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22화
자체 면접(03)
폭풍 같은 면접이 한 차례 지나갔다.
밖에서 기다리던 친구가 학생들을 맞이했다.
“어땠냐? 면접 분위기는?”
안에서 나온 학생들이 혀를 내둘렀다.
“와! 면접관들 대단하지 않냐?”
“현장 근무 하다가 바로 왔나 봐?”
그럴 수밖에.
오늘 아침까지 실무를 뛰던 현장 직원들을 성훈이 호출한 거니까 말이다.
다른 학생도 맞장구쳤다.
“그러게. 실무가 완전 빠삭해! 교수님들 저리 가라던데.”
“아 씨. 나 쫄려서 답변할 때 실수 했는데, 눈치 챘겠지?”
“당연히 눈치 챘겠지. 아까 너 답변 때, 전라도 사투리 쓰는 면접관 눈이 번쩍 하더라.”
“그랬냐? 아! 이거 탈락 일 순위네.”
친구가 실망한 그를 위로했다.
“그래도 보람이, 저놈보다는 높게 평가받을 거다.”
“보람이는 왜? 쟤는 말 잘하잖아.”
“너무 잘해서 문제지. 면접관을 이기려고 드니까.”
듣고 있던 보람이 짜증을 벌컥 냈다.
“그게 어떻게 이기려고 드는 거냐? 놓치고 넘어간 부분을 지적해 준 거지.”
“새끼야. 그때는 알아도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거 몰라?”
“너는 인생을 그렇게 살았는지, 몰라도 나 인간, 박보람 그렇게 안 살았다.”
“그래 너 잘났다. 새끼야. 그러니까, 그 실력에 맨날 뺀찌나 먹는 거 아니냐? 성질 좀 죽여라. 안 그러면 너 평생 취직 못하는 수가 있어. 이번엔 어떨 거 같애?”
보람이 실망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
“뭐. 떨어졌다고 봐야지.”
“그러게. 왜 그렇게 우겼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조건 안 된다고 하잖아. 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현장에서 그렇게 한다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해야 하는 거냐? 논리적으로 설명을 시켜야 될 거 아니야? 안 그래?”
“그래서? 이겼냐?”
“흥. 그 면접관이 반론을 못 했으니까, 내가 이긴 거야.”
“야! 이 자식아. 그런 걸 소탐대실이라고 하는 거야! 면접관이 그렇다고 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것이지. 짜식. 넌 그것 때매 맨날 교수님한테 욕먹잖아.”
“됐어. 젠장! 현재 건설 아니면 갈 데 없냐?”
옆에 듣고 있던 친구가 뒤통수를 때렸다.
“너 이 새끼야. 이번 삼송 면접에서도 또 면접관하고 싸우고 나왔다며. 교수님이 너만 보면 머리가 아프시대. 실력 있으면 뭐 하냐? 쌈닭이라 더 이상 소개해 줄 곳이 없다고 한탄하시더라.”
하지만 보람은 기죽지 않았다.
“걱정 마. 지구 어디엔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거야.”
“있으면 뭐하냐? 네 성질 참아줄 사람이 그렇게 많을 것 같아? 뻑 하면 들이받을 텐데.”
“흥. 사내는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법이야. 남자라면 한 번 정한 마음을 바꾸는 게 아니야.”
“그래. 니 똥 굵다. 자식아.”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 밑에서는 죽어도 일 못 해.”
“너 이번에 토익 점수는 좀 나왔냐?”
“950점.”
“그러니까 그딴 소리 찍찍하는 거지. 가자. 이 자식 잘난 체 보고 있다가는 내가 화병 나서 먼저 죽겠다.”
과연 보람이 목숨 바쳐 충성할 사람을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
1차 면접이 끝난 후, 성훈이 물었다.
“차장님은 어떤 친구가 더 우리 팀에 어울릴 것 같습니까?”
문 차장이 잠시 눈치를 살폈다.
‘이 인간은 뭣보다도 실력만 보잖여. 그라믄 학점이 우선이제. 그라고 아까 보람인가 하는 넘은 성훈이 밑에 있으믄, 일주일도 안 돼서 도망갈 것이 뻔하당께.’
생각을 정리한 문 차장이 말했다.
“성훈 씨. 우덜은 아까 차분하게 말이 통하던 친구가 좋던디, 실력이야 다들 고만고만하더만요. 말 잘 듣는 아그가 부리기는 좋지 않겄소?”
성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습니까? 저는 아까 차장님한테 들이받던 친구를 뽑을 생각이었는데.”
문 차장이 성훈 몰래 입을 삐죽거렸다.
‘어차피 지 맴대로 뽑을 거믄서 우덜은 왜 불렀디야?’
허나 궁금한 건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문 차장 아니던가?
“성훈 씨. 그란디 왜 학점 좋은 친구를 안 뽑고, 저 짝에 말 많고 싹퉁머리 없는 친구를 뽑는다요. 이유나 좀 알아야 쓰겄소.”
문 차장의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한석이가 없응께, 손이 근질근질허요?”
‘문 차장이 투덜거릴 만도 하지.’
지금까지 나의 행보와는 달랐으니 말이다.
그동안 나는 고분고분한 친구들을 좋아했었다.
문 차장 또한 나를 잘 아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 아마 그런 내 성향을 고려하고 내가 원하는 답변을 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제부터 시대가 달라진다고요.’
인간이 처음 달에 발을 디뎠던 충격만큼 세상은 바뀔 것이다.
세기가 바뀌었고, 사람들의 인식도 바뀐다. 또한 삶의 질도 변화할 것이다.
벌써 그런 기미는 보이고 있다.
휴대폰에 점점 기능을 추가하고 있고, 신용카드 또한 단지 신용결재만을 위한 용도가 아닌 여러 가지 기능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이미 내가 살았었던 미래로 진입하고 있었다.
휴대폰에 MP3가 왜 필요하냐며 쓸데없다고 했었고, 휴대폰에 카메라가 왜 필요하냐고 불평했었다.
‘괜히 쓸데없는 기능을 추가해서 휴대폰 값만 오른다는 말도 나왔었지.’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어진다.
이미 달라져 버린 세상, 급격한 변화, 무한 경쟁이 생활화되는 시대에서는 상사가 시키는 대로 무조건 복종하는 ‘YES MAN’은 살아남지 못한다.
무조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10억 중국이 인구로 밀어붙이고, 일본이 돈으로 밀어붙일 때, 우리는 우리만의 개성으로 살아남아야 합니다.’
누구도 넘보지 못한 강력한 개성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회사의 직원들 하나하나가 자신만의 개성으로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바꾸는 세상이 도래한다.
하지만 이건 나만 아는 것.
문 차장에게 설명을 해야 했다.
“말 잘 듣는 직원은 언제든지 구할 수 있어요.”
“그렇기는 허요. 돈만 있으믄 되니께.”
문 차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나중에 하면 됩니다. 그 전에는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구해 둬야 합니다. 남들이 채가기 전에 말이죠.”
이런 인물들이 현재 건설 구석구석에 있을 때, 의견의 다양성이 생기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커진다.
‘저들을 관리하느라, 나를 견제할 틈이 없지 않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성훈은 여러 유형의 인재들을 뽑았다.
새로운 생각을 내놓는 창의적인 사람.
자기주장을 피력하는데 능한 자.
저돌적인 행동력을 지닌 인재들을.
***
이제 준비 작업은 끝났다.
“학생회 제군들.”
민수를 비롯한 학생회 임원들이 대답했다.
거기에 경호도 꼽사리 끼어 있었다.
“네. 회장.”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그 말은 아무리 인재들을 모아놓아도, 서로의 재능들이 연결되지 않으면 그 가치를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경호가 물었다.
“선배님. 이제부터 저희는 뭘 하면 되는 겁니까?”
“너희들은 지금부터 각 학과에서 아이디어를 뽑아낸다.”
“어떤 아이디어 말인가요?”
아이디어란 처음부터 특별해야 하는 것인가?
가공되지 못한 원석들은 모두 아이디어가 아닐까?
설령 그게, 지금 당장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는다.
주인을 제대로 만난다면 그 가치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리라.
“뭐라도 좋아. 각 과의 학생들에게 전통에 대한 자료들을 나눠 주고, 이걸 자신들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현대에 맞게 재구성하라고 해.”
경호가 염려하며 물었다.
“너무 어려운 문제 아닐까요? 한 번도 전통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을 텐데.”
“어렵지 않아. 아무리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도 인정할 테니까.”
새로운 생각은 어린 아이의 머리에서 나온다.
왜?
전혀 모르니까.
경호가 물었다.
“하지만 실행 불가능한 것도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을 하려고 이 난리를 치는 게 아니거든.
“실행이 어려운 것일수록 좋다. 그만큼 도전해볼 가치가 있겠지.”
내게 원하는 것은 평범한 건축가의 발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다.
나처럼 머리 굳은 40대의 아저씨가 생각할 수 없는 신선한 발상을 원했다.
‘아무도 안 된다고 단념했던 것을 해낼 때, 그걸 보고 혁신이라고 하지.’
그 가치는 일상적인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서로 다른 전공을 한 만큼, 전통의 재해석에서조차도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볼 거야.’
경호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선배님. 그냥 우리가 계획을 짜고, 각 과에 지시를 하달하는 것이 낫지 않아요?”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경호를 달래며 말했다.
“경호야. 이런 프로젝트는 학생 때 말고는 평생 할 일이 없을 거야. 자신의 분야와 전혀 상관이 없는 전통을 자신만의 지식기반 위에서 사유해보는 건 말이야.”
실제로 건축가들조차도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다른 분야는 말할 가치도 없으리라.
경호가 말한 건 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이유를 물으면 안 된다.
명령을 거부해서도 안 된다.
그저 기계처럼 입력된 명령만 수행하면 된다.
가장 편한 방식.
내가 돈을 내니까, 너희는 돈의 가치만큼 일해!
그런 과정에서 생각의 여지가 있을까?
아니 생각할 필요나 있을까?
그걸 수행하는 게 꼭 사람이어야 할 필요도 없지.
“평생을 그렇게 살지도 모르는데, 대학에서까지 그런 방식을 고수할 필요가 있을까?”
아직 완전히 내 뜻을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경호는 내 말에 따랐다.
“알겠어요. 선배님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경호가 밖으로 나간 후, 민수가 물었다.
“형. 그런데 굳이 전통을 지금 그대로 보존하지 않고,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이유가 뭔가요?”
민수의 물음이었다.
“좋은 질문이야.”
보존.
좋은 말이다.
민수는 아직 모르겠지만, 우리의 전통은 점차 사라져간다.
간단히 말해, 대가 끊어진다.
10년 새에 몇 십 종, 몇 백 종이나 사라진다.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그 존재의 흔적을 지운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지기 때문이지.’
민수에게 물었다.
“보존이란 지금 상태 그대로를 보호해서 남기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해. 보존이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회자되어 그들의 머리에 남아 있어야 하는 거야.”
물건을 보존하는 것과 전통을 보존하는 것은 다르다.
전통은 정형화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정신이었고, 그들의 삶이 녹아든 결정체이며, 과거를 살다간 선조들의 흔적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기억 속에 없는 것을 보존한다고 하기도 어려울 테니.”
“고려청자는 유명했지만, 그 제작법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지는 않았다.”
“정부에서 관리를 잘못한 탓이죠.”
“정부? 어느 정부의 누구? 조선시대?”
민수가 어깨를 으쓱 했다.
“그야. 저도 모르죠.”
정체도 모르는 누군가를 탓하는 것처럼 허황된 일이 또 있을까?
차라리 하늘을 원망하는 게 훨씬 낫다.
‘적어도 확실히 보이기는 하잖아.’
‘정부’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직에 책임을 묻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현대의 정부라고 해도,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만, 모든 요구를 들어주지는 않아. 더군다나 전통처럼 돈이 안 되는 거라면 더더욱. 과거에는 더 심했을 거고.”
“하긴 우리 아버지 세대만 해도, 먹고 살기 힘들었을 텐데, 전통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겠죠.”
“그래. 누가 대표가 된다고 해도, 지금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거야.”
지나간 일을 회자해서 무엇 하리.
민수에게 말했다.
“더구나 이 경우엔 물론 근대화 이전의 일이라,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어.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 원망해봐야 무슨 이득이 있겠어?”
민수와 말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지금 내가 전통이라 부르는 것들이 진정한 의미의 전통이 맞을까?’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까?’
‘전통 문화를 계승했다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대로를 계승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생각을 접었다.
‘혼자 고민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지.’
그것보다는 지금 있는 것이라도 제대로 보존할 수 있는가에 생각이 미쳤다.
민수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는 것들이 몇 십 년 후에 세대가 바뀌어도 과연 지금 이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까요?”
내가 물었다.
“뭘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