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07화
3학년 2학기(15)
대목장을 대신할 사람을 둘이나 구한 경주시장은 최 옹에게 흥미를 잃었고, 그는 시청으로 돌아갔다.
울산시장은 최 옹에게 협업하기로 약속을 받았고, 우리는 울산으로 돌아왔다.
그의 첫 번째 일은 나의 박람회 건이 될 것이다.
다음 날 시장과 경주시장 건으로 작전을 짜고 있는데, 홍 기자가 찾아왔다.
내게 정보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성훈 씨, 시장에 대해서 조사를 해봤는데, 구체적인 정보를 찾기가 어렵네요.”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감이 안 잡히겠지.
그들은 취재를 할 뿐, 강제적으로 증거를 찾을 권한이 없기 때문이리라.
“일단 흔드세요. 의혹이 있는 부분을.”
“그것도 범위가 너무 넓어서 쉽지 않아요.”
그의 말에 지난 삶의 기억이 떠올랐다.
‘거기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게 좀 있지.’
“아마도 그들은 유적지를 조사하면서 인건비 내역을 조작했을 겁니다.”
몇 년 전이라면 전산화가 완벽히 자리 잡지 못했을 때이니, 수기로 인건비 내역을 작성했을 것이다.
매일 바뀌는 사람들의 숫자를 임의로 조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었으리라.
“그럼 경찰에서는 왜 증거를 찾지 못했을까요?”
마땅히 나올 수 있는 합당한 질문이었다.
“뜨내기 일용잡부를 고용했다고 하면 정확한 조사가 어려웠겠지요.”
그 조사를 맡았던 경찰이 무능했든지, 혹은 뒤를 봐줬든지, 어쨌거나 그들은 자기 일에 충실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민의 결과가 두통이었을까?
홍 기자가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밤새 생각을 해봤지만, 경주시장은 파고들기가 너무 어려워요.”
“홍 기자님, 공략 상대를 좀 바꾸는 건 어떨까요?”
“네? 상대를 바꾸다니요?”
“문연 부소장을 말하는 겁니다.”
계속 경청하던 시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성훈아, 왜 시장이 아니라, 그 수하를 캐라는 거냐? 치려면 대가리를 팍 쳐 내야지.”
호탕한 그를 보자 웃음이 났다.
하지만 홍 기자 또한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머리가 안 되면 발바닥이라도 때려라.’
송강호가 그랬었지.
‘이 손! 이 손은 니 거 아니야? 엉? 씨발 놈아.’
둘을 보며 말을 이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두 가지나 있어?”
“네, 첫 번째는 시장을 바로 공략할 경우, 그건 비리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정치적 공격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사가 들어가도 표적수사라며 삐딱한 시선으로 보겠죠.”
“흠, 그런가?”
의문을 갖는 시장 대신 홍 기자에게 물었다.
“이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똑같은 종자들이 서로 씹어 먹겠다고 아귀다툼을 하는구나. 라고요.”
“확실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요.”
“누가 되었든 간에 홍 기자님의 배후가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혹은 사주를 받았던지.”
“그건 과한 해석입니다. 모든 기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존심이 상한 듯 홍 기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과한 해석이나 과도한 염려일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불필요한 의심을 살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홍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겠군요. 그럼 두 번째 이유는?”
“그는 시장의 비호 아래 문연의 부소장이 되었습니다. 곧 소장이 될 예정이구요.”
홍 기자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는 건드리기 쉽습니다. 아무도 정치적 책략이라 의심하지 않을 뿐 더러, 그리 중요한 인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몸통을 끌어내기 전에 꼬리를 먼저 치겠다. 그거냐?”
시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사람이 실제로 전통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고 그 부분에서의 실적이 뚜렷하다면 이야기를 풀어가기가 좀 어렵겠지만.”
홍 기자가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음,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전형적인 줄타기로 승진한 인물이니까요.”
“그렇다면 그런 인물이 어떻게 문연의 실세가 될 수 있었을까 하면서 의혹을 제기하는 거죠.”
시장이 그들을 비웃었다.
“능력도 없는 놈이 그 자리에 올랐으니, 당연히 의문이 생기겠군. 그것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그 자리에 앉혔으니 말이야.”
“하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뭔데?”
“지금까지 제가 말한 건, 현재로는 모두 의혹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아구가 딱딱 맞는데?”
‘시장님은 좀 가만히 계세요. 홍 기자한테 말하고 있는데.’
내 말을 듣는 홍기자의 표정이 어두웠다.
시장은 그걸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 의혹을 끄집어내서 확신으로 만드는 게 기자들이 할 일이잖아. 안 그러냐? 성훈아?”
“성훈이, 연구 좀 했는데? 하하.”
그는 경주시장의 강제 퇴임이 머지않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제가 어제 시장을 주인공으로 소설 한 편을 써봤거든요. 권력의 흥망성쇠를 주제로.’
그럴 정도로 가치 있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미운 놈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시간은 아깝지 않았다.
놔두면 두고두고 내 앞길을 막을 놈인데, 반드시 밟고 지나가야 하지 않겠어?
“성훈아. 이렇게 공격이 들어가면 경주시장은 정신 못 차리겠는데?”
“그러라고 하는 겁니다. 자신을 표적으로 한 게 아니니까, 좀 더 반응이 느리겠죠. 그리고 그 수하 정도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는 생각인지도 모르고.”
적어도 경주에서는 그를 함부로 건드릴 사람이 없으리라.
“그런데도 제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해온다면 어쩔 거냐?”
‘누구에게 반격을 한다는 거지?’
신문사? 울산시장?
그들에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둘 다 내게는 꼬리일 뿐이었다.
‘누가 생각이나 하겠어?’
겨우 약관을 넘은 애송이가 주모자란 걸 말이다.
경주시장에게 내가 남긴 이미지는 곤란할 때 쓸 만한 장인 두 명을 소개시켜 준 착한 젊은이였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시장과 기자가 있다.
다른 인맥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렇게까지 공들일 가치가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이 둘만으로도 차고 넘치지.’
홍 기자는 찌르고, 시장은 막아내고.
시장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때는 시장님이 알아서 막아주셔야죠.”
“정말이야?”
대책이 없다는 말에 그가 여우 눈을 흘기더니, 내 얼굴에 맺힌 미소를 보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허허허. 그러지. 나만 믿어.”
시장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쳐도, 내가 직접 나서기는 곤란한데.”
시장에게 물었다.
“저번 경주시장 선거 때, 낙선한 상대편 후보가 시장님의 지인이라면서요?”
“그건 어떻게 알았나?”
“어제 잠시 시장님 보좌관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잖아요. 그때 들었습니다.”
“그랬지. 그 친구가 낙선하고 나서 많이 억울해했었지.”
근소한 차이로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는 판국이었는데, 경주시장이 대인배 코스프레를 하면서 애매하던 표심을 끌어갔으니, 억울했을 만도 했겠지.
“그분께 억울함을 풀 기회를 드리는 건 어때요?”
시장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럴까?”
“하지만 일부러 설득하려고 하지는 마세요.”
군대로 치면 돌격대장인데, 떠밀려 해서야 의미가 없었다.
“아냐. 설득할 필요도 없어. 이번에도 시장 선거에 도전한다고 했었거든.”
“좋군요.”
아쉬운 패배였고 억울함을 느꼈었던 만큼 누구보다 집요하게 약점을 파고들 수 있으리라.
‘지시하지 않아도 능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겠지.’
자기 이야기가 끝나자 홍 기자의 얼굴이 보였던 모양이다.
“홍 기자, 자네 안색이 왜 이리 안 좋아?”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말해봐!”
시장이 홍기자의 대답을 재촉했다.
그에게 말했다.
“내키지 않는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안은 많았으니까.
“끙.”
“그래도 하시겠다면 불쾌한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성훈 씨는 시장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문연 부소장을 공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세의 배경에 경주시장이 있다’라고 폭로한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게 왜? 모르고 있었나?
지금까지 내 일에 잘 협조를 해왔는데, 살짝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이랄까?
“네, 맞습니다.”
“우리 신문은 음모나 짜는 찌라시가 아닙니다.”
화내지는 않았지만 진지한 모습에서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허, 누가 찌라시라고 했어? 진정해. 홍 기자.”
시장이 다급히 그를 달랬지만 이미 늦었다.
피가 끓는 열혈기자였던가?
한편으로는 코웃음이 나왔다.
‘찌라시가 아니면서 한 교수를 그렇게 궁지로 몰아넣었단 말이야?’
비록 홍 기자 자신이 저질렀던 일은 아니겠지만 울산신문이 했던 일은 찌라시, 그 이하였다.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결과를 보고 판단 내릴 수는 있지.’
찌라시 기자는 아닐지 몰라도, 신문사는 찌라시가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정말 사명감이 있는 기자라면 잘 회유하여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좋지.’
그러려면 찜찜함을 남겨서는 안 될 것이다.
아! 김성훈. 바쁘다 바빠.
이거 달래랴, 저거 챙기랴.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홍 기자님,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저는 홍 기자님께 찌라시 기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겠지요.”
씁쓸해하는 표정을 보니 내가 자신을 설득하려 한다고 모양이었다. 흥!
“저는 경주시장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당신과 당신이 속한 회사를 이용하려고 합니다.”
“당연…… 어, 네.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에게 거짓을 진실이라 포장하라고 했습니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죠.”
“그럼 제가 제게 유리하도록 말을 바꿔 달라고 했습니까?”
“아니죠.”
“저는 오히려 당신이 사명감을 가지고, 이 일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기자로서의 사명감이요.”
그가 속이 상하는 것은 나에게 이용당하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이제 서른 약간 넘었으려나?
아직은 피가 끓는 청춘인 모양이었다.
그에게 달래듯 말을 이었다.
“그저 당신이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 같기에 제 생각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의 눈이 잠깐 꿈틀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제가 홍 기자님께 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사실 그대로를 전하는 것. 의혹을 의혹 그대로 전하는 것. 당신의 주관과 성향을 배제하고. 오히려 그게 더 어려울 겁니다.”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비방을 받을 겁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거 아니냐고? 나중에 시장을 언급할 때는 더 어려울 거구요.”
뻔히 보이는 결과에 그의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당신 의견 말고, 의혹만 제기하라고. 그 의혹에 대한 해명과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시민들이 될 겁니다.”
사건에 대해 나온 공식적인 결론, 그것이 과연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사건에 대한 결론은 사람들 각자가 내리는 것은 아닐까?
같은 사건이라 할지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 처한 환경에 따라, 벌어진 시대에 따라, 각자가 내리는 결론은 저마다 다르겠지.
“제가 당신의 약점을 잡고, 당신에게 기자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요한다고 생각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만.”
물론 지금의 상황은 약간 다르지.
이미 마음속에서 ‘경주시장. 당신은 아웃이야!’라고 결론 내리고 있었으니까.
그건 내가 미래를 알기 때문이지, 그 사람 자체가 싫어서는 절대 아니다.
홍 기자에게 말했다.
“이용 좀 합시다. 저는 경주시장이 보기 싫고, 당신은 진실을 알고 싶고. 뭐 어떻습니까. 당신도 저도 원하는 걸 얻는데.”
내뱉는 내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그러시죠.”
“그래, 홍 기자. 너무 많이 생각했어. 성훈이 이놈이 사람 약점이나 잡고 그러는 놈 아니야.”
시장이 너스레를 떨며 우리 둘을 화해시켰다.
처음에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 관계가 왜 이렇게 된 거냐고? 당신네 신문사의 논문 기사 때문이 아니냐고?
그리고 내가 손 내밀었냐고? 당신이 먼저 화해를 하자고 손 내밀지 않았냐고?
하지만 그의 열정 앞에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한번 잘해보시죠, 홍 기자님.”
열혈 홍 기자가 내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