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67화
기둥은 꼭 있어야 하는가? (14)
“에잉, 서울에서 했으면 좋았을 텐데.”
서울에서 방송을 타지 못하는 게 아쉽다는 노교수의 푸념이었다.
시간이 널널했는지, 아니면 우리 건물을 보고 싶었던 것인지, 울산까지 내려와서 바쁜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유는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유치원 건물이 메인이 되어야 한다고요.”
노교수의 푸념을 막으며 그에게 물었다.
“말씀드린 건축가들에게는 연락 넣으셨어요?”
“이놈아, 늙은 나를 꼭 부려먹어야 하는 거냐?”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그만한 대가를 얻으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지.
“누구누구 온대요?”
“거의 다 오겠다고 하더구나. 나라도 이런 기회는 놓칠 리가 없다만.”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수로 그런 인재들을 찾아낸 거냐?”
“에이, 아직은 그렇게 유명하진 않을 텐데요?”
“나도 이름을 모르는 녀석이 많아서 틈틈이 수소문을 해봤다. 그런데 다들 제자리에서는 한가락 하는 녀석들이더군.”
그럴 것이다. 일부러 그런 사람으로 골라서 찾았으니 말이다.
“운이 좋았죠? 뭐.”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네놈이 얼마나 운이 좋길래, 숨어 있는 보석들을 그렇게 무더기로 콕콕 찍어냈느냐, 이 말이지. 나도 몰랐던 녀석들을.”
노교수는 안광을 번쩍이며 내 대답을 재촉했다.
‘이 노인네. 제법 예리한데?’
뒤통수를 긁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건축사 협회 인명록 보니까 다 나와 있던데요? 거기서 대충 고른 거예요. 젊은 분으로.”
실제로 도산소장이 가지고 있는 인명록을 뒤지면서 내가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을 뽑아냈었다.
내가 미래에 잘되는 사람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수천 명의 이름과 얼굴을 보면서,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건축가들을 뽑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주로 한 교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이거나 혹은 더 어린 사람들로 말이다.
이름, 나이, 지역, 소속을 대충 꼽으면, 그 인물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지난 삶, 건축에 관심이 없었던 내 기억에도 남아 있는 인물이라면 평범한 건축가는 아닐 터.
‘이들이 차세대 한국 건축을 선도할 사람들이지.’
저마다의 생각과 아이디어로 한국 건축에서는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이었다.
아쉬운 건,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없다는 것.
‘쩝, 그랬다면 다루기가 훨씬 쉬웠을 텐데.’
기본적으로 건축기사 1급 자격증을 따고도 7년간의 현장 경력이 있어야 건축사 시험의 자격이 주어지는데, 내 나이 또래의 건축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 이곳이 네가 설계한 건물이더냐?”
노교수를 데리고 실내로 들어갔다.
아직 이동 벽체를 제자리에 놓기 전이라서 마루만 보였다.
“와! 정말 넓구나. 운동장만 해.”
아무리 유아들을 위한 유치원이라고 해도, 실제로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네,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노교수는 천정과 마루를 보며 말을 이었다.
“저기다가 레일을 놓고 벽을 걸 모양이지?”
“네.
노교수를 안내하며, 유치원을 논문과 비교하며 설명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도 힘들지 않은지, 건물 곳곳을 돌아다니며 질문을 해댔다.
“저 천정의 콘센트는 뭐냐?”
“그거야 벽에 콘센트를 사용하려면 전기를 연결해야 하잖아요. 이동식으로 되어 있으니, 벽으로 직접 연결할 수가 없었어요.”
시간이 좀 더 지나고, 기술이 발전하면 단자를 이용해 이동 벽체에 바로 전기를 연결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저게 제일 간단한 방법이었다.
“걸리적거리지는 않겠지?”
“매입식으로 되어 있고, 전선 연결도 커넥터* 방식으로 해놔서, 전선 빼는 걸 잊고 벽을 민다고 해도, 자동적으로 빠지게 해뒀어요.”
“흠. 그럼 위험하지는 않겠군.”
“네, 아이들이 이용하는 곳이니까, 안전이 최우선이죠.”
“그래, 그건 아주 바람직한 생각이야. 비단 유치원 말고 다른 곳에서도 그렇게 하도록 해.”
교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왜 저 모서리 부분은 둥글게 돌린 거냐?”
논문에는 이런 디테일한 설명을 해두지 않아서 묻는 것이리라.
논문의 주된 내용은 구조에 관한 것이라서, 유치원의 모든 내용을 넣지는 않았었다.
“최대한 기둥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하려고요.”
물론 유치원의 평면은 완전한 원형은 아니었다. 모서리가 지는 부분을 둥글게 굴렸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기둥으로 향하는 케이블의 길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노교수가 내 얼굴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흥. 꼼수를 많이 부렸는걸!”
“꼼수라니요. 그리고 사각형 모서리까지 모두 힘을 받게 하려면 케이블이 얼마나 길어지는지 아세요?”
꼼수라니, 이것도 얼마나 머리를 굴리면서 짜낸 건데.
흥분하는 내가 재밌었던지, 말을 툭 뱉었다.
“누가 뭐랬냐? 그게 꼼수지, 별게 꼼수냐?”
“그렇게 따지면, 르 꼬르뷔제가 롱샹의 창을 그렇게 제멋대로 만든 것도 꼼수라고요.”
“이놈이 말이 딸리니까, 아무나 막 갖다 붙이는 거 보소. 꼬르뷔제가 거기에 갖다 댈 사람이냐!”
“말이 그렇다고요.”
내 말에 피식 웃으며 노교수가 물었다.
“그럼 가벽들은 어떤 식으로 고정할 건지도 생각해 뒀겠지? 가벽이라도 흔들흔들 해버리면 큰일 난다.”
“흥. 걱정하지 마시죠.”
마루 중간중간에 설치된 사각 틀을 가리켰다.
“저기다가 고정시킬 거예요.”
그는 무릎을 꿇고 앉더니, 틀의 뚜껑을 열었다.
“흠. 이런 식으로 고정을 하겠다?”
“천정에도 그거랑 같은 위치에 있어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들어 천정을 확인했다.
“흠, 그렇구만.”
그리고 일어서며 말했다.
“저기 걸려 있는 것들이 벽체지?”
“네.”
“말로는 모르겠으니까, 직접 가져와서 설치해 봐라.”
‘어째 안 시키나 했네. 귀찮은데.’
나는 이미 어떻게 설치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내가 이 벽체 개발자라고.
노교수가 재촉을 했다.
“얼른 안 가져오고, 뭘 구시렁거려! 이놈아.”
벽을 밀고 왔다.
“왜 기계식으로 하지 않고?”
“이렇게 밀어도 가능한데, 굳이 기계식을 할 필요가 없죠.”
교수도 궁금했던지, 자신이 벽을 잡고 밀었다.
“호오, 생각보다 무게감이 덜하구나.”
“처음에는 콘크리트로 할까 했는데, 제작해서 거는 과정이 번거로울 것 같아서, 그냥 경량 판넬로 만들었어요.”
“약하지는 않고?”
“설치하고 보여드릴게요.”
“움직일 때는 흔들림이 있는데, 모터를 쓰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느냐?”
노교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모터를 달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할 수 있기에, 이동하는 벽의 흔들림이 적어져서, 천정이나 벽에 긁힐 우려가 적다. 그만큼 천정과 벽의 틈을 최소화할 수 있겠지.
당연한 말이겠지만, 벽이 천정 높이와 같아서는 이동을 시킬 수가 없다.
이동을 한다고 해도 무리한 힘을 써야 하고, 마루나 천정 마감이 다 긁히게 마련이었다.
그걸 방지하시 위해서는 적어도 5㎝이상의 유격을 만들어야 했고, 그 유격이 생김으로 인해 노교수의 말처럼 흔들림이 발생했다.
“여기서 더 이상 하중을 늘리고 싶지는 않아요. 게다가 벽에 모터를 하나도 아니고. 적어도 네 개 이상은 달아야 하는데, 그럴 바에야 그냥 미는 게 나아요.”
노교수는 계속해서 지적을 했다.
“바닥에서 굴러가는 소리가 나는데?”
“그건 어쩔 수 없었어요. 바닥에 롤러라도 붙여야 최대한 천정이 하중을 덜 받는다고요.”
그냥 매달리는 벽이 되어서는, 그 하중이 모두 천정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으니, 나름 꼼수를 부린 거였다.
벽을 자리를 맞추고, 벽의 아랫부분을 열었다.
“엥? 그건 또 뭐냐?”
“똑딱이요.”
“똑딱이?”
가구에서 쓰는 똑딱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경우는 상당히 커서 똑딱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말이다.
유리 현관문을 고정시킬 때, 위아래 잠그는 것을 상상하면 되겠다.
“아까 교수님이 흔들린다고 지적하셨잖아요?”
“응 그랬지.”
“벽을 고정시키려고 일부러 만든 거예요.”
흔들림 방지를 위해서 가구에서 사용하는 스프링 똑딱이의 방식을 차용해서 벽과 바닥 사이의 체결을 완벽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천정에도 동일한 똑딱이가 있었다.
“훗. 나 참.”
노교수가 앉은 채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재미있는 걸 많이 집어넣었네. 똑딱이라니.”
“어쩔 수 없잖아요. 겨우 이거 하는데, 비싼 기계장치를 쓸 수도 없고. 그나마 최소 비용으로 최고 효율이라고요.”
“훗. 나름 최첨단인데?”
노교수는 나를 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흐뭇함이 맺혀 있었다.
기계장치라고는 하나 없는 똑딱이가 최첨단일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상황에서 이보다 더 간단한 해법이 있을까? 내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전직이 가구 전문이었다고요.’
그의 장난에 미소로 답했다.
“당연하죠. 이런 식으로 집 짓는 사람 보셨어요?”
이 건물에 돈질을 하려고 들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원장은 돈이 많다.
최첨단 센서는 물론이고, 벽체마다 모터를 몇 개씩이나 못 달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할 이유가 어디 있어?
‘이 벽이 움직이는 건 고작해야 일 년에 한두 번일 거라고.’
그 한두 번을 위해서 수천만 원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그건 삶의 편의가 아니라, 물자의 낭비다.
“그리고 기계는 고장이 날 수 있지만, 이 똑딱이는 고장이 거의 안 나죠.”
“그건 확실하군. 단순하면 고장의 위험이 적지. 끙.”
똑딱이를 보던 노교수가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벽을 밀어 보고는 내게 말했다.
“흠, 확실히 튼튼하구나. 잘 고정시켰어.”
“그러니까요.”
“넓은 공간을 만들려고 신경을 많이 썼네.”
기둥을 줄이기 위해서 잡다하게 손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이 정도면 신경 쓸 만하지 않을까요?”
그는 내 말의 의미를 알아챘다.
“그러게 말이다. 트러스와 철제 빔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다니 말이다.”
“공간이 생각보다 잘 나왔죠?”
“그래, 여기까지는 합격점이다.”
노교수가 건물 안에 있는 유일한 고정 벽체인 원장실을 지팡이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이제, 논문에 나온 구조를 확인시켜 줘야지?”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내게 안내를 재촉했다.
“우와, 일반 내력벽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두껍구나.”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지.
벽 두께가 30㎝였으니, 일반 벽보다 1.5배 이상 두꺼웠다. 작은 기둥 두께쯤 되려나.
“계산상으로는 좀 더 줄일 수 있었는데, 이것 말고는 기둥이 없어서 심적으로 불편하더라고요.”
“흠. 좋은 선택이야. 설계자가 마음이 불편하면 안 되지.”
유치원을 통틀어서, 하중 버팀목이라고는 달랑 그거 하나였다.
굳이 사람들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이 유치원에 기둥이 없다는 것을 모르겠지.
알게 되는 순간은 학예회를 하기 위해서 벽을 제거할 때가 될 것이다.
기둥이 없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고, 사람들은 상식 외의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기둥이 없다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벽을 설치하고 나면, 다른 건물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죠.”
기껏 해야 기둥이 없어서 걸리적거리는 게 없네. 이 정도?
노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도 알아야 생기는 거지.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워하는 거 봤나?”
건축가가 제대로 하면, 사용자들이 두려움을 느낄 일은 없을 것이다.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오오, 옥상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려나 하고 궁금해했더니, 이렇게 했구나!”
아직 옥상의 마감은 끝나지 않았기에, 지붕 슬래브의 중간중간에 케이블을 연결하는 부분들이 나와 있었고, 케이블의 궤적도 모두 보였다.
노교수가 나를 보며 감탄했다.
“케이블 두 개를 하나로 엮어서 묶었어.”
“네, 케이블 수대로 다 기둥에 연결시키려고 하니까, 옥상에 공간이 아예 없어지더라고요. ‘Y’자로 두세 개씩 묶으니까, 공간이 생기기에 그렇게 해버렸어요.”
“그랬군. 난 그 부분이 제일 의아했었거든. ‘옥상에 케이블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을 텐데, 무슨 놀이터를 만든다는 거지?’ 하고 말이야.”
“그나마 여기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에요.”
“허허허. 여기가 진정한 꼼수의 전당이로세.”
“아 참, 꼼수 아니라니까요.”
“꼼수면 어때? 제대로 계산해서 만들면 되는 거지. 노하우가 별건가? 그게 노하우야.”
내가 하면 노하우고, 남이 하면 꼼수다?
그런 말이 아니다.
내 생각이지만, 시공에는 꼼수가 많이 필요하다. 모두 책에 나온 대로 시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 그 꼼수가 잠시잠깐의 위기 모면의 의도라면 마땅히 경계해야 하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 또한 노하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주>
*커넥터 : 전기 케이블이나 광케이블의 접속에 사용하는 기구 부품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