의 염려가 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이 평생을 지켜온 것들이 아니던가?

문명의 이기를 멀리하며, 스스로 고행하듯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보람이 제안했던 것처럼 새로움이 주가 되어 버리면, 그들의 신념이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기본이 전통에 있지 아니한데, 과연 그것을 전통적인 것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박 목수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전통건축학과를 만들려고 했던 겁니다.”

“성훈 군. 내가 가방끈이 짧아서, 탁 찍어서 말 안 하면 못 알아먹는다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교과과정이 새로움에만 중점을 둔다면, 나 같은 늙다리들은 필요 없지 않겠나?”

박 목수가 차로 입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요즘 퓨전이니 뭐니 하면서 어이없는 짓거리를 하는 것들이 많던데, 차라리 그놈들을 데려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더 나을지도 몰라. 본질이야 둘째쳐도, 껍데기는 화려하더구먼.”

그는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대목장을 보며 말했다.

그를 설득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최 옹이 알아서 끌어들일 테니까.

“어르신. 학교에서 최초 2년간은 무조건 정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원래 지금쯤 어르신과 상의를 하려고 했던 겁니다. 이런 염려를 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최 옹이 박 목수를 보며 눈을 꿈뻑했다.

“그렇게 생각했었나? 허허허.”

대목장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걱정한 것이 기우였어. 이미 거기까지 생각을 해둔 줄 모르고 말일세. 허허허.”

“기본이 탄탄하지 않으면 뭘 해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3학년 때부터는 현대의 문화와 접목시키는 수업을 진행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처음 배운 전통이 기초가 되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잊어버리지 않을 겁니다.”

박 목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그 말은 일리가 있구만.”

“원래대로라면 기본이 충실한 학생들을 지도하며, 박람회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원래대로라면 그게 맞겠지.”

“하지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죠.”

우리에게 준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통학과는 아직 창설되지 않았으며, 학생들이 준비되었을 때, 또 다시 이런 박람회가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최 옹과 박 목수가 수긍했다.

“어르신. 저 친구 말마따나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될 것 같군요.”

최 옹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지. 그 기회가 다시 온다고 해도, 성훈이는 이미 졸업을 하고 없겠지.”

“네. 그래서 저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어르신을 모셔온 원래 목적대로 전통학과의 창설을 서두르려 합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과연 지금처럼 신경을 쓸 수 있을까?

전국 곳곳으로 때로는 해외로 빨빨거리며 돌아다닐 텐데?

내게 주어진 기회는 지금 뿐이었다.

“자네가 없다면, 지금처럼 빠른 추진이 어려울 거야. 총장 어른도 보아하니, 자네를 믿고 이런 거사를 추진한 것으로 보이더군.”

박 목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총장이 이 친구를 믿고 일을 추진했다고요? 그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요?”

“확실하네. 나한테는 관심도 없고, 말끝마다 성훈이를 들먹이는 걸로 봐서는.”

그가 사뭇 달라진 눈으로 나를 주시했다.

“어르신들. 그러려면 기본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휘어잡을 새로운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끙. 그래도 쉽지 않을 걸세. 기본이 없으면.”

“거기에는 대책이 있습니다.”

“대책이 있다고?”

“네. 대목장께서 모으신 장인들이 계시잖아요. 그분들처럼 기본이 철저한 분들이 또 있을까요?”

“그야 당연한 말이네만. 그 사람들은 가르치려고 불러온 이들인데, 학생들과 똑같이…….”

“지금은 체면을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무조건 설득해서 끌고 가야 합니다. 학과의 창설도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 둘이 연관이 있는 건가?”

“자연스레 홍보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건설이라는 곳에서 전통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런 인재를 원한다는 홍보도 되겠지요. 배우려는 학생들이 없는데, 스승의 존재가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렇군. 그럼 무조건 성공시켜야겠군. 장인들을 끌어 모은 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으려면.”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어르신.”

가르치려 하여도 배우는 자가 없다면, 가르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함께 하는 것만큼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 또 있을까?’

좀 더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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