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204화 (204/427)

건축의 신 204화

3학년 2학기(12)

손님은 경주시장이었다.

마흔 정도의 중년으로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생각보다 젊네. 그런데 낯이 익네?’

그가 차에서 내리며, 시장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아이고, 선배님.”

서로 아는 사이였던가?

옆에 있던 시장 보좌관이 슬쩍 귀띔을 해줬다.

“두 분이 대학 동문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래서 할 수 있다고 했던 거군.

“그런데 어제 뒤통수 맞았다고, 이빨을 가셨죠.”

우리가 속닥이는 동안, 두 시장은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경주시장이 가식적인 웃음으로 물었다.

“울산에서 이런 촌까지 웬일이십니까?”

시장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왜? 못 올 곳을 왔는가?”

“제가 어련히 알아서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해 드릴 텐데. 성질은 급하셔 가지고.”

이미 어제의 일을 알고 있는 시장이었다.

그의 말이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있는가?

‘혼자 홀라당 먹으려던 건 아니고?’

어제 내가 보기에는 딱 그 뉘앙스였거든.

“흐흐흐, 알아서 해준다? 여전하구만, 자네는.”

시장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그랬나?”

경주시장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뭘 말입니까?”

“어제 사람이 와서는 난리를 쳤다고 하더구먼.”

“직원이 실수한 거지요.”

“‘경주 사람이니, 경주에 뼈를 묻어야지. 어쩌고’가 실수라고?”

“오해십니다. 그저 직원이 흥분해서 애향심에 그런 말이 나온 거겠지요.”

“왜 나는 자꾸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지?”

은근한 압박이었지만, 경주시장은 전혀 굴하지 않았다.

“그럼 같이할 건가?”

“그건 쉽게 답할 사안은 아니잖습니까?”

시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그래도 같이하면 좋지 않은가?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걸 굳이 선배님을 수고롭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흥. 혼자서 해먹겠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냥 저도 임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 도시 정비에 투자를 좀 하려고 합니다.”

“오호.”

“제가 아는 어떤 분이 그렇게 지지율을 높이더군요.”

시장이 비릿하게 웃었다.

“자네, 저번 문화원 비리 의혹이 가신 지 아직 2년이 안 넘었지? 함부로 돈을 굴리다가는…….”

“훗. 선배님도! 이미 거짓말로 판명난 걸, 왜 또 들먹이십니까?”

그의 약점을 찔렀음에도 경주시장은 태연했다.

꽤나 강단이 있거나, 그 또한 너구리이리라

그들의 뼈있는 대화를 들으며,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 누구지?’

경주시장, 어디선가 저 얼굴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금의 삶에서 경주시장과의 접점이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경주시와 연관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난 삶에서의 일인가?

시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보게. 대목장은 이미 우리 쪽으로 기울었으니, 헛물켜지 말고 다른 곳이나 알아보게.”

그 말에 경주시장이 비릿하게 웃었다.

“과연 그럴까요? 선배님?”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게 첫인상과는 달리, 비열해 보였다.

어제의 일 때문에 선입견을 가진 건가?

‘분명히 얼굴을 아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흐릿하니, 정확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을 하는 사이, 두 시장은 대목장의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경주시장은 대목장을 보자마자 사과부터 했다.

“어르신, 어제는 우리 직원이 실례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나간 일 따져 뭘 할 텐가, 신경 쓰지 마시게. 한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왕림하셨는가?”

“그동안 시정이 바빠서 들르지 못했습니다.”

“그리 바쁘신 분이 여기는 왜 오나?”

기분이 풀리지 않은 최 옹의 뚱한 대응이었다.

어찌 어제의 불쾌함이 말 한 마디로 가시겠는가?

경주시장은 그 특유의 서글서글해 보이는 웃음으로 말했다.

“실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뭔가?”

“저번에 말씀하셨던 공방 말입니다. 우리 시에서 지원은 물론이고, 제대로 홍보해 드리겠습니다.”

“어째 마음이 바뀌셨소?”

대목장이 고개를 갸우뚱 한다.

“변명처럼 들릴지 몰라도, 저한테까지 기안이 올라오지도 않았더군요. 그래서 몰랐습니다.”

그는 변명임이 뻔히 보이는 말을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여기 울산시장님께서도 자네와 같은 제안을 했다네. 굳이 경주와 해야 할 일이 있는가?”

“어르신, 그건 생각을 잘못하시는 겁니다.”

“잘못하다니, 뭐가?”

“전통은 새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잘 보존하느냐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존이 없는데, 어찌 계승이 있겠습니까?”

들어보면 맞는 말이지 않는가?

대목장도 고개를 끄덕인다.

“울산에 전통 건축 해봐야, 향교 하나밖에 더 있습니까?”

울산시장의 눈 밑이 꿈틀거렸다.

반문해 봐야 문화재 수에서 비교가 안 되니, 입을 꾹 다물고 참을 뿐이었다.

최 옹이 반문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에 비해 경주는 얼마나 많습니까? 양동마을부터 시작해서, 향교, 정자, 불국사까지 눈가는 곳마다 문화재가 아닙니까? 이것들을 대목장께서 돌봐주시지 않으시면 누가 그걸 돌봅니까?”

누가 정치인 아니랄까 봐!

달변이네, 달변!

간사한 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말들이 백이면 백, 맞는 말이요, 반박할 거리가 없었다.

경주하면 대한민국 전통의 도시임은 누구나가 아는 것이 아니던가?

뜻밖이었다.

‘정말 전통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가? 꽤 아네.’

정치만 해왔다면, 저렇게까지 알기 어려웠으리라.

보좌관에게 물었다.

“저분, 뭐하는 사람입니까?”

“경주시장이죠.”

“음, 이력이 어떻게 되느냐는 말이죠.”

보좌관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아마도 경주 문화원 원장을 하다가 저번 시장선거 때 출마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완전히 바탕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전문가일 것이다.

경주시장의 말이 이어졌다.

“제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전통 건축을 살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대목장이라고 할 말이 없으랴!

“여태껏 관심도 없이 나 몰라라 해놓고는 이제와 그런 말을 한다고 믿을 것 같은가?”

그동안의 울분이 터져 나오듯, 그의 말도 끊임이 없었다.

“전통을 살리겠다며, 공약을 걸어놓고는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그건 어찌 설명할 텐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시 예산 10억을 들여서 반드시 시행하겠습니다.”

“엉? 10억?”

“그걸 몽땅 문화재 복원과 후학을 가르치시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투자하겠습니다.”

“흥. 또 믿기를 바라는가?”

“당장에라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안 그런가? 보좌관.”

멍하니 듣고만 있던 보좌관이 급히 대답했다.

“네? 네! 맞습니다. 어르신.”

그 광경을 보고 있는 내가 웃음이 났다.

‘어이가 없네! 준비가 되었다고 하면서, 기안 하나 없이 맨 몸으로 딸랑 와? 말로만 때우려고?’

어라!

하지만 대목장에게는 통하는 모양이었다.

‘저럴 수가?’

시장이 단언하듯 말했다.

“대목장의 손으로 숭례문처럼 길이 남을 전통 건축을 만들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숭례문이라.

‘2008년인가에 홀랑 불탔었지.’

아직 8년 가까이 남았네.

그때 내가 그 망할 인간을 막아야지.

보존하고 지켜도 시원찮을 판에, 불태우다니 말이 되는 소리야.

그때 기사에도 대문짝만하게 났…….

‘아! 생각났다. 저 새끼!’

그때 저 인간이 문화재청 차장이었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인간!

‘아마 그의 부하와 함께 복원비용을 삥땅 쳤었지.’

일이라도 무리 없이 진행되어 잘 마무리되었다면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난 일 가지고 광분하지, 돈으로는 광분 안 해!’

하지만 숭례문 복원작업은 엉망으로 진행되었다.

전통 염료를 써야 할 곳에 저급한 화학 염료로 대체하는 바람에 나무와 상성이 맞지 않아 단청이 벗겨지고, 나무가 썩어가서 다시 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그것뿐이랴, 말로 다할 수가 없지.

‘제대로 된 물건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제대로 결과가 나올 리 있나?’

그의 부당한 행위 때문에 전통장인들의 위신은 땅바닥에 떨어졌고, 그나마 남아 있던 전통 건축에 대한 관심도 더 멀어져 갔다.

‘전통에 투자하는 세금이 아깝다고 국민들이 난리를 쳤으니, 그 여파는 말할 수도 없었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전통기법 그대로 소실 전과 동일하게 재현한다고 말했지만, 자금은 누수 되어 엉뚱한 놈의 손으로 들어가고, 장인들의 연구 조사는 부족했으니, 어찌 그런 말을 안 들을 수 있었겠는가?

‘그게 우리나라 전통의 현주소가 되었지.’

그리고…….

불타 없어졌던 숭례문은 채 완공되기도 전까지 끝없이 몸살을 겪었다.

두고두고 내 앞 길에 방해가 될 인간!

전통에 관해서는 나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 자가 저놈이었다.

‘그러고 보니, 원래 그 부하라는 작자가 경주시장이 되기 이전부터 그의 심복이었다던데.’

그에게 걸맞지 않는 미담 하나도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그가 시장 출마 당시, 그의 부하 하나가 그를 고발했었다.

‘문화원장을 하면서, 공금을 착복했다고 말이야.’

시장 출마에 나선 그에게는 최대의 위기였었지.

하지만 조사 결과 허위 고발이었음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끝난다면 그것이 미담이겠는가?

그는 자신을 고발했던 부하직원을 역고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잘못 가르친 자신이 죄인이라며, 시민들에게 용서를 구했고, 그를 용서해 주었다.

‘흥. 미담 좋아하시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지.’

이런 우여곡절 끝에 그는 선거에서 승리했고, 시장이 되었다.

그 후 그의 부하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졌다.

‘애초에 사진 한 장 나돌지 않았지.’

그렇게 잠적했던 그가 10년 후 다시 나타나, 시장과 함께 숭례문 지원금을 횡령했다.

국가에서는 숭례문에 대한 관심이 커지니, 역추적을 시작했고, 그 부하는 시장이 되기 전부터 시장의 심복임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인 거지.’

하지만 지금 이게 무슨 소용이 있어?

미래에 일어날 일을 가지고, 누구를 설득할 수 있는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오히려 내가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겠지.’

적어도 그의 정치와 공직생활에 그런 타격을 줬던 사람이라면, 용서는 그동안의 정이 있어서 했다고 치자.

그럼 잠적한 그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의 심복을 찾으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아직 내게 피해를 준 것도 없잖아’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과민 반응일 수도 있잖아.

하지만 내 스스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 철천지원수 같은 놈을 꼽으라면 바로 저 놈이었다.

두고두고 내 앞길을 막을 쓰레기 같은 인간!

당신이 망하든가, 내가 망하든가. 둘 중 하나야!

전통 알기를 돈주머니로 아는 인간.

그는 전통에 국민들의 관심이 틈을 타, 자기 배를 불린 아주아주 나쁜 놈이었다.

가증스런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젠장, 내가 가만히 둘 줄 알아?”

목소리를 억누르며, 밖으로 나왔다.

***

‘그 심복이라는 놈을 어떻게 찾지?’

그놈과 경주시장의 연관성을 이으면, 뭐가 나와도 나올 터.

200억이 넘는 복원 비용 중 20억을 해먹었지.

그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고.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설마 두 번 만에 소를 훔쳤을까?

중간에 개도 훔치고, 돼지도 훔쳤겠지.

한숨이 나왔다.

‘미래를 알면 뭐 하나. 가진 정보가 없는데.’

미친놈 소리 듣지 않으면서, 그를 박살 낼 정보.

고민할 필요 있어? 물어보면 되지.

수화기를 들었다.

“홍 기자님.”

-엇, 성훈 씨. 흥분하지 마시고.

흥분한 이유가 자신이라고 생각했던지, 그는 다급히 변명을 해댔다.

“홍 기자님. 그게 아니고…….”

-실은 아침에 전화가 와서 시장님이 추궁을 해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 양반아. 그거 추궁하려고 했던 거 아니거든.’

-성훈 씨. 미안합니다. 앞으로는…….

“홍 기자님. 쫌! 제 말부터 들으세요. 네!”

-…….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수화기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제가 알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추궁이 아님을 알자, 그는 안도하는 듯했다.

‘뜨끔했겠지. 비밀로 하라는 걸 발설했으니.’

“경주시장에 관한 의혹 아시죠?”

-네, 그 사람이 시장 출마할 때 떠들썩했었지요. 그런데 왜요?

“그때의 내부 고발자 있었죠?”

-네, 잘못 알았다고 해서, 시장에게 용서를 빌었지요.

“그리고 시장은 그 용서를 받아주었구요.”

-네, 훈훈한 미담이었지요. 대인배라면서.

‘그건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때문이지.’

“그 사람이 지금 뭐하는지 알아보세요.”

-그건 왜 그러십니까?

“지금 시간이 없으니까,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네.

“이 조사가 잘되면, 시장에게 말씀하신 것은 없었던 일로 덮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성훈 씨.

그의 다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른 놈은 몰라도, 너만큼은 용서가 안 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