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02화
3학년 2학기(10)
그렇게 통화를 끝냈다.
하지만 시장이 뒤통수를 맞은 채 끝낼까?
무슨 어림도 없는 소리를.
자신이 당한 것의 몇 배로 보복하겠지.
‘그는 그런 길을 걸어온 사람이거든.’
자신을 호구로 보는 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지.
‘경주 시장님.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당신 삶에서 정치 인생은 끝난 것을 애도하며.
그 행동은 오히려 내게는 호재로 작용했다.
엎드려 절을 해도 시원찮은 결과이지만, 그는 내게 감사를 받지 못할 것이다.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취했다고 해서, 어부가 조개와 황새에게 절을 하지 않는 것처럼.
‘크크크.’
웃음을 만면에 지으면서 복수를 준비했다.
‘뭐가 되었든, 당신 뜻대로는 절대로 되지 않을 것을 약속하지.’
힘들여 준비한 남의 만찬을 손도 안 대고 들고 가려 하다니.
‘대목장을 이용하려는 면에서는, 경주 시장이나 나나 별 다를 바 없는 인간인 건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 하나 괴롭혀서, 대목장에게 사이다를 선사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일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모셔가는 길의 축포라고나 할까?
경주 시장에게는 분통 터지는 일이 되겠지만.
오늘의 사건으로 인해 최 옹은 경주에 대한 기대를 버렸을 것이다.
그게 경주 시장의 의도이건 아니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대목장이 굳이 전통건축을 경주에서 할 이유가 있는가?
하나가 있다면, 살아온 정이겠지.
뭐든 중요한 건 사람이지. 지역이 아니니까.
‘흠. 담양의 죽공예 장인이었다면, 어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대목장은 그것도 아니잖아.’
역사의 흐름이란 이런 것인가 할 정도로 딱딱 ‘아다리’가 맞는 느낌이다.
‘당신이 놓친 병아리가, 아예 다른 종이란 것을 확인하게 해주지. 그건 닭 따위가 아니라, 봉황이라고. 겨우 당신 따위가 깔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내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이 누구를 대표하고, 누구를 돌본다는 말인가?
잘만 가꾸고 그 역량을 끄집어낸다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부럽지 않을 전통이다.
대목장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전통 발굴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현대 건축과 잘 매치시키면……. 흐흐흐.’
잘만 부풀리면 배가 터져버릴지도 모르는 무한 가능성의 파이를 베이킹 소다로 숙성시키지도 않고, 그냥 삼키려 하다니.
먹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최상의 식재료라도 그저 고깃덩이에 불과할 뿐이다.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지.’
총장은 내가 이 공방과 대목장을 데려간다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춤을 추겠지.
그는 가치를 제법 정확히 꿰뚫는 능구렁이 같은 작자니까.
오히려 내가 제시한 것보다 더 좋은 조건을 대목장에게 제시할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직접 와서 모셔가는 이유라고.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넋 놓고 있다가 총장에게 빼앗기지만 않는다면, 이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 나는 총장보다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제시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아질 테니까.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김 기자님. 울산 신문에 부탁했던 것, 얼마나 진행되었을까요?”
-음……. 아직 연락을 못해 봤네. 알아보고 연락 줄까?
“아뇨. 바로 저한테 연락 달라고 하세요.”
-알았네. 금방 연락하지. 그리고 말이야. 성훈 씨.
“네.”
-그쪽도 반성 많이 하고 있으니까, 적당히 봐 주라고.
“이번에 하는 것 봐서요.”
전화를 끊었다.
용서하고 말고가 있을까?
‘쓸 만하면 쓰지 말라고 말려도 품고 가는 거고, 가치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도 용서가 안 될 텐데.’
김 기자의 말을 들었을 때는 최대한 내 편의를 봐줄 거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그것은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정말 나와 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정성을 다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저 형식적인 조사로 끝을 냈겠지.
‘하지만 어제 말했는데, 얼마나 진행이 되었을까?’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매스컴과는 적이 되지 않는 것도 큰 재산이었으니까.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다.
-성훈 씨. 울산 신문 홍 기자입니다. 전화 달라고 하셨다고요.
“네. 대목장에 대한 기사들,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궁금해서요.”
-내 밑에 후배들 몽땅 동원했습니다.
‘그래서요? 결과는요?’
듣고 싶은 말은 하지 않고 생색부터 내네.
내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모르지는 않지만, 이건 좀 앞서 나가는 거잖아.
냉랭한 내 반응에 그는 뻘쭘했던 모양이다.
-하하하. 지금 거의 다 정리가 됐습니다. 계신 곳으로 팩스 보내드릴까요?
‘어! 예상외네?’
“벌써요?”
물어보는 내 목소리에 반가움이 서려 있었다.
사실 시간이 좀 넉넉할 거라 생각했는데, 시청 직원의 등장으로 상황이 급해졌다.
‘제대로 엿을 먹이려면 타이밍이 제일 중요하거든.’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순간이, 다른 사람에게는 최악의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타이밍이 딱 맞으면, 뼈아픔은 배가된다.
‘시장이 배 아플수록 최 옹의 어깨도 올라갈 테니까, 그 순간을 놓치면 아깝잖아.’
-사실 성훈 씨가 준 정보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음. 그게 무슨?”
-소문이라고 하셔서. 틀릴 지도 모르고, 시간이 없으니, 기자 한 명으로는 시간을 맞출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요?”
-말씀하신 곳으로 기자들을 총동원해서 다 내보냈습니다. 그러면 소문이 틀려도, 몇 개는 건질 거 아닙니까? 그랬더니.
“그랬더니요?”
-그 소문이라고 하신 것이 다 맞는 겁니다.
잠시 그가 말을 멈췄다.
‘뭐지?’
-아직도 그걸 생각하면, 저는 소름이 끼칩니다. 기자라고 한다면 기가 막힌 감 아닙니까? 한 군데도 아니고, 다섯 군데가 넘었는데. 으으으.
‘정확할 수밖에 없지 않나? 엄연히 미래에 존재했었던 사실인데.’
단지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보기에는 홍 기자의 목소리가 너무 흥분되어 있었으니까.
-어디서 그런 소문, 아니 정보원을 구하신 겁니까? 저한테도 소개를 좀 해 주십시오.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절대로 구할 수 없을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미래에서 듣고 왔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는가?
미래에서 그 기사를 찾은 사람에게 미안하지 않느냐고?
물론 10년 이상 뒤의 이야기이도 하지만, 그런 정도의 능력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뭐가 되도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미안한 마음 따위는 없어.’
대목장의 업적과 관련된 정보는 딱 필요한 만큼만 적당하게 이용하면 된다.
소문의 출처는 말해도 믿지도 않을 테지만.
한참 너스레를 떨다가, 내가 말이 없으니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앞서 갔군요.
“기자님. 제가 듣고 싶은 것은 결과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빠른 조치가 가능했는지 하고 말입니다.”
-하하. 그렇지요. 어제 말씀을 전해 듣고, 바로 파견을 보냈습니다.
“오. 상당히 발 빠르십니다.”
-그야, 성훈 씨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긴급이니까, 돌아와서 보고하지 말고, 바로 그 자리에서 기사 작성해서 팩스로 넣으라고 했거든요.
“음. 신경을 많이 써 주셨군요.”
그가 듣고 싶었던 말이 이거겠지.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
‘눈앞에 있었다면 분명히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을 거야.’
-그래서 제가 지금 편집 중이었습니다.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원하시면 바로 넣어드리겠습니다.
그로서도 최대한 성의를 보이고 싶었던 거겠지.
결과가 미흡했다면 그런 자신감을 보일 수 없었겠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서려있었다.
“감사합니다. 일단 나머지 이야기는 원고를 읽어보고 말씀을 드리죠.”
더 들어봐야,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듣는 것 밖에 없었다.
***
“흠. 애매하네.”
기사를 읽어본 결과였다.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잘했다고 하기에는 좀 과도한 문장들.
최 옹의 업적들을 띄우는 것에 중점을 두다보니, 너무 과하게 최 옹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래서는 울산 신문에서 최 옹을 의도적으로 칭찬한다는 게 보이잖아.’
과유불급이라 했다.
뭐든지 과하면, 반작용이 따른다.
‘남 잘 되는 것을 눈꼴 시려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분명히 최 옹에게 돈이라도 받아먹었냐면서, 반대 기사가 나올 거야.’
기자(記者)는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 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좀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기사를 쓰고 싶은 것이지.
단지 울산 신문에게 특종을 안겨주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
뒤에서 욕을 먹더라도 할 때는 확실하게 해야지.
스스로 자위했다.
‘어차피 욕먹는 건 내 일상이잖아. 안 그래?’
세상일 어느 하나도 쉬운 건 없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글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뭔가 맘에 안 드시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의도와는 좀 다르네요.”
-어떻게 말입니까?
“서브리미널 광고라고 아십니까?”
-아. 알죠.
서브리미널 광고란 사람이 느끼지 못할 정도의 자극을 주어 잠재의식에 호소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를 보던 중간에 팝콘이라는 글자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휙휙 지나갔지만, 그 영화관의 팝콘 매출이 몇 배나 늘어났다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저는 그런 방식을 원합니다. 그게 신문사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한 번의 이슈만을 원한다면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죠.”
-음.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신다면 그대로 실행하겠습니다.
“저는 전통에 포인트를 맞추려고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봤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목장이 있지만, 그분을 처음부터 너무 눈에 띄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전 이해가 잘 안 되는 군요. 애초에 목적은 대목장을 띄우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이 부분에서는 말의 전달이 정확히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긴 쉽지도 않은 일이지.’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전통을 찾게 하는 겁니다. 공익광고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찾는 것 말입니다. 궁금하니까. 필요하니까.”
-아. 그래서 서브리미널을 말씀하셨군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목장이 처음 매스컴에 등장하는 것은 누군가가 등장시켜 주는 것이 아닌, 대중들이 원해서 등장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건 어떤 연유인지.
“남이 보여주는 것과 스스로 찾은 것의 가치가 같다고 보십니까?”
-신문사에서 그를 띄우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그를 원해서 기사를 추가하는 형식이 되겠군요?
“네. 바로 그겁니다. 여론 조사는 울산시에서 하게 될 겁니다.”
-아!
“여론 조사가 나오는 날에 맞춰서 대목장의 기사를 터뜨리면 되겠지요.”
-어떤 방식으로 하실 건지? 도저히 감이 안 와서.
“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있습니까?”
-…….
“설문에서 이렇게 물을 겁니다. ‘전통 건축에서 아는 인물이 있는가?’ 그리고, ‘없다면 알고 싶은 인물은 있는가?’라고요.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음…….
‘전통에 일말의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은 최소 절반 이상, 최 옹의 이름을 지목할 거라고 확신해!’
왜냐고?
이건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판이거든!
“기사의 순서는 제가 지정하는 대로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거기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1편과 2편에 경주의 인물을 올려놨거든.’
내일 아침 조간에 1편이 올라갈 것이다.
경주 시장이 뭐라고 생각할까?
‘대목장이 별거냐? 너 말고도 경주에는 그런 재원들이 넘친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것도 그것이다.
제발 다른 사람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대목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최초 몇 편으로 대목장을 중심인물로 떠올리기는 어려울 것이고.’
대략 5편, 5일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대목장의 중요성을 알게 되겠지만, 그때는 이미 울산시와의 협력제휴 약속이 끝난 후가 될 것이다.
‘경주 시장님. 닭 쫓던 개 신세란 그런 겁니다.’
기사에 난 경주의 전통장인은 포기할 거냐고?
‘그분들이 알아서 대목장을 따라올 건데, 무슨 걱정이야.’
마음의 빚이란,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대목장은 후배들에게 마음의 빚을 많이 지웠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해준 일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존경으로 자라났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배신하기 어렵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십 몇 년이나 지난 일로 대목장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했을까?
최 옹에 관한 추가적인 소문을 더 전해 주고, 통화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