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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70화 (170/427)

건축의 신 170화

기둥은 꼭 있어야 하는가? (17)

한 교수에게 다가갔다.

“교수님. 왜 그렇게 흥분을 하셨어요?”

“미안하구나. 성훈아.”

그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사과부터 했다.

“프랭크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잖냐.”

그 말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옆에서 고생을 지켜보는 것과 결과만 듣는 것, 그 사이의 격차는 천지 차이겠지.

뜻하지 않은 변칙공격에 한 교수는 잠시 흥분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프랭크는 지금의 일이 별로 충격이 아닌 모양이었다.

“유명해지면 이런 게 귀찮은 거지.”

자조하듯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확실한 투자자가 아니면 투자를 받지 않아.”

“알리 정도면 확실한 투자자이긴 하죠.”

뒤도 깨끗하고, 투자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

한 교수에게 말했다.

“잠시 쉬고 계세요. 제가 정리할게요.”

“아니다. 그래도 일단은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지. 너 혼자만 표적이 되게 할 수는 없지.”

“걱정 마세요. 이제 그거로는 공격할 수 없을 거예요.”

“조치를 취한 거냐?”

그에게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제가 누굽니까? 다 단속을 했죠. 흐흐흐.”

그렇게 한 교수를 안심시키며, 진 교수 쪽을 바라보았다.

소인배 둘이서 희희낙락하며,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등신들.’

나는 저런 인간들이 가장 싫다.

자신을 높이기 위해 남을 끌어내리는 자들.

‘프랭크를 끌어내리면, 자신들이 프랭크보다 더 위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건 대체 어디에서 나온 계산인가?’

저들의 머리 뚜껑을 열어보고 싶었다.

프랭크는 타임스지에서 선정한 ‘21세기를 이끌어갈 건축의 거장 10인’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유명인이다.

그의 추종자가 얼마나 많을지는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인가?

스스로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 판단도 못 하는 것인가?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이 프랭크를 보기 위해 모인 건데, 감이 안 오나 보지.’

설마 그런 도발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아까 알리만 해도 격노를 하지 않았던가?

개 눈에는 똥만 보이고, 소인배의 눈에는 눈앞의 이득만 보인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프랭크에게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저렇게 옹졸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들.’

허나 내게 저들을 욕할 자격이 있을까?

내 지난 삶들이 딱 저랬다.

‘스스로 올라갈 능력이 없으니, 남이라도 끌어내리고 싶은 것이지.’

그래서 더더욱 이번 삶에서는 저렇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이고.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떳떳하고 싶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내 목표는 간단해.’

첫째, 논문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

둘째, 진 교수의 사과를 받아내는 것.

마지막, 쓰레기 청소.

거기에 부가적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한 교수의 인맥을 강화하고, 프랭크에게 한국에 대한 인상을 좋게 하는 것 정도가 되겠다.

‘결국은 저놈들을 때려잡아야 하는 거네.’

진 교수가 나를 보며,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시간을 멈출 수만 있으면, 지르밟아주고 싶네.’

진 교수에게 나도 똑같이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그가 눈을 부릅뜨며, 분노를 표출한다.

‘훗. 감히 나 따위가 네놈에게 마주 보고 웃냐? 이거냐?’

내게는 시나리오와 무대, 출연배우들을 섭외하고 나서 남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그동안 뭐 했을까?

공부? 프랭크가 오는데?

그럴 리가 없지 않나.

관객을 불러 모으는데, 가장 신경을 썼다.

그리고 적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그렇게 준비를 했는데도, 이런 복병을 만나다니. 참.’

오늘 부른 건축가 중 몇몇은 한건협회장과 관계가 있다. 물론 좋은 사이는 아니다. 오히려 원수지간에 가깝다.

일부러 그런 사람을 골라잡은 것은 아니었다.

‘실력이 괜찮은 사람을 골랐는데, 있더라고.’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한건협 회장의 뒷조사를 하다가 보니 알게 되었다

‘그가 승승장구한 이유가 있더군. 어떤 이유냐고?’

‘열정페이’라고 아는가?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네 이름으로는 임팩트가 약해. 겨우 네 이름 정도로 누가 이걸 인정해주겠어? 일단 내 이름으로 발표하자.’

그는 그렇게 갈취한 논문과 아이디어로 자신의 명성을 구축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과연 저기 젊은 건축가들이 불의에 대해 성토하지 않았을까?

들끓는 피로 대응했겠지.

하지만 그들의 항변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힘으로 눌렀던지, 혹은 다른 대가를 제시했겠지.

방송에, 그것도 생방송에서 그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

‘아니, 오히려 가만히 있는 사람이라면, 선택을 것을 재고해 봐야지.’

그건 밸도 없고, 알도 없는 사람이니까.

‘그게 아니라면, 이미 물든 거겠지. 세상과의 타협에.’

그런 사람은 내게도, 한 교수에게도 인맥으로써의 가치가 없었다.

다시 토론이 재개되었다.

사회자가 말했다.

“한건협 회장님께서 아까 말씀하셨던 프랭크 교수님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시청자분들께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회장의 눈빛이 변했다.

‘왜? 그걸로 승기를 잡고 있었는데. 감히 나한테 양해도 구하지 않고!’

회장이 항의했다.

“이것 보세요. 사회자 양반.”

사회자가 손을 들어 잠시 그의 말을 막았다.

“외신에서 우리 방송을 보고, 항의하는 전화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그런 토론을 하느냐고 말입니다. 아래 자막으로 프랭크 교수님의 과거 비리에 엮인 사건처리들을 요약하여 올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회장에게 말했다.

“가급적이면 한건협 회장님께서도 그 문제에 관한 거론은 주의해 주십시오.”

“아니. 투명성을 지켜야 할 방송이 고작 외신 따위에 흔들린다는 말입니까?”

회장이 비웃으며 코웃음을 쳤다.

보다 못한 PD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그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항의자 명단]

-사우디아라비아 알리 왕자.

-미국건축협회.

-하얏트 재단 이사장 외 수십 명.

잠깐 사이에 PD는 미쳐버릴 정도로 높은 사람들에게 항의 전화와 메일을 받았던 것이다.

참고로 프리츠커상은 하얏트 재단에서 수여한다.

‘이게 뭐냐?’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회장에게 PD가 턱짓을 했다.

‘감당할 자신 있으면 계속하시구려!’라는 의미였다.

회장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쫄리면 뒈져라. 그 말이냐?’

사회자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회장님. 이미 투명하게 가려진 문제를 다시 끄집어낸다는 것은 그들의 공정성을 의심한다는 것밖에 안 되지 않겠습니까?”

깨끗하게 사과라도 한마디 하면 좋으련만.

그가 벌게진 얼굴로 말했다.

“하하하. 그건 미처 몰랐군요. 우리가 뭔가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

진 교수의 고개가 회장에게 홱 돌아갔다.

‘아까 한창 승승장구 할 때는 ‘나만 믿어!’라고 하더니, 지금은 ‘우리?’’

회장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툭 찔렀다.

‘왜 그러십니까?’

회장이 턱짓을 하며, 복화술로 으르렁거렸다.

“자네. 이런 자리로 날 불러놓고 나를 부끄럽게 할 셈인가?”

‘사과 한 번 하면 될 것을 가지고, 쫌스럽기는…….’

대들고 싶었지만, 회장에게 버릇없이 대든 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그럼에도 그가 아직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 충성의 대가를 확실히 치러주었기 때문이리라.

‘머리 한번 숙이면, S대 교수 자리야. 참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배를 위해 머리 숙이는 것이 뭐 그리 부끄러운 일이랴!

진 교수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선배님께 잘못된 정보를 말씀드렸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회장이 진 교수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지요.”

“쯧쯧. 하는 꼴이 어째,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안 변했냐?”

한심한 꼴을 목격한 노 교수의 탄식이었다.

회장의 복화술이 경지에 이르러 방송에는 안 나가는지 몰라도, 현장에 있는 관객들은 들을 수 있었다.

“저놈은 진솔한 사과라는 것을 할 줄 몰라. 잘한 건 모두 제 덕이고, 잘못한 건 죄다 남에게 미루지. 쓰레기 같은 놈. 에잉!”

그게 사람 사는 한 단면일 수도 있지만, 저렇게 치사하게 살고 싶을까?

나도 혀를 차며, 그의 말에 동참했다.

“그러게요. 자기는 완벽해야만 하나 보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저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게 만들어 놓을 테니.”

사회자가 보기에도 기가 찼던지, 입을 허 벌리고 그 상황을 보고 있었다.

회장의 이 장면이 방송으로 나갔을까?

PD를 힐끗 보니, 손으로 ‘OK’ 사인을 했다.

‘크. 그 양반, 특종 자질이 있구만.’

방송국으로서는 프랭크에게 미안한 것이 있으니, 그런 식으로라도 만회해 보려는 심산이리라.

‘눈치가 빠르니, PD 자리에 앉아 있겠지.’

저 촌극을 더 방영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우리 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성훈이 사회자에게 말했다.

“사회자님. 아까 하다 말았던 논문 이야기는 끝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 그럽시다. 그럼 다시 토론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진행이 고르지 못했던 점.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사회자가 나를 논문 공저자로 소개하며, 발언 기회를 주었다.

“아까 진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쓴 논문이 논문으로써의 가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로는 아직 우리나라는 그런 기술을 실현시킬 기술이 부족하다는 말씀을 하셨고, 탁상공론이라고 하셨습니다.”

진 교수도 그 사이 마음이 안정된 모양이었다.

“그렇습니다. 굳이 트러스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천만한 구조를 적용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건축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해서, 그렇게 나쁘게 볼 것은 없지 않습니까?”

“흥. 건축은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학문인만큼 겸손해야 할진대, 내가 보기에는 ‘나 이만큼 할 줄 안다.’ 자랑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네. 그게 과연 건축인으로서 올바른 자세인가?”

한참 동안, 나와 진 교수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흥분을 가라앉히며, 진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논문에 나온 건물을 확인은 해 보신 겁니까?”

“흥. 확인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확인도 안 해 보시고, 일단 잘못되었다고 판단을 하신 겁니까?”

“확인하고 말고가 왜 필요합니까? 애초에 이런 발상 자체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듣고 있던 노 교수가 결국 뒷목을 잡았다.

난 솔직히 여기까지 하면, 진 교수가 승복할 줄 알았다.

‘왜냐고?’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가 우리 논문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거든.

‘그냥 ‘기둥이 없다.’ 그 제목 하나 가지고 딴지 거는 것뿐이잖아!’

한숨을 쉬면서, 방청석을 바라보았다.

간이의자에 줄지어 앉아 있는 건축가들이 다들 입을 벌리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국내의 이런 인재들이 외국으로 도망간다고! 알아!’

말하면 뭐하나?

인정하지를 않는데.

지난 삶에서 가구를 배울 때, 시공 보조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물었었다.

“반장님. 이렇게 하면 더 편하지 않을까요?”

“네가 뭘 알아?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대학 나왔다고 지금 나 가르치는 거냐?”

그는 이렇게 나를 무시했었고, 내가 그의 상사가 되었을 때, 그를 회사에서 내보냈다.

나를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다.

발전하지 않는 시공 방법으로 꾸준하게 동일한 하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삶의 시공반장도 꼰대였고, 지금 내 눈앞의 진 교수도 꼰대였다.

꼰대는 젊은이들의 창의적 사고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1970년대식의 사고방식에 절어 있다.

‘너희들은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

가난한 나라로서 살아남기 위해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을 때의 사고방식.

어떻게든 단순기술이라도 가르쳐서 해외로 팔아야 했으니까.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치자.

‘지금은 왜 그래야 하는데?’

‘왜 우리는 스스로 창의적으로 설계하면 안 되는데?’

‘왜 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말이 안 된다고 하는데?’

왜? 왜? 왜?

‘단지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범처럼 선배들과 자리다툼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 싸우던 호전성을 사라지고, 이제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 특권을 빼앗기기 싫은가? 후배들이 무서운 건가?

그래서 똑똑한 후배들이 외국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건가?

혹시 내가 피해의식 과잉인 건가?

‘못 봐서 못 믿겠다면 보여주고, 보고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그때는 밀어 넣어주지. 당신이 스스로 판 무덤으로 말이야.’

사회자를 보며 말했다.

“PD님께 제가 요청한 것이 있습니다.”

PD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회자가 말했다.

“잠시 광고시간을 갖고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겠어?

방송국과의 전면적인 거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시청률이라고 하면 목숨을 거는 방송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노 교수님. 수고 좀 해 주십시오.”

노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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