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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90화 (190/427)

건축의 신 190화

스타타워 현장(16)

“김 기사, 이거 어떻게 해?”

작업을 하다 보면, 도면대로 하는 데도, 약간 난감한 경우가 생길 때가 있다.

보통의 경우에는 공종의 순서대로 진행을 하지만, 예상하지 못하는 보수공사를 하게 될 때는 공정이 꼬일 때가 있었다.

성훈이 입을 삐죽이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가 먼저 시공하고 뒤따라가든, 큰 문제가 없겠지만, 최후의 마무리를 생각하면 지금 결정을 잘 해야 했다.

‘이런 공사가 한 번만 나오지는 않을 거란 말이지.’

다음에 또 이런 경우가 생기면 그 때는 각 공종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지금 그 순서와 기준을 잘 잡아줘야 했다.

“흠. 어떻게 하는 게 제일 좋을까?”

치직.

-김성훈 기사! 즉시 1503호 와 주게나.

진 소장의 후임으로 온 박 소장의 목소리였다.

무전에 답을 하려하자, 마루 박 반장이 성훈을 붙들었다.

“김 기사 어딜 가려고? 지금 결정을 내려줘야, 작업 진행을 하지.”

“안 가요. 잠시만 기다려 봐요.”

답은 해 줘야 소장도 답답하지 않을 것 아닌가?

기준 없이 진행되는 공사는 결국 하자를 부르고, 마지막에는 땜빵공사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성훈이 무전기를 들었다.

“지금 급하게 샘플 잡아보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30분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소장 쪽에서도 약간 난감한 모양이었다.

-흠흠. 김 기사. 귀빈이 방문을 하셨는데, 흠흠. 잠시만 들러주면 안 되겠나? 그 현장으로 다른 기사를 대신 보내겠네.

‘이걸 어쩐다?’

박 소장은 좋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성훈이 보기에는 그랬다.

이번에 몇몇 업체가 보양 건에 대해 반대를 할 때도 그 업체들을 설득하기도 했으며, 그 결재에 대해서도 아무런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깔끔하게 마무리해 보라며 비용도 넉넉하게 책정해 주었다.

그런 박 소장이 마른기침을 여러 번 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도 상당히 곤란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내 뒤를 봐 주는데, 곤란하게 하는 것도 경우가 아니겠지.’

“네. 그럼 알겠습니다. 즉시 가겠습니다.”

박 반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른 기사 금방 올 거예요. 일단 마루가 선시공하는 걸로 샘플을 잡으세요. 좀 있다가 와서 바로 결정내릴 테니까, 그동안 기사하고 디테일을 의논하세요.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바로 무전하는 것 잊지 마시고요.”

박 반장이 마뜩찮은 듯 중얼거렸다.

“김 기사랑 말하는 게 제일 빠른데.”

“일단 그렇게 진행하세요. 귀빈이 왔다는데, 안 가면 소장님이 곤란해지실 거라고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얼른 다녀오라고.”

성훈은 달리는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바빠 죽겠구먼. 누가 왔는지 몰라도, 대단한 사람이 아니기만 해 봐.’

***

“시장님. 이번 도시개발 정책, 시민들의 반응이 상당히 호의적이더군요.”

“그런가? 허허허.”

정치인에게 지지율이 오른다는 말보다 더 좋은 칭찬이 어디 있으랴?

시장의 얼굴에 웃음꽃이 함박 피었다.

정책을 하나하나 발표할 때마다, 시민들의 박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아참. 그리고 저희 현장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시장이 고개를 갸웃하자, 사장이 설명했다.

“신문 기사에 신도심지를 관통하는 도로가 우리 현장 바로 옆을 지나간다고 났잖습니까?”

“아하. 그거? 그건 성훈이 녀석한테 고맙다고 해. 나도 나중에 알았으니까.”

“네? 성훈이가요?”

거기서 안전모가 왜 나온다는 말인가?

현재건설 사장의 의아한 물음에 시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그놈이 기자들 불러서 브리핑하면서, 그렇게 쓰라고 시킨 거야.”

“아. 그렇습니까?”

“나도 왜 그런가 했는데, 알고 보니 이 현장의 원설계자가 그녀석이더군. 여우같은 녀석! 허허.”

“아! 시장님께서는 모르셨습니까?”

“응. 난 감쪽같이 몰랐지 뭐야. 한 교수가 말해 줘서 알았어. 어쩐지 그놈이 그 쪽으로 도로를 내야 한다고 빠득빠득 우기길래, 뭔가 이유가 있겠거니 했는데, 지 거라고 그렇게 챙긴 줄은 꿈에도 몰랐지.”

“마음에 안 드셨으면 하지 말라고 하셨으면 되었을 것 아닙니까?”

그보다는 성훈이 무슨 경위로 울산시 개발 계획에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는지가 더 궁금했다.

자신이 직접 말한다고 해도 들을까 말까한 시장을 움직였다니 말이다.

‘거 참. 신통방통한 놈일세.’

“녀석이 그러더군. 이왕 개발 계획을 진행할 거라면 기존의 것들도 최대한 써먹어야 될 것 아니냐고? 울산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이니, 당연히 메인도로도 그쪽으로 뚫어야 한다고 말이야.”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사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도 아니고 해서. 그러자고 했지.”

어쨌든 시장의 말로 가늠해 봤을 때, 시의 정책을 좌지우지 할 정도의 영향력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흠. 안전모 그놈. 확실히 탐나는 놈이야!’

“제법 똘똘한 놈이지 않아?”

“네. 저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시장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원래 알고 있던 녀석인가?”

사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런저런 인연이 있었지요.”

시장이 입매를 모으며 말했다.

“하지만 녀석은 내가 눈독을 들였다네.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걸세.”

“네? 성훈 군이 정치에 뜻이 있답니까?”

“흐흐. 뜻이 없어도 생길 수밖에 없을 거야.”

사장의 미간이 좁혀졌다.

‘녀석은 정치 쪽으로 전혀 관심이 없을 텐데?’

필요해서 이용하면 하겠지만, 시장처럼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이 그와 김 비서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보다 누가 억지로 시킨다고 할 녀석인가?’

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맘에 안 든다고 깽판이나 안 놓으면 다행이게.’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장에게 시장이 물었다.

“항상 달고 다니던 비서 녀석은 어딜 갔나?”

“네. 울산에 온 김에 왕 비서님을 만나 봬야겠다고 갔습니다.”

“흠. 그래? 심심하겠어. 허허허. 셋째 놈 들어온다면서 언제쯤인가?”

둘이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는 사이, 복도에서 워커화 소리가 들렸다.

아래에서 뛰어 올라 오는 듯 했다.

쿵쾅쿵쾅.

두세 계단을 한 번에 뛰어오르는 듯, 넓은 보폭 소리였다.

“벌써 오는 건가? 빠르군.”

“젊다는 거겠지요. 시장님.”

발소리에 소장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데리고 들어오겠습니다. 사장님.”

“그러게나.”

복도에서 성훈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세요. 소장님?”

“쉿!”

박 소장이 검지를 입술에 대며 소리를 죽였다.

성훈의 헐떡이며 물었다.

“대체 누군데, 오라 가라 하는 거예요? 바빠 죽겠는데.”

소장이 낮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어허. 이 친구야. 말 조심해. 말 조심.”

성훈의 투덜거림이 귀빈들이 있는 곳까지 들릴까 싶어 소장의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사실이 그렇잖아요. 그분들이야 현장 한번 구경삼아 둘러보면 끝인지 몰라도, 우리는 아니거든요.”

중간에 일의 흐름이 끊어지면 그것을 되찾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혹여 그 와중에 공정의 속도가 꼬여서 후속공정이 선공종을 앞지르기라도 하면 전체 공정 진행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 보면 알아. 항상 말조심하고. 높은 사람들한테 잘 보여서 나쁠 일 없잖아. 녀석아.”

삼촌 연배인 박 소장이 성훈을 걱정하며 타박했다.

실제로도 성훈을 귀여워하는 모습이 많았기에, 성훈과의 사이도 좋은 편이었다.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들어가시죠!”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손을 흔들었다.

“오! 성훈 군. 오랜만일세.”

시장이었다.

지지율이 높아져서인지, 신수가 훤해진 모습으로 성훈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주 보고 인사하려는 순간, 성훈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시장님. 담뱃불 끄세요.”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고운 말이 나갈 수 없었다.

현장 내 흡연구역을 제외하고는 절대 금연이었으니까.

박 소장에게 눈치를 줬다.

‘못 피게 하지, 뭐하셨어요!’

소장이 눈을 부라리며 대응했다.

‘자식아. 시장이라고. 시장!’

시장은 응당 건방지다며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러기는커녕, 담배를 들고 흔들던 손을 황급히 내렸다.

옆에 있던 사장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장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금연이었나? 진즉 말을 하지 그랬어?”

시장의 변명에 사장과 소장의 눈도 동그래졌다.

‘이 현장에서는 안전모와 금연은 기본이라고! 귀가 닳도록 얘기 했더니. 뭐가 어쩌고 어째?’

특히나 사장은 안전모로 인한 추억이 있기에, 특별히 주의하며 들어오지 않았던가?

황급히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끄려고 하는 시장에게 성훈이 짜증을 부렸다.

“아. 쫌. 시장님! 내가 저러니까, 현장에서 담배 피지 말라는 건데. 거기가 담배 끄는 뎁니까? 나가서 복도에서 끄고 들어오세요.”

시장 보좌관이 허겁지겁 담배를 받아들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성훈이 바닥 보양을 위해 골판지가 깔린, 깨끗한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시장님은, 거기 보양 해놓은 거 보시고도 담배를 피우고 싶으세요?”

마지막 말은 거의 핀잔에 가까웠다.

그 말에 소장은 숨이 멎는 듯 했다.

‘김성훈, 네 이놈! 미친 거냐?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시장이라고, 시장!’

알면서도 저런 행동을 하니, 소장 입장에서는 더 미치고 환장할 수밖에!

‘아이고. 속 터져! 사장님이 방문하신 것도 긴장돼 죽겠구먼. 시장까지 와서는.’

현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바로 지적을 한다는 것을 알기에, 방금 그렇게 성훈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 것이건만.

일을 크게 만들지 않으려면 먼저 사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죄송합니다. 시장님. 우리 김 기사가 성격이 급해서. 용서해 주십시오.”

소장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혼 좀 내야겠군. 내가 한 시간 전에 얘기를 했냐? 10분 전에 얘기를 했냐? 5초 전에 주의를 줬는데……. 크흑.’

앞으로 얼마나 준공검사 때 고생을 해야 할지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박 소장이었다.

‘아무리 공사를 잘해 놓으면 뭐하나, 이 핑계 저 핑계로 준공허가를 늦추면 애를 먹는 것은 우린데. 아우. 저 녀석을 그냥?’

가슴에서 뭐가 훅 치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눈앞의 시장이 누구던가?

‘스타타워’가 지어지는 울산의 지존이 아니던가? 그의 비위를 거스르면 준공허가는 상당한 난관을 거쳐야 할 것이다.

박 소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훈이 말했다.

“소장님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사과를 하세요? 잘못은 시장님이 하신 거라고요. 현장에서 금연은 상식이라고요. 안 그래요? 시장님. 들어오는 입구에 크게 써 뒀을 텐데요.”

이번에는 건설사장의 얼굴에 주름이 패였다.

성훈이야, 현장실습을 오기 전에 시청에 살다시피 하면서 시장과 매일 토론을 하는 사이였기에 스스럼이 없었지만, 둘 사이를 모르는 사람은 속이 얼마나 타겠는가?

토론이라기보다는 성훈은 설득하고, 시장은 설득 당하는 관계였어도 친한 것은 사실이었다.

“시청에서도 흡연구역에서만 피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시장이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성훈에게 다가가 엉덩이를 툭 쳤다.

“어허. 이 친구. 오랜만에 봤는데, 그렇게 마누라처럼 잔소리만 할 거야?”

둘이 하는 모습이 하루 이틀의 관계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사장과 소장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적어도 이 상황으로 인해 피해를 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둘이 무슨 사이야?’

정책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다고 해서 저렇게 친밀한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구먼.’

보좌관이 나서서 무례하다고 할 만한데도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했다.

성훈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잔소리 할 만하니까 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는 뭐 하러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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