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99화
3학년 2학기(07)
통화를 끝내고 나니, 민수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하고 말이다.
“형, 어떻게 그런 걸 아세요? 저도 모르는데.”
“글쎄다. 관심이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닐까?”
당사자가 말 안 하면 모르는 사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캐려 들면 비밀이라 할 만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
“이렇게 자신의 행적을 알렸다는 걸, 대목장께서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글쎄요. 저도 잘…….”
민수도 그런 경우는 생각해 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애초에 생각을 해보지 않았으리라.
대목장이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는 건 아마도 새 발의 피 정도가 아닐까 싶네.”
“정말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주변 사람을 많이 도왔다고요? 그런데 왜 말씀을 안 하셨을까?”
아마 스스로의 얼굴에 금칠하는 것은 좋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알면서도 뽐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아까 봤잖아. 그분의 작품을 내놓아서 부끄러울 것이 하나도 없을 텐데, 그걸 좋아하시지 않잖아.”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형은 이해되세요?”
예수님이 그러셨던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다고.
정작 가까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위대함을 알 수 없는 법이었다.
“대통령도 집에 가면 영부인한테 구박받을걸. 아마도.”
“왜요?”
“양말 뒤집어 벗었다고.”
“설마요?”
그런 민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너도 장가 가봐라. 그런 걸로 안 싸우나.’
하긴 영부인이 가정부를 쓰지, 직접 빨래를 할까 싶지만.
민수에게 말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거든.”
한 줌도 안 되는 업적을 부풀려 자랑하는 자, 큰일을 하고서도 나는 모른다면 딱 잡아떼는 자.
어느 편이 지혜로운 것인지, 인생을 올바로 사는 것인지 나는 판단할 수 없다.
‘뭐가 되었든, 그게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겠지.’
“아마도 네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실 거야.”
“어떻게 사람이 그러실 수가 있죠?”
“그분은 남의 평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평가를 내리시겠지.”
“그렇다고 해도.”
“자기 자신에게 엄한 자일수록 그 평점은 짜디짜거든.”
자신의 숨겨진 선행이 드러난 것에 자랑스러워하지도 쑥스러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대목장은, 그에게 금일봉을 하사하겠다고 누군가가 말했을 때, 이렇게 호통을 쳤었다.
‘대목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왜 내가 돈을 받는다는 말이오. 도로 가져가시오.’
어느 기자가 왜 그것을 자랑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는.
‘당신은 길 가다가 휴지 주웠다고, 자랑하고 다니시오? 내가 내 위치에서 당연한 일을 했는데, 그걸 누구에게 자랑하라는 말이오?’
지난 삶에서 보인 그의 행보가 그랬다.
‘오히려 모난 돌이라고 정 맞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지.’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없이, 그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을 뿐이다.
그를 추켜 세워준 것은 그의 도움을 받았던 지인들이었지, 그 자신이 아니었다.
그만하면 누가 봐도, 멋있는 인생 아닌가?
발길이 멈춘 곳은 최 옹의 공방이었다.
여러 제자가 작은 모형과 짜 맞춤 공법에 필요한 도안을 그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장롱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하긴 나무로 하는 거라면, 못하는 게 어디 있겠어? 이 사람들이.’
자개장은 농을 만드는 방법과 연결되고, 구리 장식은 검을 만드는 것과 연결이 된다.
만류귀종이라 하지 않던가?
하나를 깨닫기 위해 여러 분야를 통달해야 하는 건축의 특성상, 그들도 여러 가지 제품을 손수 제작하고 있었다.
“녀석. 너는 아직 대패를 들 때가 아니니라.”
최 옹이 아이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의 제자들은 천차만별, 만학의 나이에 도면을 그리는 이도 있었고, 방금 혼난 녀석은 열 살이 약간 넘어 보였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최 옹이 말을 건넸다.
“왔느냐?”
그에게 인사를 하고 물었다.
“네, 어르신. 좀 둘러봐도 될까요?”
그가 한쪽 광대를 올리며 웃었다.
“그러려무나. 네 계획대로 가기로 했으니, 바꿀 것이 있다면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 바꿔야 할 것은 없습니다.”
“왜?”
“어깨너머로 배운다고 했습니다. 어르신의 하시는 모습을 보면, 따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누가 따라하려 하겠느냐?”
“거기서는 어르신의 협조가 약간 필요하지요.”
“뭐냐?”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에 대해서 인자하게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변하면 안 되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최 옹이었다.
나는 그의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런가? 그러면 그러도록 하지. 공방을 둘러봐야 하지 않는가?”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어린 제자와 실랑이를 이어 갔다.
나는 전통을 하나의 콘텐츠로 인식시키고, 그것을 생활 전반에 정착시키려고 한다.
‘그래야 무너지지 않거든.’
대중의 삶과 괴리되어 일부 계층을 위해 존재할 때, 대중화는 멀어지고,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몇 년의 숙원이 고작 몇 년 동안 이익을 보고 그 영향력이 사라져서는 적자다.
적어도 내게는.
‘우물을 팠으면, 마르고 닳도록 떠 마셔야지.’
조상들의 반만 년,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우물을 우리 세대는 감사함으로 즐겨야 한다.
중동은 조상도 아닌, 공룡들의 무덤에서 석유 파먹고 살고 있는데.
자원이 없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만큼 유일한 자원을 가진 나라도 없어.’
중동의 복이 석유라면, 우리에게는 반만 년 묵은 고유문화가 있다.
‘말이 좋아 반만 년이지.’
이무기가 용이 되도, 몇 번은 되었을걸.
그들의 석유가 몇십 년 후 바닥을 보일 때, 한국은 문화를 팔아먹는 강국이 될 것이다.
캐낼수록 끝을 알 수 없는 전통 문화를.
‘꿇릴 이유가 어디 있어?’
***
“피죽도 안 먹었느냐? 힘 좀 쓰거라. 녀석아.”
최 옹은 그의 아들과 함께 톱질을 하고 있었다.
최 옹이 숨을 고르자, 아들이 수건을 건넸다.
땀을 닦던 최 옹이 물었다.
“아범아. 저 친구가 지금 뭐 하는 거냐?”
“가구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성훈은 공방의 가구 작업을 보고 다니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은 채, 가구를 감상하고 있었다.
때로는 농의 문을 열어 그 속을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저 자세가 뭐냐는 말이다.”
“다리가 아픈가 보지요.”
“이놈아. 객쩍은 소릴랑 하지 말고.”
“쪼그려 앉아서 보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십니까?”
“지금까지 여기 왔던 놈들은 저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보는 놈은 드물었거든.”
“당연하지요. 그러면 허리가 아프잖습니까?”
그러고는 제 허리를 툭툭 두드려 댄다.
“저도 톱질을 했더니, 허리가 아픕니다.”
“젊은 놈이 허리 타령은. 그런 놈이 자식이라고는 아들 하나뿐인 것이냐?”
“에이, 아버지. 맨날 팔도사방으로 집 지으러 다니기 바쁜데. 아시면서.”
그 말에 최 옹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놈아. 네놈이 아들 하나인 것이 내 탓이란 말이냐?”
어느 집에서나 있는 부자간의 농이었다.
최 옹이 아들에게 물었다.
“저놈, 어떻게 생각하느냐?”
“글쎄요? 어디 정치인이나 재벌 아들이 아니겠습니까?”
“왜 그리 생각했느냐?”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울산시장에게 다이렉트로 통화를 합니까? 그것도 부탁도 아니고 제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 입으로.”
“그런데 그렇게 힘이 있는 놈이, 내게 와서는 부탁을 하느냐?”
아들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가 오란다고 가실 분입니까?”
“그건 아니지.”
“그걸 아니, 이렇게 직접 온 것 아닐까요?”
최 옹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까 민수에게 물어봤었다. 전혀 그런 게 아니라더라.”
“그냥 학교 선배라고요? 진짜로요?”
“알짜배기 천둥벌거숭이라더라. 어디서 저런 놈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면서.”
***
‘아직은 공구를 집어 들 시기가 아니지.’
공방을 둘러본 것은 대목장의 취향을 알기 위해서였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는지, 아니면 저어하는 것이 있는지.
좋아하는 것을 되새기고, 싫어하는 것을 피한다면, 설득은 식은 죽 먹기다.
‘그나마도 반쯤은 넘어왔지만.’
돌고 도는 사이에 다시 대목장이 있는 곳으로 왔다.
“문갑(文匣)*이네요.”
최 옹이 돌아보며 말했다.
“용케 아는구나.”
“문갑이 문갑이지. 이걸 모릅니까?”
“대부분은 거실장이라고 부르지. 장인지 농인지도 구별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니까.”
대목장은 나무에 톱질을 하고 있었다.
어떤 나무냐면, 두 개의 오동나무 판재 사이에 느티나무 판재를 끼워 넣어 아교로 붙인 것 말이다.
톱으로 느티나무만 반으로 자르고 있었다.
‘저렇게 하면 대칭되는 무늬가 나와서 보기가 좋지.’
손은 많이 가고 귀찮은 과정이지만, 과거 한국에서는 못 없이 ‘짜 맞춤’으로만 목가구를 만들었다.
‘예전에 주먹장 맞춤을 잘 써먹었는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최 옹이 물었다.
“이게 뭐 만드는 것처럼 보이느냐?”
“문짝 만드시는 걸로 보입니다.”
내 말에 최 옹이 힐끔 쳐다보더니 웃는다.
“왜 이렇게 만드는지도 아느냐?”
“그렇게 만들면 느티나무 결을 대칭으로 볼 수 있죠. 산수화 같은 문양이 나오겠네요.”
“잘 아는구나. 민수 말을 들으니, 나무를 다룰 줄 안다던데, 한번 해보겠느냐?”
그 말에 톱을 건네받으며 물었다.
“전 여기가 소목장 공방인 줄 알았습니다.”
“왜?”
“보이는 것이 전부 가구들이니 말입니다.”
“나는 뭐 만날 천날 집만 짓는 줄 아느냐?”
일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터.
돈 있는 사람들은 대목장이 바빠서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일이 없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것도 할 만한 일이라야 하는 거지.”
“아무 일이나 하실 수 없다는 겁니까?”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왜요?”
당장 이빨 빠진 공기그릇부터 바꿔야 할 판에, 일을 가린다는 말인가?
“해달라는 사람이야 계속 있지. 허나 가려서 해야지. 안 그러면 다른 놈들은 뭘 먹고살라고?”
“다른 사람 걱정은 왜 합니까?”
“대목장만 목수냐? 내가 다 가져가면 다른 목수들은 어떻게 먹고 사느냐? 씨를 말릴 참이냐?”
‘헐!’
“내게 일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다 먹고살 만하거나 혹은 관공서다.”
“그럼 감독만 하셔도, 현장 몇 개는 거머쥐실 것 아닙니까?”
“그러면 돈은 벌지 몰라도, 일은 제대로 못하는 법이다. 돈에 눈이 멀었는데, 일에 눈에 들어오겠느냐?”
“그래도 먹고살아야 뭔가를 하실 거 아닙니까?”
당연한 나의 항변이었다.
돈 만지는 것을 저급하게 여겼던, 허생이 살던 시절도 아니고, 굳이 돈 때문에 일을 놓칠 필요까지 있을까?
“그러니 이렇게 소일거리로 가구라도 만들고 있지 않느냐?”
“그런 것치고는 전혀 괴롭거나 힘들어 하시지 않거든요.”
오히려 재밌는 일을 하는 듯한 얼굴이 아닌가?
“자네처럼 잘난 집 자재들은 그런 것을 알랑가 모르겠지만.”
그렇게 묻는 그의 눈에는 장난기가 다분했지만, 나는 발끈해 버렸다.
“누가 그럽니까? 잘난 집 자식이라고요?”
맨 땅에서 노력으로 이룬 결과를 그저 금수저라서 그렇다고 하면 누구라도 열 받지 않을까?
“그런 녀석이 아니면, 어찌 시장과 직통으로 통하고, 기자들을 오라 가라 하겠느냐?”
“시장이야 필요하니까 승낙한 거고! 제가 압박을 넣었습니까? 그리고 기사가 될 만하면 기자들 부르는 거지. 제가 대목장을 모시고 갈까요? 답답한 자기들이 와야죠.”
그게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내가 말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상대가 아니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리라.
“알았네. 알았어. 민수에게 들었네. 젊은 사람을 상대로 농담도 못하겠어. 허허허.”
‘농담은? 항상 진지하던 사람이.’
최 옹은 웃으며 손을 휘젓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왜 쪼그려 앉아서 가구를 봤는가? 큰아범 말마따나 허리가 아팠는가?”
*문갑(文匣)
: 안방의 보료 옆이나 창 밑에 두고 문서·편지·서류 등의 개인적인 물건이나 일상용 기물들을 보관하는 가구. 애완물을 올려놓아 감상하거나 장식하기도 한다.
재료로는 소나무·오동나무·오류목(烏柳木)·배나무·수창목(水蒼木)·먹감나무 등이 주로 쓰인다.
특히, 안방용으로는 화류목(樺榴木)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자개를 정교하게 세공하여 장식하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일부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