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24화
세대 차이(02)
학생회실로 가는 길은 멀었다.
‘새로운 생각이 이후의 세상을 지배한다.’
그건 알고 있지만, 그 생각은 과거의 기반을 바탕으로 탄생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보람의 생각은 맞다.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이후의 미래가 그렇게 변해 가니까.
전통은 말라비틀어진 해삼처럼 그 가치를 잃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 대화법은 분명히 잘못되었지.’
지금 확실한 선을 그어주지 않으면, 두고두고 트러블 메이커가 될 놈이었다.
‘일단 말로 하고,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
보람을 앉혀 놓고 말했다.
“이번 일은 네가 잘못한 거다.”
성훈의 말에 보람이 쌍심지를 돋우었다.
“야! 언제는 내 생각을 기탄없이 말하라며!”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지.”
“그래! 그래놓고는, 지금 와서 내가 잘못되었다고? 넌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물이었어? 실망이다.”
보람은 머리가 좋고, 자기 주장을 펼치는데 능숙하다.
‘하지만 아직 어리고, 행동이 경박하지.’
젊은 세대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배운 것이 많아서, 자신의 지식에 자부심이 강하니까.
똑똑한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은 강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는 것이 많은데, 세상의 무엇이 두려우랴!
나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하리라.
지금도 자신만만하게 대응하지 않는가?
지는 게 이기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게 슬슬 기어오르네. 뭐? 실망?’
성훈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네가 존중 받고 싶으면, 네가 먼저 존중해 줘.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지 말고, 끝까지 들으란 말이야.”
“하지만 그 사람이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그걸 끝까지 들으라고?”
“그리고 네 생각이 무조건 옳다는 편견은 버려. 사람은 생각하는 게 다 다르니까.”
무슨 생각일까?
보람이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그래도 무시하면, 그때도 참아야 하는 거냐?”
“그때는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이야.”
“넌 그러지 않았잖아. 작년이랑 이번 해에 건축과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 줄 알아?”
너도 했으니, 나도 하겠다는 건가?
민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 나이가 같다고 동급으로 생각하면 곤란하죠. 아무리 봐도 저 선배는, 지가 제일 잘난 줄 알아. 성훈 형하고 싸워서 이길 거라고 생각하나?’
건축과에서 일어났던 일이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거야?
뭘 근거로?
성훈이 좋게 말하며, 참고 넘기는 것은 전통문화 관련자들에게 제한되어 있었다.
성훈을 오래 보아온 사람들은 다들 눈치 챌 정도로 그게 보였다.
이유가 뭐냐고?
‘자기가 아쉬운 게 더 많거든. 그러니까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지나가는 거지. 보람 선배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요.’
성훈을 보니, 역시나 묘한 눈빛으로 보람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요리할까?’하는 느낌?
‘성훈 형은 선배를 어떻게든 써먹어보려고 참는데, 눈치가 없네. 휴.’
가만히 놔두면, 또 형 스스로 박살을 내겠지.
한 교수의 신신당부가 있었다지만, 그걸 다 지킬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쉬운 소리하면서 보람을 달랠 위인은 더더욱 아니지.’
다른 임원의 눈빛도 그랬다.
특히나 총무와 회계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이었다.
‘저 인간, 미친 거 아니냐?’
회계가 민수에게 시선을 보냈다.
‘민수야. 어떻게 좀 말려 봐라.’
민수라고 하고 싶으랴?
‘니들이 해 봐!’
‘야! 우리가? 미쳤냐? 약 먹지 않고서야.’
‘휴!’
맹수 아가리에 대가리를 집어넣고, ‘야! 씹어 봐!’라고 나대는 하룻강아지를 살리고 봐야 했다.
민수가 슬쩍 앞으로 나섰다.
“성훈 형은 선배의 아이디어를 탓하는 게 아니에요.”
“그럼?”
“그걸 표현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지적하는 거죠.”
민수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맞죠. 형?”
“응. 그렇지.”
보람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는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었다.
살짝 자의식 과잉이랄까?
민수의 말이 이어졌다.
“성훈 형도 자기 주장은 누구보다 강하시지만, 어른한테 함부로 하지는 않거든요.”
“그거랑은 말이 다르지.”
보람이 말에서 밀릴 사람이 아니었다.
“난 내 의견을 주장한 거야. 무례하지는 않았다고.”
민수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로써는 힘드네요.’
어깨를 으쓱하며 성훈에게 바통을 넘겼다.
등받이에 기대어 둘의 대화를 듣던 성훈이 몸을 앞으로 당겼다.
“보람아. 당연한 말이지만, 너는 그 분보다 고등교육을 받았다.”
보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끽해야 고등학교를 나으면, 고학력으로 인정받던 시대를 살던 분이다.”
세대의 다름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
보람도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성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랬다면 부끄러워서, 저런 표정을 짓지 못할 테니.
“먹고 살기 바빠서 학교를 갈 틈이 없었던 분들이다. 우리 하고는 다른 분들에게 너는 꼭 ‘전기전도율’같은 전문적인 용어를 섞어가며 대응을 했어야 했을까?”
보람이 흥분하며 말했다.
“그치만 나도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반도 못 알아들었다고! 인방*이 뭔지 아냐?”
“당연히 알지.”
“건축과니까 알겠지. 하지만 난 그게 뭔지 몰랐다고.”
“당연히 몰랐겠지. 네 전공이 아니니까.”
“모른다고 하니까 뭐라는 줄 알아?”
“뭐라고 하시던데?”
“대학교나 나왔으면서, 그런 말도 모르냐고 날 무식쟁이 취급하는데, 화가 나냐? 안 나냐?”
‘녀석! 지기 싫어서 그랬던 거군.’
성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유치하군.”
“뭐야?”
“내가 보기엔 ‘내가 더 똑똑하니까, 내 말을 들어!’라고 압박하는 걸로밖에 보이질 않아. 그런 식으로 나이든 사람을 이기면 기분 좋으냐?”
“그 사람이 먼저 시작한 거라고.”
“누가 먼저 시작했던지 간에, 지는 게 이기는 때도 있는 거야.”
아직 보람의 얼굴은 불만스러웠다.
차분한 설득이 가장 좋겠지만, 과연 말로 설득이 가능할까?
‘말이 많아지면 궤변만 늘어날 뿐. 지금은 눌러야 할 때야.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성훈이 말을 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도 참아. 그게 안 되면 나가. 네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분위기를 해치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보람이 뚱한 얼굴로 성훈을 노려봤다.
그 눈길을 마주하며 성훈이 말했다.
“어떡할 거야? 계속할 거야. 말 거야?”
보람이 입술을 모으며 말했다.
“쩝. 어쩔 수 없지. 조심할게.”
민수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일단락 됐네. 다행이야.’
성훈이 물었다.
“보람아. 불만이 많지?”
“당연한 거 아니야?”
여전히 쀼루퉁한 얼굴로 성훈의 말에 대꾸했다.
‘그렇겠지. 왜 그런 말을 나만 들어야 하는데? 왜 나만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데?’
당연한 질문이었고, 불만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현 세대를 안고 가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안고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굳이 보람에게 할 필요가 있을까?
성훈은 그들의 필요성만 말하기로 했다.
“보람아. 지금은 우리가 숙이고 들어가야 할 때야. 그분들이 없으면 이 프로젝트 자체가 이뤄질 수가 없다고.”
“그래. 그건 나도 인정해.”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대목장 어르신께서 고생하며 모은 사람들이야. 그걸 우리의 경박함으로 깨트릴 순 없어. 앞으로 네 행동은 계속 지켜볼 테니까. 조심해.”
보람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알았어. 조심하도록 할게.”
***
‘쯧쯧쯧. 한마디 들었다고, 쳐지기는! 짜식.’
기를 죽여 놨으니, 다시 살려둬야 제 역할을 하리라.
보람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보람이 고개를 들며 반문했다.
“뭐 말이야?”
“훗. 뚜껑 말이야. 네 표현대로 말하자면.”
“아. 뚜껑? 아니 지붕 분리하는 거 말이야?”
“응.”
“그거 괜찮지 않아? 그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노발대발 했지만.”
내 말을 칭찬이라 생각했던지, 보람의 표정이 다시 살아났다.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 봐. 나 같은 놈이 이런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현재 건설에 들어갈 수 있겠냐?”
“왜? 너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아? 학점도 좋고 시험도 잘 볼 거 같은데.”
보람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맞는 말이지만, 너도 나 면접 봐서 알잖아. 매번 면접에서 막혀.”
“그래서?”
“무조건 특채로 들어가야 한다고. 내 성격이 한 지랄하잖냐?”
‘그래. 잘 아니까 다행이다.’
그래도 마냥 멧돼지처럼 좌충우돌하는 녀석은 아니란 건 다행이랄까?
그에게 물었다.
“특채를 노리는 거냐?”
“응. 그렇지.”
“쉽지 않을 텐데.”
“그렇겠지. 너랑 민수는 당연히 들어있을 테니까?”
그 말에 살짝 의이함을 느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회장이 현재 건설을 데리고 왔으니까, 당연히 한 자리 먹을 거고, 그때 양 이사도 성훈이 너한테 꽤나 목메는 것 같던데. 그리고 민수도 현재 건설이랑 연결된 것 같고.”
“다른 애들도 그렇게 알고 있는 거냐?”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한 자리 남았으니까, 무조건 일등에 들어야지. 다른 애들은 특채 생각도 안 하고 있어.”
민수가 웃으며 말했다.
“선배. 그건 오해예요. 성훈 형이랑 저는 특채 생각도 안 하고 있어요. 우리는 열외죠.”
“왜?”
“특채 아니라도 성훈 형은 들어갈 거예요. 모시러 안 오면, 다른 건설사에 가버릴 테니까. 뭐 저도 꼽사리 낄 거구요.”
민수의 말을 막았다.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보람이 말이나 먼저 듣자.”
보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특채에 선택되려면, 뭐라도 하나 눈에 들어야 할 거 아니냐?”
“그럴 테지.”
“그런데 전기 전공이라서 딱히 할 게 없더라고. 조명 좀 쎄게 비춘다고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하는 조명인데, 그게 눈에 들어오겠어?”
‘호. 그건 생각지 못했던 고민인데.’
“그래서?”
“나 같은 전기쟁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해 봤지.”
보람이 물을 마시며 말을 이었다.
“전기하면 떠오르는 건 딱 세 가지야. 열, 빛, 모터.”
“여기서 내 존재를 보이려면, 뭔가 움직이는 걸 집어넣어야 한다고. 전기가 없으면 안 되겠지. 안 그래?
‘흠. 나름대로는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네.’
스스로의 존재감을 어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수도 감탄한 표정이었다.
“선배. 대단하네요.”
솔직히 내가 봐도 대단했다.
나라도 그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든 나를 어필하려고 몸부림을 쳤을 테니까.
‘시키는 대로만 하는 녀석들은 절대로 저렇게 할 수 없지.’
보람을 잡은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앞으로도 녀석은 위기 처했을 때,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낼 것이다.
‘아쉬운 것은 저 성격이지.’
행동대장으로 딱 좋은 성격.
하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행동대장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적재적소에서 능동적으로 활약할 인재였다.
민수가 있지만, 그 혼자만으로는 부족했다.
‘보람에게 책임감만 잘 심어준다면, 아주 좋은 재목이 되겠어.’
보람에게 말했다.
“그 아이디어 밀어줄 테니까. 팀을 꾸려 봐.”
책임감을 키우는데, 뭐가 필요할까?
책임감을 느낄 일을 맡겨 주면 되는 거지.
보람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난 사람들 다루는 데는 영 젬병이야.”
“그러니까 맡기는 거야. 그 팀을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사고 없이 잘 이끌 수 있으면, 널 특채 일 순위에 올려 주지.”
보람의 눈이 커졌다.
“정말이야?”
“그럼! 정말이지.”
민수가 나를 말리며 말했다.
“형. 그런 약속을 벌써 하시면…….”
“이 녀석은 민수 너하고 틀려서, 힘들 거야.”
맡기면서도 믿지는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젓는 나에게 보람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다고! 반드시 해낼 테니까, 그 때 가서 너, 딴소리나 하지 마라.”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해 봐. 팀은 민수랑 의논하면 될 거야.”
실패를 한다고 해도, 분명히 얻는 것이 있으리라.
일어서는 보람에게 말했다.
“내가 왜 너한테 자중하라고 한 줄 알아?”
“그야 분위기를 해치니까, 그랬겠지.”
“물론 그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가 있지.”
“다른 이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넌 독불장군 타입이야. 집중력이 좋고, 목적이 있으면 질주를 하는 스타일이지.”
보람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이 있으니까, 무소처럼 혼자서 달려 나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질주가 끝나고 뒤돌아봤을 때, 널 따르던 자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보람이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충고 고마워. 실망시키지 않을게.”
작가주.
*인방 :
창, 출입구 등 벽면 개구부 위에 보를 얹어 상부의 하중을 받는 경우에 이 보를 인방이라 칭한다<네이버 건축문화사전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