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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93화 (193/427)

건축의 신 193화

3학년 2학기(01)

“흠.”

잠시 내게 눈길을 주더니, 턱에 팔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생각하는 사이사이 입술이 씰룩이는 걸로 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훗, 전통의 상품화라.”

나를 지긋이 쳐다보더니, 찻잔을 들었다.

“좋은 아이디어군. 젊어서 가능한 생각인가?”

“총장님도 여전히 젊으십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대를 하지 않는 것부터가 달랐다.

‘적어도 꼰대는 아니라는 소리지.’

저 연배라면 대놓고 반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잔소리는 각오하고 있었거든.

‘설득도 통하는 상대에게나 하는 거지. 휴.’

다른 사람도 아닌, 총장을 말발로 감당할 생각을 하니 등에 식은땀부터 나오지 않았던가?

우리 학교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총장을 꼽는다.

“나도 늙은 게지. 자네가 말할 때까지는 생각도 못했으니 말이야.”

그러나 그 눈빛은 늙은 기색이 없었다.

새로운 먹잇감을 잡은 매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일단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총장은 손을 내저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데 뭘. 알아주지 않는 전통은 세월에 묻힐 뿐이야. 도자기도 자꾸 꺼내서 닦아줘야 빛이 나는 법일세.”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총장이 물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일단 저는 전통을 판매할 곳으로 현재를, 그리고 그것을 제작할 곳으로는 우리 학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 제안은 총장님께 처음 드리는 겁니다.”

“그럼 아직 현재 쪽은 이 사실을 모르겠군.”

“말만으로 그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먼저 물건이 있어야겠지요.”

“그렇지. 어설프게 말만 했다가는 홀라당 털려 먹을 테니 말이야.”

자신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총장이었다.

‘사실 당신한테 말하는 것도 모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총장은 나를 밀어준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했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동반자였다.

전통학과 관련자들을 몽땅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별개로 하고 말이다.

아직은 총장보다는 한 교수가 믿음직했다.

그는 흥미가 돋는 듯, 진지하게 대화에 응했다.

“음, 그래서 학교에 전통 건축학과를 만들고, 그 인재들을 배출해 달라?”

“이번 공모전에서는 제가 아는 전통기술자들을 전부 끌어들일 겁니다.”

“오호라! 그렇다면 대목장 최기형 옹도 그 일환이겠군? 민수 군이 거기 왜 가 있나 했더니.”

‘그럼 그렇지.’

알고 있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내가 총장에게서 정작 얻어야 할 진짜 알짜배기는 저 정보력의 근원일 거야.

“그분만으로는 다양성이 부족합니다.”

“흠……. 그런가?”

“거기서 저는 총장님께서 가진 인맥을 총동원해서 구색만 갖춘 학과가 아니라, 바로 제작이 가능한 공방을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는?”

“제가 현재건설에 들어가서 만들 프로젝트팀에 그 학생들을 불러서 실습과 제작을 병행할 겁니다.”

“가능하겠나?”

이번에는 우려가 담긴 목소리였다.

이걸 위해서 현재에다가 작업을 해놨는데, 안 되면 강제적으로라도 되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가진 주식을 몽땅 팔아서 현재건설로 갈아타면 말발 좀 먹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겠지.

총장에게 말했다.

“적어도 그 친구들이 취직 걱정은 하지 않도록 할 자신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학과가 만들어졌을 때, 실현 가능한 이야기겠죠.”

“산학협동이라는 말이군.”

“네, 그렇죠.”

긍정의 대답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이걸 미끼로 총장과 협상하려 했었다.

학생들이 대학에 바라는 것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취업이 아니던가?

“그건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군.”

그의 말에 확신이 생겼다.

지금까지의 총장이 간만 본 거였다면, 지금은 물기 직전이었다.

총장이 입가를 올리며 물었다.

“그것은 공모전을 성공적으로 끝낸다는 전제하에 하는 말일 테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미래의 고객들에게 어필할 카탈로그가 되겠죠. 자연스레 학교 홍보도 될 테구요.”

학교의 지원과 외부에서의 구매의사가 발생하면 전통 건축은 자생력을 갖게 된다.

돈이 되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아니, 돈이 되는 일이라면 오히려 뛰어난 재원이 스스로 달려든다.

그건 학과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내가 심리적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 앉아서 그 재원들을 활용할 수 있는 거지.’

다른 말로 앉아서 꿀 빠는 거였다.

내 생각이 너무 야비한 것인가?

아이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가?

괜찮아.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오히려 내 꿀을 딴 사람이 빨려고 덤비는 것을 경계해야 할지도 몰라.’

총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학교 입장에서도 좋은 이야기지.”

아직 총장은 답변을 주지 않았다.

그는 답변 대신 질문을 던졌다.

“구체적인 안을 들어볼 수 있겠지. 나름 후원자가 아닌가?”

구체적인 안?

‘내가 너무 말을 빨리 꺼낸 건가?’

좀 더 일을 구체화시킨 다음에 꺼냈어야 했나?

아니, 다른 사람이었다면, 내 아이디어에 투자를 결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나를 떠보고 있었다.

총장은 눈썹을 으쓱이며, 내게 대답을 종용했다.

그의 말에 미소로 답해줬다.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내 속을 다 파악하려는 건가?’

적당히 일부만 말하기로 했다.

“가는 방향은 정했습니다만, 아직 구체적인 안은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흥미가 떨어질 터.

흥미가 떨어진 것에 지속적인 투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고객은 정해져 있죠.”

그들에게 그것을 팔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구미에만 맞도록 물건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총장이 눈을 빛냈다.

“아랍의 왕자들? 그리고 유럽 여러 곳에 있는 인맥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이 넘어간다.

‘역시 만만치 않아.’

“그리고 다른 곳도 개척을 하겠죠. 그건 고작 일 년 만에 만든 고객들입니다.”

발끈한 내 대답에 그는 입꼬리를 말았다.

“대단하다는 건 인정하지.”

그가 말을 이었다.

“다른 고객을 만들기 위해 해외를 나돌아 다닐 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아랍의 왕자들만 해도 작은 나라 예산만큼의 돈이 있다고. 절대 작은 고객이 아니다.

‘왜 내가 발끈하고 있는 거지?’

나름 잘나간다고 생각했고, 막힘없이 전진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미래를 알고 모름의 차이가 아니라, 내 노력의 결과였다.

그리고 지금 하는 말은 앞으로 내가 만들 결과였다.

‘단지 내 말에 딴지를 걸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내 말에 반박을 했다면, 나도 반박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총장은?’

다르다.

이 사람은 허언을 하지 않는다.

찻잔을 내려놓으며 총장이 말했다.

“나는 고수를 좋아한다네.”

고수?

‘무림의 고수? 그런 것?’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입술을 올리며 웃었다.

‘침묵은 금.’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할 때는 이게 최고다.

알아도 모른 척! 모르면 입 다물고.

몰라도 아는 척했다가는 바로 바보가 된다.

그리고 총장 같은 능구렁이 앞에서는 어떤 말을 하든 진위는 드러난다.

이어지는 말에 내 착각임을 알 수 있었다.

“쌀국수를 좋아하다 보니, 그걸 먹게 되었다네.”

그의 의도를 알아채기 위해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처음 먹었을 때, 어땠는지 아나?”

고수는 호불호가 지극히 갈린다.

그 화장품 냄새 같은 특유의 향이 원인이다.

지금 시절, 한국에서 고수를 접할 일은 거의 없다. 아니, 아직은 그 단어조차 생소할 것이다.

‘역했겠지.’

“역했다네. 그 독특한 향이 말일세.”

“그런데 왜 그걸 좋아하게 되었을까?”

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베트남 사람들이 원래 먹는 것은 어떤 맛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더란 말이지.”

쌀국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그런 호기심이 생겼을까?

처음부터 고수가 들어 있는 쌀국수를 먹었다면?

“그래서 내가 물었지. 왜 처음부터 그것을 내어놓지 않았냐고. 주방장이 그러더군. ‘모르는 사람이 처음부터 고수를 접하면, 쌀국수 자체를 입에 대지 않습니다’라고.”

그의 말에 답했다.

그가 말하려는 바가 뭔지 감을 잡았다.

“너무 강한 특색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이 생기기도 하죠.”

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고수를 아주 좋아한다네.”

지금 내 앞에서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노인은 고수였다.

능글맞게 웃으며, 내게 답을 종용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묻고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있는 전통 건축, 그 자체로 내다 팔 수 있겠느냐고.’

‘고수 그 자체보다는, 먼저 고수를 뺀 쌀국수를 먹이는 것이 고수를 먹게 하는 방법이 아니냐고.’

한국인에게 정통 베트남 쌀국수를 팔려고 하면 어떻게 하는 게 답이냐고.

답?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전통에서 뺄 게 뭐 있나?

뺄 수 없다면?

더하는 수밖에.

‘답은 퓨전이죠.’

하지만 지금 말할 수는 없다.

그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테니까.

결국 막힐 테지. 지금도 그가 어떤 질문을 던질지 예상할 수 없으니까.

‘어설픈 말 천 마디로는 그를 설득할 수 없어.’

한 장의 종이가 그를 납득시키는 데는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착각하는 것, 또 한 가지.

지금은 한류가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것.

한류의 바람을 타고 건축 한류를 팔아먹을 생각만 했지. 정확히 언제 시작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겨울연가가 시작될 때였던가? 욘사마?’

하나 실제로 한류가 확산되는 것은 그 이후였지.

‘아까 말처럼 내가 바람을 만들어야 하는 거야?’

알면 찾아도, 모르면 찾지도 않는다.

우리 것이 좋다는 것을 알기 전에 미리 우리 것이 있다는 것은 먼저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알려야 한다.

‘고수 뺀 쌀국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알아서 찾아온다.

예전의 한류 바람 또한, 예상치 못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대장금’을 보고 나니, 한국 음식이 먹고 싶어졌을 테고, 배용준을 보니, 그가 있었던 곳을 가고 싶어졌을 테지.’

잠재력이 있던 것들이 월드컵의 열기를 받아 폭발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대본도 안 나온 ‘겨울연가’를 찍자고 덤빌 수도, ‘대장금’을 보라고 땡깡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

건축으로 그 바람을 불러일으킬 방법을 찾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내가 치밀하지 못했어.’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늙은 생강’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무서운 노인이었다.

그는 반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숙제를 던져주었다.

총장이 말했다.

“자네 계획에 대해 구체적인 안을 준비해 오게.”

그에게 양볼 가득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죠. 으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을까?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기대하지.”

“해오면, 아까 제가 드린 제안은 승낙하시는 겁니다.”

“약속하지. 내가 만족할 만한 기획안을 가져오면, 내 인맥과 역량을 총동원해서 일 년 안에 제대로 된 학과 하나를 신설하지. 물론 자네 마음에도 들 거야.”

나도 질 수야 있나?

총장의 사람으로만 채워놓으면, 그건 내 것이 아니다.

“물론 제가 데려온 사람들도 확실히 자리를 주셔야 하구요.”

총장은 대뜸 받아들였다.

“당연하지.”

“그럼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문을 여는 내게 그가 말했다.

“음식을 팔고 싶으면 말일세. 먼저 코를 자극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게나.”

“명심하도록 하죠. 총장님.”

총장실을 나서는데, 그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지. 그런 좋은 아이템을 말이야. 나도 늙었어.”

‘늙기는!’

힘이 철철 넘치는 나를 넉다운시켜 놓고는 하는 말이라니.

이거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있나!

“젠장. 내가 일을 만들었네. 만들었어.”

지극히 내 기준의 말이겠지만, 탁월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저런 사람이 사업을 하지 않고,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것부터가 아이러니야.’

사람이 늙으면 고루해지게 마련인데, 총장은 생각부터가 달랐다.

오히려 그에게 따라잡힐 걱정이 먼저 들 정도이니.

그길로 한 교수 사무실로 향했다.

한 교수는 없겠지만, 내 쉴 자리는 있을 터였다.

사무실에는 내게 또 하나의 숙제를 줄 사람이 조용히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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