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80화
스타타워 현장(06)
소장실 문을 열기 전, 김 과장이 말했다.
“소장 형이 소장을 키우다시피 해서, 소장이 형한테는 꼼짝을 못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자기 형에 관련된 일은 좀 과민하게 반응하니까 소장이 지랄해도 성훈이 네가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라.”
그는 내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리라.
‘과장님아. 내가 당신보다 그런 쪽으로는 욕을 더 많이 먹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죠.’
지난 삶에서 눈앞의 김 과장 같은 사람은 나에게 갑이었다.
‘을로 살면서 나보다 훨씬 어린 사람에게도 욕을 먹었었는데, 소장 정도야.’
그리고 지금의 내 삶은 욕먹는 일의 연속이다.
‘이번 삶은 욕먹을 각오하고 살고 있다고요.’
덤으로 얻은 삶, 가능한 한 길게 살고 싶었기에 욕먹는 것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었다.
‘까짓거 욕먹는 거 무서우면 일을 하지 말아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액면이 김 과장보다 어렸기에, 나를 배려해 주는 것이리라.
소장실의 문을 열었다.
***
지금 내 앞에서 소장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너. 김성훈이. 미친 거냐?”
“뭐가요?”
“엉? 뭐가요?”
“네. 뭘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너 이 새끼. 함바 사장한테 손댔다면서?”
“그야 싸움이 날 것 같아서 말린 거죠?”
“이 새끼가 어디 발뺌을? 형님 말씀은 안 그렇던데?”
어쩌라고 그럼 맞고 있으랴?
어디서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하고 있어?
멀뚱멀뚱한 눈으로 대답했다.
“때리시려고 하기에. 피한 것뿐인데요?”
“이익.”
“그럼 거기서 제가 맞았어야 합니까?”
어쩔 건데, 심증이 있을 뿐, 물증이라도 있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니, 소장은 더 열이 받는 모양이었다.
“뭐야? 지금 내가 말하는데, 대꾸를 해?”
‘아! 이제 저런 소리는 지겹다.’
제대로 정신머리 박힌 사람들에게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소리. 말대꾸.
노 교수도, 한 교수도, 심지어 프랭크도 이런 소리는 한 적이 없다.
김 과장이 나를 변호하며 나섰다.
“소장님. 너무 한쪽의 말만 듣지 마시고…….”
“김 과장. 넌 이 새끼야! 그 자리에 있었다면서,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죄송합니다. 소장님. 어제 제가 술에 취해서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제 형이 맞은 것만, 아니 맞은 것도 아니지 않아? 때린 적은 없으니까!
그나마도 극강의 인내심으로 얼마나 참은 건데, 이런 말을 들으면 억울하다.
그냥 몇 대 패버릴 걸 그랬나?
한번 들이받으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띠리리리.
전화기를 보던 소장이 뜨끔하더니, 우리 눈치를 본다.
그리고는 우리를 보며, 나가라며 손짓을 한다.
그리고는 눈알을 부라린다.
‘운 좋은 줄 알아!’의 의미이리라.
진 소장이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아이고. 곽 이사님.”
전화를 받느라 뒤돌아선 그를 향해 조용히 주먹감자를 날렸다.
하지만 진 소장은 전화에 집중하느라 내 행동을 보지 못했다.
김 과장이 피식 웃으며 문을 닫았다.
***
“곽 이사님. 현장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이고. 어지간히도 그러겠다.’
진 소장의 힘찬 목소리를 들으며 곽 이사는 코웃음을 쳤다.
어제 문 차장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곽 이사님. 현장에 한번 와 보셔야겠는디요.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요?”
-여그 소장이 업체들헌테 떡값을 장난 아니게 먹는 것 같은디?
곽 이사는 뜨끔했지만, 곧이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아. 그 정도 안 해먹으면 누가 소장하려고 해?’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소장과 업체와의 관계는 관례와도 같은 것이라 알면서도 용인하는 것이었다. 도가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 정도야 관례야 관례.”
-고것이야, 지도 안당께요. 그란디. 문제는…….
“왜요? 문제가 뭔데?”
문 차장은 현장에서 자신이 느낀 것들을 죽 읊기 시작했다.
“자네 말대로 진 소장은 내가 들어도 심하구만.”
일단 곽 이사는 문 차장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 씨! 이런 일이 생길까봐, 일부러 소장 경험이 없는 초짜를 앉혀 뒀더니, 이렇게 내 뒤통수를 쳐?’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까, 조금만 성훈 군이 발작 안 하도록 부탁하네.”
-이사님 고것은 나가 할 수 있는데꺼징은 해보겄지만서도, 그것도 그리 길게는 못 헐거구만유.
“그건 또 왜?”
-성훈이가 돈 먹는 것은 신경 안 써도, 품질은 지랄같이 따지는디, 이 현장 품질로는 어림도 없당께요.
“그건 나도 안다네.”
성훈의 성격상, 모르면 몰라도 알면 곱게 넘어갈 리도 없고.
‘그 눈에 맞는 품질이나 있을지 몰라?’
-조만간 성훈이가 시공 품질 가지고 한 번 지랄을 할 것 같은디, 미리 좀 언급을 하셔요.
“소장한테 직접 말을 하지 그러나?”
-흥. 나 말을 듣기나 한대요? 이대로 가다가는 현장 컨트롤이고 나발이고. 암것도 안 된당께요.
곽 이사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지가 무슨 슈퍼맨인 줄 알아? 왜 가는 곳마다 현장을 뒤집어 놓냐고? 대충 좀 하자!’
곽 이사도 복장은 터지지만,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현장 하나 말아먹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 진짜. 이 자식을 어떻게 자르지?’
소장은 자르면 되지만, 현장에 묶인 계약 관계를 푸는 것이 더 머리 아팠다.
더불어 남이 하던 현장을 좋다고 이어받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그 업무의 인수인계 과정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겠는가?
곽 이사의 고민이 이거였다.
곽 이사의 속을 모르는지, 제 자랑을 늘어놓은 진 소장에게 말했다.
“그래. 그래. 어련히 진 소장이 알아서 하겠어? 조만간 한 번 내려가도록 하지.”
***
소장실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성훈아. 미안하다.”
“뭐가요?”
“큰 힘이 못 돼서 말이다.”
“괜찮습니다. 얼른 가서 식사나 하시죠.”
소장 앞에서 시시비비를 가렸다면, 상당히 멋있기는 했겠지.
그런 지금의 내가 무조건적으로 옳고 그름만을 따질 연령은 아니었다.
‘힘없는 자가 정의를 말해 봐야 공염불이지.’
소장이 입으로 훅 불면 날아갈 파리 목숨인데, 아까처럼 고개를 숙이는 것 또한 김 과장 나름대로의 처세 방식이리라.
화제를 바꿨다.
김 과장의 잘못도 아니고, 말해 봐야 마음만 아플 테니.
“어제 박 대리 이야기 들어보니까, 과장님이 대리 때는 대단하셨다고 하던데.”
그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때야.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던 시절이지.”
“지금은 그러실 수 없죠? 애기 때문에?”
“쩝. 그런 거지. 뭐.”
그는 씁쓸하게 마른 침을 삼켰다.
그에게 물었다.
“아직 돌도 안 지났다면서요?”
내 물음에 방금까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김 과장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이 밝아졌다.
“응. 이제 153일째인가? 아니다. 하루 지났으니까 154일이네.”
그는 손가락까지 꼽아가며, 날짜 계산을 했다.
“이쁘겠네요.”
“그럼. 이쁘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 딸 생각하면, 욕 좀 먹는 거 안 괴롭다.”
“그래도 키워 놓으면, 지가 잘나서 큰 줄 알 건데요?”
내 말에 김 과장이 피식 웃었다.
“야! 뭐 누구는 안 그랬겠어? 나도 부모님 속 많이 썩혔다.”
계단을 내려와 식당으로 갈 때까지 그는 계속 딸 자랑을 해댔다.
아직 옹알이를 하는 딸을 자랑할 게 뭐 있겠냐마는, 그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자랑이 흘러나왔다.
엄청나게 행복한 얼굴이었다.
자식 자랑 하면 팔불출이라고 놀리지만, 세상 어느 부모가 제 자식을 안 예뻐하겠는가?
“부모가 안 돼 보면 부모 마음 모른다. 너도 낳아보면 알 거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다.
힘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또 없는 대로. 뭐가 절대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나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어떤 것이 더 행복에 가까운지는 알 수 있겠지. 다들 다르겠지만.’
소장이라는 권력자에게 굽실거린다는 이유로 김 과장을 비겁자라고 욕할 수 있을까?
지난 삶의 내 나이였다면 그렇게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한 아이의 아빠였다구. 그 느낌 내가 아는데, 김 과장을 욕할 수 있겠어?’
소장이 잘못했다고 따졌다가는 내 딸이 당장 분유를 못 먹게 되는데, 따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내 속이 뒤집어지는 건 참아도 내 새끼 굶는 건 못 참는 게 부모의 본성 아닐까?
김 과장에게는 가족의 평안이 인생의 목표일 것이고, 행복의 원천이리라.
그에게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합니다.”
“훗. 어린 녀석이 이해는 무슨…….”
그는 내 등을 툭툭 치며 나를 위로했다.
“성훈아. 너 답답한 거 내가 왜 모르겠냐?”
식사를 하면서 나는 그에게서 내가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현장의 문제점들을 늘어놓았다.
그는 문 차장보다 좀 더 오래 이 현장에 있었던 만큼, 더 현장에 대해서 꿰뚫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을 마무리했다.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지금 현장이 좀 아니 꼽고 보기 싫더라도 참아라. 여기서 잘못된 것들 많이 보고, 나중에 네가 소장 되면 바꾸면 된다. 그치?”
그의 말은 지금의 내 나이 또래에게는 지극히 좋은 충고였다.
한순간의 실수로 앞으로의 삶이 꼬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제게는 해당 사항이 없네요.’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이네.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할지.’
그가 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도 파이팅 하자.”
돌아서 현장으로 향하는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과장님. 조금만 참으세요.”
하지만 그렇게 오래 기다리실 필요는 없어요.
왜?
여기는 내 현장이니까.
***
오늘도 문 차장은 현장을 도느라 바쁘다.
반기는 이 하나 없지만, 부지런히 현장을 돌고 있었다.
건물 기단부 돌마감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시기. 이 양반들이 정신이 있는 겨? 없는 겨?”
작업자의 인상이 팍 찌그러졌다.
현장을 돌며 쓴소리를 해대는 문 차장이 보기 좋을 리가 없었다.
작업반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또. 뭐가 맘에 안 드는데요?”
“시방서에는 3mm라고 되어 있는디? 시방 이것은 5mm가 넘겠구만. 아녀?”
문 차장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아 씨발. 문 차장님! 5미리나 3미리나! 대충 넘어갑시다. 이 정도면 눈으로 딱 봐도 일직선이구만. 지금 우리가 이 일 한두 번 합니까? 당신만 전문가고 나는 뭐 바보여?”
“뭐시여? 이게 대충 넘어간다고 될 일이당가?”
하지만 반장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붙이는 돌이 뭐 구조적으로 하중을 받습니까?”
“하중이고 나발이고. 시방서에 나와 있는 대로 하기로 하고 계약을 헌 거 아녀?”
“흥. 이 양반이 일 하루 이틀 하나?”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제?”
문 차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 진짜. 당신이 현장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팔뚝을 걷으며 나서는 작업반장을 부하가 툭 쳤다.
“왜?”
부하가 귓속말을 소곤거렸다.
“반장님. 대충 하고 넘어갑시다.”
“이걸 대충 넘어가자고?”
“일단 붙여가지고 굳어버리면 어쩌겠습니까? 떼라고 하겠습니까? 어쩌겠습니까?”
작업반장이 비릿하게 웃었다.
“문 차장님 말씀, 뭔 말인지 알았습니다. 지시대로 해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쇼.”
“낼 와서 확인헐 텡게, 확실허게 해놓으셔!”
문 차장이 엄포를 놓으며 다른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