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75화
스타타워 현장(01)
울산의 ‘스타타워’ 현장.
현재건설 문 차장이 이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현장소장에게 인사를 하고, 현장으로 들어섰다.
‘나가 여그서는 낙하산인게, 일이라도 빠삭허게 꾀고 있어야 무시를 안 당한당께.’
아무리 낙하산이라도, 실력이 있으면 무시당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어라!’
현장을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자유로운 분위기.
그에게는 이런 광경이 익숙하지 않았다.
“와따! 현장에 일을 하러 온겨, 놀러를 온겨.”
‘안전모는 어디 간겨? 워매 목심줄을 내놓고 댕기네 그랴.
자재를 어깨에 이고 지나가는 작업자의 어디에도 안전모는 보이지 않았다.
문 차장이 그를 불러 세웠다.
“거시기. 임자는 왜 안전모를 안 쓰고 댕긴다요?”
울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걸죽한 사투리.
작업자가 걸음을 멈춰 섰다.
그는 문 차장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당신이 뭔데, 내한테 이래라 저래라 카능교?”
“아따. 현장에서 안전모 쓰는 거이 당연한 말이제. 우째 그 말에 토를 단당가?”
하지만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이 뭐냐꼬?”
“나가 이 현장 공사차장이요. 됐소?”
“치. 알았쓰요. 저기 가가지고 하이바 뒤집어 쓰께요. 됐지요?”
잘못을 지적하면 고치겠다 말하면 되는 것을 저렇게 시비조로 말을 해야 하는가?
‘경상도 말이 좀 거칠기는 허제. 그려도 아리까리헌디. 시비를 거는 거여. 뭐여?’
뒤돌아서서 현장으로 들어가는데, 작업자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대서 전라도 촌놈이. 퉤!”
“크흑.”
들으라는 듯이 가래를 뱉는데, 가슴을 꾹 눌러 참았다.
발령받은 첫날, 사고를 칠 수는 없지 않은가?
입맛을 다시며, 문 차장은 다시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이 완전 개판이네. 뭔 개소리가 여그까지 들린다냐!”
현장을 둘러본 문 차장의 소감은 이랬다.
“당나라 군대도 여그보다는 나을 것이여.”
그가 감리사무실로 향했다.
“대체 감리들은 안전교육도 제대로 안 시키고 뭘 하능겨.”
한번 따져볼 참이었다.
“이러고도 월급 받을 생각을 하능겨!”
그가 알고 있는 현장의 제1원칙은 ‘안전’이었다.
씩씩거리며 감리사무실로 향했다.
“어라?”
사무실 문 앞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
“잉. 진표네? 자네가 여그 웬일이래?”
“우리 사무실로 감리 오더가 떨어졌어요.”
“소장님은 서울 본사에 계신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거시기 나가, 월급쟁이잖여?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간디?”
“그럼 여기로 발령받으신 거예요?”
“그렇코롬 됐구만. 글구 인자는 차장이여.”
“성훈이랑은 현장 안 한다고, 그렇게 진절머리를 치시더니?”
“고것이야 소장일 때 허는 말이제. 이번에는 소장도 아니잖여!”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시죠. 저도 아는 사람 만나니까 반갑네요.”
***
이 현장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곽 이사를 찾아가서 따졌었다.
“지를 거그다가 갖다 박을라고 델구 왔구만요. 그러코롬 안 한다고 말씸을 드렸는데 말이지라.”
곽 이사 왈.
“문 차장. 나 좀 살려주게. 누구를 소장으로 앉혀도 성훈 군 등쌀을 못 배겨낼 것 아닌가?”
예전에 자신이 한 말도 있었으니, 문 차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는 문 차장같은 대인배가 없었다면, 그 현장은 박살이 나도 진즉 났을 거라고 확신한다네.”
곽 이사는 연신 문 차장을 칭찬했다.
‘대인배? 이 냥반이 입술에 꿀을 발랐나?’
허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
따지러 왔던 문 차장의 안면근육도 춤을 추듯 꿈틀거렸다.
“지가 뭐 한 것이 있다구 그런 칭잔을 하신데요. 헤헤.”
“원래는 자네를 소장으로 앉히고 싶었다네.”
“어허. 이사님. 무신 그런 악담을 하신당가요. 거시기, 지 대굴빡 보이시지라. 성훈이 있는 현장에서는 소장 같은 거 줘도 안 한당께요.”
그의 말에 기겁하는 문 차장을 보며 곽 이사도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이고. 내 팔자야. 어쩌다가 이런 놈한테 부탁을 하는 팔자가 되었을꼬.’
돈에 눈먼 놈이었다면, 거금을 주면서 소장 자리를 앉혔겠건만, 눈앞의 이놈은 법인카드 한 장이면 만족을 하는 인간이었다.
사용 용도는 퇴근 후 호프 몇 잔.
곽 이사가 싫다는 문 차장을 살살 달랬다.
“그래서 말일세. 자네 대신 기둥 소장을 앉혀 놓았네. 현장에 소장이 없어서야 되겠나?”
“허긴 그것도 일리가 있쥬.”
“그러니까 일은 자네가 다 하면 되는 것이네. 성훈 군과 호흡을 잘 맞혀서 말이야.”
“그라믄…….”
“책임은 기둥 소장이 질 테니까, 자네는 일만 하면 돼. 어때?”
또한 곽 이사는 소장과 동일한 급여에 맞춰주겠다는 조건까지 내밀었다.
물론 법인카드도 말이다.
“그렇게까지 말씀은 하시믄…… 최선을 다해 보겄구만이라.”
문 차장도 곽 이사가 자신의 원래 회사에 어떤 일거리를 던져 줬는지 사장에게서 들었다. 현재건설의 작은 지원만으로도, 회사는 단기간에 정상화가 될 수 있었다.
‘여지껏 사장님 모시고, 여그꺼정 왔는디, 여그서 알거지로 만들 수는 없재.’
문 차장이 나가고, 곽 이사는 식은땀을 훔쳤다.
‘휴. 일단 넘겼네. 진 부장. 그놈이 뻘짓만 안 하면 좋겠는데.’
진 부장을 현장소장으로 보내기 전, 그를 불러 신신당부를 했었다.
‘진 부장. 그냥 소장 의자만 덥히고 있어라. 공 세우려고 하지 말고. 다음에 나오는 제일 좋은 현장은 너에게 밀어주겠다.’
눈치가 있는 놈이니, 잘 처신하겠지.
***
“아따 그란디. 여그 현장은 왜 이리 개판 오 분 전이고만?”
안전모를 바가지 뒤집어쓰듯이 쓰고 다니는 인간들이 눈에 띄어서 하는 말이었다.
진표가 한숨을 내쉬었다.
“기숙사 현장이 특별했지요. 그래도 다른 현장보다는 많이 나은 편이에요.”
“그려도 감리라믄 싫은 소리도 하고 해야제.”
“차장님. 전들 그걸 모르겠습니까? 어디, 말을 들어야 말이죠. 몇 번이나 싸웠는지 몰라요.”
“그런다고 할 일을 안 해?”
문 차장의 타박에도 진표는 대들지 않고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진 게 이래요. 처음에 안전모 쓰라고 했다가 맞아 죽을 뻔 했다니까요.”
“쯧쯧. 젊은 친구가 말이야. 깡이 없어. 깡이.”
“어휴. 소장님도 햄머 들고 덤비는 걸 보셨으면 그런 말씀 못하실 걸요.”
하긴 공사 현장이 좀 거칠던가?
소지하는 공구가 흉기로 변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 장면이 떠올랐는지, 진표가 부르르 떨었다.
“쩝. 고생이 많구만그려. 뭔가 방법이 없겄냐?”
“뭐. 안전교육이라도 계속하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아요. 하려고만 들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일당 물어내라고 난리를 쳐대니.”
“하기사. 돈 벌려고 나왔응께.”
진표가 투덜거렸다.
“사람 하나 죽어 나가야 정신을 차리죠. 에휴.”
“워매. 이 사람아. 그런 재수 없는 소리는 허지도 말어. 말이 씨가 되믄 어쩔 것이여?”
“얼마나 답답하면 이러겠어요.”
“현재는 현장이 깨끗하고 군기가 잡혀 있다 그러코롬 신문에 때리더구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여.”
작년 여름에 사장의 일갈이 있은 후, 현장에서는 피바람이 불었었고 그 변화된 현장을 신문에서는 건설의 선진화기 진행되고 있다면서 대대적으로 칭찬했었다.
진표가 혀를 찼다.
“쯧쯧. 그것도 순간이죠.”
“하여간 말 안 듣는 놈덜은 조져야 된당께.”
“냄비근성이죠. 금방 달았다가 금방 식고.”
“그래도 이사들은 현장에 많이 드나든다고 하던디.”
“그럼 뭐합니까? 이사들 올 때는 어떻게 귀신같이 아는지, 현장 단속을 철저히 하더라고요.”
“사고가 그때만 일어나나?”
“그러니까 제가 한숨 쉬는 거죠.”
“성훈이가 있었으면, 이런 건 꿈도 못 꿀텐디 말여.”
“그래요. 성훈이가 있을 때가 좋았죠.”
“그라제. 까탈스럽기는 해도, 현장감독은 칼같이 잘 했는디.”
“오죽하면 현재건설 사장한테까지 그랬겠어요.”
“그라고도 지랄 안 허는 거 보면, 그 사장님도 대단허신 겨.”
현재건설 사장이 기숙사 현장을 방문했을 때, 성훈네들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사장을 만난 사람이 문 차장이었다.
“나가 소장헌테 말해 볼 텡게, 너무 걱정은 말어.”
문 차장이 현장사무실로 향했다.
현장을 가로지르는데, 아무리 적응을 하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현장 곳곳에는 악취가 풍기고, 이동통로에는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었다.
“요거이, 쓰레기장이래? 현장이래?”
***
진 소장이 문 차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거시기 그러니께, 지 말씀은 안전교육을 다시 꼼꼼허게 해야 헌다. 그 말씀이지라.”
“그 사람들이 일을 하러 왔지. 안전교육 받으러 왔어? 그리고 의무교육시간을 채웠으면 됐지. 뭘 그리 쓸데없이 꼼꼼해?”
“사람이 다친당께요.”
소장이 속으로 코웃음 쳤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이었는데.’
손금이 닳게끔 비벼서 얻어낸 현장인데, 시답잖은 놈의 훈계를 듣고 있자니, 소장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진 소장에게는 20년의 노고를 보상받는 자리가 바로 여기였다. 어차피 이사로 올라가지 못하는 이상, 여기가 승진의 종점일 터!
‘그동안 내게 충성한 업체들도 챙겨야지. 하긴 네놈은 그런 업체도 없겠지만.’
소장이 비릿하게 웃었다.
“문 차장. 무슨 빽이 그렇게 좋아서 핫바리 삼류건설사에 있다가, 이리로 발령을 받았는지 몰라도, 여기서는 내가 법이야. 알지?”
“알지라. 지도 소장을 혀봤는디, 모를 리가 있겠어라?”
“흥. 저기 남목에 있는 3층짜리 기숙사? 그런 것도 현장으로 치나? 어디다가 비교를 하나?”
자신의 걸작을 비웃는데, 문 차장의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이런 싸가지가? 너그 윗사람들이 줄줄이 내 앞에서 바짓가랭이를 붙들고 늘어졌는디.’
“허지만 이사님들이 불시에 현장 방문허시믄 피바람이 불 텐디요?”
“허 참! 본사에 내 동기들이 쫙 깔려 있는데 그 정도도 모를 줄 아나? 하긴 자네는 그런 게 없겠구만. 그러니까 신경 꺼.”
소장이 비릿하게 말을 이었다.
“낙하산으로 왔으면, 조용히 월급이나 타 먹다가 가라. 쓸데없이 나대지 말고. 네가 할 일은 없을 테니까.”
문 차장이 문을 닫고 사라졌다.
‘쯧쯧. 곽 부장님이 이사가 되시더니, 너무 소극적으로 변하셨어. 십 년 동안 나 따라온 새끼들 챙겨야 되는데, 저런 놈 눈치나 보라고. 어이가 없네!’
***
문 차장이 소장실을 나왔다.
‘쯧쯧. 곽 이사가 저놈을 죽을 자리로 보냈구만.’
진표가 물었다.
“성훈이 분명히 오겠죠?”
“안 올 리가 없제. 실습신청 해놨다고 허던디?”
“그런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대요?”
“아직꺼정 울산 도시계획인가 하는 것이 안 끝났다고 하더구만. 2주 후에나 온다는구만.”
“빨리 2주가 지났으면 좋겠네요.”
진표도, 문 차장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빨리 와도 걱정이랑께.”
“왜요?”
의문을 제기하는 진표에게 문 차장이 물었다.
“자네. 감당헐 자신은 있능겨?”
“뭘요?”
“성훈이 오믄, 현장 개판이라고 우덜부터 쪼아 죽일 텐디, 그거 감당헐 자신 있냐? 그 말이여.”
“그렇게까지야 하겠…….”
“쯧쯧. 한동안 안 봤다고 감이 죽었구먼. 그 인간이 안면 있다고 봐줄 인간이여? 외려 알면 아는 사람이 그랬다고 더 지랄옘병을 해댈 텐디.”
“어떡하죠.”
“남은 2주 동안 그래도 욕먹지 않을 만큼 현장을 만들어 둬야 한당께.”
***
속에 천불이 났다.
‘말을 해도 들어먹지를 않어.’
문 차장이 고함을 질렀다.
“그거. 담배 불 끄쇼잉. 흡연구역꺼정 맹글어 뒀는디, 왜 맨날 담배를 물고 사방팔방 싸돌아 댕긴당가?”
작업반장으로 보이는 중년이 그를 비웃었다.
“우대서 그지 깽깽이 새끼가 울산까지 와가지고 처씨부리쌌노.”
그 말을 듣고 참을쏘냐!
욱한 문 차장이 팔뚝을 걷어붙였다.
“워매. 저 싸가지! 말하는 거 보소! 느그덜은 나헌티 디져부렀어.”
***
“차장님. 왜 그렇게 싸우셨어요.”
“고로코롬 싸가지 없이 말을 하는디, 맞아야제. 그라믄 패는디 맞고 있으까잉?”
문 차장이 퍼레진 눈두덩을 계란으로 비볐다.
“여기 현장 사람들, 다 소장이랑 한통속이래요.”
“그게 뭔 소리다요?”
“소장한테 커미션 주고 들어왔다는 거죠.”
“그거야 당연헌 거제. 안 그런 디가 있간디?”
“그런데요. 업체 사장들이 소장이랑 안 지가 10년이 넘었어요. 그동안 계속 소장을 따라다녔구요.”
“그러니께, 일회성 떡값이 아니라. 그거구먼.”
진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 그눔이 쌍노무 자슥이구만.”
“그러니까. 싸워봤자 차장님만 바보 되는 거예요.”
“나 문봉식이, 그런 놈은 용서 못 허제. 저 싸가지 없는 종자들을 씨를 말려버려야 한당께.”
진표가 피식 웃었다.
“차장님이 무슨 수로요?”
“2주만 기다리쇼. 줄줄이 줄초상을 내놓을텡게. 느그들은 전부 디져부렀어!”
폭풍 같은 2주가 지나갔다.
***
새벽 6시!
여명이 어슴푸레 터오는 시간이었다.
현장 입구에 노란색 카마로가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