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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20화 (220/427)

건축의 신 220화

자체 면접(01)

전기공학과 학과장이 학생회실을 찾아왔다.

반백의 곱슬머리를 37가르마로 깔끔하게 빗어 넘긴 중년의 신사였다.

“학과장님. 예까지 웬일이십니까?”

일어서서 맞이하는데, 그는 들어서자마자 사과의 말부터 꺼냈다.

“전기과 권 교수라네. 성훈 군. 미안하게 되었어. 일부러 현재 건설 이사를 불러왔건만, 우리 학과 녀석이 분위기를 모르고 제 할 말만 한 모양이더군. 다 내 부덕의 소치라네.”

어른이 이렇게 사과를 하고 들어오면 나오던 화도 들어가게 마련이다.

화가 나기는커녕 약점을 잡았다고 좋아했었지만.

‘어쨌거나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군.’

마주 인사하며 맞이했다.

“그게 어디 교수님의 잘못이겠습니까?”

“자네를 볼 면목도 없지만, 염치 불구하고 내 이리 찾아왔다네.”

‘그런데 학생회장도 같이 왔다더니 어디 있는 거지?’

소파로 안내하며 뒤를 힐끔 보자, 내 눈치를 알아챘던 모양이다.

“아까 사고 친 녀석도 같이 데리고 왔다네. 녀석! 염치는 있는 모양이지.”

그리고는 문 쪽으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놈아! 안 들어오고 뭐하는 거냐?”

잠시 뒤 삐죽거리며 모습을 드러낸 전기과 학생회장에게 호통을 쳤다.

“얼른 사과하지 안 해? 지금 네 선배들이 너 하나 때문에 얼마나 피해를 본 줄 알아?”

전기 회장은 아까의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어깨가 축 쳐져서 기죽은 모습이었다.

‘한 방 들이받으려고 했는데, 상대가 이래서야.’

권 교수에게 물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별 일 아니네. 선배들한테 한 소리 들은 모양일세. 자네도 알다시피 학생회가 군기가 좀 세잖나. 자네들도 그런 걸로 알고 있네만.”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누가 그럽니까? 우리 과는 지극히 민주적입니다. 다른 학과와 비교하시면 안 됩니다.”

“그런가? 우리 학교에서 가장 군기가 세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내가 잘못 알았나 보군.”

‘당연하죠. 우리 과보다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곳이 또 있을라구?’

싸움 자체가 없는데, 당연히 평화롭지 않겠는가?

뒤를 보며 동의를 구하려는데, 민수와 다른 녀석들이 권 교수의 말에 공감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이것들을 사람 무안하게! 좀 더 빡세게 굴려야겠군.’

권 교수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도 항상 대화로 일을 해결합니다.”

“큼. 그렇게 믿겠네. 크흠.”

권 교수가 사래 들린 듯,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민수들을 향해 말했다.

“손님이 왔는데, 차라도 한 잔 내와야지. 뭐 하러 멀뚱거리고 서 있냐!”

임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음. 어색하군.’

화제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차가 나오고, 권 교수에게 말했다.

“오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신경 쓰여서 오신 거군요.”

“실은 그렇다네. 이 녀석이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선배들을 생각해서라도 기분 나쁜 게 있다면 풀고 넘어 가세나.”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나를 달래려고 열성적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깐의 감정 때문에 대세를 망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야지.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네. 고마우이.”

권 교수가 옆에 앉은 학생회장을 쿡 찌르며,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였다.

성훈도 가만히 받고 있을 수는 없어서, 같이 맞절을 했다.

“박람회를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말하게. 최선을 다해서 돕겠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드디어 듣고 싶은 말이 나왔군요. 교수님.’

“그래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할 따름이지요.”

상황이 잘 풀려가자, 권 교수도 기분이 좋은지 농담을 건넸다.

“우리 과는 아무 걱정 말게. 열 명이든 백 명이든 자네가 원하는 만큼 넣어주겠네.”

지금의 경우는 다다익선이니, 농담처럼 말했지만 최대한 많이 넣고 싶었으리라.

‘어딜 은근슬쩍. 넉살이 좋은 분이네.’

“그렇게까지야 필요하겠습니까?”

그가 너털웃음을 보이며 손사래를 쳤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번 도우미 선발에 있어서도 우리 과 최고의 인재를 집어넣도록 하겠네. 이번 일로 생긴 섭섭함은 기억에서 지워주게.”

“지난 일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저도 그런 일로 전기과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랬었나?”

“전기가 건축에서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빼겠습니까?”

권 교수는 손을 마주치며 맞장구쳤다.

“그렇지. 나는 혹시나 자네가 억한 심정을 가질까봐서 노파심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네.”

***

여기로 오면서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가?

만약 박람회의 도우미 인원이 타 학과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다면, 현재 건설에의 입사가능성도 극악하게 줄어든다.

‘그건 시작에 불과하지.’

당장 취업이 급한 제자들은 스승의 무능을 원망할 것이며, 총장의 잔소리를 감내해야 하며, 다음해 신입생들의 질을 걱정해야 한다.

작금의 사대와 내년의 신입생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IMF 이후, 명문 대학의 기준이 급변했다는 말이지.’

전통에서 취업률로.

취업 잘 되는 대학이 곧 명문대였다.

취업률이 낮다고 낙인찍힌 과는 입학경쟁률이 떨어지고, 좋은 인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의 악순환만이 반복된다.

실력이 떨어지니 취업이 안 되고, 취업이 안 되니 능력 있는 인재들이 들어오지 않고. 그렇게 마이너스 반복을 되풀이하다가 최종적으로는 과가 폐지된다.

권 교수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휴! 일단 최악의 경우는 모면했군.’

***

서로간의 인사치레가 끝났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

권 교수에게 차를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교수님을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무슨 일로 말인가?”

“실은 이번에 도우미 모집 방법을 좀 바꿔 보려고 하는데, 교수님의 조언을 구하고 싶었거든요.”

“방법을 바꿔? 어떻게 말인가?”

“추천해 주신 도우미들을 우리 학생회에서 최종면접을 보려고 합니다.”

그 말을 끝내자마자 바로 첨언했다.

‘불필요한 오해는 만들 필요가 없지.’

“물론 교수님들의 안목을 믿지 못해서는 아닙니다.”

“흠.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네.”

나를 흘기며 권 교수가 넌지시 물었다.

“성훈 군. 혹시 그 면접이라는 게 우리 과만 보는 건 아니겠지?”

“당연하죠. 그러면 제가 전기과에 앙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그럴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제야 눈동자에 의혹이 사라졌다.

권 교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처럼 특이한 경우에는 그에 따른 특별한 해법이 필요하겠지.”

‘말하기 좋네. 내 생각을 미리 이야기해 주니.’

그러면서도 경계심이 생겼다.

인생의 연륜이란 예상치 않은 곳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완전히 생각을 읽혔다고나 할까?

학과장들 사이에서 비중이 있다더니, 괜히 그런 말이 나온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 이런 경우는 드물었겠지요?”

“거의 없었지. 학교가 배경인 이상, 교수들의 의견이 묵살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겠나?”

묵살을 말하는 그를 달래며 말했다.

“이번에 한해서는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납득한 만한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

“우리의 목표는 박람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재 건설과의 승부가 될 겁니다.”

“어째서 그런가?”

“여기서 좋은 결과를 내고 현재 건설에서도 협업을 할 좋은 아이템이 생긴다면, 다음 해에도 이런 종류의 제안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권 교수의 눈이 반짝 빛났다.

“취업지원 5%의 가산점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리인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결과로 인해 현재 건설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는다면, 다음 해에는 현재 쪽에서 먼저 제안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명분도 있구요.”

권 교수가 찻잔을 들며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럴싸하군. 현재 쪽에서 선심 쓰듯이 취업지원을 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겠고. 그러자면 반드시! 이번 결과가 좋아야겠군.”

“그렇습니다. 현재 쪽에서 가져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투자하는 비용 이상의 소득은 거둬야겠죠.”

이번 취업지원은 단순히 산학협동이라고 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것과 자네가 면접을 보겠다는 것의 관계는?”

“저는 이 한 건으로 앞으로의 현재 건설과의 관계를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그러려면 현재 건설을 잘 알아야 하죠.”

“그렇겠지.”

당연한 말을 왜 하냐는 듯한 웃음이었다.

***

그를 직시하며 말했다.

“교수님.”

“응? 왜 그러나?”

“저는 현재 건설을 잘 압니다.”

단호한 성훈의 말에 그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권 교수가 보기에도 그랬으리라.

‘잘 알고 있으니,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단지 안다는 것만으로 현재 건설의 이사를 호출할 수 있을까?’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불가능해 보이는 그 일을 분명히 성훈은 해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게 분명히 있어. 그러니 저렇게 확신하는 거겠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하는 사이, 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 박람회는 현재 건설에 면접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대학은 이런 능력이 있다. 너희가 투자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어필하는 거죠.”

면접이라는 말에 권 교수가 웃음을 지었다.

“그 면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잘 아는 자네가 계획하는 대로 움직여줄 팀을 꾸릴 필요가 있다. 이 말이겠지?”

“네.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이건 학생들의 솜씨 자랑과는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현재 건설과의 승부입니다. 우리가 이긴다면, 앞으로도 계속 현재 건설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

권 교수가 물었다.

“자네는 확실히 성공할 자신이 있는가?”

“네. 이 작품은 제 학교생활을 통틀어서 가장 우수한 작품이 될 겁니다.”

아무런 실적이 없었다면, 젊은이의 객기로 치부했겠지만, 이미 성훈은 공모전 출품작을 현재 건설에 팔면서 대박을 친 적이 있었다.

“패기가 좋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자네를 밀어주겠네.”

“그럼 교수님께서 다른 교수님들을…….”

그가 손가락을 내밀며 내 말을 끊었다.

“하지만 성훈 군. 이건 잘 선택해야 할 거네.”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그걸 주장하는 건 자네가 되어야 할 걸세. 그러면 나는 뒤에서 지원을 해주지.”

권 교수 입장에서는 그게 모양새가 좋기도 하며, 여차한 경우에는 몸을 빼기 쉬운 포지션이었다.

‘은근히 내게 떠미시네. 영악한 양반!’

하지만 그의 말이 구구절절 옳았다.

약간의 비난을 받을 수는 있지만, 잘 되었을 경우에는 모든 공이 내게 집중될 것이다.

‘내가 너무 쉽게 가려고 했어.’

선택을 생각할 필요도 없었는데.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아닐세. 내가 거론하는 방법도 분명히 있겠지. 하지만 분명히 의심을 살 걸세. 내가 자네와 작당을 한 것이 아니냐며. 이건 아마 한교수도 입장이 비슷할 걸세.”

오랜 교수생활의 처세가 돋보이는 말이었다.

“듣고 보니, 교수님의 말씀이 맞군요. 자칫하면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나와 친한 몇 사람은 설득해두겠네.”

“감사합니다.”

그가 일어서며 말했다.

“성훈 군? 뻔뻔스럽게 들리겠지만, 우리 학과 정원은 좀 늘려줄 거지?”

농담처럼 툭 던지는 말에 뼈가 있었다.

‘도와줄 테니, 챙겨 달라는 말이렷다?’

그의 말에 웃으면서 응수했다.

“불 들어오는 거 확인하구요.”

건물 지어 놓으면 뭐하나?

불 안 들어오면 말짱 헛일이지.

물론 지금의 경우는 후불이니, 내게 선택권이 있었다.

“허허허. 전기 빵빵하게 넣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권 교수와 악수를 하고 그를 마중했다.

전기과의 인원을 늘린다고 문제될 것은 없었다.

‘사실 이번 작품에는 전기과 인원들이 많이 필요하거든.’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장님. 공대 학과장님들과 의논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금쯤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네. 내일 오후에 학과장 회의가 있으니, 그때 참석하게. 내가 미리 얘기해 두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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