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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68화 (168/427)

건축의 신 168화

기둥은 꼭 있어야 하는가? (15)

“흠, 뭐 딱히 흠 잡을 것도 없구만. 잘했어.”

“흥. 원래 흠잡을 것도 없었거든요?”

“녀석. 자신만만해하기는.”

“사실 이 디자인 잡느라고 얼마나 머리를 굴렸는데, 그걸 검토도 안 해보고 비난을 하니까 열이 확 받더라고요. 진 교수 그 인간!”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나는 인간이었다.

“하면 진 교수, 그놈은 여기 와서 이것을 봤느냐?”

“흥. 그럴 리가 없잖아요!”

“보지도 않고, 그렇게 비난을 한다고? 교수라는 작자가 정신머리 없기는.”

애초에 볼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열변을 토해냈다.

“진정으로 의문을 제기했었다면, 앞뒤 문맥을 파악하고 한 교수와 제 의도를 알았겠죠.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논문의 데이터가 어디를 예로 잡은 거냐고 물어보기라도 했을 거예요.”

“학문을 하는 자라면, 그게 당연한 반응이겠지!”

“그런 게 아예 없었다고요. 그 사람은 그냥 우리를 까고 싶었던 거예요. 진짜로.”

“그래서 이런 일을 꾸민 것이고?”

“네!”

문제는 노교수처럼 직접 와서 확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진 교수의 말이 먹힌다는 것이다.

내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걸 확인시켜 줄 방법이 없으니 내가 얼마나 답답했을 것인가?

‘물론 진 교수가 약 올린 것도 한몫했고.’

“진 교수 쪽에서 언론을 쥐고 있으니까, 어떻게 반박할 방법이 없잖아요. 그렇다고 사람들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해명할 수도 없고.”

이 답답한 내 속을 누가 알랴!

“그래서 언론을 끌어들이려고 프랭크를 불렀다. 이 말이렸다?”

“네, 그 때문에 무대를 여기로 잡은 거죠! 봐라! 진 교수 말대로 우리가 진짜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냐. 직접 눈으로 확인하라는 거죠.”

물론 시장의 부추김도 한몫하기는 했지만.

흥분하는 내게 노교수가 물었다.

“자네는 진 교수가 아주 싫은가 보구만.”

“당연하죠? 그 인간은 교수 자격도 없어요.”

“난 사실 성훈이 네 말을 들으면서 좀 걱정이 되더구나.”

“왜요? 질까 봐서요? 프랭크도 우리 논문 재미있고, 신선하다고 했다구요.”

“아냐. 그런 말이 아니다.”

“그럼요?”

“사실 네가 프랭크를 불러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마냥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한편으로는 일을 너무 크게 키우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더구나.”

“일을 크게 키우다뇨?”

“네 원래 목적은 논문의 논란을 종결시키는 것도 있었지만, 진 교수를 누르는 거였지?”

“누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학계에는 발을 못 붙이게 만들 거예요.”

“클클클.”

“왜 웃으세요?”

“그러니 말이다. 고작 진 교수 따위에게 프랭크 베리라니. 가당키나 한 말이더냐?”

“그게 어때서요?”

“이거야말로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 아니냐? 아니, 닭이라도 되면 좋지. 그건 쥐새끼야.”

“음. 그건…….”

너무 화가 나서 일을 저질렀고, 지금까지 달려오기는 했지만, 노교수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내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왜 한 번 더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까?’

굳이 프랭크까지 부를 건 아니었는데.

“클클클. 화가 나서 주체를 못했던 거구만.”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노교수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이해한다. 나라도 네 나이 때, 프랭크를 알았다면 그랬을 테니. 할 수 있는 가장 큰 인맥을 동원하고 싶었을 테지.”

‘가장 큰 인맥 아니거든요, 나름 많이 자중한 거라고요.’

건축가의 일에 알리나, 압둘을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미 시위는 당겨졌다.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교수님,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둘 수는 없어요.”

“그래, 안다. 해야지. 다만…….”

“다만요?”

“이길 자신은 확실히 있는 거겠지.”

“네, 더러운 꼼수만 부리지 않는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았다. 그럼.”

말을 끄는 노교수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나도 네놈 주변 청소하는 김에 내 주변에 쓰레기도 같이 넣으려고 한다. 왜?”

쓰레기 청소라!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네? 누군데요?”

“그런 놈이 있다. 진 교수 놈 패거리 우두머리. 함께 쓸어 넣어줄 테니, 정리는 네가 해라. 소는 못 돼도 개 정도는 될 거다. 그래 봐야 프랭크에게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 사람이 누군데요?”

“‘한국 건축인 협회’라는 곳의 회장이다.”

“네? 건축인 협회요? 건축가 협회가 아니구요?”

우리나라에는 건축 관련 협회들이 많다.

건축가 협회, 건축사 협회, 건설기술인 협회, 건설안전 협회 등등, 합하면 열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건축인 협회라는 것은 처음 들어보았다. 그런 게 있기는 했었던가?

“그놈이 직접 만든 거다. 건축가 협회에서 정치질로 분란을 일으키고 쫓겨난 후 만들었지.”

“그래요? 전 처음 들어봤어요.”

“그렇겠지. 진 교수 놈 패거리인데 건축에는 관심 없고, 순진한 애들 꼬셔다가 이용이나 해먹고 내팽개치는 놈이다. 쓰레기지.”

원래 급한 성격의 노교수이지만, 그 사람에 대해 말할 때는 매우 분노했던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건가?’

“저번에는 상대하기 싫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네 녀석이 하는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할 거 같아서, 내가 거드는 거다.”

“헤, 아닌 것 같은데요? 교수님 개인적인 복수를.”

놀리듯 말했지만 노교수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개인적인 복수다. 내 제자 몇 놈이 그놈 말장난에 놀아나서, 인생을 망쳤다. 앞날이 창창한 녀석들이 말이다.”

“그냥은 안 돼요.”

“엥? 그럼? 돈이라도 주랴?”

노교수의 가장 큰 무기는 실력이었다.

‘돈 따위를 어디에 쓰려고요. 당신 실력에 비하면 하찮은 거라고요.’

“프랭크가 나오는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해 주세요. 그 한건협 회장이라는 사람도 같이 세트로 묶어서요.”

인간적으로 노교수에게 호감이 있지만, 이건 내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건 현재건설에 우리 설계도를 팔게 해주신데 대한 보답입니다.’

그는 내게 스타타워에 대해서 일언반구 한마디도 하지 않다. 내가 그 사실을 안다는 것도 관심이 없겠지. 애초에 내게 생색내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빚을 졌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몰랐으면 몰라도, 알고는 그냥 지나가면 안 되지.

인상을 찌푸린 노교수에게 말했다.

“교수님, 이왕 복수를 하려면 화끈하게 해야죠. 무대 뒤에서 박수나 치면서 복수했다고 자위할 수는 없잖아요. 이런 무대가 또 있을 것 같아요? 안 그래요?”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네 녀석이 만든 판이 아니더냐?”

자신이 끼어들어도 되는지 묻는 것이리라.

노교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교수님, 신세 지셨으니 나중에 한번 갚으세요.”

그는 건축에 있어서는 저명한 교수이며, 또한 실력파다. 실력으로 붙어서 꼼수를 쓰는 자에게 질 리가 없다.

그가 여태까지 그를 응징하지 못한 것은 음지에서 수를 쓰기 때문일 것이고, 그런 싸움에 끼어들지 않으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양지에서 싸운다면, 그것도 실력으로?’

승부에 장담은 금물이지만 이변이 없는 한, 실력으로 판가름 난다. 그게 상식이다.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내 주변에는 이런 상식이 일상이었으면 한다.

자, 무대는 거의 완성되었고, 등장인물의 섭외도 완성되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연출력인가?

시나리오를 좀 더 꾸며봐야겠군.

‘인맥을 자랑하셨겠다? 진 교수님.’

지금 내 주변에는 나를 좋아하며, 내 일이라고 하면 발 벗고 뛰어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인맥? 별건가?

내가 새로운 삶을 살아오면서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인맥이다.

나를 이용하여 뭔가를 획책하려는 것이 없다.

내가 좋아서 염려해 주는 것이고, 도와주는 것이다.

그들이 힘이 있고 없고로 그 가치를 판단할 것이 아니다. 힘이란 지극히 상대적인 거지.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판단의 절대적 기준일지 몰라도.

***

-진 교수. 그동안 잘 지냈나?

“누구신지?”

-날세. 회장.

진 교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회장?’

-하긴 그동안 얼굴 못 본 지 오래 됐으니, 까먹을 만도 하이. 날세, 이시후. S대 총동문회장. 한국건축인협회 회장.

진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고, 선배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공사다망하신데, 직접 전화를 다 주시고.”

생각지도 못한 거물이 전화를 해 왔다.

무엇 때문일까?

그동안 어떻게든 그와 연줄을 맺어보려고 했지만, 감히 그에게는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그런 그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것도 직접.

-그동안 후배를 챙기지 못해, 미안허이.

“아닙니다, 선배님. 요즘에 바쁘시다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협회장인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요즘에는 거물 정치인과 연줄이 닿아서, 조만간 정치권으로 진출하려고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런 인물이라면 반드시 인맥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닐세. 내가 미안하지. 너무 바빠서 후배들 챙길 여가가 있어야지.

회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요즘 진 교수, 자네가 맹활약을 하고 있다면서, 선배로서 흐뭇허이.

“네? 아이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허허, 그래도 우리 S대 후배가 건축계에서 관심을 받고 있으니, 뿌듯하기 그지없다네.

“그저 선배님들께 폐나 끼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 참. 겸손하기는. 그럴 일이야 있겠나? 우리 동문이라면 그 정도 활약은 해줘야지. 우리가 주목받지 못하면 누가 주목을 받겠나?

“관심 가져 주셔서,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말일세. 내 부탁 하나 해도 될라나?

이제 그가 전화를 한 이유가 나올 것이다.

진 교수는 바짝 긴장하며, 수화기를 귀에 바짝 붙였다.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선배님.”

-프랭크 베리가 울산에 온다면서.

“네, 맞습니다.”

-나도 한 번 참석을 해보고 싶은데, 초대권을 구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아!”

-울산시장이 거기 대학에는 교수들에게 무료로 배포했다고 하던데, 혹시 구할 수 있겠는가?

TV에 얼굴을 비춰 보려는 속셈이리라.

‘필요할 때만 전화를 하는군. 쳇.’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꿔 먹었다.

‘이건 기회야. 하늘이 주신 기회!’

이럴 때 부탁을 들어주면 나중에 힘들 때 나를 모른 척하지는 않으리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배님. 여기 울산 정도는 이 후배가 꽉 쥐고 있습니다.”

-허허, 그래야지. 당연히 그래야지. 똑똑한 후배를 둔 덕분에, 이번에 한건협 회장으로 방송 탈 기회도 한번 생기는구만.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동문 좋다는 게 뭐겠습니까? 이럴 때 돕는 거지요.”

-허허허, 고마우이. 내 자네의 충심 잊지 않겠네. 이번에 S대 교수 충원을 한다던데, 자네 이름을 거론해 봐야겠구만.

“헉, 그렇게까지 신경 안 써주셔도.”

-어허, 자네 같은 유능한 인재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통화가 끝나고, 진 교수는 쾌재를 불렀다.

양쪽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한 모습이었다.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구나.”

그렇게 친해지려고 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선배가 아니던가?

그런데 직접 연락을 해왔다?

그 입장권이 성훈이 그놈에게 있다고 했던가?

‘제깟 놈이 내놓으라면 내놓겠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락바락 말대꾸를 하던 어린놈이, 한번 힘으로 눌러주니, 싸움에 진 개마냥 꼬리를 말지 않았던가?

초대권 한 장에 S대 교수자리라.

“흐흐흐.”

진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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