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181화 (181/427)

건축의 신 181화

스타타워 현장(07)

김 과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장님, 곽 이사님께서 현장에 거의 도착하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뭐야? 벌써? 주중에나 오실 줄 알았더니.”

한번 들르겠다는 말을 들은 것이 어제였는데, 벌써 오다니.

“김 과장, 얼른 현장직원들 모아서 맞이할 준비해. 현장 안전모는 다 쓰고 있지? 청소는?”

“다 되어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하지만 직원들이 굳이 맞이할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군소리 말고 얼른 내려오라고 해. 비상이야. 비상!”

김 과장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쯧. 이렇게 눈치가 없으니까, 여태껏 과장이지.’

소장도 안전모를 집어 들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끙. 인사나 드리러 가볼까? 사회생활 뭐 있어? 인사로 시작해서 인사로 끝나는 거지.”

곽 이사가 현장으로 들어섰다.

“이사님, 오셨습니까?”

진 소장의 허리가 직각으로 접힌다.

“오랜만이네, 진 소장. 현장은 할 만해?”

“이사님 염려 덕분에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들어가던 곽 이사가 걸음을 멈췄다.

“엥? 그런데 저건 뭐야?”

곽 이사가 현장 입구에 떡하니 서 있는 모자이크 사진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었다.

그 옆을 지나가는 작업자들이 곽 이사의 손길에 그 모자이크를 보고는 작은 구역질을 했다.

‘아! 저게 문 차장이 얘기한 그…….’

진 소장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사님, 죄송합니다. 감리 쪽에서 붙여놓은 사진인데, 인쇄가 잘못된 모양입니다. 제가 정상적인 사진으로 바꿔 놓으라고 하겠습니다. 이리 오시죠.”

그 말에 지나가던 작업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성훈의 안전교육을 받지 않은 소장이 그 내막을 알 리가 없었다.

‘그게 아닌가?’

곽 이사가 문 차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이게 그때 말한 그거야?’

곽 이사의 눈치를 받은 문 차장이 힐끔 모자이크를 보더니, 헛구역질을 해댔다.

기다렸다는 듯이 지나가는 작업자들의 대화가 곽 이사의 귀로 쏙쏙 빨려 들어왔다.

“미친놈, 저거 원래 사진이 어떤 건지는 알고, 모자이크를 삭제한다는 거야? 우웩!”

“저 돈이나 처먹는 돼지가 뭘 알겠어? 미친 새끼. 안 그래도 밥맛없어 죽겠구만.”

곽 이사는 앞서서 안내하는 소장의 뒤통수를 보며 욕을 퍼부었다.

‘등신 같은 놈. 제 현장에 걸린 게 뭔지도 모르고. 쯧쯧.’

곽 이사의 걸음이 멈추자, 앞서가던 진 소장이 총알같이 되돌아와 고개를 굽실거렸다.

“이사님, 차라도 한잔하시면서 말씀하시죠.”

소장이 뒤를 보며 고함쳤다.

“뭐해? 얼른 안 오고? 이사님을 기다리게 할 셈인가?”

일행의 뒤로 처져 있던 문 차장이 푸념을 했다.

“쯧쯧. 일은 내팽개쳐 놓고 이것이 뭐하는 짓거리랴? 안 그요? 성훈 씨.”

“그러게 말입니다. 바빠 죽겠는데.”

“참. 나가 쪼까 부탁헐 것이 있는디, 해도 될랑가?”

따라가던 성훈이 물었다.

“뭔데요?”

“나가 어제 석공사팀헌티 작업 지시 해놓은 것이 있는디.”

“직접 확인하시면 되죠. 저도 바쁜데?”

“거시기, 나가 이따가 곽 이사허고 좀 해야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것이제.”

그 말에 성훈이 웃으며 물었다.

어떤 작업 지시인지, 어디까지 지시를 했는지?

“어제 돌작업이 영 시원찮게 되어 있어서, 나가 다시 작업을 하라고 혔거든.”

“도면대로 작업되었는지, 확인하라는 말씀이시죠?”

“그라제. 그라제.”

“알았어요. 제가 가볼게요.”

***

곽 이사는 잠시 차를 마시고 나서는 현장으로 들어왔다.

“오호, 이거 안전모는 확실히 씌웠구만. 각반도 제대로 차고 있는데. 누가 보면 전쟁 난 줄 알겠어.”

“헤헤. 역시 현장은 안전제일 아니겠습니까?”

여태껏 지나가는 중에 안전장비가 소홀한 작업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둘러봐도,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았다.

‘헐.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갑작스레 닥친 건데, 청소할 틈도 없었을 텐데.’

가끔 혼낼 거리가 있어야, 선임의 권위도 서는 법인데.

곽 이사의 연이은 칭찬에 진 소장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현장이 굉장히 깨끗하군. 이런 현장은 본 적이 없어.”

“하하하. 제가 누굽니까? 이사님.”

딱히 꼬집어 욕하고 싶은 부분이 없으니, 곽 이사 또한 기분이 좋았다.

‘내가 변태도 아니고, 현장이 깨끗하면 나도 기분이 좋다고.’

화를 내지 않으면 고혈압에 쓰러질 염려도 사라지니, 좋은 일이 아니던가?

그러면서도 드는 의문점?

‘이렇게 현장이 깨끗할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다만 약간의 단서가 있다면, 안전모, 혹은 각반이라는 말에 일을 하던 작업자들이 꿈틀 놀라며 자신을 노려본다는 것이었다.

한 작업자는 얼마나 경기를 일으키던지, 자신에게 고함을 버럭 질렀다.

“아! 씨발놈아! 깜짝 놀랬잖아. 성훈인 줄 알고!”

하지만 소장의 눈 부라림에 급히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소장님. 하도 안전모 안전모 해싸서 성훈인 줄 알고…….”

그 순간, 그의 머리에서 궁금증이 사라졌다.

곽 이사가 피식 웃었다.

“여기도 안전모 하면 치를 떠나 보네?”

신임 소장인 진 소장이 그 내막을 알 리가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냐. 자네는 알 것 없고? 적어도 인명사고로 현장이 멈춰 설 일은 없겠구만.”

사장의 안전모 발언에 줄빠따를 맞았던 것은 딱 부장급들, 즉 현장 소장까지였다.

그 아래로는?

멋도 모르고 맞았고, 그 뒤에는 알아서 기었는데, 안전모의 정체를 알 리가 있나?

당연히 진 소장도 안전모를 모르리라.

‘훗. 하긴, 이사들도 안전모 하면 치를 떠는데. 여기라고 별다르겠어? 그게 벌써 일 년이 지났네.’

지금은 사우디에서의 공도 있고 해서, 전무를 코앞에 두고 있는 곽 이사였다.

‘이대로 시간만 흘러라. 제발. 아무 일없이.’

치직. 치직-

무전기 소리가 곽 이사의 상념을 깨뜨렸다.

-소장님, 소장님. 이리 좀 와 보셔야겠습니다.

진 소장의 기분이 확 상했다.

“뭔가? 내가 지금 어떤 분과 이야기 나누는지 모르는 건가?”

***

잘못된 것을 시정하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었다.

문 차장이 말한 곳에 가서, 딱 보는 순간 느낌이 왔다.

‘아! 한다고 말만 하고 수정 작업을 안 했구나!’

어떻게 아느냐고?

딱 보면 안다.

고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잘못된 점이 수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재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이 되어 있지 않다면, 그건 작업자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10만 원 주고 일을 시켰는데, 5만 원의 품질이 나오면? 그건 계약 위반이지.’

그게 기능공과 조공의 임금 차이다.

오래 그 일을 했느냐는 상관이 없다. 그 품질을 만들어 내느냐 못 내느냐의 차이인 것이지.

‘그리고 문제는 기공이 일을 했다면, 이런 품질은 나올 수가 없다는 거지.’

흙 만져 가며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자존심이 없을 것 같은가?

‘갑에게 머리를 숙일지언정, 자기 일에 대해서는 절대 말이 나오지 않도록 완벽을 기하는 자들이 기능공들이거든.’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일을 한다고?

손재주 하나 만큼은 누구 부럽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서 어설픈 조공들을 데리고?’

조공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느냐고?

어쩌겠나? 실력이 안 되는데.

꼬우면 실력을 키우는 수밖에.

어찌 되었든 만족할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만족할 때까지 수정을 하면 될 일.

문 차장이 해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했냐? 등등의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반장을 불렀다.

“반장님, 시방서 기준하고 안 맞네요. 다 뜯으세요. 그리고 재작업 하세요.”

작업반장이 뒷골을 잡았다.

“에이, 김 기사. 다 굳은 걸 어떻게 뜯어? 미리 말을 해야지. 다음 것부터는 확실히 할 테니까, 이번만 넘어갑시다.”

웃으며 뭉뚱그리는 반장에게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재작업 하세요.”

“어허! 이거 참. 어린 친구라서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했더니, 말이 안 통하네.”

히죽거리며 주먹을 뚜둑거린다.

“김성훈이. 너 이 새끼. 알고 보니까, 정식 기사도 아니더구만.”

“그게 이 상황이랑 관계가 있는 겁니까?”

“왜 상관이 없어. 소장도 아무 말 안 하고, 다른 직원들도 아무 말 안하는데, 왜 기사도 아닌 게 시비를 거냐? 이 말이지?”

도면 보는데 자격이 왜 필요한가?

잘못된 점을 말하는데 고칠 생각은 않고, 시비라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그냥 제대로 못했다고 사과하고, 다시 하겠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기사와 작업자들의 싸움은 항상 1 대 100이다.

“지시대로 작업을 할 수 없으면, 현장에서 빠지세요.”

“어허!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여기서 일 못하지.”

“이런 식이라뇨?”

“대충 넘어갈 수 있는 걸 가지고 지금 시비 걸고 있는 거잖나?”

듣고 있는 성훈이 어이가 없어졌다.

‘대충? 이게 대충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한 뼘, 두 뼘, 손 한 마디, 두 마디?

이런 대충도 아니고, 정확히 3㎜라고 기준이 표시되어 있는데?

더 열 받는 건 다른 것이었다.

‘이 기준을 5㎜에서 3㎜로 줄이려고, 양 부장이랑 얼마나 말싸움을 했는데? 그 노력을 아무짝에 쓸모없는 허사로 돌리라고?’

자연스레 목소리가 올라갔다.

“반장님은 대충이라는 말을 알지 몰라도, 저는 거기 어울릴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재작업 하세요. 여기 시방서에 맞춰서.”

작업자들도 덩달아 웅성거린다.

반장의 말에 장단을 맞추는 것이리라.

“허참, 좋게 말로 하려니까, 말이 안 통하는 친구네.”

“재작업 하면 그 돈 자네가 줄 거야?”

“재작업 할 일 없게, 처음에 제대로 하셨어야죠.”

“일 하다 보면, 몇 개쯤 잘못될 수도 있는 거지. 뭘 그걸 가지고 시비야. 시비가?”

“시비 거는 건지, 아닌지 확인해 볼까요?”

어차피 입의 개수가 100배나 차이나면 말로는 못 이긴다.

승리를 예감한 듯, 반장의 입에 비웃음이 걸린다.

“어떻게 할 건데?”

“시방서 수치하고 다르면 군소리 안 하는 겁니다.”

“흥. 해보든가?”

왜 이들은 이런 행동을 보일까?

내가 어리기 때문이다. 아직 학생이기 때문이다.

‘네가 알아봐야 얼마나 안다고?’ 하는 선입견 때문이고, 이런 식으로 어린 기사들을 많이 길들여 봤기 때문이다.

어린 기사들에게 제일 무서운 것?

그것은 책임이다.

‘책임질 수 있어?’

이 한마디에 기사들은 주눅이 든다.

경험이 없어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속으로 피식 웃었다.

‘훗. 기숙사 공사할 때, 돌쟁이 차반장이 이걸로 나하고 얼마나 싸웠는데.’

0.1㎜라도 어긋나면 돌 귀퉁이를 톡톡 깨는 바람에 차 반장이 숨넘어갈 뻔한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햄머 들고 겁주는 것. 그건 미련한 짓이지.’

타일이든, 대리석이든 귀퉁이만 톡톡 깨부수면 된다. 그걸로 재공사 확정이다.

왜냐고?

한두 군데면 땜빵으로 하겠지만, 그 수가 많으면 아예 뜯고 새로 하는 게 빠르다.

개고생해서 붙여놔도, 한 군데만 손상되면 다시 해야 한다.

작업복 주머니에서 실타래를 꺼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지켜볼 요량인지 작업반장은 팔짱을 끼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해보라면 못할 줄 알고?’

한쪽 끝에 실을 걸고 반대쪽으로 가면서 그에게 물었다.

“분명히 반장님이 하라고 하신 겁니다.”

아마 이 말을 할 때, 나는 살짝 웃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기회가 오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발 한 놈만 걸려라’ 하면서 말이다.

왜 이리 심술 맞냐고?

절대 아니다. 이건 기준의 문제다.

기준이 엉망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기준을 제대로 잡아야 할 대가리가 돈 맛에 취해 휘둘리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양쪽으로 실을 걸어 당기니 팽팽해졌다.

반장이 있는 중앙으로 돌아왔다.

팅.

반장에게 말했다.

“확인하세요. 직선인지?”

실이 무거워 밑으로 처지면 처지지, 옆으로 붙을 일은 없다. 자석이 아니잖아!

“당연히…….”

“직선이겠죠?”

“응…… 그런데 뭐 하려고?”

“이제 확인해 봅시다. 반장님. 이거 전부 다.”

“야, 김 기사. 이거 수천 장 넘을 텐데.”

“오늘 해지기 전에 끝낼 수 있습니다. 퇴근 시간 늦는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 마십시오.”

반장을 안심시키며, 한 손에는 줄자를, 다른 손에는 작은 장도리를 꺼내 들었다.

‘이런 거 하는데, 레이저는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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