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78화
스타타워 현장(04)
“맛이 이상한가?”
주방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찬모가 그에게 물었다.
“왜요?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요?”
“저거 봐!”
그가 가리키는 곳은 잔반통이었다.
“왜요?”
“어제보다 세 배는 많이 나왔어.”
“그러네요.”
“그런데 문제는 뭔지 알아?”
안에서 반찬을 나르고 설거지를 하는 그녀가 알 리가 없었다.
“뭔데요?”
“식사하는 사람 수는 줄었다는 거야.”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 가는데, 아직도 해 놓은 밥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너무 식사하는 사람이 적어서 현장 사무실에 연락을 해 봤거든.”
“그런데요?”
“어제랑 별반 차이가 없었어.”
주방장은 식대로 가서 반찬을 집어 먹어 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맛이 없으면 투덜대면서 항의라도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찬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면 여름이라 밥맛이 없나 보죠.”
“야. 이 여편네야! 단체로 밥맛이 없다는 게 말이 돼냐? 저 봐. 먹는 사람들은 잘 먹잖아!”
“왜 저한테 그러세요. 제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에이. 재수 옴 붙은 날이네. 내일은 특별 보양식으로 꾸려봐야겠다.”
오늘 식당의 손해가 막심했다.
남은 밥은 모두 잔반통으로 들어갔다. 더운 여름 어차피 놔둬 봐야 상하기밖에 더 하겠는가?
“이왕 할 거면 통 크게 해야지. 네깟 놈들 달아난 입맛을 잡아주마!”
주방장이 식당 앞에 크게 메뉴를 붙였다.
<내일의 특별메뉴 : 삼계탕>
- 선착순 500명
***
다음 날은 더 심했다.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어제보다 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밥을 먹으러 왔던 사람들도 몇 숟가락 뜨지 않고 모두 잔반통에 부어 버렸다.
“하아. 이거 뭐지?”
솥에서는 닭 500마리가 익어가고, 조리를 하는 주방장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하. 이거 돌아버리겠네.”
닭 한 마리를 그대로 잔반통에 버리고 나가는 김 씨를 보고는 주방장이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이거 봐. 김 씨. 무슨 일 있어?”
“아냐. 아무 일도 없어!”
“없기는! 맨날 반찬 더 달라고 땡깡을 부리던 인간이 닭을 먹지도 않고 가는데, 그게 아무 일도 없는 거냐?”
“안전 교육 때문에…….”
“안전 교육? 그게 왜?”
하지만 김 씨는 말하다 말고 토악질을 해댔다.
“우욱!”
주방장의 기분이 팍 상했다.
“이거 뭐하는 짓이야. 사람을 앞에 두고. 앞으로는 나한테 반찬 더 달라는 소리는 하지도 마.”
김 씨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야.”
“그럼 뭐야?”
“정 알고 싶으면, 안전 교육에 참석을 해 보셔. 그럼 이유를 알게 될 테니까.”
김 씨는 더 말하기 싫은 듯, 주방장의 손을 떨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안전 교육? 도대체 그깟 게 뭐기에…….”
칼을 쥔 주방장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
홍 반장이 물었다.
“야! 정 반장, 느그들도 안전 교육 받으러 간다면서?”
그의 말을 들은 정 반장이 투덜거렸다.
“응. 귀찮아 죽겠는데, 그런 쓸데없는 교육을 뭐 하려 한 대냐? 안 그러냐?”
정 반장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시간에 일을 하면, 돈이라도 되지. 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씨발.”
정 반장의 투덜거림이 이어졌지만, 홍 반장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쩝. 어떡하냐? 하라면 해야지. 인원들 한 명도 빠짐없이 잘 챙기고.”
“웬일이냐? 니가 내 걱정을 다해 주고? 미쳤냐?”
“짜식이 형님이 걱정 되서 하는 말이야!”
“쳇. 적당히 인원수 맞춰서 가면 되는 거지. 무슨!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의 불평에 홍 반장은 절로 측은지심이 생겼다.
‘쯧쯧. 너는 안전 교육 세 번은 받겠구나. 나 같으면 이 현장에서 일 안 한다.’
속으로 혀를 차면서 정 반장에게 진지한 충고를 던졌다.
‘쩝. 미운 정도 정이라고.’
“정가야. 웬만하면 식사는 하지 말고 가라.”
“미친놈. 현장에서 먹는 거 빼고 무슨 낙이 있다고, 헛소리를 하는 거냐?”
정 반장이 빈정거렸다.
평소라면 같이 상소리를 하면서 대꾸를 해야 마땅한 홍 반장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어! 이게 진짜로 돌았나?’
홍 반장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씨발! 하늘을 봐도, 구름을 봐도 자꾸 그 장면이 떠오르네. 우욱!’
목구멍에서 신물이 올라온다.
‘씨발! 먹은 것도 없는데.’
쓰디쓴 위액을 삼키며 진 반장에게 말했다.
“나는 분명히 말했데이. 나중에 내 원망하지나 마라. 문디 자슥아.”
정 반장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실없는 새끼. 충고는 개뿔. 내가 너한테 충고 들을 군번이가? 내 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홍 반장이 혀를 찼다.
처음에 당했을 때는 억울했었다.
하지만 같은 고통을 당하는 동료가 생겨난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그것도 밉상인 놈이 말이다.
조금 있으면 죽을상을 하고 나타날 정 반장의 몰골을 생각하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정가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안전교육은 아닐 것이야! 절대로!’
홍 반장 옆에 있던 김 씨가 물었다.
“홍 반장님.”
“와?”
“정 반장하고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뭐 하러 그런 충고를 해주시는 겁니까?”
당연한 물음이었다.
“인생이 불쌍하잖아. 저 새끼.”
“뭐가요?”
“두 번 받은 내도 힘들어 죽겠는데.”
“하긴 저도 지금 이틀째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 아까는 삼계탕이라고 해서 먹을 수 있을라나 싶어서 갔는데, 그 장면이. 우욱! 켁.”
홍 반장의 솥뚜껑만 한 손이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아! 왜 때려요?”
“내는 두 번 받았거든. 니 지금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나? 으잉!”
“어쩔 수 없잖아요. 반장인데.”
“그러니까 말이다. 아무래도 저 새끼는 세 번 받을 것 같거든. 아무리 그래도 세 번은 좀 심하잖냐?”
“하기사.”
김 씨 자신도 두 번 받으라고 하면……. 우욱!
홍 반장이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니는 모르제?”
“뭘요?”
“내는 두 번 했잖아? 안전교육.”
“네. 그런데요?”
“처음 받았던 안전 교육은 두 번째 꺼에 대놓으면 새발에 피더라.”
“우욱. 그것보다 더 하다고요?”
“내가 그래가 서 과장한테 안 물어봤나?”
“뭘요?”
“와 첫날 꺼랑 다른 기냐꼬. 사람 차별하느냐꼬.”
그 말을 하면서 홍 반장이 대소를 터트렸다.
김 씨는 어리둥절하게 그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서 과장이 뭐라 ㅤㅋㅔㅆ는지 아나?”
“저야 모르죠?”
“첫날하고 둘째 날은 자료 정리가 덜 되가지고, 그랬다 카더라. 셋째 날부터는 제대로 한다카대.”
“그럼 제가 첫날 봤던 거는…….”
“말 그대로 새발에 핀기라. 새발에 피!”
“니 그거 아나? 내 둘째 날도 토했다.”
생각만 해도 목이 따가웠다.
먹은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지 못해 위액을 쏟아냈으니까.
“그럼…….”
“그라고 오늘이 셋째 날 아이가! 흐흐흐.”
홍 반장이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 봐라. 어제 본 게 세겠나? 오늘 볼 게 세겠나?”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오늘 거겠죠.”
“당연한기다. 절마는 일주일 동안 밥은 입에도 못 댈끼다. 하는 꼬라지 보니까, 최소 두 번은 받아야 할 낀데. 오지게 운이 없으면 그 이상도 되겠고.”
앙숙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홍 반장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희열이 차있었다.
“크크크. 안 불쌍하나?”
“불쌍하네요. 진짜로.”
“그러니까…… 명복이라도 빌어줘야지.”
김 씨가 말했다.
“홍 반장님. 저 소리 들립니까?”
“무슨 소리?”
멀리서 성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작업자분! 안전모 착용하십시오!”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목소리.
“설비팀이시죠? 반장 어딨습니까?”
홍 반장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흐흐흐. 또 걸렸구나.”
김 씨가 말했다.
“반장님. 심보가 고약하십니다?”
“흐흐흐. 거울이나 보고 말해라. 이 자식아!”
심보가 고약하다고 말하는 김 씨의 얼굴에도 히죽거리는 웃음이 번져 있었다.
“그거야. 흐흐흐. 우리만 당하면 억울하잖아요.”
“그렇지. 흐흐흐.”
“만약에 안전 교육 한 번 더하면 어떻게 될까요?”
김 씨의 말에 홍 반장이 정색하며 고리눈을 떴다.
“내가 말했제?”
“무슨…… 말이요?”
“내 눈에 안전모, 각반 삐딱하게 씨고 댕기믄 내가 직접 대가리 빠사뿐다꼬?”
김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으로 한 말 아니다. 내한테 한 번만 더 그런 사진 보게 하믄 내 너그 전부 다 죽이삘끼다.”
“그 정도예요?”
안전 교육!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
“아! 씨발. 내가 그거 본 뒤로 목구녕에 아무것도 안 들어간다. 고기를 봐도 그 사진이 생각나고, 카레를 보면 머리 터진 기 생각나갖고 아무것도 못 묵는다.”
해머를 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홍 반장이 말했다.
“한 번만 더 안전 교육 받을 일이 생기믄, 느그부터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진심이 담긴 홍 반장의 말에 김 씨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
“진표 형, 현장 입구에다가 춘천 사고 사진을 걸어놔야겠어요.”
“미쳤냐? 사람들 그거 볼 때마다 오바이트하고 난리가 날 텐데? 춘천이란 말만 들어도 쏠린다.”
진표보다 비위가 약한 문 차장이 말했다.
“성훈 씨. 나는 반대랑께. 설마! 진짜로 그거를 걸어놓을라고 그랴?”
‘미친 거 아녀!’라는 말이 목구멍을 뚫고 나오려는 걸 억지로 삼키는 문 차장이었다.
그 말에 성훈이 씨익 웃었다.
“진짜로 그 사진을 걸어두겠어요? 보기도 좋지 않은 걸요?”
“그럼? 방금 걸어놓는다고 했잖아?”
“모자이크를 해서 걸어놔야죠.”
“모자이크 하는 것은 좋은디, 그라믄 사람들이 알아보까나?”
“절대로 못 알아볼 수 없을 걸요.”
“어떻게 말여? 나는 이해가 잘 안 되는디?”
말로 해서는 설명이 잘 안 되겠지.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성훈은 포토샵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를 보여주었다.
“이게 무슨 사진인지 아시겠어요?”
둘이 동시에 화답했다.
“우욱!”
“우웨엑! 치우랑께요.”
하지만 모니터에 있는 것은 검은색, 붉은색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색깔로 된, 평범한 모자이크일 뿐이었다.
“봐요. 금방 알죠.”
“아따. 치우랑께요.”
안전 교육을 받지 않을 사람들은 이 사진이 뜻하는 바를 절대로 알 수 없겠지.
하지만 안전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그 사진이 뭘 의미하는지 정확히 안다.
그만큼 뇌리에 새겨졌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모자이크 사진 아래에 설명을 덧붙였다.
<2000년 6월 24일, 춘천 현장, 실족 사망>
성훈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해 두면 절대로 모를 수가 없을 거예요.”
문 차장은 속이 메슥거렸다.
‘그려. 모를 수가 없을 것이여.’
사실 그는 이틀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밥만 앞에 놓으면 그 장면이 떠오르는디, 어떻게 먹으라는 말이여?’
텅 빈 위에서 쓴 물이 올라왔다.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나중에 안전 교육의 효과가 떨어질 때쯤, 이 사진의 모자이크를 좀 더 작게 해서 걸어놓으면 효과가 배가될 거예요.”
웃으며 확신하는 성훈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문 차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따. 인자 고만해도 된당께요. 쫌!”
성훈은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다.
‘저 인간은 정상이 아닐 것이여. 참말로.’
문 차장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진표도 별세계 사람을 보듯이 성훈을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둘의 눈이 마주쳤다.
둘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성훈은 진표에게 시디를 내밀었다.
“형. 고개만 젓지 말고, 이거 가지고 인쇄소 가서 프린트나 해오세요. A0 사이즈로.”
“알았다.”
진표가 일어났다.
“참. 성훈아. 오늘 회식 있다. 네 환영회도 겸한다는데, 얘기 들었냐?”
“아뇨. 계속 현장 다니느라고 못 들었죠.”
“일 끝나고 모이기로 했으니까, 잊지 말고 와라.”
“네. 알았어요. 문 차장님은요?”
술이라면 환장하는 문 차장인데, 어련하랴!
안 갈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갈 요량으로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웬 걸?
문 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가 시방 속이 무지허게 안 좋아 부러.”
진표가 물었다.
“왜요? 오늘 육회 먹으러 간다던데요. 육회 좋아하시잖아요?”
“육회는 나가 좋아허제. 그런디……. 우욱!”
문 차장이 헛구역질을 하며, 배를 움켜잡았다.
“가실 수 있겠어요? 문 차장님.”
문 차장이 손을 저었다.
“아무래도 나는 오늘 안 되겄구먼. 성훈 씨는 진표하고 다녀오랑께. 진표 어딘지는 알제?”
문 차장이 책상 위로 툭 엎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