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98화
3학년 2학기(06)
“형, 그런데 정말 가능할까요? 사람이 모인다는 것도, 관심을 가진다는 것도.”
민수가 의문을 가질 만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능하다.”
왜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핏속에 혼이 잠들어 있다. 한국인에게만 전해오는 정신이 있다.’
“민수야. 혹시 꽹과리 잡아본 적 있냐?”
“네, 학교 다닐 때 잠시.”
“쳐보니까 어떻든?”
“그냥 치는 거죠.”
그냥 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흥이 나서 쳤을 것이다.
한국인의 몸이 그런 시스템이니까.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민감한 사람은 바로 반응한다.
“한국인만 할 수 있는 거다. 그 리듬하며 감각, 스스로도 생각해 보면 신기할 정도지.”
“그러고 보니까, 신명나게 쳤던 거 같아요. 처음 만져 보는 거였는데.”
체험을 해보면, 자신이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박힌 정서가 아닐까 추측한다.
“한국에서 살지 않은 사람들이나 외국인은 하지도 못해. 그런 피가 흐르지 않기 때문이지.”
피는 못 속인다고 하지 않던가?
반만 년의 역사를 통해서 끈끈하게 이어져 오는 정서는 아직도 우리의 핏속에 살아남아 있다.
‘그게 내가 전통으로 승부를 거는 이유라고.’
60억의 인구 중에 반만 년을 한 핏줄로 이어져 온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지금은 그런 말이 많이 사라졌지만, 한동안 내가 어릴 때는 한민족은 ‘단일민족’이었다.
수많은 외침을 받았지만, 그 와중에서 피가 섞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었다.
미국은 강대국이지만 단일민족은 아니다.
미국은 그 나름대로 다양성에서 나오는 파워가 있지만, 유니크함은 부족하다.
그걸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민족, 한민족.
그래서 그 피의 연결 고리도 명확하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거의 확신에 가까운 예측이었다.
그렇기에 60억의 1%인 한국인만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전통으로 세계와 한판 승부를 벌이려고 하는 것이다.
‘과연 승산이 있느냐고?’
꽹과리를 들고 신들린 듯 쳐본 사람이라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꽹과리만 치는 줄 아는가?
옆에 장구 소리에 맞춰서 고개도 빙글빙글 돌린다. 상모도 안 썼는데 말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한국인만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하려는 일의 특별성이다.
여기서 왜 내가 전통 공방을 열려고 하냐고?
단지 대목장이 마음에 들어서 신세 하나를 지워 놓으려고?
‘절대 아니지.’
난 이 공방을 내 공방으로 만들 계획이거든.
차후 자리가 잡히면 이 공방을 그대로 들어서 학교로 옮겨 버릴 거야.
대목장의 반대?
성공적으로 되면 최 옹이 알아서 그렇게 할 거야.
학교는 어마어마한 인재 풀이니까.
정말 자신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웃어주겠다.
‘자신 있으니 하는 거지, 없으면 손도 대지 않는다고. 나 김성훈이야.’
이 공방은 내가 만들려고 하는 ‘김성훈호’의 전신이 될 것이다.
대목장이라는 최고의 특등 항해사가 운전하는.
그동안 아들 내외와 밀담을 나누던 대목장이 물었다.
“그럼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뭔가?”
“그냥 공방을 열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게 약간의 권한만 주시면 됩니다.”
“그건 하는 걸 보고 결정을 하지.”
‘기다릴 것 뭐 있어?’
그 앞에서 전화기를 들었다.
“시장님, 김성훈입니다.”
-오, 김성훈이. 어쩐 일인가? 나보다 백배는 바쁜 사람이?
아마 현장에 왔었을 때,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았다고 저렇게 심술을 부리는 것이리라. 개구진 노인네 같으니라고.
“안 그래도 바쁜데, 저 끊을까요?”
등받이에서 급히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허, 이 친구가. 전화를 했으면 용건을 말해야지. 그게 예의 아닌가?
‘무슨 예의까지.’
“저 지금 경주에 와 있는데, 부탁 하나 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흠, 부탁? 김성훈이가 부탁? 거, 좋지!
말하는 투가 내게 신세를 지우겠다는 거였다.
급히 말을 돌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치인에게 코 꿰는 건 절대 사양이다.
“아뇨. 말을 잘못했습니다. 부탁이 아니라, 제안입니다. 하시려면 하시고 싫으시면 안 해도 되는, 그런 제! 안! 요.”
-에잉. 부탁이 좋은데. 하여간! 말이나 해보게?
시장이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경주 최기형 대목장이 공방을 오픈하려고 하는데, 그걸 울산의 정책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
원래는 그의 의중을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랬다가는 그걸로 밀당을 할 것 같았다.
‘괜찮아. 한 교수도 OK 할 건데 뭐.’
울산의 도시 계획은 한 교수가 꽉 쥐고 있었다.
-흠…….
고민이 길어지면 결론이 산으로 간다.
그에게 필요의 핵심을 찍어줘야 했다.
“울산은 공업으로 발전한 도시입니다. 그렇죠.”
-그렇지.
“그런 만큼, 문화적 콘텐츠가 부족합니다. 특히나 전통 문화에 대해서는 말이죠.”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공업화하기에 바빠서 다 묻어버렸겠지.
-그건 인정하지.
“경주는 그 반대죠. 그걸 잘 이용하면, 시민들에게 점수를 따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극히 내 중심의 말이었지만, 시장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럴 듯하네. 뭐 구체적인 건 없고?
“방금 생각이 났는데, 무슨 구체적인 안이요? 며칠 뒤에 안 짜서 올릴게요. 그리고 그 이상은 나중에 울산 가서 말씀드리고. 이거 어때요?”
나중에 공방을 통째로 들어서 대학으로 가져가겠다는 말을 대목장 앞에서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시장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누구 부탁인데, 안 들어줄 수 있나?
“아참, 부탁 아니라니까요.”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구체적인 건 나중에 이야기해 주기야.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일단 승낙하신 겁니다.”
-알았네. 내 그렇게 말해 두겠네.
“경주 시장님 납득시키는 건 알아서 하시고. 신문사에도 그렇게 운 띄워 놓으세요. 며칠 후에 기자회견 한다고.”
-흐흐흐. 알았어. 경주 시장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얼른 와라. 얼굴 보고 얘기하자.
좋은 일로 매스컴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시장으로서도 환영할 일이었다.
대목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들으셨죠?”
최 옹이 넋이 나간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진행할 겁니다.”
“될까? 경주 시장 놈한테 몇 번을 말했지만, 콧방귀도 안 뀌던데.”
울산 시장과 경주 시장은 레벨이 다르다.
인구, 소득, 공업화 등등, 여러 측면에서 말이다.
힘없고, 돈 없는 경주 시장에게 말해봐야 퇴짜밖에 더 맞으랴.
그가 보기에는 내가 시장과 다이렉트로 통화한다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 될 겁니다. 확실히.”
“제발 그랬으면 원이 없겠네.”
최 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조간울산’ 김 기자님?”
상대도 대번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얼마 전에 현장 안전교육 때문에 통화한 적이 있었으니, 더 잘 기억할 것이다.
“저번에는 신세를 졌었습니다.”
-신세는 무슨. 나야 고맙지. 그걸로 또 한 건 건졌잖나?
그는 현장 안전을 기사화했었다.
‘스타타워’ 현장의 안전교육에 비해 다른 현장은 어떠네 저떠네 하면서 한 번 크게 히트를 쳤었다.
‘이렇게 주고받으면 되는 거지. 뭐.’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건수 하나 드리려고 전화드린 겁니다.”
그도 귀를 쫑긋 세우며 물었다.
-뭔가? 말해보게. 연필 들고 있어.
“경주에 최기형 대목장이라고 아시죠?”
-당연히 알지. 기자가 그거 모르면 이상한 거야! 그런데 왜 그분이 무슨 스캔들이라도.
‘쯧쯧. 하여간 생각하는 것 하고는.’
속으로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아니요. 이번에 공방을 공개적으로 오픈하려고 하는데, 울산과 경주의 합작 사업입니다.”
-그래?
“조만간 시장님이 기자회견 할 겁니다.”
-나는 전혀 몰랐는데?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죠. 방금 제안한 거니까요.”
-그래?
“그래서 기자님한테만 연락드린 거예요.”
그의 웃는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고마워. 고마워. 그래서?
큰 건수가 아닌 것 같자,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거 한 번으로 끝날 거 아닙니다. 제대로 기사 날리셔야죠. 그날 시장 인터뷰한 거 그대로 올릴 겁니까?”
-아니지. 그날 대목장님, 인터뷰하러 가야지.
“그날 인터뷰하러 오면 대목장 없습니다.”
-그래? 정말이지?
‘일부러라도 자리를 비울 거거든.’
같은 특종이라도 밑에 깔린 소스가 많으면 기사의 질이 달라지는 법.
십수 년간 기자 생활을 한 그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다른 신문에는 없는데, ‘조간울산’에만 있다?’
적어도 며칠은 편집장에게서 웃음을 볼 수 있으리라.
노고에 대한 치하도 있을 테고 말이다.
내가 전화한 이유에 대해 그가 눈치를 챘다.
-역시 성훈 씨. 의리 있어!
“그래서 언제 오실 겁니까?”
-음. 자료 모으고 준비하면, 3시 전에 거기 도착할 거야. 그동안 딴 기자들한테 전화하면 안 되는 거 알지?
그는 부탁 아닌 엄포를 놓으며 전화를 끊었다.
신문지상에 광고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돈은 돈대로 들고, 성과는 없을 것이다.
요점은 사람들이 보게만 하면 된다는 것.
“이제는 우리가 준비할 차례입니다.”
“음, 난 당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구먼.”
머리 회전은 며느리가 더 빨랐다.
“아버님, 기자들이 알아서 잘해주겠지요. 그리고 울산 시장이 밀어준다는데, 안 될 게 있겠어요?”
최 옹에게 물었다.
“제게 권한을 주시겠습니까?”
잠시 생각을 하던 그가 말했다.
“그러도록 하게. 집안의 규율을 흩뜨리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뭘 해도 좋네. 그리고 궁금한 게 있으면 큰아범이나 어멈에게 물어보도록 하고.”
그의 허락을 받았다.
공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전화가 왔다.
아까의 김 기자였다.
-성훈 군. 사람 하나 더 데려가도 되겠나?
“누굽니까?”
-저번에 안전교육 자료할 때, 도움 많이 준 친군데, ‘울산신문’ 홍 기자야. 그때는 자네가 알면 기분 나쁠까 봐 아무 말도 안 했어.
내 기분을 살피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교수 논문이 나왔을 때, 진 교수의 편에서 안 좋은 기사를 썼던 곳이 ‘울산신문’이었다.
물론 보복은 해줬지만, 앙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울산신문’이 김 기자를 통해 화해를 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움이 되겠다고 말이다.
‘이제 슬슬 고삐를 풀어줄 때도 되었지. 벌써 그 일이 있은 지, 몇 달이 지났으니.’
“그래요. 데려오시는 건 좋은 데, 다른 주제를 가져와야 할 거예요. 같은 기사를 낼 거면 굳이 둘이나 부를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래, 알겠네. 어떤 게 좋을까?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하게.
‘그래, 이렇게 나오면 편하지.’
그로서도 좋은 방법이리라.
제보자의 원하는 바를 안다면, 기사의 방향을 정하기 편할 테니까.
“대목장의 행적을 조사해 보라고 하세요.”
-행적? 범위가 너무 모호한데?
“그분이 전통을 잇기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어떻게 돌봤는지 하는 그런 것들요.”
김 기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시간이 촉박할 테지. 그때 그 신문사에서는 거의 몇 달을 투자해서 알아냈던 것 같던데.’
약간의 힌트를 줘야 했다.
기사화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나주에서 자개장을 만드는 박 아무개 씨가 있는데, 그분이 맥이 끊어질까 고민할 때 재능 있는 제자를 이어주고, 자금난에 시달릴 때, 금전적 도움을 줬다. 아무런 대가없이 말이죠.”
그 외에도 내가 아는 대목장의 숨겨진 행적 몇 가지를 읊었다.
“쩝, 미담은 기사거리가 안 되려나요?”
김 기자가 혀를 내두른다.
-허. 사람들이 궁금해 할 가치가 있다면, 무조건 기사거리지.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고 있어? 아니 그 전에, 방금 말한 그거? 팩트 맞아?
그 기사는 십년 뒤에나 나올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에 대한 검증만은 철저했기에, 말년에 최 옹의 재평가가 이루어졌던 거다.
‘최 옹이 자기 입으로 말한 건 하나도 없었지.’
오히려 신문사에서 철저히 검증한 거였다.
그걸 모른다고 해도, 내가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충분히 이상한 일이었다.
“그냥 소문일 뿐입니다. 그게 팩트인지 검증하는 건 그쪽에서 하셔야죠.”
-알았네.
“그렇게까지 소스를 줬는데도, 못 살리면 다음에는 절대로 기사 안 줍니다.”
이렇게 엄포를 놓으면 최대한 많은 것을 뽑아낼 것이다.
‘내가 말한 것만 제대로 파도, 충분히 임팩트가 있을 거야.’
명성만으로는 다른 두 명의 대목장을 훨씬 앞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엄포를 놓았다.
“제대로 파보라고 하세요. 그분의 행적은 양파 같으니까.”
-오호, 그래? 이건 구미가 당기는데?
“그리고 ‘울산신문’! 이번에는 확실히 하라고 하세요. 또 그딴 식으로 기사를 쓰면…….”
-에이, 절대로 안 그럴 거야. 그 때 편집장 쫓겨나고 난리도 아니었으니까. 그 이후로 자네 관련 기사는 최대한 사실에 맞게만 쓴다니까. 내가 단단히 주의를 줄 테니, 그건 염려 말게. 이거 조사하려면 같이 갈 시간 없을 것 같은데?
“굳이 오실 필요는 없고, 기사 나오면 인쇄하기 전에 저 좀 보여 달라고 하세요.”
엄밀히 말하면 기자의 권리에 대한 침범이다.
“제 의도와 전혀 다른 기사가 나온다면, 굳이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물론 오보의 후폭풍을 혼자 감당할 수도 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김 기자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알았네. 그 말 꼭 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