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12화
거래(去來)(01)
전지혁은 상쾌한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이름을 날리며, 급성장을 하고 있는 삼일로펌이 그의 직장이었고, 오늘이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좀 더 미국에서 법 실무를 익히기를 원했지만, 그는 빨리 한국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 싶었고, 그는 망설임 없이 삼일로펌을 선택했다.
회사 건물의 화장실에서 전면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고쳐 맸다.
웃는 얼굴도 연습했다.
“직원들에게 첫인상을 잘 보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e�e, 오늘이 마이 퍼펙라이프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송곳니 사이에 낀 토스트를 혀로 밀어내며, 머리를 빗었다.
사무실로 들어서며, 기분 좋게 인사했다.
“굿모닝. 에브리원!”
안내 창구의 여직원들도 허리 숙여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전 변호사님.”
손들어 응대하며,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
사무장이 책상 위에 서류철을 놓았다.
“전 변호사님. 이 파일 좀 보시겠습니까?”
거기에는 의뢰자의 인적사항과 소송을 제기할 곳의 계약서 사본 등이 들어 있었다.
그는 정리된 서류들을 하나하나 넘겼다.
“의뢰자 김성훈. 올해 스물다섯.”
사무장에게 힐끔 눈치를 줬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애가 의뢰를 했네요? 그리고 계약 파기 안건이라.”
“네, 보신 대로입니다.”
“그리고 상대 회사가 아메리카 스마트 시스템? 이건 뭐 하는 회사입니까?”
전지혁은 못내 탐탁지 않았다.
티를 냈음에도 사무장은 반응이 없었다.
‘미국에서의 경력이 있는데,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 사업체도 아니고, 개인이 와서 이런 의뢰를 해? 삼일이 그런 싸구려가 아닌데.’
사무장이 그를 달래며 말했다.
“그건 이제부터 직접 알아보셔야지요. 미국에 계시던 전 변호사님께서 모를 정도면, 그다지 큰 회사는 아닐 겁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입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조무래기들은 상대한 적이 없다고요. 스물다섯이라니. 그리고 서울도 아니고, 울산이네요? 그건 어디 붙어 있는 동네예요?”
“그건 전 변호사님께서 미국에서 오래 사시다 보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사무장님. 제 첫 번째 사건이라고요.”
나이 지긋한 아버지뻘의 사무장임에도 그는 거리낌이 없었다.
사무장 또한, 그의 태도를 탓하지 않았다.
“가볍게 워밍업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거 말고, 좀 더 큰 일거리를 주세요. 이걸로 수임료를 얼마나 받겠어요?”
“대표님께서 개인의 국제 소송 의뢰는 전 변호사님께 전담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성에 차지 않으시더라도 맡으십시오. 능력을 보여드리면 다음에는 더 큰 일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대표님께서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실망을 하는데, 사무장이 미소를 지었다.
“이 건을 잘 해결하시면, 이번에 신설되는 현재건설 전담팀에 배치되실 겁니다. 원래 그쪽을 맡기려고 하셨으니까요.”
전지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말입니까?”
“원래 전 변호사님 전공이 그쪽이잖습니까?”
“그럼요. Of course”
“손님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여보낼까요?”
“쩝, 알았어요. 들여보내세요.”
‘시험이라 이거지. 그럼 통과해야지.’
귀국 후 변호사로서의 첫 일이었다.
신고식으로 멋있는 사건을 맡아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기대와는 어긋났다.
‘그래도 대표 당부니까, 해줘야지. 혹시 알아? 국제 소송이라면 대기업 자식일지도.’
그의 첫 고객은 기대를 무참히 망가뜨렸다.
소파를 권하면서 눈치채지 못하게 고객의 위아래를 훑었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만 봐도, 그의 재력이 나오는 거든. 내가 사람 보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
그런데 이게 웬걸!
슈트 차림도 아니고, 캐주얼 복장이었다.
상의는 깔끔한 체크무늬 남방, 아래는 상표 모를 각선 면바지, 신발은 니케를 신었네.
‘동네 복덕방을 잘못 찾아온 거 아니야?’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이건 격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잖아!’
기대를 한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수임하지 않으면 될 일.
‘맥 빠지네. 적당히 구슬려서 돌려보내야지.’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
‘허 참.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성훈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변호사님. 착수금이 이억이라고요?”
“네, 이쪽 시세를 잘 모르시니, 놀라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시세? 이 사람이 지금 물건 파나?’
말투는 공손한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의 차분한 말이 이어졌다.
“그 외에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훈의 입가로 작은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이억 없으면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거네. 어쩐지! 처음 들어올 때부터 위아래를 훑어보더라니.’
그의 말은 정당하다.
가격이 정해진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고, 의뢰받은 일을 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말하는 것이니.
금액이 맞지 않으면 안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좀 나빴다.
성훈이 말했다.
“음. 생각했던 거 하고 좀 다르네요.”
변호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좀 놀라시더라고요. 얼마 정도를 생각하셨는지?”
그가 성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의 눈동자를 직시하며 말했다.
“대략 삼천. 많으면 오천을 생각했거든요.”
‘엇, 이것 봐라? 초보가 아니잖아?’
변호사는 약간 긴장했지만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눈앞의 의뢰자가 오백만 원 정도의 터무니없는 금액을 말했다면, 우유나 더 먹고 오라고 비웃으며 돌려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음, 고객님. 하지만 의뢰하신 건은 국제적 소송이라서 그런 비용으로는 좀 어렵습니다.”
“그걸 감안해서 그 정도를 말한 겁니다.”
“네?”
“변호사님 연봉 대충 일억쯤 되실 거고, 경력 좀 되신다고 해도, 이억 정도 되겠죠. 하지만 나이가 좀 젊으시네요.”
전지혁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 새끼. 뭐지? 점쟁인가?’
지금 그의 연봉이 일억이었다. 그것도 미국의 경력을 쳐서 그렇게 받기로 계약을 했다.
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쉬는 날 빼고 일 년을 나누면 대충 일당 50만 원. 며칠을 이 건으로 움직이실지 모르지만, 10일 정도 잡으면 500만 원.”
어린 녀석이 막힘없이 실비정산을 해댄다.
저도 모르게 전지혁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국에도 몇 번 갔다 오셔야겠죠. 그럼 왕복 비행기 값 300만 원, 3번 왔다 갔다 하면 1,000만 원이네요.”
“하지만 그건…….”
“설마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시려고요?”
“학생…… 아니, 고객님.”
“아무리 자기 돈 아니라고 해도 그렇게 쓰면 천벌 받죠. 안 그래요? 변호사님?”
속내를 들킨 듯 뒷골이 뜨끔해졌다.
“그, 그야 당연하죠.”
“그리고 호텔에서 묵는 숙박비 외에 잡다한 교통비 500만 원 정도 생각했습니다.”
나름 논리가 있는 말이었다.
성훈이 말을 이었다.
“뭐, 거기다가 혼자 움직이시는 게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 인건비나, 회사에서 떼어가는 몫, 얼마 해서 많이 나오면 5,000만 원 생각했거든요.”
전지혁은 자꾸 주름이 생기려는 미간을 펴며, 입술에 웃음을 머금었다.
아침에 그렇게 연습했던 미소를.
당황한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 새끼. 이거 뭐지? 진짜?’
하나 논리에 밀려서는 체면이 안 서는 법.
한국의 새파란 대학생에게 말발로 밀리면 도대체 변호사를 어떻게 해먹는다는 말인가?
고객에게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하지만 고객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 세 번 가는 걸 계산하셨지만, 더 갈 수도 있는 것이고…….”
버릇없는 젊은 녀석이 그의 말을 툭 잘랐다.
‘싸가지 없는 놈.’
“사실 세 번도 많이 잡은 겁니다. 왔다 갔다 하는 걸로 이틀을 까먹는데, 이 정도 일이라면 한 번으로 끝내야죠.”
“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죠.”
성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변호사님, 그 이상 가면, ‘나 능력 없다’는 말밖에 안 되는 겁니다. 고객의 돈을 이틀 일당 100만 원에 비행기 값 300, 그 외 숙박비와 자질구레한 교통비 100, 총 500을 공중에서 날린 거니까요.”
전지혁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이미 가격을 다시 부르기에는 늦었고, 이 자식을 어떻게 쫓아내지?’
***
“곽 이사님, 제가 먼저 찾아뵀어야 했는데.”
삼일로펌의 대표 이사, 전수현이 곽 이사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전 대표님. 바쁘신 분을 오라 가라 할 수 있나요? 제가 오는 것이 맞지요.”
전 대표가 안내를 자청했다.
“이사님, 사무실로 가시면서 말씀하시죠.”
“그럽시다.”
걸음을 옮기며, 곽 이사에게 말을 이었다.
“곽 이사님. 이번 중동 건은 저희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뭐 그런 게 도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저 알리 왕자에게 한마디 한 것뿐인데요.”
곽 이사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그때만 생각하면 얼마나 등골이 서늘한지. 알리 왕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떻게 승소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허허허. 이거 참.”
“왕자님과 많이 친하신 모양입니다.”
“그와 아주 친한 분을 제가 알아서 말입니다. 오히려 알리 왕자는 도움을 받았다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그 호텔 건도 어렵지 않게 수주를 하셨겠지요.”
“그때는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아무리 봐도 겸손한 사람이었다.
‘듣던 말과는 많이 다르네. 여우같은 인물이라 조심하라던데, 이렇게 겸손할 줄이야.’
승강기에 단둘이 남자, 곽 이사가 말문을 열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그분이 조만간 로펌을 방문하실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여기는 어쩐 일로.”
“혹시 아는 법률사무소가 있느냐고 물으시기에, 제가 추천해 드렸습니다.”
전 대표의 허리가 꾸벅 숙여졌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곽 이사가 높여 부르는 인물이라면 보통 인물은 아닐 터!
“연세는 어찌 되시는지.”
“아직 한창 나이시지요.”
“아! 그럼?”
곽 이사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그냥 그분이 의뢰하신 일만 잘해주시면 됩니다. 나중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의뢰를 맡기실 테니까. 이번 일이 아마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그런데 언제 오시는지?”
“이번 주에 오신다고 했으니, 오늘 내일 정도가 아닐까요?”
“아! 특별히 잘 응대하겠습니다.”
미소 짓는 그에게 곽 이사가 귓속말을 했다.
“그분이 계약 파기 건을 말씀하시던데, 어떤 내용인지 저한테만 살짝 귀띔을…….”
“엇! 이사님. 그건 비밀 엄수…….”
“어허, 대표님. 우리 사이에.”
전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갈 거(去), 올 래(來).
거래(去來)란 애초에 그런 것이 아니던가?
미래와 현재의 대박 고객을 위해서,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하는 것이 마땅했다.
로비에서 사무장의 인사를 받으며 물었다.
“사무장. 전 변은 바쁜가?”
“지금 상담 중이신데, 곧 끝날 것 같습니다.”
“오! 벌써 첫 번째 의뢰를 받은 건가?”
“그렇긴 합니다만. 캔슬이 될 것 같습니다.”
“왜?”
“국제 소송 건이라 그에게 돌리기는 했지만, 의뢰인이 학생입니다. 성에 차겠습니까?”
대표가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가? 항상 큰 의뢰만 들어오는 건 아니지. 그 녀석도 처음부터 큰 걸 맡으면 부담이 될 테고.”
대표가 곽 이사를 향해 말했다.
“곽 이사님, 새로 들어온 신입인데, 이번에 꾸릴 현재 전담팀에 투입될 겁니다.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어쩐 일일까?
곽 이사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별로 기분이 내키지 않는 건가?’
“아! 내키지 않으시면…….”
“괜찮습니다.”
“미국의 로펌에서 근무한 경험도 있고, 꽤나 쓸 만한 재원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안면을 익혀둬야지요.”
“혹여 불편하신 거라도.”
“아닙니다. 들어가시죠.”
곽 이사와 나란히 걸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사님, 사실 제 아들이라서 아니라…….”
그러나 그의 말은 지나가던 여직원들의 수다에 묻혀 버렸다.
“아까 면바지 입고 온 학생 봤어?”
“응. 어떻게 센스도 없이, 이런 데를 그런 차림으로 올 생각을 했지?”
“그런데 입은 것 같지 않게 엄청 부잔가 봐!”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아, 글쎄. 주차장에서 봤거든. 노란색 카마로에서 내리더라니까.”
“정말? 정말? 나도 가서 볼래.”
곽 이사의 인상이 콱 찌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