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189화 (189/427)

건축의 신 189화

스타타워 현장(15)

성훈이 현장사무실로 돌아왔다.

문 차장이 도면을 보다가 성훈을 보고는 말했다.

“성훈 씨. 샤시랑 몰딩팀에서 연통이 왔구먼?”

“뭐라고요?”

“보양비 바로 입금시킨다는디?”

“그래요? 잘 됐네요.”

문 차장이 은근히 성훈에게 물었다.

“성훈 씨. 대체 뭔 짓을 한겨?”

“뭘 어떻게 하긴요. 논리적으로 설득시켰죠.”

‘허이구! 어지간히 말로 혔겄다.’

문 차장의 기억으로는 성훈이 말로 설득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인간이 아니던가?

“엥? 아까 회의시간에는 안 된다고 그렇게 고집을 피우더니, 뭔 변덕이랴?”

“그냥 현장으로 따라가서 왜 보양을 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줬습니다.”

“그랴? 나도 나중에 한 번 써먹어 봐야겠구먼.”

문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딴생각을 했지만 말이다.

‘또 몰딩 몇 개 작살을 내부렀겠구먼. 몰딩팀에서는 그제서야 ‘어! 뜨거라.’하고 기겁을 혔을 것이고. 나가 자네를 어디 하루 이틀 겪어 본 당가? 안 봐도 비디오여! 비디오!’

성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문 차장의 확신이었다.

어쨌거나 이로써 현장의 보양 문제는 해결되었다.

“뭐. 불협화음이 약간 있긴 했었지만, 이 정도면 준수하죠.”

“그렇기는 허제. 근디 또 어디 간당가?”

물 한 잔 마시고는 밖으로 나가는 성훈에게 묻는 말이었다.

“이제 보양하는 거 보러 가야죠. 보양을 해 본 경험이 없으실 테니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도 모를 것 아닙니까?”

“보양 그까짓 거, 대충 골판지로 덮어 놓으면 되제? 무엇이 문제다요?”

성훈이 피식 웃었다.

이런 안일한 생각 때문에 보양에도 허점이 생긴다.

‘이왕 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요.’

문 차장의 말에 성훈은 생각을 바꿨다.

‘이거 아무래도 작업자들보다는 기사들을 먼저 교육시켜야겠군.’

“보양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요. 골판지를 쓸 곳과 모서리 부분에는 ‘ㄱ’자 각대를 댈 곳도 있고요. 비닐을 쓸 때도 있고요. 보양이 덮기만 하면 되는 줄 아세요? 잘못 하면 하나마나라고요.”

“그랴? 나가 보양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여?”

성훈이 차장의 손을 잡았다.

“그럼 차장님도 따라오세요.”

“나는 왜?”

“저 혼자 현장을 다 돌라고요? 차장님도 하는 거 보고 지시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문 차장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나는 언제나 요 입이 방정이여, 방정.’

가만히 있었으면 에어컨 빵빵한 사무실에서 사무를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

“아, 반장님. 좀 쉬어가며 합시다. 예?”

마루 작업자의 불평에 박 반장이 호통을 쳤다.

“지금 옆 세대에서 몰딩팀이 일하고 있는데, 그런 말이 나와? 엉?”

지금 마루팀은 사흘째 쉴 틈 없이 일하고 있었다. 물론 야근을 하면서 말이다.

물론 일을 잘 못해서 잔업을 한다면 할 말도 없겠지만, 며칠 전부터 마루팀의 작업 속도는 다른 현장에서의 그것에 비교하면 세 배나 빨랐다.

시공이란 일한만큼 가져가는 것.

노임도 세 배를 가져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반년만 이렇게 일해도 금방 부자 되겄구만.”

처음에는 모두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대목이 별거여? 이런 일이 있으면 대목이지?”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일솜씨가 늘어서 속도가 빨라졌냐고?

하루아침에 손재주가 좋아지던가?

그 이유는 현장에 있었다.

속도가 날 수밖에 없게끔 현장이 되어 있었다.

“아따. 깨끗하다.”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입에서 절로 나오는 말이다.

마루의 특성상, 세대 내의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

그런데 이 현장에는 청소가 필요 없다.

들어가는 순간 접착제를 뿌리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현장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이것저것 군더더기 없이 딱 마루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더군다나 한 번도 선공정이 지연을 한 적이 없다. 가 보면 아무것도 없다.

함박웃음을 지은 박 반장의 평은 이랬다.

“이건 딱 들어가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마루만 깔고 나오라는 소리구만.”

함께 작업을 하러 들어온 작업자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나올 수밖에.

“간만에 일할 맛이 나네.”

하루 종일, 야근까지 불사하며 미친 듯이 일했다.

그날 그들은 평소에 하던 일의 세 배를 할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버려지는 시간이 없으니, 그것들을 모두 작업으로 돌릴 수 있었다.

현장에서 가장 시간을 잡아먹는 것이 이동시간이다. 선공정이 덜 되어 있거나 들어갈 상황이 아니면 다음 세대로 건너가야 한다.

그것도 여의치 못할 때는 일할 곳을 찾아다녀야 한다.

‘일하러 왔는데 놀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게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보면 일할 시간의 절반 이상을 까먹게 된다.

그렇게 사흘 동안 미친 듯이 일하다가, 박 반장은 어느 순간 깨달았다.

‘후속 공정이 걸레받이였어.’

그 말은 즉, 몰딩팀에 뒤를 쫓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선 공종들이 했던 일을 자신들이 해야 한다는 것도 더불어 깨달았다.

‘일이 뒤통수를 쫓아온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어.’

일이란 다다익선이라 생각하고 살았지만, 지금은 공포였다.

박 반장이 망치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몰딩 뜯으면서, 도배가 손가락 빨면 가만 안 두겠다고 말할 때 눈치를 챘어야 하는데.”

공종이 지연되면, 염라대왕 같은 김 기사가 직접 관리에 들어간다는 것을 그때 직감했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을 때는 몰딩팀이 바로 자신의 엉덩이 뒤를 쫓아 왔을 때였다.

몰딩 반장을 찾아가 너스레를 떨었다.

“어이. 몰딩 반장. 날도 더운데, 좀 천천히 하자고!”

그러나 몰딩 반장은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쉬고 싶지.”

“그럼 쉬면 되지, 뭐가 문제야?”

옆집을 흘낏거리며 말을 이었다.

“팔자 좋은 소리 하지 마. 내 궁둥이에 불 붙었어.”

몰딩 다음 세대에서 도배팀이 일하고 있었다.

그 세대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장. 좀 천천히 합시다.”

그때 누군가의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도배 반장이라 추측되었다.

“미친 소리 하지 말어. 우리 뒤에 바로 전기팀 따라오고 있어! 김 기사 호출 받고 싶어? 말할 시간 있으면 닥치고 일이나 해!”

그게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그때부터는 레이스였지. 레이스!’

잠시라도 긴장을 늦췄다가는 몰딩이 복도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을 것이고. 그 모습을 김 기사가 보면 가만히 있을까?

‘어떻게 맞춰 놓은 공정인데, 마루에서 빵꾸를 내냐고 생지랄을 하겠지.’

이유 있는 지랄에는 변명도 못 한다.

돈이고 지랄이고 심장이 쫄깃해서 일을 못하겠네. 난생처음 일에 쫓기는 박 반장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이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

‘즐기면서 일하라고? 지랄들을 하고 앉았네.’

일을 즐기는 것은 즐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말이다.

‘염라대왕 앞에서는 그런 여유 따윈 있어도 금방 사라진다고.’

저 인간이 노는 꼴을 못 보는 인간이거든.

***

지금, 그 염라대왕이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박 반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 쫌! 김 기사. 다른 데는 일이 없소? 여기만 붙어 있게?”

스쳐 지나가다 곁눈질로 하자를 찍어내는 인간인데, 그런 인간이 바로 등 뒤에서 작업을 보고 있다고 해보라.

어찌 등골이 오싹하지 않으랴?

지금 작업자들의 머리를 스치는 공통적인 생각!

‘보고 있는데서 흠 잡히면 앞으로 계속 따라다닐지도 몰라!’

작업자들의 손길에 정성이 듬뿍 들어가 있었다.

그들의 성의 어린 손길을 보며, 박 반장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이것들아. 내가 있을 때 그렇게 좀 해 봐라.’

마루 작업이 끝나고 보양의 시간이 왔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골판지를 깔고, 테이프를 붙였다.

쉬엄쉬엄?

그럴 여유 없다.

옆 세대에서 고함소리가 들린다.

“거기 보양 꼼꼼하게 안 해!”

몰딩 반장의 목소리다.

성훈에게 들으라는 듯, 목소리가 우렁차다.

저들과 동선이 겹치는 순간, 마루는 성훈에게 요주의 대상이 될 것이다.

대충 대충?

그런 거, 아예 이 현장에는 그런 단어가 없다.

그럼에도 성훈의 지적이 이어졌다.

“거기, 틈새 제대로 붙이세요!”

“아. 김 기사. 여기 틈이 어디 있어?”

성훈이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모서리, 틈 있잖아요. 안 보이세요?”

뜨끔한 작업자가 투덜거렸다.

“아니! 거기까지 보양을 하라는 말이요?”

성훈이 지적하는 부분은 마루 끝에서 걸레받이 몰딩이 이어지는 구간이었다.

3cm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었다.

박 반장이 작업자 편을 들고 나섰다.

일로도 쪼이는데, 보양으로도 쪼여서야 사람이 살 수가 없으리라.

“김 기사! 거기는 몰딩팀에서 해도 되는 거 아냐?”

박 반장의 말에도 성훈은 추호의 양보가 없었다.

“안 돼요! 마루에서 책임질 부분은 확실하게 책임을 지세요. 마루 보양 잘한다고 남 좋은 일입니까? 마루 좋으라고 하는 말이지.”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맞는 말도 듣기 싫을 때가 있는 법.

“아 참. 그 사람 까탈스럽기는.”

작업자가 꿍얼거렸지만, 박 반장의 눈총에 골판지를 덧댔다.

“김 기사가 시키면 군소리 말고 해. 뭔가 생각이 있겠지.”

보양이 끝나고 작업자들이 다음 세대로 건너갔다.

작업자가 없는 틈에, 박 반장이 넌지시 물었다.

“김 기사, 너무 과민반응 보이는 거 아녀?”

너무 과한 지적은 작업자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맞는 말이라고 해도 결국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면 잔소리로밖에 안 들리지 않던가?

“아닙니다. 그게 보양의 기본입니다. 여기서 미루고 저기서 미루다 보면 결국 보양은 의미가 없어져요. 자신의 제품은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생각으로 하세요. 나중에 다른 공종에 욕먹지 마시고.”

그 말에 박 반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욕먹을 일이 뭐가 있다고.”

성훈이 입맛을 다시며, 문 차장에게 물었다.

“차장님. 저기 스크래치 가면 어떻게 해야 하죠?”

“흠……. 저그는 모서리니께, 일단은 걸레받이를 뜯어야 겄제.”

“걸레받이를 뜯으려면요?”

문 차장도 웃으며 성훈에게 장단을 맞췄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설명할 수밖에.

작은 흠집이 불러오는 대형 참사를 말이다.

“걸레받이 해체하게끔 도배장이를 불러야제.”

“이런데도 욕 안 먹을 자신 있으세요?”

현장은 항상 연계되어 있다.

단일 공종으로 끝나는 곳이 없다는 말이다.

욕실장처럼 마지막에 부착하는 단품이 아니라면.

“저 흠집 하나 때문에 세 공종이 움직인다면 아무래도 수지 타산이 안 맞죠.”

성훈의 말에 박 반장은 씁쓰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생각이 짧았구먼.”

“다른 공종이랑 엮이는 부분이 아니라면, 저도 그렇게 간섭하지 않아요. 현장에는 불필요한 곳에 사람이 투입되는 순간 손해잖아요.”

박 반장도 옆 세대로 건너가고 문 차장이 슬쩍 물었다.

“박 반장 말도 일리가 있네 그려. 나가 보기에도 쬐매 빡신 거 같기는 헌디?”

“기준을 잡는 기간입니다. 기준을 어중간하면, 작업자들이 경각심을 갖지 않게 된다고요. 실수를 해서 피해를 보더라도 다른 공종에 피해를 끼치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닙니까?”

문 차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겄구만. 작업자들에게 확실히 주지시킬 테니 걱정 놓으셔잉.”

이제 보양에 대해서는 한시름을 놓아도 될 것이다.

문 차장도 꼼꼼할 때는 무척이나 시어머니처럼 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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