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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205화 (205/427)

건축의 신 205화

3학년 2학기(13)

‘저번에는 운 좋게 넘어 갔는지 몰라도,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거야.’

다시 안으로 들어갔더니, 시장이 경주 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외에 같이 온 건축가들의 기분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대목장을 모시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건만, 경주 시장이 와서 초를 치고 있으니, 그 마음이 좋을 리가 있으랴?

경주 시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경주를 떠나서, 여기 있는 문화유산들을 돌보지 않는 것은 대목장으로서의 직무유기가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나도 심기가 뒤틀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학력이 짧은 대목장이 그의 달변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금방일 것으로 보였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조간울산 김 기자? 왜지?’

수화기를 들었다.

-성훈 씨. 지금 대목장 댁에 있어요?

“네. 그런데요? 어쩐 일이세요?”

-아! 시장님이 오늘 대목장 어르신과 협업계약을 체결할 거라고 사진 한방 박아달라고 하시더라고.

시장을 힐끗 쳐다봤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모르고, 미리 김칫국부터 마셨군요. 시장님.’

오늘 계획이 박살나게 생겼으니, 시장의 인상이 좋지 않은 것이리라.

뒤통수치는 계획이, 뒤통수 때린 당사자에 의해 망가지게 생겼다.

“김 기자님. 지금 어디쯤 오셨는데요?”

-어. 이제 한 3분 정도면 도착해요. 전화한 건 홍 기자가 가는 길에, 자기 부하가 쓴 것 좀 교정했으면 해서 말이야.

“그럼 울산신문 기자님도 같이 오시는 건가요?”

-그렇지. 시장 만나기 전에 먼저 성훈 씨와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뭔가 아귀가 맞아가는 느낌?

촉이 왔다.

‘이거, 잘하면 그림이 나오겠는 걸.’

애초에 내가 원했던 그림은 물 건너 가버렸다.

게다가 뜻하지 않은 전통의 세균을 만나버렸다.

나와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사람 말이다.

“일단 집안으로 들어오지 마시고, 거기 공터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저랑 먼저 이야기하시자고요.”

-엉. 알았어.

시장은 여전히 불만이 많은 듯,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조간울산 부르셨다면서요?”

“응. 그랬지. 오늘 대목장과 계약을 체결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거 영 모양새가 안 좋게 생겼어. 젠장.”

쓴 소리를 내 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시장님. 잠깐 시간 좀 끌고 계세요.”

“왜. 무슨 방법이라도 있냐?”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내게 물었다.

“이제 만들어 봐야죠.”

‘그게 아니라도 당신은 시장을 방해할 충분한 이유가 있을 텐데.’

“어떻게 시간을 끌라는 말이야?”

“아까 말씀하셨던 거 있잖아요. 저번 선거 때 있었다던 의혹이요.”

“그거 이미 끝난 일이란 말이야. 괜히 창피만 당할 거야.”

‘그게 당신이 해 줘야 할 역할이라고요.’

“그럼 저대로 두면 대목장이 넘어갈 게 뻔한데, 가만히 앉아서 뒤통수 맞으시려고요?”

뒤통수라는 말이 통했던 모양이다.

“좋아. 어떻게든 시간은 끌어보지. 확실한 방법이 없기만 해 봐! 오늘 당한 창피까지 신세지는 걸로 할 거야.”

험악한 인상으로 내게 엄포를 놓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경주 시장은 유려한 언변으로 대목장을 유혹하고 있었다.

‘입에 꿀이라도 발랐나?’싶을 정도였다.

순진한 대목장은 그 앞에서 순한 양이나 다름없었다.

시장이 그를 향해 돌아섰다.

“저 망할 놈의 자식! 고춧가루 뿌리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주지.”

그에게로 다가가며 말했다.

“경주 시장. 선거 때 자네 뒤통수친 친구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경주 시장의 미간이 확 찌푸렸다.

***

“울산신문, 박 기자입니다. 반갑습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인사를 건네며, 손에 들린 리포트 용지를 내밀었다.

아까 말한 그 기사이리라.

“이건 잠시 후에 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 건지?”

“아뇨. 그냥 우리 선배를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이 누군가 해서 인사나 하러 왔습니다.”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그럼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뭡니까?”

“들어주신다는 허락을 받고 말하겠습니다.”

눈치 없는 사람에게 말했다가,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하니까.

‘난 공범을 만들 생각이거든.’

나를 흥미로운 듯 바라보더니, 박 기자가 말했다.

“홍 선배가 성훈 씨 말은 무조건 따르라고 하시더군요.”

“취재 외의 것이라도요?”

그는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그건 좀…….”

우리 둘을 보던 김 기자가 끼어들었다.

“성훈 씨. 운이 안 좋네.”

“왜요?”

“뭔가 안에서 일을 벌이려는 모양인데.”

“눈치 빠르시네요.”

“그런데 여기 박 기자가 눈치랑 임기응변, 그 두개는 완전 젬병이거든.”

박 기자가 얼굴을 붉히며 받아쳤다.

“선배님, 어떻게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말씀을.”

“미안하지만, 어쩌겠어. 사실인데.”

‘아! 좀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신문사 이름을 빌려서 경주 시장에게 접근할 수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아쉬웠지만, 지금 당장은 집안의 경주 시장을 밖으로 내모는 것이 시급했다.

현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시장이 경주 문화원장을 했다고 하지만, 아마 전통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할 겁니다. 그리고 대목장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말입니다.”

이 시기의 최 옹은 대목장 중에서도 그 인지도가 최하급이었다.

박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요. 정치학과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전통 관련 전공자가 아니기에, 전통을 그저 돈 따위로 환산할 수 있었겠지.

조금이라도 전통을 깊이 있게 파악하고 멀리 보는 안목이 있었다면, 얼마 안 되는 푼돈과 전통의 미래를 교환할 생각은 하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내일 신문에 들어갈 기사를 꺼냈다.

“아시다시피 내일 기사에도 경주 장인이 들어갑니다.”

박 기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기사로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는 의미이리라.

경주 장인 기사가 뜨는 날, 그 시장을 만났다라.

“이런 상황을 예측하신 겁니까?”

그 말에 씁쓸함을 삼키며 대답했다.

“약간은요. 하지만 정확하게 예측했다면, 이렇게 일이 커지지 않았겠죠.”

훨씬 더 안전하게 대목장을 데리고 갈 수 있었으리라.

물론 그 반대급부로 의외의 인물을 치울 수 있는 기회도 생겼지만 말이다.

‘하지만 잘못 되면 득보다 실이 크다고.’

“그래도 딱히 제가 할 일은 없는 것 같은데, 아까 김 선배도 말한 것처럼……. 그런데는 젬병이라.”

“박 기자님은 저를 경주 시장에게 소개만 시켜주시면 됩니다. 그 이후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런 거라면야.”

김 기자가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잘 좀 부탁해. 성훈 씨가 성공해야 우리도 특종 하나 제대로 물어가는 거니까.”

그리고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성훈 씨는 경주 시장한테 뭔 원한이라도 있어?”

그저 상황 설명을 했을 뿐이지만, 아까의 말투만 들었을 때는 경주 시장은 때려죽일 놈처럼 묘사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했다.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전생의 빚이라도 있었나 봅니다. 하하.”

“전생?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나? 크크.”

지난 삶에서 전통의 맥을 위태롭게 할 정도의 일을 한 인물이니, 지금의 내게는 얼추 비슷한 무게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조간울산 김 기자님은 울산 시장과 대목장의 대화를 인터뷰해 주세요.”

둘을 서로 갈라놓으면, 그 꿀 바른 혓바닥을 사용할 틈 따위는 없겠지.

***

들어갔을 때, 시장과 경주 시장은 씩씩거리며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허위 사실임이 드러난 과거사로 사람을 이렇게 음해해도 되는 겁니까?”

경주 시장은 정말 억울한 사람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며 따지고 있었다.

“비리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있으면 대십시오.”

‘가증스러운 인간, 곧 밝혀 주지.’

그에 반해 울산 시장은 약을 올린 것이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했던지 후련한 얼굴이었다.

‘고춧가루 친다더니, 아주 제대로네.’

시장이 뻔뻔스럽게 고함을 쳤다.

“왜 그렇게 노려 봐? 고소라도 하려고?”

“못 할 줄 아십니까?”

“흥. 해 봐.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지 보자고?”

경주 시장은 처음의 평정심은 잃어버리고, 울산 시장과 똑같이 흥분하며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경주 시장에게 다가서자, 그가 물었다.

“뭡니까?”

흥분된 목소리였다.

뻣뻣하게 서 있는 박 기자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 울산신문 박 기자입니다.”

“그런데요?”

기자라 하니,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박 기자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난 그저 신문사의 이름을 빌리고 싶었을 뿐이고.

그가 내게 말하라며 눈치를 주었다.

경주 시장에게 말했다.

“사실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 말입니다.”

시장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별 같잖은 것들이.’하는 눈빛이었지만, 그는 웃으며 말을 받아주었다.

“물어 봐요.”

“아까부터 상황을 지켜봤었습니다.”

“그래서요?”

“굳이 시장님께서 대목장을 반드시 섭외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싶어서 말입니다.”

“경주에서 전통관련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전통 건축하면 대목장 아니오?”

김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대목장을 힐끗 보고는 시장에게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말씀은 맞습니다만, 대목장이라고 다 같은 대목장은 아니잖습니까?”

“그게 무슨?”

“인지도 차이가 하늘과 땅입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참……. 쑥스럽네.

제 의견에 반대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경주시장의 미간이 꿈틀거린다.

가지고 있던 신문을 잽싸게 내밀었다.

“이거 보시지요. 울산신문에서 내고 있는 특집 기사입니다.”

“어. 우리 경주 장인이네?”

내가 기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신문으로 초점이 맞춰지자, 바로 말을 이어갔다.

“네. 전통하면 경주 아닙니까?”

“그렇지. 그럼!”

“그래서 첫 기사가 경주 장인입니다. 원래는 대목장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인지도가 소목장들보다 약해서야. 쯧쯧.”

옆에서 박 기자가 눈가를 작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에게 눈을 부라렸다.

‘웃어 가지고 분위기 망치면, 두고 봅시다.’

처음에 박 기자는 이런 말이 먹히겠냐고 걱정했지만, 나는 충분히 먹힐 거라 예상했다.

왜냐고?

아까는 전통에 대해서 잘 알 거라 생각하고 긴장을 했었지만, 생각해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정치를 위해서 일부러 전통 관련 부서로 들어갔는데, 과연 그만큼 심도 깊게 연구를 했을까?

그저 이력에 남을 정도의 업적만을 남겼겠지.

선거홍보에 필요한 문구를 적을 정도.

그의 학력기반은 전통이 아니라, 정치였다.

‘지금까지 그가 한 것도 정치였고.’

시장의 관심이 어느 정도 끌어지자, 내일자 기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시장님. 그리고 이건 아무에게나 보여드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뭡니까?”

“혼자만 보십시오. 내일자 특집기사입니다.”

“오오. 내일도?”

“쉿. 울산 시장이 보면 저를 죽이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흥. 그깟!”

“이걸 저한테 보여주는 이유가 뭡니까?”

“계속 울산 시장하고 부딪히면, 둘 중 한 분은 사단이 날 것 같아서요.”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뒤통수를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너무 속보이는 말이라서 말이죠.”

“그게 뭐요?”

경주 시장이 정색을 하면서 물었다.

“기자가 하는 일이 뭡니까? 특종 찾는 거죠. 여러 장인들을 찾아다니는데,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렇지요. 장인들 고집이 보통이 아니죠.”

맞장구를 쳤지만, 아직은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앞으로도 경주 장인들을 취재할 일이 많을 텐데, 이렇게라도 안면을 틔워두면 좋지 않겠습니까? 시장님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어떤?”

“선거 하실 때, 은혜도 모르는 쓰레기 같은 인간을 용서하셨다고요? 감명을 받았습니다. 요즘 세상에 시장님 같은 분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말을 이었다.

“굳이 울산 시장과 척을 지면서까지, 무리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경주에는 인재들이 넘쳐나는데요. 안 그렇습니까?”

“허허허. 이거 참. 그 말씀이 맞네 그려.”

경주 시장이 고맙다며 악수를 청했다.

그의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굽실거렸다.

“혹시라도 제가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앞으로 취재할 때, 슬쩍 말씀 한마디라도 좀…….”

시장이 내 손을 양손으로 감싸 쥐며 말했다.

“해드리지. 얼마든지 말만 하시오.”

보좌관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두 장인이 있으면. 홍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겠지?”

보좌관도 그의 말에 보조를 맞췄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소목장이니, 결과물도 훨씬 많이 나올 거고, 그만큼 더 많은 업적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다다익선이지요.”

“흠. 그럴 듯 하구만. 좋은 생각이야.”

다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성함이.”

“김성훈입니다.”

‘잘 기억해 둬라. 평생 잊지 못할 테니.’

널 지옥으로 밀어 넣을 이름이니까.

하지만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무슨 말씀을요. 앞으로 폐나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서로 상부상조하며 사는 거지.”

“참! 이번에 경주 문화원을 취재하려고 했는데, 경주 사람 아니라고, 얼마나 텃세를 부리던지…….”

경주 시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전직 문화원 원장이 아니겠소? 예전 부하직원들에게 말해둘 터이니, 언제든지 찾아가시오.”

허리를 낮추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시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때,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울산신문 홍 기자였다.

“저. 시장님. 급한 전화가 와서 그런데, 먼저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나를 따라 시장도 일어섰다.

“보좌관! 우리도 일어나지. 여기 있어 봐야, 저 꼰대 같은 울산 시장이 시비만 걸 거 같고. 신문에 있는 이 두 사람 만날 거니까, 지금 당장 연락 넣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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