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184화 (184/427)

건축의 신 184화

스타타워 현장(10)

여기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시.

현장은 언제나 바쁘게 돌아간다.

오늘도 일미리스톤 사장 차기석은 정신없이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이. 박 반장. 일 미리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눈을 부라리며 품질을 요구했다.

“알죠. 우리가 괜히 일미리스톤입니까?”

그 특유의 장인 정신으로 단 일 년만에 회사를 이렇게 키운 장본인이 차기석이었다.

-치직. 현장 사무실에서 차 사장님 찾습니다. 아주 급한 일이라고 합니다. 즉시 와 주십시오.

“알겠다. 즉시 가겠다. 좀 있다가 다시 확인하러 온다. 어설프면 알지?”

박 반장이 차 사장에게 굽실거리며 말했다.

“당연히 알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

“무슨 일인데, 그래요? 소장님. 억!”

현장 사무실에 들어서던 차기석의 발걸음이 순간 움찔했다.

“오랜만입니다. 차 사장님.”

“아이고. 반갑습니다. 탈랄 비서관님.”

차기석이 현재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은 알리 왕자 소유의 호텔이었다.

물론 현장 소장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공사의 주체는 알리 왕자였고, 탈랄은 알리 왕자의 심복이다.

그의 말이 곧 알리 왕자의 말.

평소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고위인사가 모습을 드러냈으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비서관님?”

탈랄은 근엄하게 전화기를 내밀뿐, 말이 없었다.

‘뭡니까?’라고 물어볼 수 없다.

현지인 현장 소장이 얼른 받으라며 눈짓으로 채근했다.

그도 무슨 일인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차기석이 양손으로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도대체 누구기에?’

“전화 바꿨습니다. 일미리스톤 차기석입니다.”

-차 반장님. 김성훈입니다.

‘응? 성훈이?’

고개를 움찔했다.

탈랄을 슬쩍 바라보니, 그냥 받으라는 눈치다.

일언반구 설명도 없었다.

“오. 성훈 씨. 웬일인가? 이 사람들하고는 무슨 관계…….”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탈랄이 끌고 온 리무진 보이시죠?

현장 사무실 앞에는 새하얀 리무진 세 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왕족 전용의 리무진.

저 차가 지나가면, 시내 교통이 마비된다는 그 리무진이었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그런데 왜?”

-작업자들 30명만 데리고 타세요.

“응. 알았어. 자네가 하라니까 한다만. 왜?”

-사람이 급히 필요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으로.

“그래? 알았네.”

문 차장도 전화로 뭐라고 했었지만, 차기석이 문 차장의 말에 움직일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훈이 직접 전화를 했다.

‘이러면 하늘이 무너져도 가야지.’

전화기로 성훈의 말이 들려왔다.

-바쁘셔서 오기 힘드시면 안 오셔도 됩니다.

차기석이 깜짝 놀라며, 역정을 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자네가 부르면 지구 반대편에 있더라도 날아가야지.”

-거기 비행기는 알리가 준비했으니까, 내일 아침까지 현장 도착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래. 알았어. 바로 출발하지.”

-미안합니다. 갑작스레 부탁을 드려서.

“그런 소리는 하지를 말게. 얼마든지 필요할 때, 부르기만 하면 돼. 진짜야!”

-감사합니다.

“어허! 그런 소리 하지 말라니까.”

전화를 끊고 무전기를 들었다.

“반장! 30명. 5분 내로 현장사무실로 집합한다.”

-아따. 사장님. 뭔 소리대요. 지금 한창 바쁜…….

“일미리가 부른다. 당장 뛰어와!”

현장에 비상이 걸렸다.

***

차기석과 반장들이 작업복 차림으로 리무진에 올라탔다.

탈랄이 말했다.

“바로 왕자님 저택으로 갈 겁니다.”

공손하지만, 근엄한 탈랄의 말에 차기석의 허리가 절로 숙여졌다.

“네? 왕자님 집에는 왜?”

“거기 비행장이 있으니까요.”

“네? 비행장이 거기에…….”

“공구는 다 챙기신 겁니까?”

“아이고. 네. 다 챙겼습니다. 그런데 차림이 이래서.”

“상관없습니다. 얼른 타시죠.”

멀리서 마루 윤 사장이 뛰어왔다.

“차 사장! 뭔 죄지었어?”

탈랄의 경호원이 제지하려 했지만, 차 반장이 양해를 구했다.

“너무 갑자기 가는 거라서, 후속 공종하고 얘기 몇 마디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탈랄도 이해했다.

그리 급한 것은 아니었다.

도로에서 10분은 비행기에서의 1분의 가치도 없었으니까.

“그럼. 짧게. 왕자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윤 반장이 헐떡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게 뭔 일이여? 진짜로…….”

“아니. 일미리가 불러서.”

“성훈이가?”

“응. 내일 아침까지 울산 현장으로 오라고 해서 가는 거야.”

“이 리무진도 성훈이가 부른 거고?”

“그렇겠지. 알리 왕자랑 호형호제하잖아.”

“햐! 차 반장 출세했네.”

“됐고. 나 이제 간다. 늦으면, 너 때문이라고 할 거니까 각오하고 있어.”

윤 사장은 걱정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차 사장. 가면 성훈이한테 나도 부르라고 해라.”

“왜?”

“나도 리무진 한번 타보자. 왜!”

차기석이 피식 웃으며, 리무진에 올라탔다.

새하얀 리무진 세 대가 현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

다음 날 새벽 울산.

성훈이 현장 입구로 마중을 나왔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오랜만이네.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하고 사우디로 날아갔는데.”

“그런 이야기는 오늘 일과 끝나고 술 한잔 하면서 하시죠? 따라오세요.”

“어라. 숨 돌릴 틈도 없이?”

“어제 석공팀이 현장을 엉망으로 만들어 놔서, 자칫하면 공정 밀려요. 따라오세요.”

“그래. 알았어.”

차기석의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인간, 뭡니까? 감히 우리 사장님한테!”

“닥치고 조용히 따라와. 엄한 소리 듣기 싫으면.”

차기석과 십 년을 동고동락한 박 반장이 눈을 부라리며 웅성대는 상황을 종료시켰다.

차기석이 직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현장으로 들어간다. 안전모 착용.”

“안전모 착용!”

30명의 인원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복명복창한다.

쩌렁쩌렁한 소리가 현장을 가로지른다.

그 뒤를 이어진 안전 구호들.

성훈이 뒤를 돌아보았다.

‘배웠으면 좋겠네. 우리 현장 사람들도.’

성훈에게 도면을 받아든 차기석이 물었다.

“시방서대로 3mm에 맞추면 되나?”

성훈이 인상을 빡 썼다.

“그럴 거면 뭐하러 반장님 부릅니까? 아무나 부르지.”

“그럼 또?”

“네. 오차 없이 1mm 아시죠?”

“크흑. 알았네.”

“그럼 들어갑니다.”

***

진 소장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외주업체 작업반장들을 모두 소장실로 호출했다.

“어제 석공팀이 빠지는 바람에 좀 현장에 소란이 있을 겁니다. 며칠 안 가서 상황이 정리될 테니까, 조금만 양해해 주십시오. 허허허.”

그들이 타박을 한다고 해도, 그 정도는 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가 될 테니까.’

“김 과장! 나가서 문 차장이랑 김성훈이 그 새끼도 들어오라고 해!”

“그런데 성훈이는 왜 부르십니까?”

“그 새끼가 무슨 짓을 했는지, 지 눈깔로 봐야 앞으로 조심할 거 아니야? 안 그래?”

김 과장이 작업반장들을 슬쩍 둘러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김 과장이 나간 사이, 소장이 회의를 진행했다.

“현장에 문제가 있으면 안 되는데,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어떡합니까? 미안합니다. 허허허.”

소장이 냉커피를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담당자 불렀으니까, 그때까지 냉커피나 마시면서 이야기나 합니다.”

잠시 후, 성훈과 문 차장이 소장실로 들어왔다.

소장이 회의를 주관했다.

“자. 그럼. 어느 공종에서 작업에 지장이 있는지 말씀하세요.”

‘흠. 오랜만에 회의 진행을 하자니, 좀 어색하군.’

작업반장들은 소장과 성훈의 눈치만 볼 뿐, 아무도 말이 없었다.

소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어색해하지 마시고. 문제가 있으면 속 시원히 터놓고 말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작업반장 하나가 입을 열었다.

“소장님. 외람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석공팀이 빠졌으니까, 일에 지장이 생겼을 거 아닙니까? 다들 아시다시피, 어제 여기 우리 수습기사하고 석공팀이 한바탕하고 철수를 했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죠?”

“그거야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현장 기사 감싸주려고 하시는 건 알겠는데, 제 앞에서는 안 그러셔도 됩니다. 현장의 문제가 뭔지 제가 정확히 알아야, 저도 뭔가 조치를 취할 것 아닙니까?”

천정 몰딩팀의 박 반장이 말했다.

“소장님. 현장에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뭐요?”

“김성훈 기사가 어디서 구했는지, S급으로 데리고 왔던데요?”

“엉? 진짜요?”

‘사람 구할 곳이 없었을 텐데?’

박 반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번에 있던 돌쟁이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던데요? 얼마나 정확히 작업했는지, 우리도 두 번 손가는 것 없이 한 번에 작업 끝냈습니다.”

말을 하며 입가에 걸리는 웃음이 농담은 아닌 듯했다.

반대로 소장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이건 예상한 시나리오가 아닌데?’

“그래요?”

현장에서 난리가 나야, 저 싸가지 없는 놈을 작살낼 수가 있는데?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 반장이 칭찬을 늘어놓았다.

“물어보니까, 대한민국 탑이더라고요. 아시죠? 소장님도. 일미리스톤이라고. 유명합니다. 우리나라 최고죠!”

“그렇습니까?”

소장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박 반장은 엄지를 세우며 칭찬했다.

“오차가 없어요. 오차가! 오죽하면 이틀 걸려도 안 끝날 작업이 반나절에 끝났습니다.”

다른 반장도 그 말에 호응했다.

“그렇지? 박 반장. 나도 가서 봤는데,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대. 야! 괜히 우리나라 탑이라고 하는 게 아니더라.”

“그러니까, 사우디에서도 모시고 가고 그러는 거지. 나는 그렇게 하라면 엄두도 안 나겠던데.”

소장의 미간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이건 뭐지?’

박 반장이 물었다.

“성훈 기사. 그런 사람을 어떻게 불렀어? 나도 좀 소개시켜 주면 안 될까?”

작업반장들이 한마디씩 거들며, 서로 성훈에게 차기석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소장님. 부르신 연유가 뭡니까?”

내 물음에 소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너. 이 새끼야. 누구 마음대로 사람들 들이고 지랄이야? 네가 소장이야?”

‘꼬투리를 잡았다, 그거냐?’

내 대답도 당연히 좋을 수가 없었다.

“소장님께서 알아서 사람 부르라고 하셨다면서요?”

“누가 그래?”

“김 과장님이요.”

김 과장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어제 소장님께서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능력이 된다면.”

“그래도 새끼야.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으면 인사는 시키고 일을 해야 할 것 아니야? 넌 기본도 몰라?”

‘별 걸로 다 시비네.’

그의 말에 따지듯 대답했다.

“당장 일이 막혀서 공정이 밀리게 생겼는데, 소장님 출근하도록 손 놓고 있으란 말입니까? 그럼 여기 계신 분들 손해가 얼만지는 생각 안 하십니까?”

반장들이 고개를 주억이며 수군거렸다.

“그건 성훈 기사 말이 맞지. 어제 그대로였으면, 오늘 작업자들은 놀린다고 봐야지.”

“우리도 사실은 오늘 안 들어오려고 했는데, 성훈 기사가 무조건 맞춰놓는다고 사람들이라고 해서 들어온 거 아닙니까?”

“반신반의했지. 이렇게 깔끔하게 해 놨을지 누가 알았겠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지만, 이런 좁은 곳에서 못들을 소리가 뭐가 있을까?

소장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이 새끼가 어디서 따지고 들어? 넌 위아래도 몰라?”

이거 계속해야 되나?

‘아! 진짜. 짜증 나네. 언제까지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현장의 생리를 정확히 익히기 위해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중인데, 일과 상관없는 비리의 역학 관계만 보인다면, 이건 시간 낭비였다.

‘일하려고 왔지, 당신 비위 맞추려고 온 줄 알아?’

휴대폰의 ‘Send’ 버튼을 눌렀다.

문 차장이 내 눈치를 보더니, 속삭이듯 물었다.

“곽 이사?”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 차장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콜 안 혀도 알아서 올 텐디?”

하지만 너무 화가 나서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성훈 군? 지금 거의…….

수화기에 대고 으르렁거렸다.

“이사님. 현장 정말 이따위로 하실 겁니까?”

-저기……. 성훈 군.

“자꾸 이렇게 실망시키시면, 저 현장 뒤집습니다. 완전히!”

-큭. 미안하네만, 앞에 진 소장 있으면 좀 바꿔 주겠나?

내키지는 않았지만 전화기를 내밀었다.

“전화 받으시죠?”

“이 새끼가 어디서 받으라 마라야! 내가 니 쫄따구야? 새끼야!”

수화기에서 노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진 소장. 이 새끼야. 닥치지 못해?

어찌나 소리가 컸던지, 사무실에 있는 사람이 다 들을 정도였다.

누가 들어도 곽 이사 목소리였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곽 이사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쾅.

소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곽 이사님. 여기는 어쩐…….”

들어옴과 동시에 소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날아차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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