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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97화 (197/427)

건축의 신 197화

3학년 2학기(05)

최 옹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래, 말 잘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거지.”

그가 매섭게 말을 이었다.

“어떤 방법이 있느냐?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제자를 찾기 위해 팔도강산을 쫓아다녔다. 내 뒤를 이을 만한 자가 있으면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았고, 내 뒤가 아니다손 치더라도, 다른 기술을 이을 녀석을 만나면 그 또한 이어주기 위해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좋아서 한 짓이다. 내가 좋아 사서 고생을 했으니, 누구를 원망할 일이 아니지. 한데 이것이 뭐냐?”

작금의 현실이 뭐냐는 말이다.

하늘이 무심하지 않다면, 그의 노력에 대해 일말의 보상이라도 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리라.

“이런 상황인데도, 내가 이 길을 누군가에게 강요를 해야 한다는 말이더냐? 큰아범은 이 일에 맞지 않으나, 아직도 나를 보필하며 일하고 있다. 제가 보기에도 아비인 내가 측은했던 게지.”

민수 큰아버지가 손사래를 쳤지만, 개의치 않고 그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작은 녀석은 재능이 있었음에도 이 상황이, 이 일이 싫어서 도망쳤다. 과연 이런 상황인데도 이 일을 이어야 한다는 말이냐? 그리고 방법이 있기는 하다는 말이냐?”

수십 년을 사람을 찾아 헤맸음에도 후계자 하나를 찾지 못했다며, 그가 울분을 터뜨렸다.

그러니 그의 눈에는 내가 현 상황을 모르고, 그저 어린놈이 건방을 떠는 것으로 보였으리라.

그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어르신,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예전처럼 알음알음으로 사람을 구하던 시대가 아닙니다. 인터넷으로 구인을 하는 시대입니다.”

“흥. 그러니 구시대의 유물인 내가 땅속으로 기어들어가겠다는 것이 아니냐? 내 대에서 이 못난 짓을 끊겠다는데, 내 말이 뭐가 잘못되었냐?”

엄준한 훈계로 시작된 그의 말이 마지막에는 비통함마저 서려 있었다.

“내가 겪은 고난을 자식의 대로 넘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내가 아비로서 자식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도리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업신여김당하는 이 일을 내 대에서 끊겠다는 말이다.”

단호하지만 슬픈 그의 의지가 느껴졌다.

“어르신의 마음을 모를 리가 있습니까? 존중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면, 사람도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수십 년 인생의 관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어느 순간 방향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그의 기술을 고루한 것으로 취급하여 버릴 것인가? 그러면 반드시 끊어진다.

“다만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흥.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게나. 나는 헌 부대 끌어안고 갈 테니.”

산지에서 매년 생산되는 포도주는 그 맛과 향이 다르다고 들었다.

귀하게 대접받는 것은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귀해져서 막대한 프리미엄이 붙는다.

내게는 눈앞의 대목장이 그런 인물이었다.

세월이 지나면 점점 귀해져, 더 이상 먹지 못하는 포도주처럼 말이다.

세월이 만든 작품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이런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까?’

비록 그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집쟁이라고 해도, 나는 그런 고집쟁이가 좋다.

남들이 못하는 일을 하면서 고집 좀 세우면 어때?

내게 더 좋은 물건, 맛있는 음식을 보여 준다면 그를 안고 춤이라도 추리라.

“저는 어르신의 일을 이을 생각이 없습니다.”

“흥. 아무나 이을 수 있는 줄 아는가? 내 눈에 들어야 그 기회도 생기는 것이지.”

그가 어이없다며 코웃음 쳤다.

전통을 이을 생각도 없는데, 여기를 왜 왔고, 왜 자신을 회유하느냐는 의미이리라.

‘오해의 소지는 없애는 게 좋겠지.’

“전통의 정신은 이어가되, 대목장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내가 쓸데없는 말이 길었던가?

최 옹이 내게 물었다.

“거두절미하고 묻겠네. 방법이 있다고 했지? 그게 뭔가?”

나를 노려보며 묻는데, 노여움이 어려 있었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반대했기 때문이리라. 자격도 없으면서.

평생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온 대목장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빌어서라도 했고, 하기 싫으면 만금을 바쳐도 손대지 않았던 사람이다.

장인의 고집이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

아니, 그 정도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그의 고집스러운 음성을 들으며, 오히려 내 얼굴에는 미소가 고이고 있었다.

그의 음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한 방울 한 방울 고이는 샘물처럼.

‘왜 나는 지난 삶에서는 이런 재미를 몰랐을까?’

왜 이런 고집쟁이들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을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면 이들보다 정감 넘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대목장의 안타까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옆에서 보는 내가 그럴진대, 실제로 평생을 몸 바친 사람은 어떤 기분이랴?

‘당신의 그 기술, 내가 살려드리지.’

일방적으로 퍼주면 내게 뭐가 남느냐고?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내 눈앞의 이 사람이 실리만을 탐하는 자였다면 이런 비루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대목장의 집에 이 빠진 그릇이라니, 말이 돼?’

높은 자리에서 이래라 저래라 손가락으로 지시했겠지.

돈이라는 돈은 다 제 손아귀에 거머쥐고 말이다.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하는 그 쓰레기들을.

‘하나 이 남자는 그렇지 않아.’

마지막 가는 길에, 그의 도움을 받은 수많은 지인이 그를 애도하며, 명복을 빌어줄 것이다.

그만하면 짧은 인생, 잘 산 것 아닌가?

그보다 더 멋있는 인생이 있겠는가?

‘이런 사람이 빚지고 살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걸어온 길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남한테 빚지기 싫어하는 사람은 죽어도 그 빚을 갚아야 한다.

상대가 빚 갚기를 원하든 그렇지 않든, 그게 죽을 때까지 한으로 남을 테니까.

‘이런 사람에게는 아무리 퍼줘도 아깝지 않아. 지금의 작은 빚이 눈덩이가 되어 돌아올 테니까.’

빌어서 해주는 것은 빚이라 생각은 될지언정, 은혜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단지 거래일 뿐이다.

거래는 갚으면 끝나지만, 마음의 빚은 갚아도 갚아도 그 끝을 알 수 없다.

‘진짜 빚은 마음에 새기는 거지.’

솔직히 나는 대목장처럼 살고 싶었다.

타협 없이 제멋에 살고, 제멋에 죽는 사람.

내가 대목장을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대목장처럼 이런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가 원하는 제자는 손재주 있는 사람도, 능력이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처럼 이런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 전통 건축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겠지.’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

얼마나 교활하고 기회주의자인지.

그리고 얼마나 게으르고 멍청한 놈인지.

‘지난 삶의 내가 처절할 정도로 증명했거든. 지금 이렇게 필사적으로 살고 있는 건 지난 과거를 부정하기 위해서지. 내 인생은 헛되지 않았다고,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원래대로라면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기 위함이고, 궁극적으로는 죽을 때 대목장처럼 죽기 위함이라고.’

그의 죽음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가슴에 남았다.

죽기 직전에야 그의 행적이 알려졌지만, 그의 삶은 사람들에게 파문을 일으키고 갔다.

하나 그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그것을 했던가?

아니다.

그의 말처럼 그저 자신이 그것이 좋았고, 후배들과 어려운 장인들 돕기를 즐겼던 사람이다.

‘사람은 살이 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법이거든.’

아무리 휘황찬란한 묘를 만들고, 비싼 향을 피워도 그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가 저세상으로 갈 때, 얼마만큼의 사람이 그를 진심으로 마중하느냐가 아닐까?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개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고.

‘이런 사람이 알려지지 않으면, 누구를 알리란 말이야?’

진정한 어른으로, 깨어 있는 양심으로 그가 살아 있을 때 존경받게 하고 싶었다.

그게 그가 원하는 것이든, 아니든 말이다.

‘어차피 그 자신도 제멋대로 살았는데, 나라도 못할 이유가 어디 있어?’

인생은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남이 가르쳐 주는 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정답을 아는 사람도, 그 인생을 두 번 사는 사람도 없으니까.

그리고 그 삶의 길을 정했다면, 최선을 다해 끝까지 관철하는 게 답이 아닐까?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픈 욕망은 없으나, 내 묘비에 이런 글자를 새기고픈 욕심은 있다.

‘김성훈. 제멋대로 살다가, 멋스럽게 죽었다.’

그 한마디면 된다.

‘대목장. 당신이 대한민국 전통의 중추가 되어주어야겠소. 당신이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게 내가 원하는 거니까.

“제가 홍보를 하겠습니다.”

“저자거리에 나가서 내 작품을 광고하겠다는 말인가? 나 잘났다고, 이렇게 잘 만든다고 자랑이라도 할 참인가?”

그게 어때서!

자기 PR 시대인데?

하지만 그의 비위를 거스를 생각은 없었다.

그다지 보기 좋은 방법도 아니었고.

‘그리고 쓸데없이 돈 드는 건 저도 싫다고요.’

그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어르신은 공방을 공개만 해주시면 됩니다.”

“공방? 그걸 보여서 뭐하게.”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겁니까?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전통의 일인전승? 개나 먹으라고 해.

무슨 귀한 거라고, 남에게 숨기는 것인가?

‘아끼다가 똥 되는 건, 비단 음식 얘기만이 아니라고.’

남들도 알아야 그 가치를 알아보는 거다.

아무리 진주라고 말해도, 그게 진주라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면 옆집 개똥보다 못하다.

개똥은 거름이라도 하지.

“흥. 그런 게 있을 리 있나? 나는 떳떳하네.”

“그럼 공개하십시오.”

“흥. 좋다. 공개해서 어떻게 할 요량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이라면 대번 사단을 낼 얼굴이었다.

“거기서 체험 학습을 할 겁니다.”

“뭐? 체험 학습? 애들 데리고 노닥거리는 것?”

최 옹의 턱수염이 살짝 떨렸다.

‘고작 애들 놀림감이 되기 위해서 공방을 공개하라는 것이냐?’ 하는 속내가 들리는 듯했다.

“어르신이 원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정신을 이어줄 사람.”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이 있는데?”

“돈을 벌려고 하면 돈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고, 사람을 구하려 하면 사람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당연하지.”

“그러나 그건 하책이지요. 상책은 그들이 스스로 오게끔 해야 합니다.”

“오게끔 할 수 있다는 말이냐?”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아직 활성화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활성화만 시키면 별의별 사람이 다 온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 일이고, 어르신은 거기 오는 사람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찍으시면 됩니다.”

“엥? 정말 사람들이 올 거라고 생각하나? 나는 그런 짓을 안 해본 줄 아는가?”

그의 말에 굳이 대답할 필요를 못 느꼈다.

당연히 올 거니까.

“나이 지긋한 노인일 수도 있고, 눈빛 초롱초롱한 아이일 수도 있겠지요.”

“왔다고 지차.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된다는 확신은?”

‘그걸 위해 삼고초려 하는 건 어르신이지, 제가 아닙니다. 찾아주는 것만 해도 어딘데?’

“하지만 그건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

“어르신처럼 그런 삶을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자신의 천직이라는 것을.”

천직이라는 말에 최 옹의 눈 밑이 씰룩거렸다.

“천직이라는 말의 의미는 대목장께서 더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제야 내 말뜻을 알아챈 것 같았다.

“천직이란 천형과 같아서, 벗어나기 어렵지. 암 그렇고말고.”

“이 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게 해드리죠. 나중에는 문지방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요.”

“허허, 그렇게만 된다면야.”

결국은 방법의 문제다. 사고의 문제이기도 하고.

“어르신. 사람들은 평생을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이건 그 사람들,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겁니다.”

최 옹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작가가 되리라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전통장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찾아간다.

바다거북이 저 태어난 곳을 찾아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찾지 못한 사람은?

평생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길을 가게 되겠지.

그저 부모가 정해준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고, 부모를 기쁘게 하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것에 스스로를 구속한 채 말이다.

“전통이 돈이 안 되고, 출세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겠지. 쓰레기 청소부보다 못해서야.”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음.”

고심하는 대목장에게 며느리가 슬쩍 운을 뗀다.

“해보시죠. 아버님. 그렇게 후계를 찾으셨잖아요?”

그리고 말을 이었다.

“손해 보실 일은 없다고 생각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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