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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74화 (174/427)

건축의 신 174화

기둥은 꼭 있어야 하는가? (21)

프랭크의 한국 방문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지금 우리는 미국행 비행기의 출발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훈, 벌써 이별이네.”

“그러게요. 좀 더 같이 있었으면 한국 여행도 시켜드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요.”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자네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기로 약속을 했고, 난 또 스케줄이 있으니 그건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세.”

프랭크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또 기회가 오지 않겠어? 그리고 자네 덕분에 투자금 문제가 잘 해결되었어.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네그려.”

“아뇨. 오히려 제가 고맙죠. 프랭크의 방문으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프랭크는 울산에서의 방송 말고도 다른 곳에도 많이 출현을 했다. 통역으로는 한 교수를 대동하고 말이다.

사흘 동안 계속 방송에 출연했었다.

‘이제 한국의 건축 관계자들 중에 한 교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것으로 내가 아는 한 교수의 미래도 앞당겨질 것이다.

‘외국의 학벌 때문에 건축계에서 외면받은 사람들이 한 교수를 중심으로 인맥을 형성할 거야.’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

학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민수와 경호도 식사를 하러 왔는지, 내 앞에 앉았다.

“선배님, 과 건물 앞에 보셨습니까?”

“아니, 나 지금 왔는데? 무슨 일이냐?”

“가보시면 압니다. 어떤 미친놈이.”

“뭔데 그러냐? 민수야?”

민수가 피식 웃었다.

“경호 녀석, 부러워서 그러는 거예요. 가보시면 알아요.”

우리 과 건물 앞에는 외제차가 서 있었다.

노란색 동체에 굵직한 두 개의 검정 무늬.

“어, 범블비네?”

“네? 범블비요? 저거 카마로예요. 형.”

정정하는 민수를 보며 머쓱하게 미소 지었다.

“응. 알아. 말이 잘못 나온 거야.”

눈앞에 있는 차는 몇 년 뒤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그 차. 디자인마저도 똑같았다.

쉐보레에서 출시한 머슬카의 대명사, 카마로.

‘어떤 집 자식인지 돈 좀 있나 보네.’

“선배님,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이거 완전 돈 많다고 자랑하는 거 아닙니까?”

“뭐가 너무해? 굴릴 능력되면 타는 거지. 돈 있는 게 죄냐? 네 눈치 보면서 돈 써야 해?”

“그래도…….”

“억울하면 너도 돈 벌어서 사. 그런 목표라도 있으면 일이 엄청 즐거울걸?”

민수가 투덜대는 경호에게 핀잔을 주었다.

“경호야. 성훈 형은 쿠웨이트 왕자가 페라리를 준다고 했는데도 마다했던 사람이야. 저런 차가 눈에 들어오겠어?”

‘민수 쟤가 오해를 단단히 하고 있네. 야, 나도 차 좋아한다고.’

돈 있다고 갑질하는 걸 경계하는 거지.

사실 압둘의 선물은 너무 과했다. 지금의 내게는 보관하는 것도 문제가 될 정도였으니.

‘번듯한 집도 아직 없는데, 무슨 스포츠카야.’

하지만 이제는 약간씩 봉인을 풀어도 되지 않을까? 정확히 계산해 보지 않았지만, 주식액수가 100억은 넘은 것 같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7월 중순이면 다른 걸로 갈아타야지.’

그중 10억 정도는 순수하게 내가 번 돈이었다.

민수의 말에 경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성훈 선배님? 미치신 거 아닙니까?”

‘그럴 만도 하지. 내가 들어도 그러니까, 하지만 준다고 넙죽 받을 상대가 아니잖아.’

압둘은 자신의 마음이라고 했지만 마음의 빚이라도 지면 갚아야 한다. 그 대상이 산유국의 왕자라고 해봐. 얼마나 부담스러울지.

‘그래도 뭐? 선배한테. 미쳐?’

인상을 쓰면서 걸음을 멈췄다.

경호는 다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게 말입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때는 그럴 이유가 있었어.”

“왜요?”

경호가 따지듯이 물었다.

“그걸 너한테 말해야 되냐?”

민수가 경호의 뒤통수를 탁 치며 말했다.

“그래도 형은 저 시계 받았어. 우정의 표시라고.”

“에게, 겨우 시계? 왕자라면서 쩨쩨하게.”

경호에게 피식 웃어줬다.

‘얼만지 알면 기절할걸? 자그마치 900만 원짜리라고. 넌 이런 시계 줘도 그 가치를 모를 거다. 돼지 목에 진주지. 쯧쯧.’

경호의 투정을 들으면서, 교수실로 들어갔다.

마침 한 교수가 있었다.

이제 대가를 받을 시간이었다.

어떤 대가냐고?

한 교수 논문을 시작하기 전에, 꽁으로 일할 수는 없다고 그에게 침대를 사달라고 제안했었다.

‘한 교수가 기억이나 할까? 그래도 받을 건 받아내야지.’

들어오는 나를 보며, 한 교수가 물었다.

“성훈아, 봤냐?”

“뭘요?”

“밖에 있는 카마로.”

“네, 잘 빠졌던데요. 누군지 몰라도, 부러워요.”

경호가 투덜거렸다.

“그러게요. 어떤 미친…….”

한 교수가 내게 자동차 열쇠를 내밀었다.

“그거 너 주려고 미국에서 가져왔다.”

‘엥?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네? 제 거라고요?”

“논문 도와주면 사달라고 했잖아.”

“네? 제가 말한 건…….”

“학교 왔다 갔다 하기 어렵다면서. 그래서 내가 미국에서 타던 거 준다고 했잖아.”

한 교수는 내 말의 앞뒤를 다 자르고 학교 다니기 어렵다는 말만 들었던 모양이다.

‘어? 내가 말한 건 침대였는데?’

어쩌면 코브라트위스트가 너무 강해서 머리에 충격이 갔었을지도.

한 교수가 아쉽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약속은 지켜야지. 저거 내가 미국에서도 애지중지하던 거야. 성훈이 너니까 주는 거야.”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나라고 물욕이 없으랴?

고민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입이 찢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한 교수가 벙찐 내게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왜? 차 아니고 다른 거냐?”

이 상황에서 ‘침대요!’라고 말하면 바보겠지.

그의 표정도 ‘아니면 얼른 얘기해!’처럼 보였다.

그 순간, 내 이성과 감성이 동시에 소리쳤다.

‘바보야. 네가 한 말이 뭐가 중요한가? 한 교수는 기억도 못하는데, 그의 성의를 생각해!’

그의 손끝에서 달랑거리는 열쇠를 낚아챘다.

“감사한 마음으로 잘 받겠습니다.”

“엇? 야!”

“잘 쓰겠습니다. 교수님!”

“야! 그 속도…….”

“네, 속도위반 안 할 테니, 걱정 마세요.”

한 교수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나는 이미 문 밖으로 뛰어 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학생들이 모여서 차를 구경하고 있었다.

크. 얼마나 멋있는 차인가? 내 차!

내 것이 아닐 때는 소 닭 보듯 했지만 내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멋있게 보였다.

이 기분 설명할 수 있을까?

삐빅!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야, 주인 왔나 보다. 어떤 놈이지나 보자.”

부러움의 시선을 받으며, 도어를 열었다.

“선배님, 선배님 차였어요?”

“그래, 지금부터 내 거다.”

한 교수가 쓰던 차라고는 했지만, 깔끔한 외양이 새 차나 다름없었다.

그들을 향해 씨익 웃어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부릉. 부릉.

그르렁거리는 호랑이의 소리처럼 기분 좋은 진동이 전해진다.

이내 묵직한 파워가 등을 타고 뇌리를 찌른다.

‘아, 기분 좋다.’

딸칵!

‘어! 누가 허락도 없이.’

언제 따라왔는지, 민수가 조수석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헤헤, 형. 타도 되죠?”

‘이익, 혼자서 즐겨보고 싶었는데.’

하지만 기회는 또 있겠지.

앞으로는 계속 혼자 탈 일이 더 많을 테니까.

“타.”

민수가 타는 것을 기다렸는지, 뒤쪽의 문도 열렸다. 이번엔 경호 녀석.

눈치는 살피지만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선배님, 한 번만.”

‘그래, 너까지만 허락한다.’

“타.”

잽싸게 올라타는 경호를 민수가 제지했다.

“야!”

“네? 선배? 왜요?”

“아까 나 타는 거 봤지?”

“신발 터시는 거요?”

“응.”

경호가 나를 본다.

‘알아서 기어라.’

경호는 잽싸게 좌석에 엉덩이를 올리고 양발을 탈탈 털었다.

“아싸!”

탁.

부릉. 부르르릉.

학생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육중한 몸체가 스스륵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진다.

중후한 엔진 소리에 차와 한 몸에 된 기분이었다.

중앙광장을 끼고 돌며 정문으로 향했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돌아간다.

어쩔 수 없는 조건반사.

“형, 느낌이 끝내주는데요.”

“저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아니, 차 말이야. 차.”

그렇게 토닥거리는 둘을 태우고, 정문을 빠져나갔다.

알리의 페라리는 거부하더니, 이건 왜 받냐고?

‘주는 대상이 다르잖아.’

한 교수가 주는 것은 받아도 된다.

‘그가 주는 만큼 해줄 자신도 있고.’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많이 받을 거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주는 의미도 다르다. 이건 내 노력의 산물이다. ‘약속의 대가이기도 하고.’

침대가 카마로로 바뀐 건 약속이 다르지 않냐고?

‘대한민국 사내새끼가 시시콜콜 지난 일에 연연해서야 되겠어?’

두 번째 인생, 대범하게 살아 보자.

민수들을 보며 말했다.

“야, 해운대 가서 회나 한 접시 먹고 올까?”

민수와 경호가 나를 보며 웃었다.

“선배님, 올 때는 제가 운전해 보면…… 안 되겠죠?”

인상을 팍 썼다.

“내리고 싶어? 지금 당장? 던져줄까?”

결과적으로 우리는 기분 좋게 해운대를 다녀왔다.

밤에 돌아오면서 과속 카메라에 찍히는 봉변을 당했지만 말이다.

속도계가 ‘킬로미터’가 아니라, ‘마일’일 줄 누가 알았냐고?

기분 좋게 100으로 달리다가, 카메라에 찍히고 나서야 알았다.

“쩝. 어쩐지. 차들이 자꾸 뒤로 밀려나더라.”

그때까지 조수석에서 안전벨트를 움켜쥐고 있던 민수가 말했다.

“어쩐지, 형이 이렇게 과속을 할 리가 없는데, 아무리 속도계를 봐도 100이더라고요.”

뒷좌석의 경호는 속이 울렁거리는지 울상이었다.

“아까 선배님. 기분 좋다면서 130 넘게 밟으셨잖습니까?”

“그랬었나?”

“기억 안 나십니까?”

당연하지 않나?

“얼마로 달리는지 누가 매번 체크 하냐?”

“저, 이제 다시는 선배님 차 안 탈겁니다.”

“그건 내 탓이 아니잖냐? 미리 말씀 안 하신 교수님 탓이지.”

***

중간고사가 끝나고, 여름이 다가왔다.

중간고사가 지난 후, 성적우수자들과 함께 서울을 다녀왔다. 미팅을 하기로 했었으니까.

타기 싫다는 경호를 내 애마에 태워서 말이다.

정말 ‘안전운행’을 했다.

‘두 번째 삶에서조차 차 사고는 사양이라고.’

***

‘이제 슬슬 공사를 시작할 때가 되었는데…….’

한국에서의 두 번째 설계가 ‘스타타워’라는 이름으로 현실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던 중, 반가운 사람이 찾아왔다.

그것도 한우를 세 근이나 사들고 말이다.

“성훈 씨, 오랜만이랑께.”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문 소장님.”

“고마워서 인사하러 왔제.”

“뭐가요?”

“나가 현재건설로 스카우트되었지라.”

“축하드려요. 일군업체로 가신 거네요.”

“그랴. 그랴. 완전히 가는 것은 아니고, 파견 형식이제.”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형식이 뭔 상관이여? 거시기. 그 전무라는 분이 나를 높이 봤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제. 허허.”

“음…….”

‘혹시 황 전무? 곽 이사의 상관이라던 그 사람?’

“와 그라능겨? 한우라든디, 맛이 없당가?”

“아닙니다. 잠시 딴 생각이 나서요.”

걱정은 나중 일이고, 일단은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를 해야지.

문 소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 황 전무라는 분이 말여. 나를 을매나 잘 보셨는지, 마진 짭짤한 현장을 우리 회사로 드릴 텡게, 나 문봉식이를 파견해 달라고 사정혔다. 이 말씀이여!”

그는 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자화자찬을 했다.

“울 사장님이 전화통을 붙들고 울더랑께. 나가 울 회사를 살렸다고 말이여!”

이전 소장의 비리 때문에 회사가 휘청거린다면서, 문 소장이 걱정하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었다.

기분 좋을 만도 했다.

나도 지난 삶에서 몇 번이나 갑급 업체에 스카우트되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계급이 올라가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었다.

‘을의 위치에서 갑이 되는 것이 아니던가?’

“그라고 말이제. 아, 글씨! 연봉이 두 배여, 두 배!”

“축하드릴 일이네요.”

“그것이 다. 거시기 성훈 씨 덕분이랑께. 그라고 몰딩도 그러고 말이제.”

“이제 일이 잘 풀리시려나 보네요.”

“그랴! 나 문봉식이 팔자가 풀리려고 허는 것이제. 이렇게 좋은 날, 떡 허니 성훈 씨가 생각나지 않여.”

밤은 깊어가고 주정도 깊어간다.

“나가 말여. 성훈 씨가 없었으믄, 어디 그렇게 할 수 있었간디? 기여? 안 기여?”

“다 소장님께서 열심히 하신 덕이죠.”

“사람이 은혜를 모르믄 짐승이제. 짐승!”

밤은 깊었고 소장은 잠들었다.

‘부디 좋은 꿈꾸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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