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76화
스타타워 현장(02)
현장사무실에서는 이미 점호를 끝내고, 아침 식사를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언제 봤는지, 문 소장이 나를 반겼다.
“왔는가? 성훈 씨?”
“안녕하세요. 소자, 아니, 문 차장님.”
입에 붙은 말을 고치려고 하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려. 기다렸구먼. 근디 왜 이리 빨리 왔당가?”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온 사람을 달가워할 리가 있나, 그것도 외부인을 말이다.
그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이곳에서 실습하기로 한 김성훈입니다.”
“아, 그래? 생각보다 일찍 왔네? 별로 할 일은 없겠지만, 많이 배우고 가요. 난 공사과를 담당하는 김 과장이야.”
그를 필두로 대부분의 사람과 인사를 했다.
김 과장이 말했다.
“소장님 안에 계신데, 인사해야지?”
일어서는 그를 말리며, 문 차장이 앞장섰다.
“김 과장은 앉아 있어. 나가 들어가서 소개해 드릴랑게.”
김 과장이 멀뚱거리며 문 차장을 바라본다.
‘쳇, 낙하산이라도 상관은 상관이지.’
낙하산이라는 것 자체가 배경이 있다는 말이니, 잘 보일 이유는 없지만, 잘 못 보여서 누군지도 모를 권력자에게 밉보일 필요도 없었다.
‘소장님, 밤새 술 마셔서 기분 안 좋을 텐데……. 쯧쯧. 당해 보라지.’
“쩝, 그러세요. 그럼, 우리는 먼저 밥이나 먹으러 가자.”
김 과장이 사람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소장님, 성훈 군이 왔구먼요?”
“누구?”
“성훈 군 모르신다요?”
오히려 진 소장이 되물었다.
“그게 뭔데?”
사람을 앞에 놓고 둘이서 말하는 꼴이라니!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오늘부터 한 달간 현장에서 실습할 김성훈입니다.”
소장은 나를 힐끗 보더니 물었다.
“이야기는 들었네. 학교는 어딘가?”
“울산 U대학입니다.”
소장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래? 알았어. 나가 봐.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가라고.”
“네, 알겠습니다.”
성훈이 나가자, 문 소장이 물었다.
“소장님! 혹시 곽 이사님헌티 무신 말씀 못 들으셨는감유?”
“뭔 말? 이 친구가 원설계자라는 말?”
“네, 그것 말고도…….”
“흥. 현장에서 조용히 엉덩이……. 아니, 내가 그 말을 자네에게 할 필요가 없잖아? 문 차장, 너무 나대는 거 아냐?”
“그려도. 원설계자이기도 허고, 좀 성격이 드세가지고서리 감당허기가…….”
소장이 허공을 쳐다본다.
“허 참, 어이가 없어서. 나더러 저런 초짜 눈치를 보라는 거야? 자네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야? 현장에는 현장의 방식이 있는 거야! 머리가 그것밖에 안 되니까 삼류건설사밖에 못 갔지. 썩 나가!”
소장실에서 쫓겨나면서, 문 차장은 다시 한 번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를 떠올려야 했다.
‘진짜로 곽 이사가 성훈이를 언급 안 한 겨? 그럴 리가 없는디! 참말로 그랬다면, 이놈을 죽이려고 허는 게 확실허네. 안 그라믄 이럴 수가 없당께.’
***
문 차장이 현장을 설명하고 있었다.
내게는 처음이었고, 도면과 현장은 다르니까?
문 차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것들이 또!”
“왜요?”
“나가 그러코롬 주의를 줬는디.”
문 차장의 손끝은 작업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문 차장보다 앞서 고함을 질렀다.
“거기 작업자분! 안전모 착용하십시오.”
공구를 들고 가던 작업자가 삐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게 대뜸 물었다.
“여기 작업반장 누굽니까?”
대답은 내 뒤에서 들려왔다.
“낸데?”
거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였다.
서른 중반에 키는 190㎝ 남짓, 체중은 100㎏을 가볍게 넘는 거구였다.
해머를 어깨에 메고 나를 삐딱하게 내려다본다.
‘허 참, 양아치 소굴이냐?’
전생에 내가 지은 죄가 많았나 보네.
어찌 가는 곳마다 이런 놈들만 만나는 건지.
‘하긴 차 반장 같은 사람을 만난 게 행운이겠지’
기숙사 석공사를 담당했던 차지석이 떠올랐다.
액면대로 청년이었다면,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은 꼴보다는 더러운 꼴을 더 많이 보며 40년을 넘게 살았다. 그 세월 동안 덩치로 겁주는 놈들이 한둘만 있었을까?
그는 내 안전모의 ‘기사’라는 명칭을 봤는지, 말투를 바꿨다.
“와요? 우리 아가 뭘 잘몬했는데요?”
말투로 보아, 진주나 마산 쪽이 아닐까?
“안전모 미착용입니다.”
“그래서요? 벌금 딱지라도 띠실라고?”
“흐흐. 교통 갱찰인갑네요. 갱찰이면 나가가 교통정리나 하소.”
딱 봐도 신참인 나를 아까의 작업자가 비웃었다.
‘텃세냐?’
삐딱하게 시비를 거는 꼴이 싫다.
왜 말을 하면 들어먹지를 않는 거냐?
왜 착한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인가?
‘문 차장은 또 왜 이래?’
지금쯤이면 말린다고 설레발을 쳐야 할 문 차장도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문 차장을 본 반장이 피식거렸다.
“아이고, 우리 거시기 차장님도 같이 있었네. 몰라 봐가 미안함니데이.”
허리를 숙이는데, 얼굴은 문 차장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명백한 도발!
하지만 문 차장은 더 해보라는 듯이 눈썹만 꺼떡거리며 웃음을 띠고 있었다.
“허 참, 재미없네. 그런데 나는 와 찾능교?”
도발을 해도 반응이 없자,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일 안전 교육 실시합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하세요.”
반장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뭐요? 안전 교육?”
“네.”
“참나. 또 실데 없는 짓거리를 해쌌네. 시간만 낭비하구로. 내가 현장만 20년을 굴렀심더. 그만합시더.”
현장 교육을 그만큼 많이 받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100년을 받으면 뭐합니까? 바뀐 게 없는데요.”
“안 한다면 우짤깁니꺼?”
네까짓 게 무슨 방법이 있겠냐고 묻는 건가?
“이 팀은 내일부터 현장에 들어올 생각 하지 마십시오.”
웃음을 띠었지만, 단호한 내 음성에 반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라꼬예?”
“그럴 능력 되시면, 해보셔도 좋습니다.”
“그라믄 현장이 바로 스탑될낀데?”
겁주는 거냐?
“그건 반장님이 걱정하실 일이 아니죠.”
반장의 눈이 문 차장에게로 향했다.
문 차장은 뭔가 재밌는 일을 찾았다는 듯, 슬며시 웃고 있을 뿐이었다.
반장의 태도가 바뀌었다.
“몇 시에 가믄 됩니꺼?”
“오전 10시에 오세요.”
“그거는 안 되겠는데예. 오전 공치잖아.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한 시간인데. 점심 묵고 바로 합시더.”
“네, 알겠습니다. 한 분도 빠지면 안 됩니다.”
“알았심더.”
돌아가는 등 뒤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쟈는 뭐꼬?”
“몰라예. 오늘 첨 보는데?”
“와, 씨발. 존나 기 쎄보이는데?”
“기사가 무신 베슬이가? 저래 대가리 빳빳하이 들고. 안전 교육은 또 무신?”
“내일 점심 묵고 바로 모디라. 알았제. 그깟 안전 교육 10분이면 끝나니까, 소화도 되고 딱 좋네.”
내 옆을 걷던 문 차장이 물었다.
“성훈 씨, 화도 안 나는가? 나는 부아가 치미는디?”
“훗, 화는 나죠.”
“그란디 왜 그리 평온하대?”
“평온해 보입니까?”
“그라니께 묻는 것이제.”
“몰라서 저러는 거예요”
“뭐가?”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지. 살아보니까,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더라고요.”
“흐흐. 꼭 죽어본 사람마냥 말을 허는구먼.”
사람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그건 내가 누구보다 더 잘 알지.’
내 딸 예진이를 알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줄 수도 없는 것처럼. 그저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행복한 기억임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악몽이다.
현재의 내 삶에 도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연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차장이 재차 물었다.
“그란디 저놈들은 어떻게 조질 생각이여?”
“조지긴 뭘 조져요?”
“그라믄 저렇게 덤비는디, 가만 놔둬?”
“일단 교육을 시켜야죠.”
“교육? 안 �i아내고?”
“저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밥줄 끊어놓으시려고요? 앞으로 조심하게만 하면 되는 거지!”
“허, 이상허네. 이럴 사람이 아닌디?”
내가 무슨 싸움꾼입니까?
이런 사람들과 드잡이질이나 하고 있게?
문 차장이 내 속을 슬쩍 떠본다.
“덩치에 쫄았구만!”
“흐흐흐. 아니거든요.”
“당최 이해가 안 된당께. 이럴 사람이 아닌디?”
“돈을 벌 목적으로 현장을 왔는데, 벌게 해줘야죠. 안전 교육하러 온 건 아니잖아요.”
“여그 소장이라는 놈도 똑같은 말을 하더랑께.”
“하지만 현장과 개인의 목적이 항상 동일할 수는 없죠.”
“뭔 소리여?”
“기다려 보세요. 며칠 내로 현장 정상화시킬 테니까요.”
그러나 문 차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깟 안전 교육 따위는 몇 백번을 해도 안 될 것인디.”
걱정인지 실망인지 모를 소리를 하면서 현장으로 사라졌다.
‘차장님, 교육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눈높이를 맞춰서 말이죠.’
감리사무실로 발길을 옮기며 전화기를 들었다.
“김 기자님, 잘 지내십니까?”
-성훈 씨가 어쩐 일이야. 저번엔 신세도 많이 졌는데.
“에이, 뭘 그런 걸 가지구요.”
-덕분에 우리 신문이 울산신문을 제치고 탑이 됐잖아.
“그래요? 잘됐네요.”
간만의 내 전화가 진심으로 반가웠던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댔다.
-울산신문 편집장 잘리고, 치킨집 한다고 하더라고.
“네? 기자가 아니고요?”
-그 사람은 이제 이쪽 일 못 해! 신문업계에 이름 다 팔렸잖아.
“쩝, 그런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얼마나 속이 시원한데. 맨날 울산이 지 나와바린 줄 알고 이래라 저래라 나댔었는데.
“하지만 그럴 정도까지는…….”:
-워낙 한 짓이 악질이었잖아? 신문기자가 보도를 해야지. 힘 좀 있다고 주변을 눌러버리니까. 그 행태가 다 소문난 거지.
울산신문 편집장이 내 기준으로야 나쁜 사람임이 분명하지만…….
‘죄책감은 없어. 인과응보지! 뭐.’
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용건을 말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드린 거예요.”
-그래? 뭐든지 말만 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주지.
“그리 힘든 건 아니에요.”
***
“진표야, 무엇허냐? 호프나 한잔?”
문 차장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손목을 꺾었다.
“오늘은 안 돼요. 바빠요. 속도 메슥거리고.”
“그라지 말고 가자. 나 이 현장서 말 통하는 사람 자네밖에 없당께.”
“왜요? 성훈이도 있잖아요.”
“오늘부로 아녀. 난 성훈이잔티 실망이랑께.”
“왜요?”
“나가 그렇게 맞았으믄, 시원하게 복수를 해줘야 할 것 아녀? 기여. 안 기여?”
“성훈이가 소장님, 아니, 또 소장님이래, 하여간 차장님이 홍 반장이랑 싸운 거 알아요?”
“아차, 그러고 보니……. 말을 안 혔네.”
진표가 피식 웃었다.
“성훈이가 무슨 신도 아니고, 그럼 어떻게 알아요?”
“하도 평소에 귀신같이 굴어서 그런 것이제.”
“하긴 저도 그런 마음 들 때가 있어요.”
문 차장이 말했다.
“진표야. 나는 성훈이, 갸가 뭔 생각을 하는지, 당최 모를 때가 있당께.”
“아! 저도 그렇다니까요?”
“깜짝이야. 왜 고함이여. 고함은.”
“아, 귀찮게 하지 마시고 퇴근하세요. 쫌!”
화면에 몰입하는 진표를 보며, 문 차장이 손목을 꺾었다.
“일은 그만허고! 한잔하자니께.”
“다른 사람들은 야근한다고 난리인데, 소장님 혼자서 한가하세요? 안 바쁘세요?”
“바쁘긴 뭘 바뻐. 나가 낙하산이라고 취급도 안 해준당께. 현장의 문제점을 말혀줘도, 들어먹지를 않어.”
분통이 터지는지, 그는 자기 가슴을 탕탕 쳤다.
“나가 낙하산 취급 안 당헐려고 얼매나 현장을 싸돌아 댕겼냐? 안 그냐?”
진표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문 차장은 성훈이 없는 2주 동안 부지런히 현장을 돌면서 개선점을 요구했었다.
안전모와 흡연구역에 대한 다툼은 그야말로 새 발에 피였다.
“하긴. 차장님보다 이 현장 잘 아는 사람은 없을걸요.”
진표는 다음 말을 삼켰다.
‘그리고 트러블 메이커이시기도 하구요.’
해결할 능력은 부족한데, 지적질을 해대니, 싸움이 안 나면 오히려 이상할 노릇.
진표가 문 차장을 달랬다.
“걱정 마세요. 그렇게 기다리던 성훈이가 왔잖아요.”
“그러니께 허는 말이잖어. 헌디 이번에는 성훈이가 하는 짓이 영 시원찮당께. 원래 그런 아그가 아니었는디?”
‘성훈이 앞에서는 깍듯이 존대를 하면서. 크크.’
“왜요?”
“고 싸가지 없는 것들을 �i아내는 게 아니라, 안전 교육을 한다니께 하는 말이제.”
“안전 교육요?”
“응!”
“그랬구나. 그래서 나한테…….”
“뭔 일 있어?”
“이거 보세요?”
모니터를 문 차장에게로 돌렸다.
“으헉! 이게 뭐다냐?”
그의 눈이 튀어나올 듯 동그래졌다.
“내일 쓸 교육 자료예요.”
“이걸? 미친 거냐? 진표야!”
“몰라요. 어디서 구해왔는지, 오늘까지 끝내래요. 안 그럼 제가 내일 안전 교육 직접 해야 돼요.”
“크하하하. 그럼 그렇지. 성훈이 그놈 또라이여.”
“다음 페이지도 보실래요?”
“됐당께. 일 없어. 수고햐!”
그 한마디를 남기고, 문 차장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