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83화
스타타워 현장(09)
현장에 도착했을 때, 문 차장이 반장을 붙들고 애걸복걸하고 있었다.
“이러코롬 현장을 내팽개치고 가믄 어떡한당가? 다른 공종들 손해 보는 건 생각도 안 하능겨?”
하지만 반장은 냉랭하게 웃었다.
“흥. 그러게, 누가 내 성질 건드리라고 했어? 우리도 하는 만큼 했다고!”
반장은 문 차장에게서 눈을 떼고, 아직 장비를 다 챙기지 못한 작업자들을 닦달했다.
“야. 얼른 안 챙겨? 동작이 왜 이리 느려?”
내가 오는 걸 보고 문 차장이 뛰어왔다.
“성훈 씨. 이거 어칸데요?”
그의 다급한 마음이 느껴졌다.
“반장님. 지금 철수라고 하셨습니까?”
“응. 마침 잘 왔네. 너도 못 보고 그냥 갈 뻔했네.”
“전 왜요?”
“잘 들어라. 김성훈이. 네가 먼저 시작한 거다.”
“작업한 거 수정하라고 해서 이러는 겁니까? 훗.”
“어쭈. 코웃음 치네. 확 그냥!”
반장이 말을 이었다.
“사람이 말이야. 적당이라는 걸 알아야지. 이렇게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되는 거야! 알아!”
그도 맺힌 것이 많은 듯 했다.
“사람 하는 일에 완벽이 어디 있어? 꼴랑 영점 몇 미리 가지고 사람 바보 만들면 안 되지. 암!”
“꼴랑 몇 미리요?”
“그래. 꼴랑 몇 미리!”
“성훈 씨. 적당히 사과하고 넘어 가장께 그러네.”
“흥. 차장님. 왜 반장이 직접 해머 들고 설친지 아십니까?”
갑자기 그 이야기를 왜 하냐며 반장과 문 차장이 나를 바라본다.
“내게 가장자리만 계측한 게 그 정도입니다. 가운데로 가면 3cm가 넘는 게 수두룩해요.”
그냥!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초등학생을 불러다가 붙여도, 그것보다는 잘 붙일 자신이 있었다.
실 하나 띄워 놓고, 거기에 맞추라고 하면, 손놀림이 정상인 이상,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게 귀찮아서, 되지도 않는 자기 실력을 믿고 대충 작업했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벌어진 거다.
안 봐도 불을 보듯 뻔한데, 지금 내 앞에서 대충? 적당? 미친 거냐?
“봤어?”
“봤죠. 당연히.”
내 천연덕스런 대꾸에 반장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큼큼. 그럼 증거 있어?”
있을 리가 있나?
다 박살이 났는데, 누구 때문에.
‘내가 미쳤다고, 해머질 안 하고, 귀찮음을 감수하며 손망치질을 했는데.’
눈치가 빨랐던 건지, 아니면 성질이 더러웠던 건지 결과적으로 증거는 사라졌다.
나중에 자기 사장에게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제대로 했는데, 성훈 기사가 말도 안 되는 딴죽을 건 거라고 말이다.
‘웃음밖에 안 나오네.’
반장에게 말했다.
“당신네 사장한테 책잡힐 일 생길까 봐 일부러 다 박살낸 거잖아요. 반장님. 안 그래요?”
“흥. 이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네. 젊은 양반이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뻔뻔하게 대응하는 반장의 입가에 고소가 어렸다.
증거가 없으니, 자기는 당당하다는 거다.
“뭐. 이제 그런 증거도 필요 없겠네요. 나가신다니까.”
“내가 그냥 넘어갈 것 같아? 대리석 파손된 거 네가 책임 져야 할 거야. 우리 노임은 물론이고.”
반장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를 꼬나본다.
이참에 기선을 제압하겠다?
나 참. 어이가 없구만. 누굴 바보로 아나?
현장을 개판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서 책임을 떠넘겨?
그리고 무책임하게 현장을 버려두고 나간다는 인간이 지금 책임에 대해 따진다?
다시 들어올 생각인가? 무슨 수로?
고대 중국의 성현, 맹자가 말했다.
往者不追 來者不拒(왕자불추 래자불거).
고상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결론은 이거다.
‘오는 놈 안 막고, 가는 놈 안 붙잡는다.’
책임을 들먹이니 내가 말문이 막혔다고 생각했던지, 문 차장이 슬쩍 귀띔을 해준다.
“아무래도 소장 그 인간이 장난을 친 거 같구만. 안 그라믄 저렇게 당당할 수가 없당께.”
“그렇겠죠. 일당쟁이들이 일당을 포기할 정도니, 대안이 있겠죠.”
“그라니께. 나 생각은 말여. 적당히 달래믄 내일이라도 당장 작업을 재개헐 것 같은디.”
“전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라믄 우짤라고 그려?”
“어차피 저 실력 가지고, 이 현장 마무리 못 짓습니다.”
정해준 기준에서 한 발짝 한 발짝 양보하다 보면, 결국은 낭떠러지로 밀려난다.
타협?
좋은 단어이지만, 내 현장에는 해당사항 없다.
“부반장님.”
반장의 부하가 어색하게 나를 바라본다.
“똑바로 말하세요. 내가 깨부셨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
“쓰읍! 닥쳐! 자넨 저리 가서 애들이나 챙겨!”
반장이 나서며 그의 말을 끊었다.
“우리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말은 바로 합시다. 반장님. 내가 깬 건 스무 장도 안 됩니다. 아시죠?”
“그래서? 책임 못 지겠다고?”
“당연하죠. 그 비용에 대해서 말한다고 해도, 난 관계없습니다. 그건 분명히 잘못 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당신 손으로 깨부순 거니까요.”
우리 둘의 말싸움에 문 차장은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다.
끼어들어 봐야 좋은 꼴은 못 보니까.
“허허. 인정을 안 하네. 아니면 현장이 뒤집어져도 괜찮다는 거야?”
어차피 여기서 물러나도, 현장은 엉망이 된다.
나 자신이 기준을 흩뜨려 놨는데, 누가 내 기준의 가치를 인정하겠는가?
마루는? 설비는?
현장에 있는 모든 공종들이 말하지 않겠는가?
‘성훈 기사. 석공팀한테도 그만큼 양보했잖아. 우리도 좀 봐줘.’라고.
그렇게 타협이 오가는 현장이 제대로 아름답게 마무리될까?
‘정 안 되면, 본사에 설계 건으로 딴지 걸고 멈춰 세울 생각도 하고 있다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현장을 남들 멋대로 진행시켜서 내 작품에 똥칠할 생각은 전혀 없거든.
“뒤집어질 건 아시네요? 그러면서도 나간다고 고수를 하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부반장은 걱정이 되는지, 슬며시 돌아와 말렸다.
“반장. 우리만 빠져서 된다면 나도 이런 말 안하겠는데, 우리 후속 공종은 어떻게 되나? 이건 그 사람들 죽으라는 말 밖에 안 되는 거야.”
“쓰읍. 닥치고 있으래도?”
“다시 현장 들어온다고 해도, 그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네가 반장이야? 네가 사장한테 말해.”
“그건…….”
“안 그러면 찌그러져 있어.”
다시 내게 고개를 돌렸다.
“아. 몰라. 우리는 철수한다.”
깨진 대리석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현장 정리도 안 하고. 그대로 철수한다고요?”
“흥. 답답한 놈이 알아서 치우겠지.”
“누구요?”
“거 왜! 맨날 안전모, 현장 정리를 입에 달고 있는 놈 있잖아.”
나 말하는 거냐?
“경고합니다. 제대로 현장 정리 안하면 현장 출입 금지합니다.”
반장이 같잖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할 말이다. 이놈아. 하여간 제대로 사과 안 하면, 앞으로 우리 못 볼 줄 알아. 알았어?”
사과는 무슨!
잘못한 게 있어야 사과할 마음도 생기지.
그의 말에 대답해 줄 것은 코웃음 밖에 없었다.
“허 참.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지!”
“말씀하세요.”
“아무리 우리가 밑바닥 인생이라도 자존심이 있어. 그렇게 사람 무시하면 안 되는 거야. 대충 넘어가야 할 때는 넘어갈 줄도 알아야지.”
자존심?
그런 가치 있는 말은 실력이 되는 사람이 말해야 하는 거다. 너 같은 삼류도 못 되는 쓰레기가 아니라.
실력을 갈고 닦지도 않은 주제에 어디서 자존심을 말하고 있는 건가?
대꾸할 가치도 못 느꼈다.
“그럼 그렇게 대충 하는 현장으로 가세요. 저도 안 붙잡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알았어.”
“참. 철수하는 것, 대리석 사장님도 동의하신거죠?”
“흥. 당연하지.”
“사장님한테 전하세요. 나갈 때는 제멋대로였을지 몰라도, 들어올 때는 뜻대로 안 될 거라고요.”
“흥. 좃만한 게! 말은 잘하네. 그럼 네 뜻대로는 될 것 같으냐?”
“그리고 이것도 전하세요.”
“또. 뭘?”
“앞으로 현장으로 들어오는 물건은 제가 직접 검수할 테니까. 그렇게 아시라고요.”
“흥. 겁주는 거냐? 무서워할 줄 알고?”
문 차장이 눈을 부릅떴다.
당해 본 사람만 아는 괴로움.
하지만 그것을 당해 본 사람은 아직은 극소수.
문 차장이 투덜거렸다.
“아따. 또 누구 하나 디지겄네.”
시공팀이야, 무슨 수를 써서 교체를 한다고 해도 업체까지 교체하는 데는 무리가 따르니, 저런 식으로 품질을 지키겠다는 의미이리라.
반장이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물건 잔뜩 쟁여 놨는데, 작업자 없이 일 어떻게 하는지 보자. 야! 가자.”
문 차장이 황급히 반장을 뒤쫓았다.
아직 현장을 나건 것은 아니니, 기회는 있었다.
몇 명만 남겨 두고 가도, 급한 일은 어찌어찌 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완전히 빠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거시기. 반장. 아무리 화가 나도 이런 것은 경우가 아니제. 그라고 말여.”
“흥. 문 차장. 우리가 뒷감당할 자신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이는 것 같어?”
“엥? 그것이 뭔 소리…….”
반장이 턱짓으로 슬쩍 현장사무실을 가리켰다.
고개 돌린 문 차장의 눈에 소장이 보였다.
이 난리통을 지켜보는 그의 얼굴에는 옅은 웃음이 어려 있었다.
‘저 개 놈의 종자가! 현장 돌릴라믄 알아서 기어라. 그 말이여? 시방?’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웬만하면 큰 문제없이 현장 진행되기를 문 차장이 얼마나 기도했던가?
소장의 지시가 분명하니, 문 차장 자신이 아무리 부탁해 봐야 도루묵일 터.
“우리 사흘 뒤에나 얼굴 볼 수 있을 거요.”
“그게 뭔 소리당가?”
“그건 알 거 없고. 하여간 저 싸가지 없는 새끼 얼굴만 안 보이면 내일 당장이라도 들어올 거요. 하여간 그렇게 아쇼!”
성훈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차장님!”
“왜?”
“잡지 마세요.”
문 차장이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
“우짜쓰까잉. 워매 미쳐 불겄네.”
“얼른 안 오세요?”
결국 문 차장은 인상을 찌그러트리며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나가 대굴빡이 남아나질 않는당께. 저 독한 인간 땜시롱.”
***
“망할 놈의 소장 새끼가 결국!”
김 과장의 말에 문 차장도 울분을 터트렸다.
“꼴랑 견습 하나 물 먹이려고 전체 공정을 멈추겠다는 거 아녀? 정신이 있는 겨, 없는 겨?”
“저번에 함바 사장 건도 한몫했겠죠.”
“후속 공종들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닐 텐데. 어쩌면 좋죠? 문 차장님?”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당가? 아는 데다가 연락은 넣어 봤는디, 다들 제 일 하기도 바쁘니께, 우덜헌티 넣어줄 기공이 있겄어?”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 김 과장도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훈이 물었다.
“소장은 뭐라고 합니까? 과장님.”
“뭐라고 하겠냐? 자기도 어쩔 수 없다고 발뺌을 하더군. 성질 같아서는 확!”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는 말 안 해요?”
“알아서 하라고 하지. 능력되면. 그게 더 약 오르더라.”
“아따. 돌아버리겄네. 이 일을 우짜쓰까잉. 그러게 성훈 씨. 나가 뭐라 했당가? 그 성질머리 좀 죽이라고 혔어, 안 혔어?”
왜 문 차장과 김 과장은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까?
자기들이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닌데?
현장을 지휘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리라.
현장의 공정표에는 여유 공간 따위는 없다.
당연한 거다.
여유만큼 로스가 생기고, 그것은 손해와 직결된다.
현장의 손해.
하루 벌어 먹고사는 직공들의 손해.
현장은 공정표에 따라서 모든 계획이 준비되어 있다.
내일 들어올 물량, 인원, 장비.
그 모든 것들이 일체를 이루어야 공정에 차질이 없다.
그럼 기사들이 하는 일이 뭐냐?
우격다짐으로 이 공정에 모든 것을 맞추는 것이다.
하나의 공종이 나 몰라라 손 놓는 순간, 그 현장은 박살이 난다.
들어올 인원들을 대기시켜 놓았는데, 들어와도 할 일이 없다. 그들의 노임은 공중분해 된다.
그럼 다른 현장으로 돌리면 되지 않느냐고?
하루만 써 달라고 하면 좋다고 해줄 현장이 어디 있는가? 그들도 공정표대로 움직이는데.
“시공자들이 손해를 많이 보겠는데요.”
“거 봐라. 성훈아.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냐?”
김 과장은 다른 공종을 걱정하고 있었다.
성훈에게 악의를 비치는 사람들, 소장과 한통속인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 것이 없다.
‘현장이 다 그런 거지, 어떻게 하겠어? 맨날 이득만 볼 수 있어? 나도 힘들어. 좀 봐 줘.’
이렇게 말하는 자들은 돈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노동을 대가로 지불하는 인부들은 속이 바짝바짝 탄다.
하루 일해서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은 앞의 공정이 멈춰버리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일을 안 하면 돈을 누가 주는가?
현장에서 그 손해를 메꿔주는가?
그럴 리가!
“소장. 그 새끼가 개새낀겨? 빌어묵을 놈.”
“어쩌겠어요? 다른 방법을 찾아 봐야지. 당장 내일 공정이 꼬이게 생겼는데.”
“차장님, 과장님은 신경 쓰지 마시고, 공정진행하세요. 이건 제가 풀어볼게요.”
김 과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성훈아. 방법이 있어?”
문 차장은 뭔가를 아는 듯 성훈을 바라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차 반장 부를라고 그랴? 쉽지 않을 것이여.”
“왜요?”
“갸들 지금 사우디에 가 있잖어. 나도 부를라고 해 봤제. 젤루 먼저 생각이 나던디.”
“뭐라던가요?”
“콧방귀도 안 뀌여.”
“정말요?”
“차 반장이 인자 우덜이 알던 차 반장이 아녀.”
무슨 말이냐는 눈빛으로 문 차장을 응시했다.
“사장님이여. 사장님! 차 반장, 갸 밑으루다가 직원이 300명이나 된당께. 안 올 것이여! 뭐가 아쉬워서!”
문 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차 반장이 정말 그래요?”
“응. 아까 통화혔어. 그라고 설령 부탁부탁해서 오기로 했다고 쳐도, 내일 아침꺼정은 불가능 혀! 비행기가 갸들 간다고 기다려 줄 리가 없잔여? 못 혀도 사흘은 걸릴 것이랑게. 다른 데를 알아보는 것이 낫어.”
“그래요? 밑져야 본전이죠. 사흘 뒤에 그 인간들이 반드시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구요. 안 그래요?”
한번 꺾인 기세는 다시 세울 수 없다.
성훈이 피식 웃으며 전화기를 들었다.
“성훈 씨가 알아서 하쇼. 어차피 나는 내 능력은 벗어났응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