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200화
3학년 2학기(08)
“아버지는 농담을 한 것을 가지고…….”
최 옹의 아들이 모기 소리로 항의를 했다.
함께 하며 의지해 온 세월이 길었던 만큼, 격의 없는 행동이리라.
최 옹의 진지한 눈빛을 보며 답했다.
“저는 그 농이 자기 자리를 잡았을 때,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면서 본 것뿐입니다.”
“나는 문판과 문틀의 결을 보기 위해서일 거라 생각했건만.”
대목장의 눈에 실망의 빛이 어렸다.
그 실망의 원인은 알 수 없으나, 결국은 같은 것이 아닌가?
내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그 위치에서는 자연스레 그것이 보이지 않을는지요?”
허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볼멘소리로 말했다.
“보이기는 하겠지만, 나는 자네가 결에서 뭔가를 느껴서 그런다고 생각했지.”
“그 때문에 실망하신 겁니까?”
최 옹의 고개가 끄덕였다.
“그렇게 보는 녀석은 오랜만이었거든.”
최 옹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보아왔겠는가?
개중에는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히 몸이 반응하는 사람도 있었으리라.
아들이 설명을 보탰다.
“아까의 그 눈높이가 농에 넣은 무늬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높이였거든. 그래서 기대를 하신 것이지.”
그만큼 눈길 닿는 부분에 신경 썼다는 말이리라.
신경 써서 만들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장인의 입장에서 그보다 한스러운 것이 어디 있으랴?
그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할 필요가 있었다.
‘좀 더 잘 보일 필요도 있고 말이야.’
배운 건 써먹어야 하고, 느낀 건 표현해야 보배다.
“하지만 느꼈습니다. 어르신께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말입니다.”
“정말?”
살짝 의문스러운 듯, 대목장이 말을 이었다.
“무엇을 느꼈는가?”
“인위적이지 않으며, 나뭇결의 자연미를 최대한 살리려고 하신 것 아닙니까?”
“그건 전통가구라면 당연한 거라네.”
그중에서도 백미라 할 만한 것은 문짝이었다.
미세한 차이였지만, 내게는 보였다.
‘그러니 아까도 문판과 문틀을 이야기한 거겠지.’
“그중에서도 문짝은 정말 신경을 많이 쓰셨더군요. 나머지 전면판재들은 액자틀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최 옹이 뜨악하며, 아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끄응. 그야 손을 가장 많이 타는 것이 문짝이니 당연한 게지.”
문짝을 열 때, 눈을 감고 여는가?
당연히 눈뜨고 열지.
그러니 가장 눈길이 많이 가는 것도 문짝이리라.
나를 시험하는 대목장에게 일침을 가했다.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뭐가?”
“대목장께서 거기에 심혈을 기울인 건 다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무엇 때문에?”
“손길이 아니라, 눈길이 가장 많이 닿는 곳이니까요.”
바닥판에 황금을 박아 봐야 뭐 하는가?
숨은 그림 찾기도 아니고.
아들이 내게 물었다.
“문짝이 그렇게 좋았다면서 멀찍이 떨어져서 본 이유는 뭔가?”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지요. 그 작품을 최상으로 즐길 수 있는.”
“거리라…….”
“너무 가까우면 전체적 조화를 놓치고, 그렇다고 멀면 세밀한 손길을 느낄 수 없지요.”
“맞는 말이지요.”
아들의 말에 최 옹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람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듯, 사람과 사물의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지.”
그것이 장인의 작품임에야, 더 하지 않겠는가?
작품은 만든 사람이 원하는 시점에서 봐야, 그 의도가 명확히 보인다.
최 옹이 물었다.
“원래 그렇게 사물을 봐왔는가?”
“아닙니다. 전통 가구를 그렇게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TV에서 아무리 봤다한들, 시점을 바꿨을 리는 없고, 보여주는 것만 봤을 뿐이다.
‘먹고 산다고 바빴지, 전통가구를 찾아다닐 일은 없었지요. 지난 삶에서는.’
“연유가 있겠지?”
“아까 안방에서 말씀하셨지요?”
최 옹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두 마디를 했어야 기억을 할 것이 아닌가?
“왜 무릎을 꿇느냐고 물었을 때 말입니다.”
“음. 내가 뭐라고 했던가?”
“지나가듯 말씀을 하시더군요.”
“뭐라고?”
“그렇게 앉아 있으면 못 보던 것을 볼 수도 있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한 것 같기는 하군. 그게 왜?”
최 옹의 물음이 시험처럼 느껴진 건 왜일까?
하지만 그 의문을 금방 접었다.
‘그가 나를 시험할 이유가 있을까?’
그저 내 대답이 궁금한 거겠지.
그건 나처럼 젊은 세대의 생각이기도 할 테니까.
“이런 말씀도 하셨지요. 요즘 애들이 신체 발달이 빠르다고요.”
“응?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어쨌거나 그건 뭐 사실이니.”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말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을 품고 나온다.
“이것들이 한참 쓰일 때와 지금의 사람들의 신장이 다르다고요.”
“그렇겠지.”
평균 15cm 이상은 차이가 날 것이다.
눈앞의 대목장도 160이 될까 말까하는 신장이지만, 그가 젊었을 때는 평균 신장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눈높이를 맞추려고 쪼그렸다. 이 말인가?”
“네. 좌식 생활에 맞는 가구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때 선비들을 즐겁게 했던 무늬를 만나려면.”
“만나려면?”
“그들과 같은 눈높이로 봐야겠지요.”
“음.”
최 옹이 침묵하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전통가구는 불편하다는 말은 이래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최홍만처럼 거대한 사람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처럼 크다면, 그것에 맞춰야겠지.’
일단은 살아남아야 후사를 도모할 수 있다.
500년을 호령하던 전통은 시대의 변화 앞에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래.’
우리는 전통이라는 말 안에 너무 많은 의미를 넣어버린 것이 아닐까?
정작 살아남아야 할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그 시절의 평균 신장에 어울리는 숫자들만 남은 것은 아닐까?
‘장롱 다리는 몇 촌(寸), 문짝은 몇 척(尺).’
500년 전에 통용되던 기준이 아직도 먹힐까?
잠시 후, 최 옹이 물었다.
“그렇게 보니, 좀 다르게 느껴지던가?”
“당연하지요. 고개를 좀 더 숙이니, 은은하고 소박한 느낌이 살아나더군요. 눈부시기만 하던 무늬가 은은한 빛을 내뿜더라고요.”
보는 방향에 따라서 색은 천변만화한다.
단지 눈높이와 방향이 약간 달라진 것만으로도, 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256색이 아닌, 그 만 배의 풍부함으로 말이다.
“그렇던가?”
“그리고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래. 전통은 그런 거야. 마음이 편해지는 거야. 수백 년 내려온 전통이 결코 헛되지는 않아.”
대목장의 한숨 섞인 말이었다.
“그 시대 작품들과 교류를 하려면 눈높이를 그들과 동일하게 해야 하더군요.”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
‘최 옹은 몰랐을 수도 있겠군.’
그에게는 자신의 눈높이가 조선시대의 그것과 같을 테니 말이다.
내가 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모두 알 것이라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는 편하지만, 다른 사람은 불편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건 전통가구를 보면서 즐기는 법이다.
보는 것은 물론, 실생활에서 즐길 수는 없을까?
최 옹이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 같구먼.”
“다르게 말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전통이 이 시대와 교류를 하려면 지금의 눈높이에 맞추면 되지 않겠습니까?”
“말이야 하기 나름이지.”
‘행동도 하기 나름입니다.’
“어르신.”
“왜 그러나?”
“저는 전통 건축을, 전통 가구를 살리고 싶습니다.”
“…….”
최 옹은 아무 말이 없었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걸 보고 살아있다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저는 우리 것이 무조건 좋다는 주의도 아닙니다.”
“젊은 세대들이 다 그렇지.”
최 옹의 작은 투정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비단 젊은 세대의 문제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눈높이가 10cm가 높아지는데, 그 보이는 시야가 과연 똑같을까?
그 장인이 어디에 가장 신경을 썼는지를 알 수 있어야, 그 시대의 작품과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일방적인 것은 소통이라 할 수 없지요.”
그건 지나간 조상들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일 뿐이리라.
강요에 의한 정착은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 아닐 것이다.
어쩌겠는가?
마음은 편해지나, 몸은 불편한 것을!
“일방적이라니? 뭐가 말인가?”
그에게 물었다.
“조선의 선비들이 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보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맞추며 자세를 잡았을까요?”
내 말에 최 옹이 작은 소리로 웃었다.
생각만 해도 우습지 않는가?
근엄하게 글공부 하던 선비가 머리를 식히려고 장롱을 보다가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보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다는 게.
‘체통 없게 시리.’
“선비들이 가장 많이 하는 자세가 양반다리이니, 장인들이 오히려 양반다리를 했을 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보이도록 작품의 포인트를 안배하지 않았을까요?”
최 옹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랬을 테지.”
그때도 가능했는데, 지금은 안 될 이유가 없잖아!
‘왜? 지금 사람들은 고고한 선비가 아니라서? 어디서 돌 맞을 소리를.’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가구일진대, 지금은 전통이라는 허울을 쓰고 사람들 머리 위에 올라서서 지시하고 있다.
‘나는 전통이다. 나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한국인의 의무이다. 그러려면 ‘이래라 저래라!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누가 돈 주고 잔소리꾼을 사겠는가?
그러나 이런 말을 최 옹에게 할 수는 없었다.
‘최 옹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수는 없잖아.’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그렇게 들릴 것이다.
‘오히려 타박을 받겠지. 이걸 지키려고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는지, 네가 알기는 하느냐?’
시대를 잘 타고나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뛰어난 장인으로 칭송을 받았을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의 숭고한 정신은 충분히 칭찬할 만하다.
아무도 걷지 않으려는 가시밭길을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걷고 있는데, 누가 돌을 던지랴?
“사람은 변했는데, 전통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필사의 노력보다는, 자신들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음을 원망한다.
“전통은 변하지 않는 것이야.”
‘아! 돌아버리겠다.’
스스로의 틀 안에 갇혀 있다.
몇 백 년 전의 기준을 신주단지 모시듯 신봉한다.
그건 그렇게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이라 하겠지.
대문 옆의 석비가 떠올랐다.
‘부모가 주신 터럭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머리를 통째로 내주는 거나, 작은 치수 하나를 고수하기 위해 전통을 고사시키는 거나 뭐가 다른가?’
“제가 보기엔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스스로의 껍질을 깨고, 무한 경쟁의 지옥으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
“그럼 구매자들에게 눈높이를 맞추라고 할까요?”
이 말에 다시 최 옹이 침묵했다.
가구라는 작은 잎사귀 하나를 보는 데도 이런 노력이 필요하건만, 전통이라는 큰 줄기를 이해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어르신. 고객은 떠먹여줘야 먹습니다.”
조선시대의 옷장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나처럼 185가 넘는 사람은 항상 고개를 수그려야 한다.
이용할까?
나라도 당장 꺼려질 것이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가구이지, 가구를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많은 고객 중에서 영향력 있는 자들은 특히나 입맛이 까다롭다. 그리고 그들은 유행을 선도한다.
최 옹에게 말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잠시 후, 대목장이 물었다.
“공방을 열어서 어떻게 할 참인가? 그에 대한 계획은 서 있겠지.”
“기본적으로는 대목장의 지도방식을 따를 예정입니다만.”
“……다만?”
“저는 제일 먼저 보는 법을 가르칠 것을 부탁드립니다.”
“나무 다루는 법이 아니고?”
“눈이 앞서가지 못하면, 손은 당연히 따라가지 못합니다. 소경이 조각하는 거 보셨습니까?”
아무리 손이 발달을 했어도, 눈으로 보고 조각하는 것과 손의 감각으로 하는 것은 천지차이.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끼죠.”
눈으로 보고, 스스로 찾아가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교육의 첫걸음이 아닐까?
전통이 얼마나 아름답고 유용하며, 어떻게 봐야 하는지만 알게 해 주면 된다.
“보는 것만으로 될 거라 생각하나?”
“스스로 필요하다 느끼면 자발적으로 찾겠죠.”
모든 것은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
제대로 보는 법만 알아도 일할은 건지지 않을까? 어떤 결과로 건져질지는 나도 모르지만.
“눈이 열리면 다른 세상도 보이겠지요.”
“음. 그렇군. 자네 생각을 존중하도록 하지. 가급적이면.”
최 옹과 아들이 일어섰다.
“건방진 말씀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들었네. 어흠. 아범은 공구 챙겨두고 방으로 들어오너라.”
최 옹이 자리를 떴고, 아들이 내 등을 토닥였다.
“아버님도 항상 생각하고 계시던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당장이라도 박람회에 참여해 줄 수 있겠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지금 얘기해 봐야 역효과만 나오겠지.’
최 옹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온 뒤, 그 대가를 요청해도 늦지 않으니라.
그리고 이튿날날.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