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186화 (186/427)

건축의 신 186화

스타타워 현장(12)

김포공항.

김 비서가 사장을 맞이했다.

“먼 길 다녀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뭐. 휴가 다녀오는데, 수고는 무슨. 자네는 잘 다녀왔어?”

“네. 덕분에 편히 쉬다 왔습니다.”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사장이 물었다.

“요즘 곽 이사, 일 처리가 화끈하던데.”

김 비서가 그 말에 호응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현장을 정리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리고 진 부장, 알래스카로 보낸다던데, 어떻게 됐어?”

“황 전무가 바로 처리했습니다.”

“음. 그랬군. 서 전무는 뭐라던가?”

“할 일도 없는데, 군식구만 자꾸 늘어난다고 불평하고 있습니다.”

“그래? 한국으로 오고 싶다는 말은 없고?”

“왜 안 그랬겠습니까? 최 이사한테 인수인계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부르냐고 저한테 한소리 했지 말입니다.”

“그래. 이제 돌아올 때도 됐지.”

“네. 적절하신 판단이십니다. 이제는 돌아와도 황 전무와 적절하게 균형이 이뤄질 겁니다.”

황 전무가 이 대화를 들었다면, 무슨 수를 쓰던 반대를 했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전무나 이사나 졸이기는 매한가지.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한국에서 뭐할 건지 계획은 세워놨대?”

김 비서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네. 확실히 세워놨더군요.”

“호오. 그래 뭔가?”

“안전모를…….”

“엥? 안전모?”

“네. 갈아 마셔버리겠답니다.”

“큭큭큭. 그래? 그 친구는 그럴 만하지.”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사장의 뇌리에서 잊히기는 했지만, 서 전무는 사장을 위해 몸으로 충성한 일등공신, 지금은 알래스카 지사의 왕고참이었다.

그리고 안전모 사태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원하시는 시기에 적절한 사건이 터졌었지요.”

“그렇지.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지.”

“덕분에 황 전무만 단물을 빨았지요.”

“이제 충분히 빨았으니, 긴장 좀 해야지.”

창밖을 바라보며, 지나가듯 물었다.

“둘이 붙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서 전무가 오기 전까지 황 전무도 최대한 만반의 준비를 하겠지요.”

그 말을 들으며, 사장의 얼굴에 웃음이 고였다.

“저렇게 위치를 잡았는데, 과연 서 전무가 힘을 쓸 수 있을까?”

“미래야 확신할 수 없지만, 황 전무도 조심해야 할 겁니다.”

“근거는?”

“서 전무가 알래스카에서 뭘 했겠습니까?”

“흐흐. 그렇군. 일 년 내내 이빨만 갈았겠지.”

사장의 눈에 담긴 의미는 명백한 웃음이었다.

“선의의 경쟁이 되었으면 좋겠구먼.”

김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조만간 스타타워 현장에 방문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

“왕 비서님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왕회장님께서 그곳을 주시하고 계시니, 관심을 좀 가지라고 말입니다.”

“잘 되고 있지 않나?”

“아무리 매체에서 때리고 홍보를 한다고 해도, 직접 한번 들르는 것보다는 그 효과가 덜하다고 하셨습니다.”

“맞는 말씀이지.”

“그리고 울산시 내부적으로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고, 그 또한 주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네. 시장이 정책의 방향을 크게 바꾸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또한 우리 현장과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흠. 잘만 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좋아.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지. 조만간 한번 들리자고.”

“그리고 본가에 들르는 것도 함께 일정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

차기석이 식사를 하다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지난 현장에서 안면이 익힌 박 반장이었다.

“벌써 마루 시공 들어가나?”

“응? 차 사장 아냐? 우린 그제부터 시작했지. 그런데 사우디에 가 있다던 사람이 여기는 웬일이야?”

차기석이 반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일이 있으니까 왔지.”

“에이. 자네한테 일 좀 해달라고 건설사들이 줄 서 있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사우디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어야 할 사람이 여기 있으니까 묻는 말이지.”

“에혀. 일하라고 부르는데 안 올 수가 있나?”

“어허이. 이 사람 말하는 거 보소.”

박 반장이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부른다고 올 사람이야? 삼송에서 호텔 짓는다고, 단가 세 배로 불렀는데도 캔슬 놓고 사우디로 갔었잖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 사실대로 말해 봐? 자네가 누구 땜빵이나 할 사람은 아니잖아. 안 그래?”

박 반장은 차기석이 여기 있는 이유가 상당히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 현장에서 삼송이나 사우디처럼 그런 높은 단가를 줄 리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리라.

선금을 내어놓고 일해 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

그것이 한국에서의 차기석의 위상이었다.

차기석이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 성훈 기사가 불러서 왔어.”

“누구? 그 깐깐돌이라는 그 친구?”

박 반장도 성훈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차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봐.”

“진짜야.”

“어허. 말이 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미리스톤 사장이 말이야.”

차기석은 현장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단 일 년도 안 되는 시간에 3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사장이 된 것은 물론이고, 사우디에서는 일반 단가의 4배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그러니 삼송의 제의를 거부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그 성공 전설의 첫 단추를 끼워준 사람이 성훈이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식사시간이 끝났다.

이제는 다시 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후속 공정에 밀리면 잔소리를 해댈 테니, 쉴 수가 있나? 하하.’

그가 안전모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믿고 안 믿고는 자네 마음이고. 하여간 이거 하나만 알아둬.”

“뭘 말인가?”

“자네 마루 쪽에서도 성훈이한테 밉보이지 말라고. 바로 쫓겨날 테니까.”

“오호? 무서운데? 그건 또 왜?”

박 반장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무결점 마루’ 윤 사장 알지?”

“알지. 그 사람이야. 우리 마루 시공업계에서는 첫손에 꼽아주는 사람이잖아.”

차기석이 석공사의 탑이라면, 윤 반장은 마루업계의 탑이었다.

“그 친구도 지금 나랑 사우디에 같이 있어.”

“그랬구나. 어쩐지 한국에서 안 보인다 했다.”

박 반장이 부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윤 반장도 성훈이가 부르면 열 일 제쳐놓고 올 걸?”

“에이. 거짓말이지? 그 친구가 자존심이 얼마나 강한데?”

그 말에 차기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이 사람아!’

과연 윤 반장이 성훈이 부르면 안 올까?

‘에이. 설마!’

실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제 낮에 리무진 한번 타보고 싶다고 자신도 꼭 부르라던 윤 반장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차기석이 물었다.

“내 말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어?”

“방법은 있구?”

“그럼. 있지.”

“뭔데?”

“자네들도 이전 돌쟁이들처럼 성훈기사한테 땡깡 한 번 부려봐.”

‘그럼 어떻게 되는데?’

박 반장이 눈으로 물었다.

“내일 아침에 윤 반장이 자네들 빈자리를 채우고 있을 거야. 내 장담하지.”

“에이. 설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에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나 농담 안 하는 거 알지? 해 봐. 윤 반장도 오고 싶어 하던데.”

***

현장은 뜨겁다.

한여름의 더위 따위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불타는 일꾼들의 열정이 있기에, 현장은 뜨겁다.

건장한 사내들이 더위에 쓰러지는 곳.

가정을 책임지는 사내로써 최선을 다하는 곳.

그곳이 현장이다.

현장은 정직하다.

땀 흘린 만큼 작품이 완성되는 곳.

그러나 잠시만 방심하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곳.

인간의 욕망과 열정이 모인 곳이 바로 현장이다.

미사여구를 많이 늘어놓았지만, 이맘때의 현장은 화약고와 같다.

“와우. 덥다. 완전 땡볕이네.”

아무리 더워도 현장에서는 반팔과 반바지, 슬리퍼를 걸칠 수 없다.

‘오늘처럼 불쾌지수가 높은 날, 싸움이라도 나면 크게 나겠는데. 그늘에서 좀 쉬어가면서 하라고 해야겠네.’

열심히 살기 위해서 일을 하러 왔는데, 몸이 상해서야, 그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으랴?

오늘 같은 날은 평소라면 아무것도 아닐 일도 크게 커지기 마련이다.

내 팔에 들러붙은 땀이 나를 짜증나게 하기 때문이다.

여름은 가장 일하기 좋은 계절이지만, 가장 일하기 싫은 시기이기도 하다.

현장을 돌아보며, 외치고 다녔다.

“박 반장님. 쉬었다 하세요.”

“어쩐 일이래? 맨날 빨리하라고 난리를 쳐대더니.”

평소와 다른 나의 모습에 마루 박 반장도 농담으로 응수했다.

“알약 드셨죠? 다들?”

여기서 알약이란 정제 소금을 말한다.

더운 여름, 덥다고 물만 들이켜다가는 신진대사가 불균형을 이루어 탈진으로 쓰러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 먹었어. 성훈 기사도 좀 쉬면서 다녀? 보는 내가 다 짠하네.”

비 온 뒤 땅 굳는다고, 이제 현장과의 친밀도가 대화에서 드러났다.

현장을 돌아보다가 마뜩잖은 느낌이 들었다.

‘다 잘 되어 있는데, 이상하네.’

두 번째 삶에서 돌아오기 전의 현장과 뭔가가 다른데, 당장은 그 차이를 알 수 없었다.

석조, 설비, 전기, 마루, 가구, 다 잘 되어 있는데?

마루의 시공 상태를 둘러보았다.

‘생각보다는 잘하네.’

생각 같아서는 사우디의 윤 반장도 불러오고 싶었지만, 시공단가를 4배나 지불할 능력이 없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도 알리 현장인데, 알리에게 민폐를 끼칠 수도 없고 말이야.’

차 사장은 왜 불렀냐고?

‘오겠다고 하니까, 부른 거지. 오기 싫다면 안 불렀어. 차 반장 말고도 사람은 많다고.’

차 반장 입장에서도 신세 한 번 졌으니, 갚겠다는 마음으로 온 것이리라.

‘나중에 제대로 단가를 책정하고 불러서 쓸 날이 오겠지.’

지금은 임시로 만족해야 했다.

실력이 있으면 실력 대접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마루를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뭔가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뭐가 문제지?’

내가 기억하는 미래의 공사 현장은 지금보다 훨씬 더 깔끔했다.

지금의 내 현장도 마찬가지다.

청소도 완벽하고, 아무 곳에서나 함부로 흡연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한 번의 경고 후, 시행되지 않으면 퇴출.’

이 안건에 대해서는 좀 독하게 시행을 했었다.

현장의 청결을 해치고, 분란을 일으키는 원인이었다.

“흠.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잠시 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깔끔한 마룻바닥에 찍힌 누군가의 워커 자국.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감히 어떤 놈이?”

그러나 불평할 수는 없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 젠장, 보양*이었어!’

그리고 그 발자국이 찍힌 곳을 따라갔다.

***

“야. 이 개새끼야. 너 때문에…….”

현장 한구석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끈적끈적한 땀이 등짝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런 무더운 날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도 큰일이 되어버린다.

그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무슨 일이세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박 반장이 붉어진 얼굴로 하소연을 했다.

“김 기사. 이것 좀 보라고.”

깔끔한 마룻바닥에 푹 파인 자국이 보인다.

그리고 군데군데 찍혀진 워커 자국,

그것뿐이면 다행이게, 모래 묻은 워커를 끌었는지, 마루에 스크래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어제 시공한 마루가 엉망이 되었어.”

박 반장이 전기 작업자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거 어떡할 거야. 어떻게 할 거냐고?”

그 작업자는 억울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김 기사 내가 일부러 그랬겠냐고.”

“알았다면 그랬을 리가 없죠.”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사람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 정말 너무 한 거 아니냐고?’

휴! 왜 당신이 벌인 잠깐의 부주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손해를 봐야 하냐고?

휴!

아직 우리 현장은 개선되어야 할 것투성이였다.

※ 작가 주

보양 : 비닐이나 골판지 같은 보호재로 제품을 둘러싸 보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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