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179화 (179/427)

건축의 신 179화

스타타워 현장(05)

“성훈아. 이리 와라.”

김 과장이 들어서는 성훈을 보며 손짓을 했다.

성훈이 자리로 가자, 박 대리가 물었다.

“문 차장님은 안 오시고?”

성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문 차장을 찾아? 사이가 안 좋은 줄 알았는데?’

진표를 돌아보자, 그가 씨익 웃었다.

“너도 문 차장님 알잖냐? 사람들 하고 금방 친해지는 거.”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뭔가 납득이 갔다.

뒤에서 투덜투덜 대도, 앞에서는 사근사근하니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하긴. 그런 분이셨죠. 괜히 걱정했네요.”

박 대리에게 말했다.

“낙하산이라고 그렇게 왕따 시켰다고 하시더니.”

박 대리가 머쓱하게 웃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지. 실력도 없는 게 낙하산이라고 오면 우리도 머리 아프잖냐?”

“그런데요?”

“문 차장님이 의외로 실력이 좋으시더라고. 현장도 잘 통솔하시고. 그래서 인정하는 거지 뭐.”

현장 하나를 통째로 맡아서 진행한 경험이 있으니, 그게 도움이 된 모양이다.

처음에는 겉돌았지만, 현장을 돌아보는 부지런함과 특유의 친근함으로 직원들과 많이 동화된 문 차장이었다.

“속이 안 좋으셔서 못 온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쉽네. 오늘 차장님이랑 밤새 달려보려고 했는데. 흐흐흐.”

김 과장이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야. 니들 그거 알고 있었냐?”

“뭘요?”

“문 차장님이 그러던데, 여기 성훈이가 우리 현장 원설계자라고 하더라.”

좌중의 시선이 성훈에게 몰렸다.

“진짜냐?”

진표가 그들에게 설명을 했다.

“한동안 성훈이가 그것 때문에 본사에 가 있었다고 하던데, 모르셨나 봅니다.”

김 과장이 뒤통수를 긁으며 무안해했다.

“야. 진표야. 우리가 맨날 장돌뱅이마냥 현장만 돌아다니는데, 본사에 들어갈 일이 있겠냐?”

그의 말을 박 대리가 이어받았다.

“야! 그럼 우리 성훈이한테 잘 보여야 되겠는데, 원설계자가 있는데, 엉뚱한 짓 하다가 걸려봐. 그날부로 현장 스톱이야. 알지?”

박 대리의 너스레에 성훈이 피식 웃었다.

“원칙대로만 하면, 무슨 일이 있겠어요?”

“짜식. 겸손 떨기는. 너 온 뒤로 현장 분위기도 되게 좋아졌는데. 네가 서 과장님이랑 안전 교육 진행하고 있다면서? 무슨 짓을 했길래, 그런 상황을 만들어 둔거냐?”

한 번의 술자리로 금방 친해지는 것.

한국만의 정이라는 정서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술 권하는 문화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과유불급이라.

과하지 않다면 이것도 이것대로 좋다.

접시는 점점 비워져 가고, 시간도 술술 지나갔다.

마음의 거리도 그만큼 가까워졌다.

“와하하하!”

“정말 그런 사진을 보여줬단 말이야?”

“성훈아. 나도 볼 수 있냐?”

박 대리의 말에 진표가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박 대리. 웬만하면 보지 마라. 아무리 비위가 좋아도, 한 사흘은 밥 못 먹는다.”

그 말을 하며 인상을 쓰는 진표의 표정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식당에서 전화가 왔었구나?”

“뭐라고?”

“주방장이 전화가 왔더라고요. 어제오늘 무슨 일 있었냐고. 함바 이용자가 뚝 떨어졌다면서 걱정을 하던데. 난 그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다고 했죠. 하하하.”

“이런! 함바 피해가 막심하겠는데.”

“그거랑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는 현장에 사고만 안 나면 만사 오케이라네.”

주거니 받거니 술은 술술 잘도 들어간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쯤, 문이 열렸다.

“엉? 오늘 아예 통째로 세내서 다른 손님은 안 받을 텐데…….”

김 과장이 입구를 보니, 얼굴을 아는 사람이었다.

“아이고. 사장님. 웬일이십니까?”

구내식당 사장이었다.

그는 40대 후반의 깔끔한 양복의 풍채 좋은 중년이었다. 그에 반해 얼굴은 화가 난 듯, 붉어져 있었다.

뒤따라온 주방장은 쭈뼛쭈뼛 눈치를 보는데 반해, 사장은 거침이 없었다.

“소장 어딨어?”

“네? 소장님을 왜 여기서 찾으십니까?”

“전화를 안 받으니 그런 거 아냐? 어디 있는지나 말해!”

“지금쯤 마루 업체하고 미팅하고 계실 겁니다.”

“미팅은 지랄하고, 접대 받고 있겠지.”

그 말에 김 과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알면서 왜 묻냐?’는 의미이리라.

소장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가 몸을 돌렸다.

“거 참. 김 과장. 현장에서 안전 교육인가 뭔가 한다면서?”

‘함바 사장이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않아?’

저 사장이라는 인간이 들어온 뒤로 말이 계속 귀에 거슬린다.

김 과장의 대꾸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그런데요?”

“그거 웬만하면 하지 마쇼. 내가 소장한테 말해 놓을라니까.”

김 과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장님. 말씀이 과하십니다.”

“과하긴 뭐가 과해. 하지 말라면 하지 말 것이지.”

그때, 진표가 나섰다.

“사장님. 그건 제 권한인데, 왜 하라 마라 하시는 겁니까?”

감리단은 시공사의 아래가 아니다.

애초에 소속 자체가 다르다.

소장이 간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표 또한 같은 현장에서 근무를 하니, 회식 자리에 참석한 것뿐이었다.

함바 사장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이게 지금.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오히려 함바 사장이 진표에게 눈을 부라렸다.

감히 자기 말에 말대꾸를 하다니?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어이가 없었다.

‘저건 또 뭐냐?’

흥분한 둘 사이를 김 과장이 중재하며 막아섰다.

옆에 있는 박 대리를 손으로 쿡 찔렀다.

“박 대리님. 저 사람. 뭡니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함바 사장이 건설업체 직원들을 저렇게 막 대한다는 것이 말이다.

박 대리도 그들의 다투는 모습을 찝찝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또 지랄이네. 저 인간, 우리 소장 형이야.”

“예?”

그는 다른 말도 덧붙였다.

“증거는 없지만, 이 현장에 있는 업체들, 알고 보면 전부 소장 친척들이거나 그 비슷한 관계인 것 같아.”

“그게 말이 돼요?”

내 말에 박 대리도 혀를 찼다.

“말이 안 되지. 소장이 무슨 수를 썼겠지. 하지만 시공업체들 그렇게 하는 건 일도 아니지.”

현장의 모든 결재는 소장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

곧 현장의 주도권은 모두 소장이 쥐고 있다.

그 권력을 이용한 편법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하긴 기성 쥐고 흔들면, 장사가 어디 있겠어?’

소장이 떡고물을 취하든 말든,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럼. 시공업체들이 기사들 말을 듣습니까?”

갑이 정당하게 갑으로서의 힘을 행사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뒀는데, 시공자들이 기사들의 지시를 올바로 들을 리 만무하지 않겠는가?

‘곽 이사. 미친 거야? 내 현장을 망치려고 작정을 한 거야?’

“이런 사실을 위에서도 알고 있습니까?”

“어떻게 알겠어? 시공업체 사장들은 모두 차명으로 되어 있을 텐데.”

“확인해 보셨습니까?”

박 대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쩝. 어떻게 확인을 하겠냐? 그리고 확인한들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냐?”

박 대리의 말을 들으며, 찝찝해 하던 것이 구체화되었다.

‘어쩐지 현장에서 말이 안 통한다고 했어.’

문 차장도 지나가는 소리로 그런 말을 몇 번 했었고 말이다.

‘설마 했지.’

“그럼 지금까지 현장 어떻게 진행하셨는데요?”

“살살 달래가면서 했지. 어떡하냐?”

그사이 김 과장은 함바 사장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아무리 소장님 형제분이라고 해도, 간섭을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습니다.”

“김 과장님. 한 성질 하시는대요?”

“많이 죽었지. 그리고 저게 과장님 특기다.”

“뭐가요?”

“취한 척하고 한판 하는 거.”

“대단하신대요? 그래도 후환이.”

“그러니까! 저래 놓고 내일 아침 되면, 소장한테 싹싹 빌겠지.”

다들 그렇게 살겠지만, 박 대리에게 사정을 듣고 싶었다.

“그럴 거면 왜 저러신대요? 애초에 시작을 하지 말지.”

“과장님이라고 빌고 싶어서 빌겠냐? 딸내미 분윳값이 웬수지. 과장님 딸 아직 돌도 안 지났다.”

지난 삶의 나라고 별 달랐으랴?

예진이 분윳값 때문에, 그리고 기저귓값 때문에 하고 싶은 말 못하고, 고개 숙이고 살았었다.

박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되겠다. 내가 나서야지.”

“박 대리님이 왜요?”

“과장님.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소장이 가만 안 있을 거다.”

“어떡하시려고요? 방법은 있구요?”

그 말에 박 대리가 나에게 실실대며 웃었다.

“방법은 무슨! 취한 척 하고. 내일 빌면 그만이지.”

그 말에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박 대리가 내 등을 툭 쳤다.

“짜식아. 너도 애 낳으면 우습지 않을 거다.”

앞으로 나가는 박 대리의 허리띠를 잡았다.

“왜?”

대답 대신 내가 먼저 앞장섰다.

“그냥. 짜증이 나서요.”

“야! 성훈아.”

나는 이런 상황이 짜증 난다.

단지 힘이 없다는 이유로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는 상황이.

힘없는 게 잘못인가?

좆같은 세상!

***

“나 참. 어이가 없네. 김 과장, 말 다했어?”

함바 사장이 오른손을 들었다.

잽싸게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너 따위에게 맞기에는 김 과장이 아깝잖아.’

어린 녀석에게 행동을 저지당함에 기분이 상했던지, 눈에 힘을 주며 나를 째려본다.

실눈으로 그를 보며, 눈썹을 위로 으쓱 올렸다.

‘어쩔 건데.’

김 과장은 못해도 나는 할 수 있다.

왜?

부양할 가족이 없거든. 고로 무서운 게 없거든.

사장을 보며, 썩은 미소를 날렸다.

‘해보라고.’

“이 건방진 새끼가?”

분기탱천한 그는 얼굴을 붉히며, 왼손으로 내 따귀를 올려붙인다.

‘여기서 그만두면, 망신은 당하지 않으련만.’

씁쓸한 마음을 삼켰다.

그의 오른손을 바깥으로 쭉 당겼다.

“어! 어어?”

그는 급격히 우측으로 넘어지는 몸을 바로 세우려 허우적거린다. 그가 발을 넘어지는 쪽으로 급히 내밀었다.

툭.

발로 슬며시 그의 디딤발을 건드렸다.

놀란 사장은 넘어지면서도 나를 올려다본다.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넘어지는 척 하면서 거기다가 무릎을 슬쩍 갖다 댈까? 그럼 최소한 목 디스크 각 나오는데.’

건조한 눈빛으로 그의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갈등했다.

‘해 버릴까? 같이 넘어졌다고 하면 되잖아.’

고의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 될 일은 없었다.

‘소장? 이미 물 건너왔는데, 무슨 걱정?’

내 눈앞에 있는 이런 인간은, 싫다는 감정을 넘어서 혐오스럽다.

화가 난다고 그것을 엉뚱한 곳에 발산하는 부류.

제 잘못은 안중에도 없고, 제 감정만 중시하는 쓰레기.

어른스럽게 포용하지 못하고, 갑질 하려는 인간.

그의 넘어지는 순간을 끝까지 갈등하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화들짝 놀란 듯 그의 동공이 확장되어 있었다.

“윽!”

와장창.

딱딱한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들이받았다.

손으로 짚을 수 있지 않냐고?

그럴 리가!

그의 몸을 지탱했어야 할 오른손은 마지막 순간까지 내 손에 잡혀 있었다고.

김 과장도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성훈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의 말에 대답을 했다.

“모르죠. 절 때리시려고 하다가 균형을 잃으신 모양입니다. 아니면 어디서 한잔하고 와서 주정을 하는 거든지.”

허나 내 말투에 미안함이나 동정의 빛은 전혀 없었다. 차갑게 노려볼 뿐이었다.

사장이 주방장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서면서 나를 올려다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알겠지. 내가 일부러 그랬다는 걸.’

뿌드득.

“너. 이 새끼!”

“왜요? 한 번 더 하시려고요?”

실눈을 뜨며, 그에게 물었다.

‘걸어오는 시비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노인 공경?

노인도 아닐뿐더러, 먼저 싸움을 걸어왔다고.

비슷한 또래였다면 손모가지를 비틀어놨을 텐데.

이빨을 가는 사장에게 말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시고, 없으면 돌아가세요. 사장님.”

사장이 돌아섰다.

“두고 보자! 이 새끼.”

그를 내보내고 문을 닫기 전에 말했다.

“내일부터는 안전 교육을 FM대로 해야겠네.”

쾅.

김 과장이 버럭 화를 냈다.

걱정이 가득한 음성이다.

“야. 성훈이, 너. 어쩌려고 그랬어?”

“뭘 어쩌긴요. 내일 되어 보면 알겠죠.”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는데, 옆에서 진표가 씨익 웃는 모습이 보였다.

“아깝다. 문 차장님도 이걸 봤어야 하는데.”

“진표 형은 걱정 안 되세요?”

“뭐가?”

“저요.”

진표가 코웃음을 쳤다.

“미쳤냐? 내가! 니 걱정을 하게? 시간 아깝다.”

진표가 큰 소리로 말했다.

“뭔 일 있었어? 술이나 마시자고? 김 과장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서 과장, 너는…….”

“걱정하시지 말래도요. 전 성훈이 저놈이 이것보다 더 큰 사고 치는 것도 봤으니까. 저놈이 어떤 놈이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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