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21화
자체 면접(02)
한 교수 사무실에 들렀다.
“부르셨어요? 교수님.”
서류를 정리하던 그가 자리에서 나오며, 소파를 권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오라고 했어. 이리 앉아.”
차를 타면서 내게 물었다.
“총장님께 학과장 회의에 참석한다는 말을 들었다.”
“네. 맞아요.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었거든요.”
내게 차를 내밀며 그가 자리에 앉았다.
“실은 그 건으로 염려가 되어서 불렀다.”
“네?”
뜬금없이 불러서 염려라니.
한 교수가 내게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염려를 한 적이 있었던가?
나를 믿고 밀어줬다면 몰라도 말이다.
‘그의 염려라면 귀담아 들어야지.’
그의 눈을 직시하며 진지하게 말했다.
“말씀해 주세요. 명심할 테니.”
“사실 너는 걱정을 끼치는 제자가 아니었어. 오히려 자랑거리지. 그리고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도 하고.”
사실이 그랬다.
그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교수가 차를 후후 불며 말했다.
마치 다른 사람 얘기하듯이.
“지금까지 넌 여러 사람들과 많은 갈등이 있었지.”
‘그랬던가?’
나랑 갈등이 있었던 사람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하니 몇 명이 머리에 떠올랐다.
우리 과의 박 교수, 진 교수 정도?
하지만 그는 내게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넌 갈등을 항상 네 방식대로 해결하지. 부수고 돌파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을! 저도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해결한다고요.’
“하지만 별 문제 없었잖아요.”
그 말에 한 교수는 빙긋이 미소 지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지금까지 너와 부딪쳐서 학교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크게 보면 우리 과의 박 교수와 진 교수가 있는데, 그 둘이 학교에 남아 있느냐는 말이지. 참! 전 학생회장도 있었군.”
‘아! 학생회장? 그 녀석도 있었군.’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교수님. 그야 당연히 그 사람들이 떳떳치 못한 일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불의한 일을 했든 아니든,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별 문제가 되지 않은 거란 생각은 안 해봤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네게 그가 말했다.
“결론은 누가 되었든 간에 너하고는 갈등이 생기면 안 된다는 거야. 적어도 학교에 남겨 놓으려면 말이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한 교수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가 지금의 학교를 네 배경으로 삼고, 활용하고 싶으면 말이야.”
그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갈등의 주체가 학과장들이 될 것 같구나.”
“그래서요?”
“그분들 몽땅 다 쫒아낼 생각이냐?”
“네?”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아까 말했다시피, 너랑 부딪치면 아무도 안 남는다고. 그리고 이번에는 위험 부담이 좀 크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는 없잖아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는데, 한 교수가 선수를 쳤다.
“성훈아. 그 이후의 대책을 생각해놓은 게 있니?”
“…….”
말없는 나를 보며 한 교수가 말했다.
“없을 걸. 항상 넌 먼저 부딪치고 나서 대책을 찾는 놈이잖냐? 그리고 그 대상이 아랫사람이든, 윗사람이든 별 상관을 안 하지.”
작년부터 지금까지 내 삶을 간략하게 네 글자로 줄인다면, ‘좌충우돌’이라는 말로 함축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수 없이 또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그렇기는 하죠.”
“넌 그들을 설득할 요량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총장에게 요청을 했겠지.”
“사실입니다.”
“과연 갈등 없이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한 교수의 염려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어렵겠죠.”
사실이 그러하니,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한 교수가 차를 마시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네가 이기든, 학과장들이 이기든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 같구나.”
“그럼 교수님께서 저라면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한 교수 말이 맞았다.
도움을 구해야 할 입장에서 척을 진다면, - 설령 그 학생들만 쓴다고 해도, - 몇 년을 사사받은 교수님이 무시를 당했다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있을까?
‘단지 숙이고 들어간다고 정답은 아닐 터!’
나는 한 교수에게 색다른 답을 원했다.
싸우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답을.
한 교수가 말했다.
“네가 아까 권 교수에게 했던 것처럼, 다른 교수들도 안고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나는 네 편에서 최선을 다할 거야.”
“하지만 그게 정답일까요?”
“정답이 아닐지는 몰라도, 정답에 접근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잖니?”
한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은 총장님도, 권 교수도 많이 우려하고 있어. 아무리 취업 지원에 대한 권리를 네가 가지고 있다고 해도, 교수들의 신임을 잃어서는 네가 학교에서 얻으려고 하는 것의 절반도 얻지 못할 거야.”
그의 말은 맞았다.
내가 학교의 교수진을 통째로 갈아엎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한, 지금의 교수들에게 신임을 받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능력과 시간을 떠나서, 그들이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렇게 한다는 건 명분도 약하지.’
그들이 내게 죄를 지은 것도 아니질 않나?
지금도 숙이고 들어가는 건데, 더 숙여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뿐.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난 삶에서는 가구 하나를 팔기 위해 간도 쓸개도 빼놓고 다녔는데, 이까짓 것쯤이야.’
내가 고민하는 사이, 한 교수가 말했다.
“결정은 네가 하는 것이고, 그 결과의 책임도 네 것이겠지. 시간이 많다면, 이렇게 말하지도 않았겠지만, 지금 같은 경우라면, 타협도 필요하지 않겠니?”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의 의견 최대한 고려할게요.”
한 교수가 일어서는 내게 말했다.
“성훈아. 마찰이 생길만한 부분에서는 굳이 교수들을 직접 설득하려 들지 마라.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을 뿐이니까.”
“그럼 어떡해요? 멍청이처럼 가만히 있어요?”
한 교수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3초만 참고 있으면, 권 교수님이 알아서 해 주실 거다. 그럴 정도의 역량은 있는 분이니까.”
***
총장이 말했다.
“아시다시피 여기 있는 학생은 건축학과 학생회장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해서 내가 불렀소. 무슨 말인지 한 번 들어 봅시다.”
총장이 나를 지목하며 일으켜 세웠다.
한 교수의 걱정은 알아들었지만, 그가 말한 그대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직설적으로 말했다.
“학과장님들. 저는 이번 도우미 선발을 자체 면접으로 뽑고 싶습니다.”
잠시 소란이 일었지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듣기 싫은 말은 빨리 끝내는 게 좋지 않겠나? 어떻게 말해도 비난을 받을 테니까.
“그래서 저번에 보내주셨던 학생들보다 더 많은 수를 추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중에서 가려 뽑겠습니다.”
전기학과장 권 교수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렇게 대놓고 말해버리면 어떻게 하냐는 당황스러움이리라.
대번 반발이 튀어나왔다.
“그 말은 교수들의 추천을 무시하겠다는 말인가? 그렇게 무시를 하는데, 우리가 추천해 줄 이유가 있는가?”
“쯧쯧. 그럼 우리 권위는 어떻게 되는 건가? 땅바닥에 떨어지지 않겠나?”
“그러게 말이오. 건축이 종합학문이라고 해서, 기계, 화공, 전기 등을 모두 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구려.”
“건방지구려. 요즘 젊은 것들은 제 놈이 뭐라도 된 냥 착각이 심하단 말이오.”
예상했던 대로의 맹비난이 쏟아졌다.
‘이걸 뒤집어엎어? 말어?’
나 말고 ‘취업 지원’을 얻어낼 사람이 있느냐는 소리가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걸 참았다.
한 교수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제발 참아라. 성훈아.’
권 교수가 그들의 소요를 막았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이든 교수들이 이게 무슨 추태요.”
“권 교수는 이런 얘기를 듣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 거요? 평소 같으면 제일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사람이!”
“일단 끝까지 들어나 봅시다. 뭐라고 하는지. 그 후에 일어나도 늦지 않을게요.”
그가 내게 눈짓했다.
이 기회에 얼른 치고 들어가라는 말이리라.
“교수님들. 치기 어린 소리라 생각지 마시고 들어주십시오.”
“흥. 말해 보게. 판단을 우리가 할 터이니.”
“저는 현재 건설에 딜을 걸었습니다. 대상 수상 시 5%의 가산점을 달라고 말입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네.”
“이걸 한 번으로 끝내실 생각이십니까?”
교수들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게 무슨 말인가?”
“이번 결과가 좋다면, 이런 이벤트를 매년 열어달라고 현재에 딜을 걸 생각입니다.”
“그게 정녕 가능하다는 말인가?”
교수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암! 당연하지요.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우리 학교는 내게 끊임없이 인재를 공급하는 인재 풀이 되어야 한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 박람회 결과가 현재의 눈에 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현재 건설은 자선 단체가 아니다.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설령 대상을 수상했다고 해도, 현재 건설 쪽에서 판단하기에 별로 매력이 없다면, 다음 해의 취업 지원을 해줄까요?”
교수들의 의논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큼 투자하고도 얻는 게 미흡하다면, 그런 일을 다시 할 리가 없지 않겠소?”
다른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요. 성훈 군을 믿고 일을 진행한 양 이사에게도 타격이 갈 건 뻔하고요.”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 취업 지원이 될 수도 있겠군요.”
그들의 말소리가 적어질 때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처음 현재와의 관계를 맺을 때, 확실하게 임팩트를 주어야 합니다. U대학에 대한 투자는 만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말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옳은 소리를 하는구먼.”
학과장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건 당연하지.”
“여기서 하나 여쭙겠습니다. 여기 계신 교수님들 중에서 현재를 잘 아시는 분 계십니까?”
대번 반론이 튀어나왔다.
“그럼 자네는 현재를 잘 안다는 말인가? 과연 장담할 수 있나?”
‘당신들보다 현재를 잘 안다고 했다가는 건방지다는 말을 하겠지!’
사실대로 말하면 역효과만 일으킬 것이다.
다른 학과장도 역정을 냈다.
“그렇다는 말은 자네도 우리랑 같은 조건이라는 말 아닌가? 그런데도 면접을 보겠다고?”
“아직 사회 경험이 없는 자네가 직접 면접을 본다고 나서는 것은 영 신뢰가 가질 않는군.”
“그건 나도 그러하이.”
‘교수들의 기득권이란 이런 것인가?’
그들의 비난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곧 사라질 말들이니까.
그들에게 웃으며 답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의 시선이 성훈에게로 모였다.
“왜 그런지 설명해 보게”
“바로 면접관들이 현재건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요.”
“그게 누군가?”
“지금 현재 건설에 근무하고 있는 현재맨들입니다.”
“그게 정말인가?”
그들보다 더 현재를 잘 알 수 있을까?
“그럼 그 사람들이 공정하게 인재를 뽑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적어도 현재 건설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뽑을 수는 있을 겁니다.”
반론의 여지가 있을까?
“이건 할 말이 없군. 현재 건설에서 직접 와서 뽑는다는 데야.”
“그래도 면접은 다르지 않소.”
“현재 건설에서 면접도 그 사람들이 볼 것 아니오? 그럼 박 교수는 현재맨들보다 현재를 더 잘 아오?”
“현재의 면접관들이 본다는데, 일단 통과하면 최소한 면접에서는 현재에 입사한 거나 다름이 없지 않겠소?”
‘현재 면접관은 아닌데……. 면접 보는 사람이 면접관이지. 면접관은 특별한가?’
약간의 오해는 있었지만, 굳이 설명해서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교수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건 매한가지외다.”
‘어쩜! 저런 생각을 하는 거지?’
화가 나는가?
안 나는가?
제 학생은 미래가 걸렸는데, 교수라는 자는 자신의 권위만 생각하고 있다니!
‘이건 너무하잖아.’
일어나려는 찰나, 권 교수가 소리를 높였다.
“박 교수! 중요한 건, 우리에게 학생을 추천할 권리가 있다는 게 아니오.”
“그럼 뭐요?”
“우리가 추천한 학생이 면접을 통과한다는 거요. 명예에 눈이 멀어 본분을 망각하지 마시오.”
그리고 좌중을 조용히 시켰다.
“우리끼리 갑론을박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직접 면접 본 학생들에게 확인하면 될 일 아니겠소.”
나도 그의 말을 보충했다.
“면접을 본 학생이 불합리함을 말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학과장님들께 따로 검증을 받겠습니다.”
권 교수가 말했다.
“성훈 군. 면접 건은 이 정도로 정리가 된 것 같으니, 할 말이 있으면 마저 하게나.”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제가 바라는 대로 성과를 낸다면, 내년에는 우리 학교에 취업 지원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봅니다.”
권 교수가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말인가?”
“내년에는 대기업들이 우리 학교 학생들을 데려가기 위해 경합을 벌이게 될 겁니다.”
“허허허. 꿈같은 소리지만, 듣기는 좋구만.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군.”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더니, 학과장들에게로 말머리를 돌렸다.
“나는 성훈 군의 저 면접 제안이 우리 교수들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 반대로 세우는 것이라 생각하오.”
“그게 무슨 말이오? 권 교수?”
“우리 대국적인 관점에서 봅시다.”
교수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가르침으로 우리의 권위를 세우던 시대는 지나갔소. 막말로 가르치는 것만 본다면, 사설학원에서 더 잘 가르치지 않겠소?”
반박하는 소리가 나왔지만, 그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은 학생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에서 교수의 권위를 찾아야 할 것이오.”
“좋은 길이란 게 뭐요?”
“학생들이 좋은 곳에 취직하는 것이오. 먼저 들어간 선배가 끌어주고, 뒤이은 후배가 밀어준다면, 그것이 바로 명문의 기틀을 쌓는 것이 아니겠소?”
회의를 마친 학과장들이 서로 얘기를 나누며 하나둘 자리를 떴다.
나가는 권 교수에게 감사의 눈인사를 보냈다.
“면접 준비 잘하게나.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될 테니.”
그리고 대망의 면접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