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223화 (223/427)

건축의 신 223화

세대 차이(01)

민수가 대답했다.

“복원 기술이 점점 발전하고 있으니까요. 청자 제작법도 복원이 되었잖아요.”

“그걸 정말 복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요. 기록으로 복원되어 있잖아요.”

“그렇다면 고려청자를 지금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그 시대의 과학기술이 너무 뛰어나서?

말이나 글로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손맛이라는 말을 쓴다.

똑같은 조리법으로 요리를 해도, 나오는 음식 맛이 다른 것은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그것을 우리는 ‘손맛’이라고 설명한다.

민수에게 물었다.

“넌 수백 년 전에 생존했었던 사람들의 손맛, 가마불의 세기조절, 그런 것들을 모두 복원했다고 생각하니?”

“전문가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믿어야죠.”

내 생각은 달랐다.

“생각해 봐. 고려나 조선을 살던 사람들이 적절한 불의 온도는 몇 도라고 기록했겠니? 그저 ‘불길의 색깔이 샛노랗게 되면 장작을 그만 넣어라.’ 혹은 ‘가마에 손을 대봐라. 그걸 잘 기억해라. 그게 제일 적당한 온도다.’ 이렇게 말하며 전수하지 않았을까? 그런 사람들이 문서를 만들어서 전수했겠니?”

정작 그 시대의 장인들이 한문을 쓸 수나 있었을까도 의문이지만.

민수도 내 말에 호응했다.

“그러네요. 타당성이 있어요.”

대가 끊어진 명장의 손 감각을 지금 와서 복원할 수 있는가?

“비오는 날, 눈 오는 날, 그날 그날 날씨에 따라 매번 달랐을 거야. 흙을 소중히 여기며, 정성으로 대했던 그 정신과 손의 감각이 숫자나 글자로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해?”

완벽하게 복원했다면, 그 시대의 것과 똑같이 만들 수 있어야지!

“그건…… 불가능하겠죠.”

완벽하지 않은 걸 복원이라고 부를 수 없다.

“우리가 말하는 복원의 의미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관점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 사람들의 관점에서 말하는 걸지도 몰라.”

생각에 잠긴 민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스스로 자위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이미 고혼이 된 명장(名匠)들에게 사과하는 의미로 말이야.”

많은 자료를 통해서, 혹은 구전을 통해서 되살린 제작법을 100% 신뢰할 수 있을까?

그게 그 시대의 제작법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나 오류를 수정하고 수정해서 나온 최적의 제작법일 뿐, 그것을 원본 그대로의 제작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손끝의 예술을 말이나 글로 완벽히 부활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어중간하게 해서는 안 돼. 우리 세대에 전통을 완전히 부활시킬 바탕을 만들어야 돼. 그러니까 혁신을 일으켜야 하는 거야.”

민수가 우려를 표했다.

“형이 하려고 하는 건 전통문화의 혁신이에요. 전통을 살리려는 마음은 알겠지만 너무 갑작스런 변화를 시도하면 보수적인 기성세대들은 반발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반박할 자격이 없어. 그들이 그렇게 만든 거니까.”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지금까지 관심도 없었으면서, 그저 자신이 알던 것과 다르다고 비난하겠지. 그리고 그딴 것은 정통성이 없다고 폄하할 거야.”

“쉽지 않으실 거예요.”

민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알고 있어. 그래도 해야 해. 우리끼리만 일치단결하면 충분해.”

민수가 나를 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지금 당장은 어려울 테지.’

눈앞의 민수만 해도 확신을 갖지 못하니까.

하지만 지금 이 선택은 내게도 두려운 도전이었다.

내가 알던 미래와 다른 미래를 위해 발을 내디디는 거거든.

내 안의 김성훈이 웃었다.

‘야! 지금까지도 많이 바꿔 왔으면서 무슨 엄살이야?’

아니야. 지금까지와는 달라.

‘뭐가?’

지금까지는 상황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했던 거지만, 지금은 내가 직접 발을 내딛는 거라고. 전혀 모르는 길을 말이야.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아는 길을 놔두고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걸.’

괜찮아. 어차피 내가 아는 미래로 간다고 해도, 지금처럼 즐겁지는 않을 거야. 이제부터는 내가 만들어가는 미래라고. 판타지를 현실로 만드는 거라고.

‘흥.’

코웃음 치는 그에게 말했다.

“두고 봐! 네가 깜짝 놀랄 결과를 보여줄 테니까.”

***

“역시 자료만 가지고는 어렵지?”

임원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민수가 말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요. 나오는 아이디어의 양이 너무 적어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건의 사항은 없었어?”

민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자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직접 장인들과 만나고 싶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럼 맨투맨으로 붙이자. 자료보다는 직접 만나는 게 더 좋겠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 장인과 학생들을 짝지어서 진행해. 그리고 매 타임마다 로테이션으로 돌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게.”

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걱정이 되었다.

“처음이라 마찰이 생길 거야. 분명히.”

사실 처음부터 이 방법을 쓰고 싶었지만, 직접 대면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자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인들의 자부심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학생들의 탐구열도 장난이 아닐 것이다.

불과 불이 만났을 때, 과연 순기능만을 할까?

‘과열되지만 않으면 좋을 텐데.’

“그렇겠죠. 그 점 유의해서 특별히 신경 쓸게요.”

“그리고 이번에 들어온 보람이라는 녀석, 특별 관리해.”

“그 선배가 좀 튀기는 튀었죠. 면접 때부터.”

“응. 악의는 없는데, 말이 입에서 바로 나와.”

민수가 말했다.

“알았어요. 따로 불러서 주의시킬게요.”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알려주는 것 잊지 말고!”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그동안 숙지한 자료에서 궁금했던 것들을 장인들과의 교류로 답을 얻어낼 테니까, 최대한 쪼아 붙여.”

***

며칠 뒤, 일이 터졌다.

-형. 와 주셔야겠어요. 보람 선배 그룹이 분위기가 안 좋아요. 말리고는 있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어차피 예상하고 있던 일이잖아.’

예상했던 대로 보람이 흥분했을 거고, 서로 말이 안 맞아서 오해가 생겼겠지.

싸움은 말리고 오해는 풀면 그만이야.

다만 걱정되는 것은 선이 넘는 거였다.

‘보람이 녀석은 생각나는 대로 바로 말을 내뱉지. 예의 없게 보일 수도 있거든. 녀석을 처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의견이 엇갈린 건 풀면 되지만, 예의에 어긋나 버리면 되돌리기 어렵다.

감정이 상해버리니까.

‘나이가 지긋한 장인들이 어린 녀석에게 무시라도 당해 봐. 같이 일하려고 하겠어?’

시작도 하기 전에 강제 종료를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잘 관리하면 될 거라는 내 생각이 너무 얕았어. 처음부터 주의를 줬어야 했는데.’

도착했을 때는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휴. 그래도 아직은 큰 사고는 아니네.’

보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뚜껑 여는 게 왜 안 되는 건데요?”

장년의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뭐라? 뚜껑? 이게 병뚜껑이냐? 지붕이라고 제대로 말하지 못할까?”

“고작해야 모형인데 뚜껑이지, 뭐람.”

보람이 혼자 작게 투덜거렸다.

‘흠. 지붕을 연다고? 지붕의 구조를 쉽게 보이게끔 한다는 건가?’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던 거다.

녀석이 뭔가 한 건 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거든.

비록 지금은 작은 아이디어지만, 살리기에 따라서 생각지 못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력은 있는데, 인성이 따라주지 못하는군.’

내가 눈살을 찌푸린 건 못 봤는지, 장인에게 사과를 했다.

“네. 지붕으로 정정할게요. 제가 잘못 말했네요.”

성의 없는 사과에 장인의 얼굴이 더 붉게 변했다.

미간이 꿈틀하더니, 노발대발했다.

“한옥의 지붕을 열자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게 왜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까?”

“한옥의 아름다움은 완성이 되었을 때 나오는 것이다. 그럼 너는 완성되지도 않을 것을 사람들에게 보라고 내어놓을 셈이더냐?”

그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제는 뭐? 전동 대패도 있고, 전동 톱도 있는데, 뭣 하러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한두 번 쌓인 불만이 아닌 것 같았다.

저리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것을 보니 말이다.

‘하. 그것 말고도 다른 말도 많이 했었던 모양이네.’

한숨을 쉬는 사이, 장인의 말이 쏟아졌다.

“나는 뭐 전동 공구 쓸 줄 몰라서 그러는 줄 아느냐? 제대로 결을 살리고, 날이 지나간 자연스러움을 살려야 하는데, 전동 공구로 그런 느낌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성 싶으냐? 무조건 편한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말이야.”

그는 쌓인 울분을 터뜨리고 있었다.

힘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결 하나의 자연미를 살리기 위해 고행을 마다하지 않았건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아이놈이 어리석다 치부하니, 이 어찌 통탄치 않을 노릇인가 말이다.

그의 심정은 백번 이해되었다.

“그런 정신머리를 가진 놈들이 전통을 잇겠다고 하니 질이 떨어지는 것이고, 제대로 된 장인이 없다는 비난을 듣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가슴에 묻어둔 한을 풀어내고 있었다.

“전통이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에잉.”

보람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뭔가 억울함이 가득한 모습.

흥분한 보람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저런!’

더 이상 일이 커지면 수습하기가 곤란해 질 것이다.

“그러는 어르신은 전기전도율이 뭔지나…….”

보람을 향해 고함쳤다.

“보람! 거기까지.”

“야! 회장!”

“지금 네가 하려는 말, 다 책임질 수 있으면 해라.”

좋은 말이 나오지는 않으리라.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겠지.’

논리 싸움에서 저 장인이 보람을 이길 수 있을까?

면접 보던 김 과장도 말로 밀렸는데?

내 말에 막힌 보람을 보며, 장년의 장인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전통이라고는 쥐방울만큼도 모르는 녀석이!”

이건 너무 심하잖아.

젊은 놈이 한 발 물러섰으면, 어른도 그 마음 헤아려야 하지 않나?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모았는데, 이러면 오히려 전체 분위기를 해칠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쌍방 존중이 기본이 될 때나 가능한 거고. 어리다고 자존심도 없는 줄 아나!’

내 마음을 모르는지 그는 말을 이었다.

“전통을 배우고자 왔다면서, 어째 이리 하나 같이 어른을 존경할 줄 모른다는 말이냐?”

“어르신!”

“뭔가? 자네는?”

“학생회장입니다.”

“책임자라는 말이구만. 그런데?”

“저희는 모두 전통을 배우고자 이 자리에 왔고, 모두 어엿한 성인입니다.”

“하고자 하는 말이 뭔가?”

“저희가 진정으로 어르신들을 존경할 수 있도록, 저희들 또한 존중해 주십시오.”

그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허. 이거 참. 책임자라는 작자가! 그럼 네놈들을 존중해 주지 않으면 존경…….”

‘앞뒤가 꽉 막힌 양반이네.’

한 마디 하려는데, 최 옹의 목소리가 들렸다.

“학생회장! 자네 말이 옳다.”

장인이 다급하게 돌아서며, 최 옹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아이고. 어르신.”

“박 목수. 남사스러운 줄 알게나. 쥐방울이라 했나? 그런 아이들과 똑같이 싸우는 자네는 뭔가?”

“그것이 아니오라, 어르신! 제 말 좀 들어보…….”

“닥치시게. 저승에 있는 자네 스승이 이 꼴을 봤으면 잘 했다고 칭찬을 하겠구먼. 어린놈에게 이겼다고 말이야.”

“그것이 아니오라…….”

그는 더 할 말이 있는 듯 했지만, 최 옹의 매서운 눈을 피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최 옹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분란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어르신.”

“아닐세. 자네 말이 그른 것이 뭐 있나? 어른이 어른다워야 어른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 내가 데려온 사람이 실수를 했으니, 되레 내가 사과를 해야지.”

사과하는 최 옹을 보며 말했다.

“어르신. 여기서 시시비비를 가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대목장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일의 귀추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렇군. 이 사람은 내가 데려가 자초지종을 들어보겠네.”

“네. 알겠습니다. 보람이는 나 따라와.”

“야. 나 아직 말 안 끝났는데.”

“여기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네가 하고 싶은 것도 쫑 낼래?”

반 협박에 가까운 내 말에 움찔하더니, 박 목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칫!”

아직 억울한 것인지, 박 목수도 붉어진 얼굴로 대목장에게 하소연을 했다.

“어르신. 이럴 수 있는 겁니까?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

“자네도 그만하게나. 나이 반쪽도 안 되는 아이들과 싸웠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당장 내 방으로 건너오게.”

최 옹이 그에게 눈을 흘기며 뒷짐을 지고 돌아갔다.

박 목수가 보람을 지나치며 말했다.

“말해 줘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 마라. 핏덩어리야.”

멀리서 최 옹의 노한 소리가 들렸다.

“얼른 안 따라올 텐가!”

“갑니다요. 어르신!”

박 목수가 종종걸음으로 최 옹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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