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188화 (188/427)

건축의 신 188화

스타타워 현장(14)

아직 어느 현장에서도 보양을 하지 않는다.

그런 마인드가 지속되어서는 현장의식이 발전하지 않는다.

‘아마. 이곳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완전 보양을 실행하는 현장이 될 꺼야!’

이제는 보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 그렇게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품질 개선의 첫 스타팅을 끊으려고 하는데, 반대를 하다니.’

***

사람이 살다보면…….

유난히 뭔가가 눈에 거슬리는 날이 있다.

‘상황이 다르니, 관점도 달라지는 거겠지.’

그리고 왠지 오늘은 몰딩이 눈에 거슬릴 것 같았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성훈은 사무실을 나섰다.

‘과연 보양이 안 되어 있는데, 흠집 안 간 곳이 있을까?’

그건 현장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어떤 제품이 되었든, 현장에 들어오는 순간 흠집이 생긴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보양 말고는 답이 없었다.

‘흠 있는 자재보다 없는 걸 찾는 게 훨씬 빠를 정도니까.’

그리고 일반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 흠 찾는 눈썰미로는 현장의 기사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

‘그게 현장의 상식이지.’

성훈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몰딩 사장이 물었다.

“김 기사님, 어디 가시나?”

“몰딩 확인 좀 하려고요.”

“우리 몰딩은 왜?”

“어제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게 생각나서요.”

“그래?”

성훈은 기분이 좋아 보였고, 그에 반해 사장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아까 성훈의 의견에 반대를 했었는데, 자신의 제품을 보러 간다고 한다.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내심이야 불쾌하더라도 드러낼 수는 없는 일.

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김 기사. 더운데 고생이 많아. 내 시원한 맥주라도 사들고 왔어야 하는데 말이야.”

“나중에 생각나시면, 우리 사무실 밥이나 한번 사주십시오.”

“꼭 그러도록 하지.”

한참을 걸어가다가 성훈이 말했다.

“사장님. 저 같은 기사들은 말입니다. 현장 다닐 때 눈 감고 다닙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왜 그런 거요?”

“눈 뜨고 다니면, 하자밖에 안 보이거든요. 그럼 공사하는 것보다 뜯는 게 더 많을 텐데, 일이 되겠습니까?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할 수밖에 없지요.”

“그렇겠군. 현장에는 융통성이 필요한 법이지.”

“그런데, 오늘 회의시간에 누가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

“하자가 있으면 교체하겠다고요. 이런 기회가 또 있겠습니까? 공짜로 갈아주겠다는데.”

그래서 싱글벙글했던 것인가?

“그 말은…….”

“안 그래도 현장에 맘에 안 드는 것투성인데, 몰딩이라도 완전 새 걸로 갈아보려고요.”

사장의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요 맹랑한 기사가 나를 곯리려고 하는구먼. 새파랗게 어린놈이 감히…….’

그의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훈의 손이 천장을 가리켰다.

“저기 천장 몰딩 귀퉁이 보이시죠?”

5m나 떨어진 곳에서 몰딩의 뭘 보라는 말인가?

사장과 반장의 눈이 그쪽으로 향했다.

“어!”

5m에서는 분명히 보이지 않았는데, 1m 정도로 다가가니 흠집이 보였다.

‘그게 보이나?’

성훈은 거실 가운데 서서 천장 몰딩과 걸레받이 위주로 쓰윽 둘러보더니, 손가락으로 몇 군데를 지적했다.

“저기, 저기, 저기, 저기, 저기. 총 여섯 군데네요.”

성훈의 손가락을 따라서 사장과 반장의 눈도 그곳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는 눈이 동그래져서 성훈에게 물었다.

“거기서 이게 보이나?”

성훈이 환하게 웃었다.

“평소에는 눈 감고 다닌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안방으로 가 볼까요?”

사장과 반장이 채 따라 들어가기도 전에 성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쿠. 여기는 좀 많네요. 여덟 군데네요.”

“어디? 어디?”

성훈의 손가락이 여덟 군데를 가리켰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경쾌해 보이는 건 느낌 탓이겠지?

“아까는 저런 흠집 안 보였는데.”

반장의 꿍얼거리는 소리였다.

제품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하자가 보일 때도 있고, 안 보일 때도 있다.

그리고 보는 사람에 따라서 안 보일 때도 있다.

몰딩 사장이 자기 제품의 하자를 보고 싶겠는가?

옆에서 반장이 소곤거렸다.

“평소에는 눈 감고 다닌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사장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옆방으로 마저 들어가더니, 한 세대에서만 하자를 20개를 잡아냈다.

거실로 돌아온 성훈이 미소 지었다.

“어떻게 할까요?”

“내 당장 크레용으로 메꿔서 처리…….”

반장의 말에 성훈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무슨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눈빛이었다.

“반장님.”

반장이 성훈의 눈치를 살폈다.

“그럴 것 같으면 굳이 뭐하러 제가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터치하라고 하면 그만이죠. 안 그래요?”

성훈이 원하는 바는 너무나 완벽했다.

“끙. 교체……?”

“네.”

사장이 부리나케 성훈을 말렸다.

“굳이 교체까지 할 필요가 있겠나? 반장 말처럼 터치 몇 번만 하면…….”

“사장님.”

“왜 그러나?”

“우리가 불량품에 크레용 떡칠한 제품을 받으려고 돈을 지불하는지 아십니까?”

당연히 아니지.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갑은 을에게 올바른 제품을 인도 받을 권리가 있다.

그것은 갑의 기본적인 권리다.

갑의 일방적인 변심이 아니라면, 계약서에 기록된 권리는 보호되어야 한다.

사장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장의 관례라는 것이 있지 않나?”

“그 관례가 갑의 동의하에 진행된다는 것도 아시죠?”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다네.”

사장과 말하는 사이, 반장이 몰딩을 뜯어왔다.

10개가 넘는 몰딩이 바닥에 쌓였다.

사장이 눈짓으로 물었다.

‘이거 보수해서 쓸 수 있겠나?’

‘쓸 수는 있는데…….’

“전 그거! 인정! 못하겠습니다.”

콰직. 콰직.

그들이 보는 눈앞에서 몰딩을 반 토막 냈다.

부서지는 소리에 사장의 가슴도 부서지는 듯 했다. 자식처럼 만든 몰딩이 아니던가?

크흑.

성훈이 말했다.

“이런 하자품 재활용하실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고, 제대로 하자보수 해 주십시오.”

새 차라고 인도 받았는데, 기스가 나 있다면 그 차를 사고 싶은가?

그러면서 영업사원이 ‘이런 건 하자가 아닙니다.’하면서 눈앞에서 도료를 뿌려준다면 말이다.

아무리 깔끔하게 티가 안 나게 잘 처리해도 이미 늦은 일이다.

안 봤으면 몰라도, 봤으면 이미 하자다.

품질을 떠나서 기분 문제가 아니던가?

하지만 사장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김 기사. 이 사람아. 이건 너무 하지 않나?”

반장이 흥분한 사장의 손목을 끌었다.

“김 기사. 사장님 하고 잠시 얘기 좀 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

성훈이 웃으며 말했다.

“네. 알았어요. 교체할 것은 표시를 해둘게요.”

안쪽 주머니에서 검정 매직을 꺼내 들었다.

그걸 본 반장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젠장. 그러게 그냥 보양하자니까, 고집을 세워가지고. 저거 지워지지도 않을 텐데.’

당연하지.

애초에 지울 수 있는 표시는 하지도 않는다.

***

복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박 반장이 물었다.

“저 몰딩 사장은 왜 저렇게 눈치가 없대?”

“그럴 수밖에 없지. 원래 있던 업체가 아니지 않나.”

“그랬나?”

“오늘 회의에서 업체들이 왜 성훈의 의견에 찬성을 했겠나? 보양이 하고 싶어서?”

그 말에 박 반장이 고개를 저었다.

제 돈 나가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던가?

“그러고 보니, 반대를 했던 업체들은 다들 새로 들어온 업체들이군.”

“그렇지. 아직 현장 분위기에 적응을 못한 거지. 이런 일이 생길까 봐 넌지시 눈치를 줬는데도, 못 알아먹더군. 쯧쯧.”

차기석의 말처럼, 천장 몰딩 업체가 들어온 경위는 다른 업체들과는 경우가 좀 달랐다.

진 소장이 있을 당시의 몰딩 업체는 제조업체가 아니라, 중간마진만을 먹는 유통 업체였다.

물론 그 사장은 진 소장의 친척이었다.

성훈의 입장에서는 굳이 중간 마진을 취하는 업체는 필요가 없었기에, 그 회사를 잘라버렸고, 몰딩 제조업체와 다이렉트로 계약을 맺었다.

물론 시공업체는 그대로 두었다.

시공업체 또한 계약자가 원제조업체로 바뀐 것뿐이었다.

결국 현장 내부적으로는 전혀 변화가 없었고, 제품 공급처만 바뀐 것뿐이었다.

가격만 저렴해진 동일한 제품으로 말이다.

성훈의 지적질을 보고는 차기석이 말을 이었다.

“꺄! 저 인간, 귀신같이 잡아내는 것 봐라.”

“야? 저게 보인데?”

“그러니까 귀신같다는 거지. 저 거리면 보이지도 않을 텐데. 독수리네. 독수리!”

“어이구. 나온다.”

부리나케 복도 건너편 공실로 숨었다.

***

반장이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장님. 이대로 가다가는 이 현장에 남아나는 몰딩이 하나도 없겠습니다.”

“하지만, 저건 너무 하잖나?”

“그럼 틀린 점을 지적하며 반박하셨어야죠.”

“그건…….”

반장이 혀를 찼다.

‘반박할 게 있을 리가 있나?’

고지식한 사람만큼 말 안 통하는 것도 없다.

사장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정석만 말하는데, 반박할 게 없죠.”

“그래도, 지금까지 해 온 관례가 있는데.”

“문제는 김 기사 눈이 너무 높은데다가, 귀신처럼 하자를 찾아낸다는 겁니다.”

“쩝. 하기는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하자를 저렇게 찾아내다니, 그건 나도 할 말이 없군.”

반장이 사장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뭔가?”

“시공하자마자, 흠집을 즉시 터치해버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보양하는 겁니다. 안 그러면 현장에서 발생하는 흠집을 막을 수가 없어요.”

“그게 당연한 거야. 현장에서 저 정도 흠집도 없는 곳이 어디 있나? 공사 끝나고 터치하면 되는 거지.”

“그건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이죠.”

현장을 진행할 때는 정신없이 진행한다.

‘깨어지든 긁히든, 마지막에 터치하면 돼! 일단 공기만 줄이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타 공종에 피해 끼치는 것을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렇게 서두르다가 빠뜨린 공종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땜빵을 할 것이다.

사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돈 좀 집어줄까?”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반장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 기사에게 돈 먹이려다 쫓겨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럼 소장한테 전화를 해볼까? 적당히 말려주지 않을까?”

반장이 고개를 숙이며 헛웃음을 흘렸다.

“해 봐야 소용도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현장에서는 소장이 대장인데.”

전화를 빼 드는 사장을 반장이 막았다.

“사장님께서 현장 상황을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다른 현장에서는 소장이 대장일지 몰라도, 이 현장은 다릅니다.”

반장이 설명을 시작했다. 진 소장이 어떻게 잘려나갔고, 당신이 어떻게 업체로 참여할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나?”

“김 기사가 정석대로는 해도, 말 안 되는 억지를 부리진 않아요. 시공하자마자 터치하고 보양해버리면 흠집을 어떻게 찾겠습니까? 설마 보양된 걸 뜯고 확인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꼼수이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이상의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게 될까?”

“중요한 건 김 기사 눈에 보이지만 않으면 됩니다. 보이지만 않으면 뭐라고 하지 않거든요.”

“고로. 보양을 하면?”

“보이지 않죠. 보이지 않으면 흠 잡힐 일도 없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아까 내 입으로 못한다고 말했는데.”

망설이는 사장을 반장이 재촉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반장이었다.

어제 작업해 놓은 것 중의 반은 뜯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김 기사의 기세로 봐서는 말이다.

“사장님. 체면 찾다가는 본전도 못 찾습니다.”

“그래도…….”

“상황 따라서 결정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잠시 착각했다고 하면 되는 거죠. 이렇게 흠집이 많을 줄 몰랐다고 둘러대세요.”

“그래도 될까?”

“네. 김 기사, 그런 소소한 거 신경 쓰는 타입 아닙니다.”

“알겠네.”

거실로 돌아온 사장이 말했다.

“김 기사. 아까는 내가 생각이 짧았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못 알아듣겠다며, 너스레를 떠는 성훈이었다.

“내가 현장을 잘 몰라서 이렇게 하자가 많은 줄 몰랐구먼.”

사실이 그랬다.

자신의 눈앞에서 이렇게 많은 하자를 찍어내는 기사도 없었다.

“그래서요?”

“보양을 하겠네. 지금 당장 사람을 투입하겠네.”

“비용은 당연히 내실 거죠?”

“그럼. 내야지. 암.”

“그럼 그렇게 하시는 걸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매직으로 표시해 놓은 것은 교체하세요. 그럼 전 믿고 가보겠습니다.”

돌아서는 성훈에게 사장이 물었다.

“그런데 어디 가나?”

“네. 다른 곳에 볼 일이 있어서요?”

“급한 일이 아니면, 나랑 식사나 하러 가는 게 어떨까?”

“급한 일입니다.”

“뭔가?”

“오늘 왠지 샤시가 눈에 걸리적거리거든요.”

성훈이 사라지고, 반장이 매직이 칠해진 몰딩을 뜯으며 투덜거렸다.

“그러게. 그냥 하잘 때 했으면, 이럴 일도 없잖습니까? 에효!”

지켜보던 차기석이 말했다.

“흠. 다음 타깃 샤시인가 보군? 따라가 볼 텐가?”

마루 박 반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몰딩의 하자를 잡아내는 모습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성훈의 눈에 마루가 걸리적거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텐가?

“아니……. 난 어서 가서 보양이나 서두르는 게 나을 것 같아.”

차기석도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나도 그럴 참이었다네. 남 일 같지가 않아.”

※ 터치 :

현장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로, 조색 크레용이나 조색 도료를 사용하여 스크래치나 파인 부분을 보이지 않게 보수하는 것.

유사어 -> 땜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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