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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77화 (177/427)

건축의 신 177화

스타타워 현장(03)

“식사들 맛있게 하고 오셨습니까?”

홍 반장이 성훈의 인사에 거만하게 말했다.

“와? 감리 서 과장은 자리에 앉아있고, 기사님이 하는 깁니꺼?”

“서 과장님은 속이 안 좋으신 관계로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들이 보기에도 자신들과 마주 앉은 서 과장은 안색이 창백하고 몸이 안 좋아 보였다.

“아이고. 서 과장님. 몸이 안 좋으면 퇴근을 하지. 그라믄 우리도 이런 거 안 하고 좋겠구마는. 퍼뜩 퇴근하소.”

진표는 감리라는 신분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진표가 측은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내 걱정 할 틈 있으면, 당신들 걱정이냐 하쇼.’

홍 반장은 진표의 소리 없는 걱정을 무시했다.

“거. 긴말 하지 말고. 규칙대로 하쇼. 일분일초라도 어기면 여기서 대가리를 박살을 내버릴 라니까.”

그가 들고 온 해머를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하지만 성훈은 그 모습에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규칙 좋아하시니, 규칙대로 하죠. 다만…….”

“다만 뭐?”

“정확한 시간 내에 끝낼 테니 걱정 마십시오. 다만 중간에 지겹거나 귀찮다고 나가시거나, 눈을 감고 주무시는 분들은 교육 이수에 실패하신 걸로 간주합니다. 동의합니까?”

“알았다고 몇 번을 말하요? 염병. 안전교육 하나 가지고 별 지랄을 다 하네. 눈 감는 놈 있으면 내가 대가리를 박살 내 뿔라니까. 마! 퍼뜩 시작하소!”

그의 말을 조용히 듣던 성훈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수진 씨하고 정규현 씨는 불참하셨네요. 내일 교육에는 꼭 참석 부탁드립니다.”

홍 반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작업자들이 웅성거렸다.

“그러네. 어디 갔어?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큼큼. 그 둘은 작업 단도리하라꼬 먼저 올리 보냈다. 내일은 꼭 교육 때 챙기보낼 거니까. 넘어갑시더.”

말 안 하면 모르고 넘어갈 줄 알았는데, 홍 반장은 가슴이 뜨끔했다.

‘고새 그걸 눈치를 깠다고? 귀신이네. 귀신!’

한 달째 같이 일한 박 대리도 눈치를 못 챘는데.

홍 반장이 물었다.

“근데. 그거는 또 우째 알았능교?”

“아침 조회 시간에 얼굴 다 봤는데, 모르면 어떡합니까? 다음에도 불참하시면, 현장출입금지합니다. 그렇게 아십시오.”

같이 동석을 하고 있던 문 차장이 피식 웃었다.

‘이 등신들아! 사냥감으로 찍었는데, 성훈이 저 인간이 대충 넘어갈 거 같어? 느그는 오늘 디졌어! 사람을 대충 봐도 너무 대충 봤지.’

생각만 해도 실소가 터져 나오는 문 차장이었다.

당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정해져 있는 결론!

그렇게 안전교육이 시작되었다.

현장의 빔프로젝터의 내용이 넘어간다.

사람들의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머할라꼬 저래 설명을 해쌌노.”

“하모. 이거는 시간 낭비라 카이까네.”

홍 반장이 작업자들을 조용히 시켰다.

“조용히 해라. 인자 10분도 안 남았다. 그래도 소화는 잘 된다 아이가?”

그는 다리를 꼬고 앉아 한 팔은 해머의 자루에 턱 걸치고 있었다.

빨리 끝내고 돌려보내 달라는 무언의 항의였다.

성훈이 말했다.

“지금까지 안전장비를 왜 제대로 착용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이제는 안 쓰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서 과장님. 다음으로요.”

딸칵.

전방의 화면이 바뀌었다.

버튼을 누르는 진표의 안색이 더 창백해졌다.

피투성이가 된 작업자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2000년 6월 17일, 일주일 전 안산의 한 현장에서 낙석으로 인한 사망사고의 사진을 찍은 겁니다.”

어찌나 큰 돌이 떨어졌는지, 뒤통수가 패이고 검붉은 피로 칠갑이 된 뇌가 허옇게 드러났다.

뇌 주름 사이에는 마른 피딱지가 붙어 있고, 함몰된 부분에는 피가 고여 굳어 있었다.

건드리면 말랑거릴 것 같은 핏덩이 위로 파란 하늘의 흰 구름이 얼핏 보였다.

사진을 넘길수록 피해의 현장이 클로즈업 된다.

교육을 지겨워하던 작업자들이 웅성거렸다.

“우욱.”

“속이 미식거리는데.”

비위가 약한 자들은 이미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성훈의 차분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분이 안전모를 착용했었다면, 사망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사인은 현장에서 떨어진 주먹만 한 돌멩이였습니다.”

시체 옆에는 피 묻은 돌멩이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홍 반장. 내 먼저 나가 있으믄 안 되겠나? 소피가 매렵으가 미치겠다.”

“어허. 인자 5분밖에 안 남았다. 이런 지겨운 교육을 또 받고 싶나? 객쩍은 소리 하지 말고, 째매만 참아라!”

“그래도.”

“앉아라!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호통을 치는 홍 반장의 얼굴도 그리 밝지는 않았다.

성훈이 빙긋 웃었다.

‘그러셔야지. 이제부터 시작인데.’

남은 5분 동안 어떤 사진이 준비되어 있는지는 진표만이 알고 있었다.

진표에게 말했다.

“과장님. 다음 사진요.”

진표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화면을 등지고 버튼을 눌렀다.

“우욱!”

문 차장이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더니,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진을 보던 작업자들의 눈이 찔끔 감겼다.

“공진석 씨. 주무십니까?”

성훈은 정확히 그의 이름을 지적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눈뜨지 못하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입니다. 자는 거 아입니다.”

“그럼 눈 뜨십시오.”

“알았심다.”

좌중을 모두 둘러보며, 성훈이 말을 이었다.

“이 사진은 6월 24일, 바로 어제 춘천의 현장에서 발생한 실족사 사건입니다.”

고층 현장 아래 누워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온몸의 뼈가 다 부러진 남자의 시체가 문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물론 온몸에는 피 칠갑을 하고 말이다.

“이분은 안전모 미착용도 있지만, 현장에 방치되어 버러진 폐자재를 발판으로 생각하고 디뎌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의 증언이 있었다고 합니다.”

좌중의 시선을 보면서 다시 설명을 이었다.

숨죽인 침묵이 교육장을 덮었다.

시간이 멈춘 듯, 들리는 것은 성훈의 말소리뿐이었다.

“형. 사진 뒤로요.”

딸칵.

“총 20층까지 올라간 건물인데, 15층에서 떨어졌고, 보시다시피 현장 아시바에는 피가 점점이 묻어 있습니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더 많은 피가 묻어 있었다.

성훈이 지휘봉으로 핏자국들을 짚었다.

“보시다시피, 여기에 부딪히고 나서, 여기, 여기, 여기까지 충돌을 한 겁니다.”

성훈의 봉끝이 결국 사망자에 닿았을 때, 홍 반장이 고함을 질렀다.

“여서 이런 사진을 와 보이주는 겁니꺼? 우리가 무신 갱찰서 행사라도 되는 줄 아능교?”

“이게 여러분이 안전을 등한시할 때, 생기는 결과입니다.”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이분은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이런 사고를 당하리라 생각하셨을까요? 이분의 결정적인 사인은 팔다리의 골절이 아니라, 뇌 손상입니다.”

그림이 성훈의 설명에 따라, 차례대로 넘어갔다.

팔, 다리, 복부, 그리고…….

성훈의 봉끝이 사망자의 머리로 향했다.

눈, 코, 입만 모자이크 처리 되어 있을 뿐. 그 뇌수의 흘러내림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보이시죠? 여기!”

홍 반장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니……. 우욱!”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터져 나오는 구역질 소리였다.

성훈이 차분하게 말했다.

“책상 안에 검은 봉지 있습니다.”

허겁지겁 봉지를 빼낸 홍 반장이 연신 구역질을 해댔다.

그 소리가 신호가 되었던지, 여기저기서 구역질 소리가 났다.

신물 나는 냄새가 교육실에 가득했다.

“우욱! 김 기사님. 우리 안전모 잘 쓰고 다닐 테니까. 우욱! 인자 고마하모 안 되겠심니꺼? 내가…….”

고개를 들고 말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우욱. 뚜껑 안 쓰고 댕기는 놈은 이 함마로 대가리를 뽀사삘테……. 우욱! 우욱!”

대가리를 말하다 보니, 좀 더 심하게 사진에 감정이입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성훈은 냉정했다.

“애초에 규칙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분은 반장님이십니다.”

구역질을 하던 작업자들의 시선이 반장에게 쏠렸다.

원망의 눈빛을 가득 담은 채.

우욱!

“우욱! 하모 인자 몇 장이나 남은 겁니꺼?”

도전하는 거냐?

“다 보시려고요? 그럼 두 시간은 잡으셔야 합니다. 물론 지금 보시는 것은 그중에서 강도가 제일 약한 것만 고른 겁니다.”

“뭐라꼬예? 저기 약한 거라꼬?”

홍 반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기 약한 기라꼬? 하모 더 쎈 기 있다꼬? 말이 되는 소리를 하소! 쫌!’

홍 반장의 눈은 비명을 내뱉고 있었다.

“진표 형!”

여태껏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던 진표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헛구역질을 했다.

상상도 하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성훈아. 그거 할 거면 나도 나간다. 하지 마라. 제발. 욱!”

성훈이 전방을 보며 물었다.

“확인하시려면 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일동의 눈이 동그래지며 양 볼이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일제히…….

“우욱! 그만.”

그 뒤로도 성훈의 교육은 이어졌다.

각반을 제대로 안 차서 발밑에 튀어나온 철근에 걸려 넘어지면서, 다른 철근 쪼가리에 머리를 찍힌 사람의 사례.

그의 치명적인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도 사망하셨습니다.”

영화에서도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만 하는 장면들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애원하는 홍 반장의 눈길을 사뿐히 무시하고 성훈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규칙은 규칙. 진표 형 다음 장으로…….”

작업자들 일부가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3분이 지났을 때, 30명의 인부 중 반만이 남아 있었다. 얼굴이 핼쑥한 모습으로 말이다.

“고생하셨습니다. 남으신 분들은 여기 사인하고 나가시면 됩니다.”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입가에 번들번들 침을 묻힌 채,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교육을 시작할 때의 화기애애한 표정은 사라지고, 모두 죽은 동태눈깔 같은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홍 반장이 사인을 했다.

“홍 반장님!”

“우욱! 아. 와요?”

빈정거렸던 그의 음성에는 이제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저 규칙 지켰습니다.”

“하모요. 하모요. 기사님은 규칙 지켰습니더. 인정하께요. 됐지요?”

“인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전 장비 학실히 잘 갖추고, 자재 정리도 학실히 할 테니까. 우리 다시는 얼굴 보지 맙시더. 안전모 안 쓴 놈들은 내가 이 함마로……. 우욱!”

한결 공손해진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안전 교육이 한 번 더 있잖아요.”

“내 글마들 확실히 챙겨서 보낼 테니까…….”

“그때 반장님도 함께 하셔야 됩니다.”

그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우욱! 내는 벌써 한 번 받았잖아요! 또 와요?”

“책임자는 같이 참석해야 합니다.”

“이번 한 번만 넘어가믄 안 되겠습니꺼?”

“안 됩니다.”

“와요?”

“규칙입니다.”

“그거를 또 봐야 된다꼬? 우욱!”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홍 반장을 그의 부하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부축해 나갔다.

그들의 등에 대고 말했다.

“내일 1시에 나머지 분들 모두 오라고 해주십시오.”

“하모 밥 묵기 전에 하믄 안 되겠십니꺼? 김 기사님?”

“안 됩니다. 이미 다른 팀의 교육이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반장님이 선택하신 겁니다.”

“바까주먼 된다 아입니꺼? 한 번만 쫌 봐 주이소.”

“안 됩니다. 규칙입니다.”

“끙. 그노무 규칙……. 우우웩!”

홍 반장은 후들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박 씨.”

“와요?”

“니 저번에 반장 되는 기 소원이라캤제? 니가 반장해라.”

“엑! 제가 미ㅤㅊㅣㅆ능교? 안 합니더. 절대로 안 합니더. 우욱.”

“어허이. 우욱. 반장해라 카이까네.”

“아 씨발놈아. 그런 반장 줘도 싫다꼬.”

안에서 성훈의 소리가 들려왔다.

“엉뚱한 사람을 대리로 내세우면, 처음부터 다시 합니다.”

“아 씨발! 우욱!”

밖에서 대기하던 사람들도 연달아 구역질을 해댔다.

구역질도 전염이 되는 모양이다. 하품처럼 말이다.

진표가 물었다.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거냐?”

“왜요. 힘드세요?”

“이거 보고 골라내는 게 진짜…….”

“형님.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다쳐서야 되겠습니까?”

“너무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는 거 아니냐?”

“저는 제 현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저를 아는 분들의 사진을 저런 상황에서 찍고 싶지 않을 뿐이구요.”

진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익.

문 차장이 얼굴을 빼꼼이 들이밀었다.

“다 끝났는가? 진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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