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06화
3학년 2학기(14)
“홍 기자님, 알아봤어요?”
경주시장의 눈치를 보며 밖으로 향했다.
홍 기자는 약간 흥분된 목소리였다.
-이야! 성훈 씨. 이거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네요. 이런 데 있으니까 찾기가 어려웠지.
“어딘 데 그러십니까?”
-그 사람. 지금 경주 문화원 부원장으로 있습니다. 그리고 곧 원장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문화원의 실세라고 하더군요.
“네? 쫓겨난 게 아니라, 거기 실세라고요?”
경주시장이 아무리 액면 그대로 대인배라고 해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자신의 뒤통수를 친 사람을,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승진을 시켰다고?
-네, 아마 내년에 인사이동 때, 원장으로 승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쫓겨났을 거라 생각해서 거기는 생각도 안 했는데.
“냄새가 나네요.”
-네, 그것도 아주 많이.
“캐볼 수 있겠죠?”
-가능은 하지만 잠깐의 이슈가 될 뿐이죠. 증명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그럼 아직은 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네.’
난 경주 문화원에서 벌어진 비리이니, 그곳을 파고들 생각이었는데, 거기에 그 사람이 있었다고? 운이 좋은 건가?
아니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충분히 사람들의 이목도 사라졌다고 믿었겠지.
‘등잔불 아래에서 암 덩어리를 키우고 있군.’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를 캐내면 그와 경주시장, 그리고 관련된 모든 인물을 감자 캐듯이 줄줄이 엮을 수 있을 테니까.
“일단 캐보세요.”
-하지만 경주 문화원에 대놓고 들어가는 건 어려울 겁니다.
“제 이름 대고 들어가시면 될 겁니다.”
-네?
“아까 경주시장하고 딜을 걸었거든요.”
-어떻게?
“자세한 건 보내주신 박 기자님에게 물어보시고, 이 일은 홍 기자님이 직접 하십시오.”
‘보내준 박 기자를 봐서는……. 영.’
울산과 경주가 각자 독립적인 지방단체라고 해도, 기자가 못 캐고 들 것은 없다.
특종이라 생각되면 학연 지연 상관없이 파고드는 사람들이니까.
시장의 허락도 있겠다, 그리고 내년에 문화원장이 되는 것을 축하하면서 접근을 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지금은 알려지지 않은, 미래에 가서야 알게 되는 정보도 넌지시 던지면서.
“시장과 그 사람은 보통 관계가 아닐 겁니다. 아니, 오히려 아주 친밀한 관계였을 겁니다.”
그는 침묵으로 긍정을 표했다.
“그리고 예전에 선거 때 있었던 트러블도 짜고 쳤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걸 중점적으로 파고드세요. 아셨죠?”
그러나 그는 이 일의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금 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힘으로 진상을 밝힐 수 있을까요?
꼬리를 잡아도 굴 밖으로 당겨낼 힘이 없다면 그저 묻혀 버릴 뿐이다.
권력자에게는 미운 털이 박힐 것이고.
“일단 진실을 캐내시면 그다음엔 제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지금 내 옆에는 또 한 명의 시장이 있다.
‘마침 경주시장에게 이를 갈고 있네.’
소스를 던져주면 알아서 요리할 수 있는 능력도 있지.
통화를 끝내고 들어갔을 때.
시장이 경주시장이 대목장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성훈아, 이렇게 보내는 거냐?”
시장은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눈빛이다.
정작 약은 올렸지만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지 못한 것이 아쉬운 듯, 이를 갈았다.
오히려 희희낙락한 모습의 경주시장을 보니,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모양이다.
“일단은 저 사람이 대목장을 노리지 않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죠.”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저러고 나가는 거냐?”
“대목장 말고, 다른 사람들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아! 복장 터져죽겠네. 저놈의 자식 말하는 거 봤지? 주둥이를 뭉개놨어야 되는 건데.”
‘이제부터 시작인데, 그렇게 흥분하셔서 어떡합니까? 시장님.’
홍 기자에게 들은 정보를 시장에게 말했다.
시장이 경주시장을 노려보며 눈을 부릅떴다.
“뭐?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그놈을, 저 인간이 문화원 부원장으로 박아놨다고?”
“네, 어떻게 생각하세요?”
시장의 얼굴에 웃음이 번져 나갔다.
“성훈아. 딱 답 나오는 걸 생각하고 자시고가 어디 있냐?”
드디어 약점을 잡은 듯 그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 인간이 지금?’
분명히 약점을 잡았으니, 그걸로 물어뜯으려고 하겠지.
아직 뜸도 안 든 밥으로 무슨 요리를 하겠다고.
‘성질 급하기는, 변소에 들어가기도 전에 허리춤부터 풀 양반이네.’
그의 소매를 꽉 움켜잡았다.
“헛! 왜?”
“당장 경주시장이랑 2차전 시작하시게요?”
“당연하지!”
“무슨 근거로요?”
시장이 씨익 웃었다.
승리를 확신하는 웃음이었다.
“딱 보면 답 나오는데 무슨……. 저 인간이 뒤통수 친 놈을 좋아서 그 자리에 놔뒀겠어?”
내 대답을 바라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웃었다.
“뭔가 거래가 있었을 거 아니야? 안 그래?”
“그래서요? 시장님이 보기에는 확실한 증거일지 몰라도, 아직은 의혹일 뿐이라고요.”
“걱정 마. 그다음에는 내가 알아서 조지지. 꼬리를 끌어내다 보면 몸통이 드러나게 되어 있어!”
그는 둘의 거래가 있었음을 확신하는 눈치였다.
‘칫. 그러면 당신은 이기겠지.’
내가 원하는 것은 그의 승리가 아니었다.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게 목적이거든.’
또한 국민들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저 정치인들의 파워 게임이라 생각하겠지.’
그 와중에 전통 재건 사업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는 은폐될 것이다.
경주시장 말고도 수많은 정치인이 연루되어 있을 테니까.
당장에 눈앞의 시장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깨끗할 수 있을까?
그를 진정시켜야 했다.
“경주시장이라고, 아무런 백도 없이 그런 일을 했겠어요?”
“흥. 그래 봐야? 윗놈들에게 흙탕물이 튀겠다 싶으면, 저놈 먼저 잘라내겠지.”
‘지금 겨우 그 정도의 비중밖에 없는 인물이 나중에는 소도둑이 된다고요. 난 그게 싫은 거고.’
겨우 꼬리 하나 밟겠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시장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만약 시장님보다 더 강한 사람이 배경이라면요? 그리고 그 사람이 경주시장을 옹호한다면요?”
“에이, 설마?”
물론 지금 당장에 경주시장의 뒤에는 누가 있는지 모른다. 미래에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떠랴?
‘지금 당장 시장에게 경각심만 주면 된다고. 뻥 좀 치면 어때?’
수단이야 어떠하든 속아 넘어만 가면 장땡이지.
“…….”
입 다문 채 침묵하는 나를 보며 그가 눈썹을 오므렸다.
“정말이야?”
“저야…… 모르죠?”
의아해하는 시장에게 바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설명할 수는 없지만요.”
그가 두툼한 손으로 턱을 괴며 신음을 흘렸다.
‘시장이 나의 감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을까?’
지금 당장은 우리가 안다는 것을 감춰야 할 시기였다.
고민하는 시장에게 말했다.
“시장님, 죽일 거면 한 방에 급소를 찔러야죠. 어중간하면…….”
그의 눈가가 꿈틀했다.
“그래. 반격만 당할 뿐이지.”
시장이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잠시 열이 받아서 흥분했던 것 같군.”
“어떡할까요?”
빙긋이 웃으며 말하는 나를 보더니,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경주시장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물었다.
“복안이 있겠지? 저놈을 엿 먹일 수 있는.”
“글쎄요.”
시장이 장난스레 얼굴을 찌푸렸다.
‘이놈이. 있으면서 간 보는 거냐?’라는 의미이리라.
“제가 무슨 만능도 아니고.”
“에헤이, 있구만. 말해봐? 얼른.”
뻑 하면 내놓으래. 이 양반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그에게 말했다.
“그럼 이번에 신세 진 건 제하는 겁니다.”
“엥?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시장님도 저 인간 뒤통수 치고 싶으시잖아요. 싫으시면 말구요. 전 대목장만 데려가면 됩니다.”
“끙!”
당장도 경주시장 뒤통수를 날리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리는 것 뻔히 아는데, 고민하기는.
그래 봐야 결론은 정해져 있지.
짧은 고민 끝에 그가 말했다.
“좋아. 이번에는 양보하지. 뭔데?”
“아까 말씀하신 그거예요.”
“야, 성훈아. 그건 이미 결론 났다고. 허위 정보로 말이야.”
그건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사건의 본질보다는 상대 후보의 흑색선전으로 몰아붙이면서, 유야무야 넘어갔겠지.
“전 그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봤습니다.”
“어떻게?”
“실제로 둘 사이에 어떤 트러블이 있었다. 그런데 시장은 그걸 상대 후보의 흑색선전이라고 비방했고, 그 부하와는 뒤로 모종의 거래를 함으로써 허위 정보로 조작했다. 이렇게요.”
“음. 듣고 보니, 그럴듯하군. 하긴! 그 사건으로 약간 지지율은 상승했지만, 그게 결과를 좌우할 정도는 아니었거든.”
같은 시기에 선거가 이뤄졌었고, 옆 도시이니 그도 흥미롭게 지켜봤었던 모양이다.
지난 삶에서 본 신문기사가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런 의혹도 일부 존재했었다.
하지만 그때도 중요한 것은 그 둘의 처벌이었지, 둘 간의 갈등은 기사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왜냐고? 숭례문 복구 비용을 삥땅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사거리가 되었거든.’
나머지 소소한 문제들은 나와 봐야, 기사거리 축에도 못 끼는 거지.
“제가 초점을 맞추는 건, 그게 허위 정보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고, 거래로 인해 은폐되었을 가능성입니다.”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사건이었다니, 더더욱 의혹이 증폭되었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런 연극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
시장이 물었다.
“그럼 어디를 파 봐야 하는 거야?”
“선거 때 들고 나왔던 유적조사 비용에 대한 의혹이죠.”
“이미 경찰이 허위라고 발표를 했는데…….”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다시 조사를 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경찰도 싫어할 것이다.
‘자신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 시장도 그런 마찰이 싫은 거고.’
하지만 언제부터 국민들이 경찰을 신뢰했다고?
‘말단 형사들은 차라리 신뢰가 가지만, 윗대가리들은 아니라고!’
권력 계층끼리의 상부상조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시장님은 경찰을 한 번도 이용하신 적 없으세요?”
시장의 눈 밑이 꿈틀거렸다.
“흥. 이용하기는, 도움을 받은 거야. 말은 제대로 하라고.”
그거나 이거나, 눈 가리고 아웅이지.
시장도 결국은 똥파리거든.
그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가급적이면 도움을 받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담긴 의구심을 떨치기 위해서인지, 그가 호탕하게 소리쳤다.
“내가 짭새들한테 도움받을 일이 뭐가 있어? 안 그래? 지금도 충분히 당당하다고!”
그러나 그는 개심의 여지가 있는 똥파리였다.
그리고 이용가치도 있지.
‘가치가 없어졌는데도, 그때까지 똥파리 짓을 하고 있다면, 내가 책임지고 모가지를 날려주겠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알았어요.”
“그래서 방법은?”
“국회의원 중에 아시는 분 많으실 거 아니에요?”
“그럼 많지.”
그도 파벌에 속해 있겠지. 그리고 실세일 것이다.
“특검 하자고 하세요.”
“뭐? 특검을 하자고? 이딴 일에?”
“네, 특검! 필요하면 하는 거죠? 게다가 시장님과 저 사람은 파벌이 다르겠죠?”
당연한 이야기였다.
같은 파벌이었으면, 애초에 뒤통수를 칠 일도 없었을 테니.
“그건 그렇지.”
‘먹음직한 먹이 하나 던져줄 테니까, 잘들 한번 싸워 보시라고요.’
“명분은 뭐로 하고?”
그딴 건 만들기 나름이다.
“국민의 혈세가 엉뚱한 놈 아가리로 들어가는데, 명분 하나 못 만들겠어요?”
시장이 씨익 웃었다.
다시 말을 이었다.
“도대체 경찰들이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밀어붙이란 말이에요. 의혹을 들춰내자고.”
“크크큭.”
“어중간한 힘으로 밀어붙이면 어렵겠지만, 특검으로 끌고 가면 좀 다르지 않겠어요? 거기다가 대통령을 적당히 꼬신다면 충분히 가능하죠.”
“성훈이. 넌 승산이 있다고 보는 거지?”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주시장이 한 일은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분명한 사실이었고, 그리고 지금까지의 드러난 정황은 내게 확신을 주었다.
“그 물꼬는 제가 터 드릴게요.”
“어떻게?”
“울산 신문에 말해둔 게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렇단 말이지. 흐흐흐.”
시장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의 싸움에 끼어 들 생각이 없었다.
그저 먹잇감 하나를 던져놓을 뿐이다.
울산신문이 가져온 고깃덩이에 약간의 양념을 묻혀서 말이다.
미래의 지식을 첨가한, 향기로운 MSG를 듬뿍듬뿍 뿌려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