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192화 (192/427)

건축의 신 192화

스타타워 현장(18)

현장을 나가는 시장을 보며 성 사장이 코웃음을 쳤다.

“찍기는 내가 먼저 찍었는데, 너구리같은 양반이 어디다가 침을 발라?”

박 소장이 물었다.

“저. 사장님?”

“응. 왜 그러나?”

“죄송합니다. 미처 제가 김 기사에게 귀띔을 했어야 했는데.”

“신경 쓰지 말게. 나야말로 자네에게 미리 말했어야 하는데, 갑자기 방문을 했으니, 당황했지?”

아까 뜬금없이 사장이 시장을 대동하고 들어왔을 때는 얼마나 뜨끔했던가?

하지만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 현장이야, 항상 이런 상태이니, 누가 와도 괜찮습니다.”

“알아. 나도. 그 녀석이 있는 현장이 어지간하겠어?”

소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까도 인연이 있다고 시장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혹시 그 소문이?’

“혹시 김성훈 기사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사장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서렸다.

“알지. 아주 잘 알고말고.”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지, 염려를 하면서도 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곽 이사도 성훈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함부로 하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었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소문.

‘그룹 내에 숨겨진 로열패밀리가 있다.’

정확히 진위를 파악할 수야 없겠지만, 잘만 에둘러 물으면, 진위파악을 위한 단서 정도는 얻을 수 있으리라.

그것은 자신의 미래의 행보를 결정한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혹시 어떤 관계이신지?”

하지만 사장은 성훈이 있을 법한 층을 올려다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저놈이 내 아들이라는 소문이 돈다면서? 혹시 그 소문 때문에 물어보는 건가?”

소장이 화들짝 놀라며 부정했다.

“아니,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그 말에 사장은 웃으며, 조용히 뇌까렸다.

“훗. 저놈한테 잘 보여. 조만간 자네 위에 있을 놈이니까.”

소장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내 위면? 못해도 이사급? 일반인은 그게 절대 불가능하지.’

사장도 속으로 읊조렸다.

‘나도 저놈이 내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내 아들들은 하라고 노래를 불러도 안 하는데, 녀석은 알아서 척척 제 길을 만들어가고 있단 말이지. 누군지 몰라도 자식농사는 잘 지었네.’

사장이 흐뭇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기특한 놈이란 말이야.”

사장의 입장에서야 지나가는 말이지만, 말단 소장이 어디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이거 곽 이사님께 알려드려야겠는 걸. 아니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몰라.’

***

서울로 가는 길에 김 비서를 태웠다.

“왕 비서님은 뭐라고 하시던가?”

“잘하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래? 다른 말씀은 없으셨고?”

“그것 말고……. 아! 울산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차후 한국의 건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니, 주시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판단이시겠지.”

“아마도 그렇겠지요. 꼭 필요하니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왕 비서님의 추측입니다만.”

“말해 보게나.”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뭐라고?”

“그 흐름을 시장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갑자기 시장이 바뀌었을 리가 없다. 그 흐름을 주도하는 녀석은 숨어 있으니, 그걸 잡아내라고 말입니다.”

사장이 피식 웃었다.

“그래?”

“왜 웃으십니까?”

“아. 아까 그 방향의 주도자를 본 것 같아서 말이지.”

“네?”

김 비서가 고개를 쭉 내밀었다.

“놈은 시장을 애 다루듯이 하더군. 상당히 충격적이었어.”

“그런 겁대가리를 상실한 인간이 있다는 말입니까? 안전모 같은 놈이 또 있는 모양이군요.”

“크크크. 자네는 한결같아서 참 좋아.”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놈이 그놈이야.”

말귀를 알아먹지 못해 비서가 어리둥절했다.

“그놈이 그놈…….”

짝.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이마를 쳤다.

“정말 그놈이 그놈입니까?”

“그래. 이제는 어중간한 기업 사장은 놈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겠더라고.”

시장과 성훈이 나누던 대화를 간략하게 김 비서에게 말해주었다.

“묘한 일이야!”

“뭐가 말씀이십니까? 사장님.”

“녀석과 엮이려고만 하면 내 존재감이 흐릿해진다는 말이지.”

“그건 아닙니다. 그놈이 버르장머리가 없는 겁니다.”

하지만 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은가? 녀석과의 첫 만남에서도 그랬고.”

“그때부터 버르장머리가 없었지요. 어디 사장님 앞에서 안전모를 쓰라마라.”

열변을 토하는 그를 보며 사장이 혀를 찼다.

‘나한테 그런 게 아니라, 자네한테 말한 거야.’

직언으로 충신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는 없는 일.

사장이 말을 이었다.

“본사에 찾아왔을 때 녀석을 만나러 갔다가도 얼굴도 못 보고 숨어 있다가, 도둑고양이처럼 도망쳐 나오지 않았던가?”

“그때도 놈은 주제넘은 소리를 했었지요. 사장님의 고견이 아쉽다는 둥 하는 소리를 하면서요.”

구멍가게 사장이라도 자기 가게에서는 이기고 들어가는데, 대기업을 통솔하는 오너가 숨어서 부하 직원의 말을 훔쳐 듣다니,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래서 이번에는 현재건설 사장으로서 위엄을 좀 보이려고 했었는데, 놈은 내가 누군지 관심도 가지질 않더구먼.”

“네? 정말 그랬단 말입니까?”

“애초에 내 얼굴도 모르고, 시장과 같이 있었으니, 그랬을 거라 생각은 드네만.”

“애초에 시장과 엮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태양이 떠 있으면 별은 빛나지 않는 법이다.

사장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 헌데 시장과 이야기를 하다가, 안전모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안 데리고 갈 핑계가 없더군. 내 현장인데 말이야.”

“제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혼꾸녕을 냈을 텐데 말입니다.”

김 비서의 말을 들으며, 사장이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무래도 다음에 안전모 놈을 만날 때는 김 비서는 빼야겠어. 음. 그게 옳은 판단이야.’

백번 생각해도 지당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번 녀석과의 만남에서 완전히 얻은 것이 없지는 않아.”

김 비서가 의아한 시선으로 물었다.

“사장님의 위엄을 보이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사장의 위엄을 보이고, 성훈으로 하여금 알아서 숙이고 들어오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사장은 실패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제 녀석은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애송이가 아니라는 거지.”

“네?”

“시장, 그 너구리같은 양반이 녀석에게 쩔쩔매더군. 그리고 녀석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더라고.”

“안전모는 정치에 관심이 없지 않습니까?”

누가 봐도 성훈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사장이 아까 있었던 시장과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둘의 내기 결과에 따라서 관심을 가지기 싫어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고. 시장, 그 양반이 보통은 넘거든.”

“네. 그분은 기회를 놓칠 분이 아니죠. 이번 시민과의 대담을 봐도 그렇습니다.”

대담과 그 이후의 결과로 다음 선거의 향방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으니, 시장으로서는 완벽한 선방이었다.

출마를 준비하던 후보가 다음 선거를 노린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더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지금 지지율이 하늘을 찌른다고 입이 찢어져 있더군. 그 시작이 안전모, 그 녀석에게서 시작되었단 말이야.”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터.

김 비서가 말했다.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사해서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음. 그리고 녀석이 시장의 손아귀에 붙들리지 않도록, 수를 써 봐.”

“어떻게 말입니까?”

월드컵의 결과를 어떻게 바꾼다는 말인가?

사장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장과의 내기가 월드컵이었으니, 그 응원단인가 뭔가 하는 녀석들이 목이 터져라 응원하도록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라는 말이야!”

비서의 얼굴에 슬쩍 웃음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가지지는 못해도 빼앗기지는 않으시겠다?’

비서란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미리 준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비서의 일이 아니던가?

“알겠습니다. 사장님. 기획실에 말해 두겠습니다.”

“그래 주겠나? 요즘에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아서 말이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의 조치라는 것이 결과에 대한 압박이겠지만, 비서의 압박이란 곧 사장의 지시와 같은 것!

사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자네를 신뢰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진정한 호가호위가 무엇인지 알고, 자신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할 줄 아는 김 비서는 진정한 오른팔이었다.

“응원단을 공식적으로 지원하면 어떻겠습니까?”

“흠. 좋은 생각이야. 회사 홍보도 하면서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겠어.”

“네! 보이는 수익을 남기는 사업은 아니니 말입니다. 아마도 월드컵에 직접 투자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좋아. 그 건은 자네에게 맡길 테니, 재량껏 진행하도록.”

김 비서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렇게 믿어주는데도 성훈을 시장의 손에 들어가게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으리라.

‘사장님은 편애를 하시는 분이 아니지. 그 결과에 대한 상벌 또한 확실하시고.’

눈 감은 채, 시트에 기댄 사장을 보며 속으로 다짐했다.

‘믿어주십시오.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

더운 여름이 끝나간다.

내 현장실습이 끝나갈 무렵, 문 차장이 말했다.

“인자 슬슬 공사가 마무리되어 가는구먼. 인자 성훈 씨는 어떻게 할랑가?”

정신없이 달려온 두 달이었다.

“학교로 돌아가야죠. 이제 민수도 돌아올 시간이고.”

“오잉? 어째 성훈 씨 옆구리가 허전허다 했더니, 그 친구가 없었구마잉.”

“워낙 말이 없는 친구니까요.”

“시방 어디 있간디?”

“제 할아버지한테서 일 배우고 있어요.”

“엥. 할아버지? 그 친구는 저그 아부지 가구 회사 이어받는 거 아니었능감?”

“이번 연말에 공모전이 열리는데, 그때 필요한 기술을 배우라고 보냈어요.”

문 차장이 흥미를 보였다.

“그거이 뭐신디?”

“나중에 초대장 보낼 테니, 보러 오세요.”

***

며칠 후, 나는 총장을 찾아갔다.

“총장님께서는 제게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뭐가 필요한지 말만 하게.”

“이번 결과가 좋으면, 건축학과를 학부로 만들고, 학과 하나를 개설해 주십시오.”

“엉?”

느닷없는 제안에 총장이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둥굴레 냉차를 벌컥 들이켰다.

“상금이나 지원이 아니고, 학과를 만들어 달라?”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 예상했다.

“네. 학과가 필요합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게나.”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손으로 턱을 매만진다.

내 의도를 파악하려는 것이리라.

잠시 후, 그가 말을 꺼냈다.

“흠. 도저히 자네 의도를 모르겠군.”

이건 내 미래를 위한 포석이었다.

아랍 부자들에게 전통을 팔아먹고, 미국의 권력자들에게 한국의 미를 각인시키기 위한 포석.

그리고 그 포석은 한 수 앞이 아니라, 수십 수백 수 앞을 두고 놓아져야 한다.

성공적인 한 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도된 포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큰 물결을 일으키기 위한 흐름을 만드는 것이었다.

“총장님께서 아시다시피, 저는 제 또래들보다는 많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래봐야 몇 건의 설계와 몇 번의 공모전이지만, 총장은 내가 숨긴 다른 건까지 알고 있으리라.

“음. 그건 나도 인정하네. 그렇기에 이 프로젝트를 자네에게 맡긴 것이지. 한 교수가 아닌, 자네에게.”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온전히 제 실력만으로 이루었다기보다는 좋은 시류를 탔다고 생각합니다.”

마이어를 만나고, 프랭크를 만나고, 아랍의 왕자들까지. 그리고 현재 건설과 맺어진 인연.

그 모든 것은 한 교수에게서 시작되었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지금은 총장이 바람을 불어주고 있다.

이 바람을 타고 조종하고 싶었다.

“틀린 말은 아니네만, 너무 겸양을 해도 좋지 않아.”

그러나 그의 눈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 그 시류를 제가 만들어보려 합니다.”

“어떻게? 계획해 놓은 것이 있나?”

내 계획의 일부를 공개해야 한다.

“누구나 알지만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시도한 적은 없었죠.”

혹은 시도했더라고 어떤 사정으로 빛을 발하지 못했거나 말이다.

‘다만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건 다른 누군가에게 선점당하지 않기 위해서였지.’

앞에 놓인 차로 입을 헹구고 말을 꺼냈다.

“저는 이번 공모전에서 전통의 새로움과 가치를 외국인들에게 알리고, 그 가치를 외국에 상품으로 내놓으려고 합니다.”

“흠. 전통을 상품화 하겠다?”

총장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혹은 다른 후원자를 찾거나.

그리고 그가 만약 반대를 한다면, 그만의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명히.

‘총장이 어떤 대답을 할까?’

조용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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