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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17화 (217/427)

건축의 신 217화

새로운 제안(03)

미간을 찌푸린 양 이사가 말했다.

“성훈아, 미안하다. 곽 이사도 따라왔다.”

뒤에서 곽 이사의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성훈 군. 자네가 관련된 일인데 내가 안 올 수가 있겠나?”

“뭐 중요한 일이라고, 이사가 둘씩이나 움직인대요? 현재 건설이 그렇게 한가한 조직이었나요?”

귀찮아하는 성훈의 반응에 곽 이사가 쩔쩔 매며 말을 걸었다.

“험험. 잠깐 둘이서만 얘기할 수 있겠나?”

“몰라요. 저 지금 시간 없으니까, 따라오시려면 오시구요.”

‘진짜로 바쁘다고!’

설명회장이 바뀌는 바람에 설치를 다시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각 학과마다 대자보가 붙고, 팩스가 들어갔다.

그 결과 수많은 공과생이 몰려들었다.

결국은 수용인원 초과!

그 바람에, 건축과 강당으로 예정되어 있던 설명회가 체육관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니 바쁠 수밖에.

“어쩌다 저런 관계가 되었누?”

양 이사가 혀를 끌끌 찼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곽 이사가 성훈에게는 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 참. 신기한 관계일세.’

왜 그러느냐고 곽 이사에게 물어봤지만, 정작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으니 더 궁금해질 따름이었다.

잠시 후 둘만 남았을 때, 곽 이사가 앓는 소리를 해댔다.

“성훈 님. 왜 저를 멀리하십니까? 혹시 저번에 삼일로펌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뇨. 전혀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어째서 이런 중요한 일을 저런 곰 같은 놈에게 맡기신 겁니까?”

“곽 이사님 하고는 맡고 있는 포지션이 다르잖아요. 그리고 이 일은 기획실에서 맡는 게 타당하구요.”

“그래도 섭섭합니다.”

“대신 중동 쪽은 곽 이사님이 꽉 쥐고 계시잖아요.”

“그렇기는 하지만…….”

‘욕심만 많아가지고.’

아!

중동을 말하다 보니 떠올랐다.

‘아랍의 왕자 하나가 방문해 주면, 구색이 더 살겠지?’

거물 하나가 움직이면, 세계의 매스컴들도 그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니까 말이다.

이 생각을 하고는 속으로 흐뭇해졌다.

‘그래도 산유국의 왕자라면, 어느 정도 관심을 받지 않겠어?’

“곽 이사님. 압둘을 부르면 우리 박람회가 더 유명해지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렇겠지만. 왕자씩이나 되는 사람을 무슨 명분으로 부릅니까? 외교부에 문의를 해 봐야 합니다.”

“만약 압둘이 직접 온다고 하면요?”

“그렇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그럼 명분 따지지 말고 전화하세요.”

‘시계 받은 것도 있는데, 입 닦을 수 있나?’

곽 이사는 난감한 기색을 비췄다.

“하지만 제가 오라고 한다고 오겠습니까?”

“초청장 보내면 되잖아요.”

“고작 그런 걸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방법을 알아서 찾아야지. 일일이 말해 줍니까?’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건 여우처럼 눈치 빠르게 행동하면서, 그 외에는 상당히 둔하다.

‘그게 더 얄밉다고.’

“그럼 예전에 만들어주기로 한 몰딩 있죠. 그거 만들어 줄 테니까, 오라고 하세요. 부른 김에 묵은 빚도 해결하죠.”

예전에 방문했을 때, 압둘의 취향을 몰라서 뒤로 미루었던 것을 지금 해결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그 몰딩을 만드는 겁니까?”

“확실하지는 않아요. 압둘의 마음에 드는 문양이 몇 개 있으면 조합이 가능하겠죠.”

그래도 압둘을 안내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것보다는 훨씬 더 효율적이리라.

이번 박람회는 한국미의 총집합체가 될 테니까, 압둘의 취향에 맞는 것을 찾을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어?

곽 이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 조건이면 당장 올 겁니다.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뭔가 원하는 것이 있구만. 기회는 절대로 안 놓친단 말이야. 참 나.’

곽 이사를 보며 말했다.

“그 몰딩이 완성되면, 가격 협상은 곽 이사님이 직접 해주세요.”

그는 절대로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곽 이사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정말이십니까?”

“네. 대신 제가 가지는 저작권과 생산에 대한 비율도 최고로 맞춰 주셔야 해요.”

“암요. 당연한 말씀을. 최고의 최고로 맞추겠습니다.”

‘최, 최, 최고로 맞춰 줘도 우리는 그 몇 배를 남기거든. 올해 실적이 몇 배로 뛰겠군.’

이미 현재 건설은 성훈이 제시한 원가의 세 배로 몰딩을 판매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압둘은 마음에 든다고 사갔으니, 딱히 바가지라고 하기도 애매하리라.

성훈이 인사를 하다가 다급하게 뛰어갔다.

“그럼 이왕 오셨으니까, 설명회를 최대한 빛내주고 가세요. 어이! 거기!”

돌아서는 곽 이사의 얼굴에 웃음이 만연했다.

‘크크크. 떼를 쓰며 따라온 보람이 있었다니까. 이렇게 또 한 건 올렸잖아.’

***

양 이사가 강단으로 올라갔다.

“안녕하십니까? 현재 건설의 기획 전반을 총괄하는 양재형 이사입니다.”

환영의 박수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모두들 귀를 쫑긋 세웠다.

“사실 이곳 U대학은 창립자이신 왕 회장님부터 시작해서 현재 그룹과는 유서 깊은 인연이 많습니다.”

양 이사의 시선이 군중들을 훑었다.

“그리고 다들 아시겠지만, 작년의 경우에는 이곳 건축학과에서 만든 공모전 작품으로 직접 건물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울산에서 최초로 50층짜리 건물을 완공했지요.”

한 학생이 손을 들며 물었다.

“혹시 스타타워 말씀하시는 겁니까?”

양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순식간에 체육관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그게 우리 학교 학생 작품이라고?”

“몰랐냐? 작년 말에 신문에서 엄청나게 때렸었잖아.”

“그래? 난 이번 학기에 복학해서 몰랐지.”

“그 기사 덕에 현재 건설이 인지도 삼 등이었는데, 업계 탑으로 올라갔잖아.”

양 이사가 말을 이었다.

“네. 맞습니다. 울산 신시가지에 세워진 스타타워가 그 건물이죠. 저기 앉아 있는 김성훈 학생회장 덕분에 우리는 울산에 기념비적인 건축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시선이 성훈에게 몰렸다.

시기, 질투,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

수많은 감정이 성훈을 향했다.

“매번 회의 때마다 민수만 나와서, 회장은 핫바지인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가 보네.”

다른 학생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게. 난 민수가 학생회장인 줄 알았어. 사실은 이번처럼 민수가 다 한 거 아냐? 자기는 뒤에서 거드름이나 피우고?”

수많은 사람이 웅성거렸지만, 희한하게 욕하는 소리는 잘 들리는 법이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것들이 어디서? 뒷담화를……. 제 놈들 취직시켜 줄라고 현재까지 끌어들였더니.”

내가 지금의 결과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이들은 모른다.

언감생심 질투 따위가 어울리기나 할까?

‘노력하지 않은 자는 질투할 자격도 없어.’

민수가 옆에서 쿡쿡 찔렀다.

“형. 얼굴 펴세요. 다 티 나요.”

“저 자식들 말하는 거 봐라.”

“부러워서 그러는 거잖아요. 뻔히 알면서. 일할 때는 욕먹는 거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 왜 그래요?”

‘그건 내가 각오하고 먹는 거고, 지금은 다르잖아.’

내 얼굴은 점점 더 굳어갔다.

‘두고 보자. 이놈들. 줄 때는 주더라도 절대로 쉽게는 안준다.’

그 사이, 양 이사의 말이 이어졌다.

“저희는 거기서 U대학 학생들의 어마어마한 발전 가능성을 봤습니다.”

“좋은 선례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또 어떤 반향을 일으킬 것인지, 현재 건설인들의 관심이 이 박람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에 약간의 후원으로 여러분들의 사기를 높이고자 합니다.”

내가 기획했던 내용들이 흘러나왔다.

이미 각 과에 팩스를 발송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그 내용이 현재 건설 이사의 입에서 지금 나오는 것이었다.

“박람회에 입상할 경우, 동상일 때는 현재건설 입사 지원 시 1%의 가산점을 드립니다.”

또 다시 체육관이 술렁거렸다.

드디어 듣고 싶은 말이 나오는 것이다.

“와! 1%래. 대박이다.”

그 1%에 당락이 결정 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으니, 그것은 보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용히 해 봐. 동상일 때라잖아. 아직 덜 나왔어.”

“그럼 더 큰 상을 받으면, 가산점 비율이 더 높다는 이야기잖아! 진짜 대박인데?”

양 이사의 말이 이어졌다.

“은상일 때는 2%, 금상일 때는 3%, 그리고 대상 수상 시에는 5%의 가산점이 주어질 것입니다.”

절로 박수가 흘러나왔다.

다른 학교가 아닌, 오로지 U대학에만 주어지는 가산점. 그것만으로도 학생들을 흥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거기서도 공로에 차등을 두어, 더 많은 참여를 한 학우에게는 또 다른 특전을 드릴 예정입니다.”

군중들 중 하나가 물었다.

“이사님. 특전이 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그건.”

그의 발언을 제지하며, 강단으로 올라갔다.

“양 이사님. 잠시 쉬었다가 하시죠?”

“응? 왜? 아직 얘기 안 끝…….”

얼른 내려가라고 눈치를 주고는, 마이크를 이어 받았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내려오셔서 많이 피곤하실 겁니다. 특전에 대한 내용은 십 분간 휴식 후 다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성훈이 쉬려는 양 이사를 붙잡았다.

“특전 내용 변경 가능하죠?”

“왜? 가산점 10%가 적어서? 이 정도면 시험만 치면 붙는 거라고.”

양 이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래도 시험을 쳐야 하는 거잖아요. 같은 결과라도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건 다르다고요.’

성훈이 빙긋이 웃자, 양 이사가 물었다.

“어떻게? 예를 들면?”

성훈의 눈가에 장난기가 어렸다.

“학생회장의 추천을 받은 사람은 현재 건설에 바로 입사가 가능하다거나.”

“시험을 안 치고 어떻게 입사하려고.”

그럼 낙하산은 왜 있어?

“그것 말고도 방법은 많잖아요. 이사쯤 되면요.”

“흠. 이사 추천이라…….”

“하지만 욕먹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실력 확실한 놈으로만 고를 거니까.”

“흐흐. 그 고르는 걸 네 녀석이 하겠다?”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기 있는 학생들이 몽땅 네 손가락 하나로 움직이겠네?”

“뭐. 그런 거죠.”

성훈이 눈썹을 으쓱하며 웃었다.

양 이사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날강도 같은 놈이 있나? 현재를 등에 업고 학교를 좌지우지 하겠다는 거네.”

‘그리고 네가 선택한 녀석들은 우리 현재에 들어와서도 네 손발이 되겠군.’

“현재는 인재를 얻어서 좋고, 저는 일을 편하게 하니까 좋죠.”

‘이거야 원. 할 수밖에 없잖아.’

양 이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나한테 거부권은 있는 거냐?”

“네. 당연히 있으시죠.”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데?”

“뭐 어쩌겠어요. 더 마음에 드는 회사로 추천해야죠.”

장난으로 던진 돌이 쓰나미로 돌아왔다.

양 이사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그건 미처 생각을 못했군. 그럼 이 녀석도 손발이 있는 곳으로 갈 거 아냐?’

물론 양 이사 자신과의 약속도 있기는 했지만, 자신 같은 이사를 다른 회사에 만들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고작 일 년이었다고. 이 녀석이 나타난 지가. 그리고 그 사이에 수많은 일이 있었지.’

말이 제안이지, 반 협박이구만.

양 이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훈아. 설마 다른 곳에도 인맥이 있었어?”

“왜 없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물론 지금은 없지. 하지만 앞으로 만들 수는 있거든요?’

일 년 전 이야기지만, 곽 이사가 설계도를 사간 다음, 한 교수가 이런 말을 했었지.

‘다른 건설사들이 나한테 연락이 왔었다.’

‘그런데 왜 말씀 안하셨어요?’

그때 한 교수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었지.

‘네 성격에 경매 붙일까봐 무서워서 못했다.’

‘당연히 경매를 붙여야죠. 가치가 더 올라갈 텐데.’

‘하지만 낙찰을 못 받은 회사하고는 척을 질 거 아니냐? 다른 회사가 받는다면, 지금까지 현재하고의 관계가 물거품이 될 것이고. 물론 네가 그런 걸 신경 쓸 놈은 아니지만, 현재가 되면 앞으로는 현재 건설하고 밖에 할 수 없잖아.’

한 교수는 내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을 경계해서 일부러 말해 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때는 아쉬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한 교수의 말이 맞았다.

고작 몇 억 때문에 미래의 폭을 좁힐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한 교수는 이 말을 덧붙였다.

‘현재 건설하고 엮이면서 절대로 꿇리지 마라. 여차하면 다른 선택지도 많으니까. 나 아직 미국 쪽에 인맥 빵빵해!’

결국은 기, 승, 전, 자기 자랑이었지만.

‘지 꼴리는 대로 하는 이놈 성격에…….’

그럼에도 양 이사는 속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다른 곳에서 콜이 안 왔을 리가 없어.’

당장 현재 사장만 해도, 성훈에게 눈독을 들이지 않던가?

성훈의 손을 붙잡았다.

“에이. 이 사람아. 이왕이면 우리 현재로 보내야지. 다른 곳으로 보내면 섭섭하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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