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01화
3학년 2학기(09)
“시에서 사람이 온다면서요.”
민수 큰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르신 표정이 왜 저러신 겁니까?”
찌뿌둥한 표정의 대목장이 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혹시 내가 어제 한 말 때문에? 그게 그렇게 기분 나쁠 말은 아닌데.’
내가 아는 대목장은 그렇게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대목장을 만나러 온 이유?
‘내가 어제 너무 건방진 말을 했었지. 좀 더 시간을 들였어야 했는데.’
말을 하다 보니,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지금 와서 입을 쳐 봐야 어쩌겠나?
이미 뱉어버린 말을!
‘조금 더 조심해야겠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입장이 다르면, 비난처럼 들릴 수도 있으니까?’
막말로 어제 내가 한 말은 ‘지금까지 전통을 지켜 왔다고 했으면, 이게 제대로 지킨 것이냐?’하는 질책이 될 수도 있었다.
최 옹은 별 말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지만, 그와 아들 간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내가 어떻게 알랴?
그래서 탐색차 갔던 것인데, 최 옹의 얼굴이 어두웠으니 내 걱정이 깊어질 수밖에.
“아버님께서 작년에 공방을 열겠다고 시에 홍보를 해달라고 했는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는 핀잔을 받고 오셨거든. 그런데 쓸 돈이 어디 있냐고 말이야.”
그렇게 거절했었는데, 지금 사람이 찾아왔다고?
“이게 우연일까요? 아저씨?”
정상적으로 진행이 되었다면, 울산시장에게서 연락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게서는 아직 연락이 없었다.
최 옹의 아들이 입맛을 다셨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묘하군.”
“그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군요.”
“아마도 그렇지 않겠나? 그때도 그 일로 속이 많이 상하셨다네.”
최 옹의 아들도 얼굴이 어두워졌다.
쥐색 양복을 입은 사람이 마당으로 들어왔다.
“박 과장이 무슨 일…….”
다짜고짜 인사말도 맺기 전에 그가 물었다.
“어르신. 공방을 여신다면서요?”
최 옹이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으면 제게 먼저 연락을 주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최 옹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내가 내 공방을 여는데, 시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가?”
“어르신. 그건 그때 안 된다고 했잖습니까?”
대목장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공방을 여는 걸 허락을 받아야 하나? 그리고 내가 자네에게 자금 지원을 해달라고 했는가?”
“또 세상 물정 모르시는 소리 하시네요. 어르신.”
“세상 물정을 모르다니?”
“사람들이 욕합니다. 시 차원에서 지원을 해드린 게 있는데, 은혜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뭐라? 은혜?”
“어려운 재정 쪼개서 지원해 드렸더니, 그걸 입 싹 닦고, 다른 시와 교류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뭐라 입을 싹 닦아.”
“그렇잖습니까? 제가 그거 때문에 얼마나 곤경에 처했는지 아십니까?”
“무슨 곤경에 처했다는 말인가? 내가 불법이라도 저질렀나?”
“왜 공방 여는 얘기를 제가 아니라, 다른 시의 사람에게서 들어야 하느냐고요.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어르신!”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어디서 한소리 들은 모양인데.’
시에서 지원하는 금액을 제 손 거쳐 준다고 생색을 내고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대목장의 아들에게 물었다.
“지원을 한 수백억 해 줬나 봅니다.”
비웃음이 담긴 말에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무형문화재라고 해서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있다네. 옹기장이나 대장장, 뭐 그런 것들 있잖나.”
“아. 그 국가지원금요? 얼마나 되는 데요?”
나야 받아본 적이 없으니, 액수를 알 수 없었다.
“아버님과 나, 둘이 합해서 월 125만 원을 지원 받는다네.”
아마 대목장은 좀 많이 받을 것이고, 전승자는 반도 안 되게 받을 것이다.
“대략 어르신 90에, 아저씨 35쯤 되겠네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개뿔!’
내가 3D로 공모전 한 건 하면, 얼추 이 두 분 연봉이 나온다.
“남이 들으면 엄청나게 지원받은 줄 알겠습니다. 저렇게 은혜 어쩌고 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어쩌겠나. 받은 것은 사실이니.”
속으로 공무원을 응원했다.
‘그래. 더 해. 더!’
저 건축 담당자의 말이 나오면 나올수록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오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경주에 정이 떨어질수록 울산으로 옮기기가 쉬워질 테니까.
‘그런데 듣다 보니, 기분이 나쁘네.’
경주 시장의 의도 여부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철밥통’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는 시기였다.
IMF 이후, 공무원의 인기가 수직으로 치솟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의 무사안일주의는 이후로도 계속 변하지 않겠지.
그저 상사에게 타박을 받아서 화가 났고, 힘없는 대목장은 만만해 보였으니, 저런 행동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당신이 보기에는 둘이 합쳐 125만 원짜리 월급쟁이겠지. 그것도 시에서 월급을 주는.’
‘공무원도 월급쟁이려니, 불쌍하구나.’하며 이해를 하려 해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기 어려웠다.
“기분이 더럽네요.”
내 말에 최 옹의 아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겠나. 이게 우리 현실인 걸. 사실 어제 아버님께서 자네 말을 듣고 많이 기뻐하셨다네.”
“정말입니까?”
“그럼. 내가 자네에게 농을 할 이유가 있겠나?”
그럼 나쁜 결론이 나지는 않았겠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내 문제는 해결됐고, 저 문제를 털어 볼까?’
그 사이에도 공무원의 언성은 높아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하시면서 지금까지 받은 지원을 제대로 받기를 원하십니까?”
‘공무원이 벼슬이냐?’
전통이라면 더 존중을 해야 할 경주에서.
왜냐고?
경주는 신라시대의 유물이 경제를 떠받치는 비율이 높은 도시니까.
‘윗사람에게 욕을 먹었는지는 몰라도, 여기서 이러는 건 예의가 아니지.’
나는 어떻게든 모셔가기 위해서 안절부절못하며 대목장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듣보잡이 튀어나와서 대목장을 깔아뭉개?’
내가 모욕을 당하는 기분이랄까.
둘 사이에 끼어들며, 공무원에게 물었다.
“만약 경주에서 대목장 일을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가 내게 고리눈을 떴다.
“그게 무슨 말인가?”
“무형문화재는 이사도 못 가느냐고 묻는 겁니다.”
“경주에서 뿌리를 잡았는데, 어디를 간다는 건가? 당연히 경주를 위해 일해야지.”
그 말에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공산주의냐? 북한이냐?’
“당연히…… 요?”
“당연하지. 그러는 자네는 뭔가?”
“견학하러 온 학생입니다.”
“학생이면 학생답게 견학이나 할 것이지, 어디 어른 말하는데 끼어드는가?”
갑자기 한숨이 팍 나왔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른. 어른이라…….”
임금은 임금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
‘적어도 나이대접을 받고 싶다면 말이지.’
내 땅에서 난 것이니, 내거라는 논리와 뭐가 다른가?
노력하지 아니하고, 주인 됨을 내세움은 어인 논리인가?
공무원은 국가이고, 국가에서 월급을 받으면, 그 사람들은 공무원의 마름인가?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네.’
꿈틀대는 미간을 진정시키며 전화기를 들었다.
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 미개한 곳에 내 소중한 것들을 놔둘 수는 없었다. 단 한순간이라도.
한 사람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 아니냐고?
‘미안하다. 속이 좁아서.’
착신음이 들리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장님. 무슨 일을 이렇게 하시는 겁니까?”
-엥? 왜? 뭔 소리냐? 성훈아?
시장의 어리둥절한 음성이 들려왔다.
뜬금없이 날벼락을 맞은 듯한.
공무원의 눈초리가 묘해지더니, 내 전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똥파리 ㅤㅉㅗㅈ듯 팔을 휘휘 저었다.
“가세요. 당신네 시장 아니니까!”
그가 내게 인상을 팍 썼다.
‘제발 덤벼라. 아구창을 박살내 줄 테니까.’
어느 시장이 되었든, 자신보다는 높은 분이리라.
그는 시장이라는 말에 긴장을 했는지, 주위의 눈치를 몇 번 보고는 총알같이 사라졌다.
“시장님이 일을 만드셨으니, 직접 수습하세요.”
자초지종을 들은 시장이 헛웃음을 뱉었다.
-허. 경주 시장, 그럴 줄은 몰랐는데, 완전 뒤통수 맞았네! 허허. 이거 참.
시장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그는 그렇게 허술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그저 화를 풀 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대목장을 보며 머리를 숙였다.
“잠시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알겠네.”
그리고 대목장이 말을 이었다.
“아범아. 대문에 소금 한 바가지 뿌리고, 안으로 들어오너라. 에잉!”
집 밖으로 나와서 통화를 이어갔다.
-성훈아. 경주 시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그 양반은 못 해.
“왜요?”
-그럴 능력이 안 돼!
“정말입니까?”
사실 어제까지 경주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걸 어느 날 빼앗기면 기분 나쁘지 않겠어?’
자신이 얼마나 신경 써서 관리했던지, 아니면 무관심하게 내팽개쳤던지, 그건 차후의 문제다.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은 있던 것이 없어졌다는 상실감일 테니까.
내가 안 먹어도 남 주기는 아까운 것이 있다.
‘공방을 오픈하는 것부터 그 이후의 일까지 책임질 능력이 된다면, 나도 약간은 고민을 했겠지. 남의 파이를 훔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시장의 단호한 말에 그 죄책감이 사라졌다.
내 눈에는 능력을 떠나서 의지도 없어 보였다.
그저 자기 것에 대한 집착 뿐.
소유할 능력이 없는 자가 보물을 가지면, 보물도 망가지고 주인도 해를 입는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그러게 말이야. 그 친구는 내가 했으니, 자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봐. 제 가랑이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말이야.
“음…….”
시장이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설마? 경주 시장에게 붙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왜는 왜야? 자네가 거기에 신경 쓰는 게 보통은 넘어보여서 그런 거지.
‘어제 통째로 들어서 울산으로 가져갈 거라는 말을 했어야 하나? 그럼 이런 말도 안 들었을 텐데.’
하지만 그에게는 먼저 언질을 해두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내가 데리고 가는 거라고.
내가 쓸 데가 있어서 데려가는 거라고.
‘만나서 언질을 확실히 받아야겠군.’
“그럴 생각 전혀 없습니다.”
-정말이지?
“정 걱정되시면, 경주나 한번 오십시오.”
-거기는 왜?
“시장님.”
은근한 내 말에 시장도 목소리를 낮췄다.
-아따. 노인네 긴장시키지 말고 있는 대로 털어놔 봐!
“전 지금 봉황을 털도 안 뽑고 삼킬 방법을 말씀드리는 거라고요.”
-정말이야? 어떻게 하면 되는데.
지금의 시장은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나와 함께 한 후,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은 시정을 돌아보는 게 되었으니까.
오르는 지지율과 시장에 대한 칭찬에, 어느 때보다 성실하게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목소리라기보다는 칭찬이라고 해야 할까?
시장이 말했었다.
“그게 다 성훈이 네 덕분이다.”
처음 프랭크와의 대담을 제안했던 것도 나였고, 그 이후, 건축가들을 모아 공모전을 했던 것까지.
지금의 지지율은 내 제안을 따른 덕분이었다.
“경주 시장은 직접 오지도 않고 사람을 보냈는데, 만약 시장님이 직접 오셔서 공방을 후원하겠다고 제안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흐흐흐.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정성이다.
대답이 필요할까?
가난한 경주에서는 푸대접을 받는데, 돈 많은 울산에서는 칙사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해보라.
천하태평 제갈량도 삼고초려면 충분했는데, 곤궁에 처한 대목장을 거기에 비할까?
“제대로 한 번 인사 하시면, 대목장을 울산으로 모시고 가는 일이 훨씬 더 쉬워질 것 같습니다.”
-아예 데리고 온다고?
“경주 시장을 거치는 것보다 그게 낫죠.”
-당연히 그렇지.
“경주 시장은 그 가치를 전혀 알지 못 하네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지. 그리고 그 인간, 돈 엄청 밝혀. 안 돼!
“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여기 있으면, 될 것도 안 될 것 같네요.”
-흐흐흐. 지지율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군.
“사실 저는 현재 진행 중인 도시정책보다, 전통의 복원사업이 훨씬 더 시의 미래를 위해서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군!
“한두 해의 미래가 아니라, 수십 년 뒤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내가 전통건축에 대해서 뭘 알아야…….
‘당신에게 전통건축을 원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입만 열면 지지율을 말하는 시장은 아무 말 않는 게 돕는 겁니다. 병풍처럼.
“시장님은 가만히 앉아만 계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만큼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을 대목장이 인식하는 게 중요하거든.
그저 와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게는 시장이었다.
“그리고 오셔가지고,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아셨죠?”
-왜? 나 시장이야!
“지지율 어쩌고저쩌고 하시면, 저 이거 다른 사람이랑 할 겁니다.”
시장의 머릿속에 지지율 말고 뭐가 더 있겠는가?
-끄응. 알았어. 내일 당장 갈 테니, 잔소리 좀 하지 말게. 이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