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82화
스타타워 현장(08)
“아깝네요. 0.7㎜만 더 밀어 넣었으면 합격이었는데.”
“하하하, 김 기사. 이 정도는…….”
반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서리를 찍었다.
톡.
대리석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다.
반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진짜! 1㎜도 아니고, 0.7㎜라고!”
“그래서 오차 3㎜를 안 넘는다는 말씀이세요?”
말문이 막힌 반장이 제 가슴을 텅텅 친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너무하기는요. 이미 오차를 3㎜나 허용을 한 상태예요. 거기서 또 오차를 허용하라고요?”
‘내 마음 같으면 오차 1㎜로 하고 싶었거든요.’
현재 건설 양 이사가 다른 항목으로 딜을 걸지만 않았다면, 이것도 1㎜로 고집을 했을 것이다.
1㎜든 0.5㎜든 기술자들은 할 수 있다.
실제로 차 반장도 그렇게 했었다.
‘양 이사가 입에 거품을 물어서 겨우 참았건만.’
반장이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하소연을 한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기회를 놓쳤어.’
기회?
그건 이미 문 차장이 한 번 제공했다.
“아이쿠, 이번에는 진짜 아깝네요. 0.5㎜. 고무망치 한 번만 더 두드리시지.”
다시 장도리로 튀어나온 부분을 콕 찍었다.
“훅! 훅!”
반장의 콧바람이 내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이 정도 가지고는 어느 현장 누구도 이야기 안 한다고!”
“그럼 그런 현장에 가셔서 일하세요. 어느 현장인지야 저도 모르지만.”
“아, 사람 참. 너무하네. 응?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야지 말이야! 안 그래? 안 그러냐?”
반장은 내 뒤를 죽 둘러싸고 있는 인부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중이었다.
‘흥. 이게 다수결로 결정할 일이냐?’
여태껏 어떤 식으로 기사들을 후렸는지 몰라도, 내 현장에서는 어림도 없어.
어설픈 조공들을 기공이라고 억지를 쓰며 현장에 밀어 넣기 때문에 이런 불량품이 나온다.
반대로 정말 실력 있는 기공들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손놀림만 척 봐도 시다바리더구만.’
그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내 일만 하면 된다.
또 불량이 나왔다.
어차피 살리지 못하는 것.
현장의 손해는 없다.
대리석 회사에서 그 시공팀을 부리는 거니까.
시공 하자로 발생한 부족분은 어차피 그 회사에서 보충해야 한다.
‘물론 그만큼 작업반장은 욕을 먹겠지.’
대리석에 줄자를 갖다 대며 말했다.
“아이쿠, 반장님. 이번에는 왕건이네요. 1.5㎜. 맞죠?”
“끙. 그렇군.”
“그럼. 부담 없이.”
톡. 톡. 톡.
빠직.
반장의 이마 혈관이 불끈 튀어나왔다.
‘흥. 당신 핏줄이야 터지든가 말든가!’
애초에 약간만 신경을 써서 일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어. 이 양반아.
붙이는 대리석의 개수에 따라 돈을 받기 때문에, 그들은 붙이는 것에만 신경을 썼지,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를 신경 쓰지 않았다.
차라리 해머로 시원하게 깨부수지, 왜 이렇게 약 올리듯 하느냐고?
그래! 약 올리는 거 맞다.
예전 기숙사 현장에서 돌쟁이 차지석을 상대할 때, 그가 언제 가장 열 받았는지를 기억하고 있거든.
크게 하자가 나서 수정이 불가피한 부분들은 ‘미안하군’ 하면서 차 반장, 스스로 대범하게 망치를 휘둘렀다.
‘그런 차 반장이 가장 열 받았을 때가 언제냐고?’
바로 이럴 때다.
영점 몇 미리 차이가 날 때.
왜냐고?
조금만, 정말 조금만, 말 그대로 0.1㎜만 더 신경 써서 안으로 밀어 넣었다면 하자가 아니거든.
0.1㎜는 고무망치로 한 번만 더 톡 치면 되는 거였다.
그 한 번의 손길이 하자와 합격을 가르는 것이다. 시공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안타까우랴!
하지만 시멘트는 굳어버리면 끝! 수정할 수 없다.
어설프거나 마음 약한 심사위원을 만났다면, 합격 판정을 받았을지도 모르지.
이런 상황에서 귀퉁이가 톡 부서질 때, 차 반장은 가슴을 쥐어짜며 한숨을 내쉬었었다.
‘차 반장도 속으로야 욕을 한 바가지 했겠지만.’
감독의 채점에 아량을 바라는 수험생의 마음이 이럴까?
‘미안해요, 반장님. 아량이 없어서.’
나처럼 속 좁은 사람에게 걸리면,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속을 누르고 있던 반장이 결국 폭발했다.
“야, 이 사람아! 맘에 안 들면 다 때려 부숴 버리면 되지. 이게 뭔가? 지금…….”
‘약 올리는 건가?’라는 말을 하고 싶겠지.
하지만 나는 대응하지 않았다.
차분히 말했을 뿐이다.
“정확하게 해야죠. 맘에 안 든다고 때려 부수면 됩니까? 작업자분들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되죠? 안 그래요? 그게 설령 0.1㎜라고 할지언정.”
“귀퉁이가 나가나, 전체가 부서지나 갈아치워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그래서요? 저보고 기준에 벗어나지 않은 것도 불량 취급하라고요. 전 그런 짓 안 합니다.”
꿈틀.
반장의 관자놀이에 혈관이 용트림을 한다.
“아오! 망할 자식. 내 현장 짬밥 30년에 이런…….”
“놈은 처음 보셨죠?”
반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에게 말했다.
“이제 이게 일상이 될 겁니다.”
반장이 들고 있던 고무망치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대신 해머를 번쩍 집어 들었다.
작업자들이 다급히 달려들었다.
“야! 반장 말려?”
“말리긴 뭘 말려? 씨발. 안 해! 좆 같은 거.”
쾅. 쾅.
제 분에 못 이겨 휘두르는 망치에 대리석들이 조각조각 부서져 나갔다.
“반장님, 진정을…….”
하지만 아무도 그의 주변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어차피 저 새끼 눈에는 다 불량이야!”
쾅. 쾅.
***
곽 이사와 함께 도착한 곳에서는 작업반장이 미치광이처럼 대리석 벽에 해머질을 하고 있었다.
“아이, 씨발. 내 더러워서 안 한다!”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말이다.
“야! 개새끼야. 이제 맘에 드냐? 맘에 드냐고?”
성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요? 내일 다시 올 테니까, 제대로 해놓으세요. 아시겠죠?”
성훈이 작은 장도리를 보란 듯이 흔들더니, 주머니에 쏙 넣고는 사라졌다.
반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씨발. 사장한테 전화해. 이딴 현장 못한다고. 알았어?”
멀리서 소동을 지켜보던 곽 이사가 말했다.
“난 말이야. 진 소장 자네가, 여기서 떡값을 챙기든, 뭘 하든 전혀 관심이 없어.”
“…….”
이미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무슨 대꾸를 할 것인가?
그럼 곽 이사는 청렴결백하냐? 그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방면에서는 곽 이사가 더 고수였다.
‘그럼 문제가 뭡니까?’
진 소장의 눈이 곽 이사를 향했다.
“하지만 현장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큰 문제지. 자네도 알겠지만, 이 현장은 사장님께서 관심을 많이 보이는 현장 중에 하나라고.”
곽 이사의 말이 이해되었다.
그가 이 현장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단지 그 이유 때문이리라. 사장의 관심.
“그럼…….”
“그래, 난 이 현장에서 잡음이 생기는 것이 제일 싫어. 한 번쯤이야, 그냥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몇 번이 반복되면 당연히 사장님 귀에도 들어가지 않겠어?”
진 소장의 눈이 꿈틀거렸다.
곽 이사가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잡음 없는 현장!
“크윽. 알겠습니다. 뿌득.”
“말로는 누가 못해? 결과를 보이란 말이야.”
“큭, 알겠습니다. 다음에 오셨을 때는 다른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첫 현장이 마지막 현장이 되지 않게. 신경 쓰라고.”
곽 이사가 떠나기 전, 문 차장이 슬며시 물었다.
“이사님? 뭐땀시 그렇코롬 소장을 도발하셨다요?”
“내가 무슨 도발을 했다고 그러나?”
“거시기. 지가 보기엔 일부러 울 성훈 씨허고 한판 하게끔 유도하시는 것 같던디. 아니믄 말구유. 지가 잘못 봤는가 보네요.”
하지만 그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곽 이사가 피식 웃었다.
“자네 눈치도 백단이구만.”
“헤헤, 역시 그러셨구만이라.”
“진 소장이 나름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아. 지금은 건드려 봐야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지.”
“허긴 그렇지라. 엮인 것이 많아부러서.”
“이런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책이 나와야 하지. 성훈 군이 어떻게 풀어 가는지 한번 보자고. 기회가 생기면 저놈은 내가 바로 처리하지. 현장에 타격을 덜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말일세.”
“아무래도 소장이 대충 넘어가지 않을 것 같으니께, 지도 방법을 찾아보겠어라. 그럼 잘 올라가셔유.”
멀어져 가는 문 차장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런 걸 보고 손 안 대고 코 푼다고 한다던가?’
가만히 두면 둘 중의 하나는 나가떨어지겠지.
‘누가 나가떨어지든, 내게 손해가 되는 일은 없을 터. 성훈 군이 지면? 다음에 점수 따면 되지!’
하나 이 현장이 뒤집어지면, 내가 먼저 잘린다고!
***
김 과장이 걱정스레 물었다.
“성훈아, 현장에서 말이 많다.”
“무슨 말이요?”
“오늘 일 말고도, 이것저것 지적하고 다닌다면서?”
“아, 그거요? 기사가 하는 일이 그거죠.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조심하자는 말이지. 이런 말 하기는 부끄럽다만, 월급쟁이 아니냐?”
“그런데요?”
“그래서 소장한테 함부로 못 덤빈다.”
소장한테 못 덤비는 건 당연한 거지만, 그게 작업자들에게 무시당할 이유는 아니었다.
“왜 이렇게 작업 지시를 무시하는 겁니까?”
“그게 말이다.”
“휴, 우리 외주업체들 몽땅 소장이 데리고 왔거든. 소장이 우리 편보다 외주업체 편을 드니까, 우리 말을 무시하는 거지.”
“그런데 그런 걸 보고도 놔둔단 말입니까?”
“생각을 해봐라. 소장 입장에서 따박따박 매달 돈 갖다 바치는 물주들이 예쁘겠냐? 아니면 물주 괴롭히는 우리가 예쁘겠냐?”
“그래서요?”
“그런 소장 돈줄을 대놓고 괴롭혔으니까. 이번에는 그 인간도 그냥 안 넘어갈 것 같다. 조심해라.”
치직.
-김 과장님, 회의 있다고 소장님이 부르십니다.
무전의 음성을 듣고, 김 과장이 다급히 자리를 떴다.
“성훈아, 나 먼저 들어갈 테니까, 석공들하고는 가급적이면 좋게 화해해라. 알았지?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닌데, 얼굴 붉혀서 뭐하겠니?”
***
소장이 물었다.
“김 과장, 아까 그 시공팀 어떻게 할까?”
“내보내시게요?”
그 말에 소장이 말없이 웃었다.
“어쩌냐? 일 못하겠다고 저 지랄을 하는데.”
“아니. 대안도 없는데, 내보내시면 어떡합니까? 공기 늘어나는 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럼. 나 보고 어떡하라고? 시공팀한테 무릎이라도 꿇고 빌까? 나 소장이야.”
“어떻게든 달랠 생각을 하셔야죠. 후속 공정도 있는데, 이렇게 가다가는 현장 박살 납니다.”
“흥.”
“그래도 시공사장들이 소장님 말씀이라면 한 수 접어주잖습니까?”
“쩝, 이 사람들아. 아무리 기사라고 해도 말이야. 어느 정도 유도리 있게 일 진행을 해야지. 저게 뭐하는 짓이야? 안 그래?”
“네, 성훈이도 좀 심한 부분이 있었죠. 그래도 현장은 꾸려가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대체 인력을 구할 수 있단 말이야. 없단 말이야?”
“불가능합니다. 지금 다른 현장에서도 사람 없다고 난리도 아닌데, 어디서 사람을 빼옵니까?”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절대로 빠지면 안 된다는 말이지?”
“당연하지 않습니까? 성훈이가 아직 어려서 뭘 몰라서 그런 겁니다. 소장님께서 시공업체 사장들 불러서 잘 좀 달래주십시오.”
김 과장의 부탁에 소장이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나가 보게!”
김 과장이 사라지고, 소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흐흐흐. 이 새끼. 맛 좀 봐라.’
“박 사장, 아까 시공팀 얘기 들었지?”
-이게 무슨 사단입니까? 일 잘하는 사람들한테.
“그건 됐고. 이번에 사람 빼더라도 사흘 뒤에 인원 따블로 넣을 수 있지?”
-하지만 그래도…….
“그래, 힘든 거 알아. 현장공정에 문제만 없도록 부탁해.”
-정말 빼야 되는 겁니까?
“그래, 며칠만 참아. 멋모르고 날뛰는 망아지는 초장에 버릇을 들여야지. 계속 휘둘리고 싶어?”
‘너 이 새끼. 김성훈이. 책임 못질 일은 벌이지 말았어야지.’
어쩌겠어? 수습사원 때문에 시공팀이 일 못하겠다고 뻗대면 말이다.
‘훗! 제 놈도 염치가 있으면, 스스로 현장에서 빠지겠지.’
***
치직. 치직.
-성훈 씨, 거시기. 아까 대리석 까 부신 데로다가 언능 오셔잉.
무전기에서 문 차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우째쓰까잉. 큰일 나부렀어. 석공 팀들 짐 싸고 있당께!
‘누구 맘대로 철수야? 현장이 애들 장난치는 곳이야? 기본이 안 되어 있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