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66화
기둥은 꼭 있어야 하는가? (13)
오늘도 여전히 시장은 바쁘다.
“이 영감님은 사람을 불러놓고는 항상 늦네.”
어제는 생각이 많아서 시장실을 둘러보지 못했는데, 휙 하고 둘러보니, 그의 취향이 보였다.
“축구광인가 보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진열장에 놓여 있는 것들이 전부 축구 관련 트로피였다.
흔한 골프 트로피라도 하나 있을 만한데 보이지 않았다.
골프에 관심이 없다거나, 아니면 아주 실력이 떨어진다는 거겠지.
‘그래도 시장이면, 그런 거 하나 정도는 성의로라도 주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시장이 들어왔다.
“아이구. 성훈 군. 많이 기다렸지?”
한 번 봤다며 친근감을 표하는 그에게 인사했다.
“아닙니다. 방금 왔습니다.”
“앉게나.”
그리고는 내게 문서를 내밀었다.
“이 정도면 어떤가?”
어제 시장이 제안하겠다고 했던 프로젝트였다.
<울산 발전을 위한 2개년 계획>
어이가 없었다.
‘일을 책상에서만 하시나 봅니다.’
제목을 보고 시장의 얼굴을 쳐다봤다.
“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아닙니다.”
근시안적인 시선에 잠시 웃음이 나왔을 뿐이다.
울산이라는 대도시의 발전을 추구하는데 고작 2년이면 충분할까?
‘그래도 일단 읽어는 봐야겠지.’
말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흠. 시간이 정말 없기는 없었나 봅니다. 시장님.’
날림으로 만들어진 계획들이 눈에 들어왔다.
목차와 순서는 완벽했다.
다만 문제는 그것을 진행하는 시간이었다.
‘전쟁이 나도 이 속도로는 어려울 것 같은데.’
메주를 쑤어도 시간이 필요하듯이, 건축물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도시 계획이 건물 하나 짓는 것도 아니고, 2년 만에 끝날 리가 없잖아요.’
내가 건축과 토목에 문외한이었다면,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른다.
이론상으로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시장님 임기 내에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시는 겁니까?’
시장도 정치인이니, 다음 선거에 돌입하기 전에 이렇다 할 업적을 만들고 싶은 심정은 이해한다.
‘그렇게 빨리빨리 업적을 만들고, 더 높은 자리, 힘 있는 자리로 올라가고 싶겠지!’
건축의 숙성시간을 무시하고 불도저처럼 토목사업을 밀어붙였던, 미래의 그분이 떠올랐다.
‘당신이 싸질러놓으면 누가 치우라고, 이런 계획을 세우십니까?’
자금 부족으로 혹은 구조상의 결격사유로 인해, 짓다가 방치된 건물을 본 적이 있다.
‘짓다 만 건축물은 그 자체로 쓰레기지!’
완성시키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돈이 많이 드는 쓰레기.
책임감 없는 건축주와 건축가에 의해서, 오늘도 건축물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지난 삶에서 어떤 통치자가 온 나라가 들썩거릴 정도로 큰 사업을 진행했었다.
대한민국 젖줄 전반을 건드리는 큰 사업이었다.
그 사업은 한국에 크나큰 아픔을 남겼고, 여름이 되면 온 국민이 그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악취와 물난리로 말이다.
5년 업적 때문에 수십 년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
‘건축은 시작보다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하다가 싫증 난다고 버려도 되는 종이접기가 아니다.
국민의 혈세로 진행되는 토목사업은 더더욱 그러하다.
어설픈 계획으로 진행할 바에는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
꼼꼼히 다 읽어 보고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을 하다가 시장을 바라보았다.
“왜? 그 정도면 괜찮지 않나?”
가만히 있으려니, 그가 말을 이었다.
“쩝. 맘에 안 드는 모양이구만.”
무표정하게 있었는데도, 잘도 넘겨짚는다.
‘어차피 내 맘에 들게 하려고 가지고 온 계획서가 아니었나?’
그래서 시장에게 물었다.
“이 보고서, 제 맘에 들게 고쳐도 되겠습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살펴볼 요량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차피 나는 자네가 하는 일에 동참을 하고 싶으이. 맘에 안 드는 것이 있다면 고쳐 보게.”
“고치면 그대로 하실 겁니까?”
“울산이 바뀌는 사업이네. 검토는 해 봐야지.”
‘그런 분이 이렇게 날림으로 짜셨습니까?’
안 봐도 불을 보듯 뻔하다.
제대로 된 건축공무원이 짰으면 이런 계획이 나올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제일 먼저 사표를 받아야 할 테니까.
그들이 세운 계획을 정치행정가가 손을 봤겠지. 시간만 약간 고치면서 말이다.
“시장님. 펜 하나만 주시겠습니까?”
시장이 옆에 있는 펜을 집어서 내게 건넸다.
“자. 여기.”
“어떻게 고쳐도 말씀 안 하실 거지요?”
“그래. 자넨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할 사람으로 보이나?”
“믿어 보겠습니다. 시장님.”
내 도전적인 시선에 그도 굳건한 눈빛으로 응했다.
표지의 숫자 하나를 고치고, 두 글자를 써넣었다.
시장은 내 하는 모양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그리고는 표지만 떼어내 시장에게 내밀었다.
“어? 알맹이는 안 고치나?”
“이건 필요 없습니다.”
남아 있는 뒤 페이지들을 휴지통에 조용히 집어넣었다.
수십 장의 종이가 휴지통에 후두둑 떨어졌다.
‘응?’
내가 무례하게 보였을까?
‘쓰레기라고 하고 싶은 걸 참는 겁니다.’
시장이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저게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맞습니다.”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는 내가 내민 종이로 눈이 향했다.
<울산 발전을 위한 5개년 계획 공모>
“공모?”
“네. 어제 저는 건축가들을 불러들일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그들을 쓰려고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이미 계획이 끝난 곳에 건축가들을 불러서 뭘 하겠는가? 벽돌을 쌓겠는가? 미장을 하겠는가?
그들이 침을 흘리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일 것이다.
“이번에 초대할 건축가 중에 누구를 앉혀놔도 저것보다는 나은 계획을 짤 겁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5년은 뭔가?”
시장의 눈가에 불쾌한 기색이 어린다.
“시장님. 하나만 여쭤 보겠습니다.”
“뭔가?”
“울산 외곽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랬지.”
분노를 숨기는 무심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시민들의 집을 짓는 게 뭐 어때서?”
“의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응?”
“시간이 문제입니다. 교통이 편한 부지를 선정하는 데 걸릴 시간은 어디에도 없고, 터파기 공사만 해도 몇 달은 걸릴 텐데, 한 달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부지야 빈 땅 찾으면 되고, 터파기는 그 정도면 된다던데?”
지질조사도 안 하고 그런 말을 한다는 말인가?
진짜로 그렇게 말했다면, 그는 아첨꾼이다.
“어느 부서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일 먼저 자르십시오. 울산 말아먹을 사람입니다.”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연신 헛기침을 해댄다.
굳이 2년에 시간을 맞춘 이유가 뭘까?
내 생각에는 하나밖에 없었다.
임기!
“아마도 2년이라는 숫자는 2002년 6월 30일, 시장님의 임기에 맞춘 거겠지요?”
뜨악했나 보다.
목을 앞으로 쭉 내밀며 물었다.
“어떻게 그걸?”
정치라고는 관심도 없는 것 같은 젊은이가 그의 임기를 알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모양이다.
내가 어떻게 아냐고?
그에 대해 조사를 했냐고?
정치라고는 개뿔도 모르는 내가 그럴 리가 없지!
2002년 6월 30일은 월드컵이 끝나는 날이다.
세계인의 축제가 끝나는 날이지. 지난 삶에서 월드컵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던가?
구기 종목에 관심이 없는 나도 알 정도였고, 우연히 시장의 임기도 그때라서 기억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의 반응에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건축행정의 직원들은 반대를 했겠지요.”
“크흠. 크흠.”
그리고 당신은 그 기간에 맞추라고 닦달을 했을 것이고.
그림이 그려졌다.
윗사람이 닦달을 하니,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구미에 맞춰서 보고서를 짰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보고서가 나오는 거겠지.’
“흠. 그래도 실행 가능한 계획서를 다시 짜면 되는 것 아니겠나? 조금 더 규모를 작게 해서.”
누누이 말하지만, 건축물은 한 번 만들면 수십, 수백 년을 간다.
“한 번 잘못 세운 건축물 때문에 다음의 도시계획이 모두 어그러질 겁니다. 순간의 욕심 때문에 큰 그림을 망치게 되는 거죠.”
“그런가? 그래도…….”
그냥 안 된다고 포기하면 될 것을, 나는 왜 이렇게 대화를 하고 앉았을까?
서울과 부산에 비교해서 울산이 가진 압도적인 장점이 있다.
‘개발할 곳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
공단과 울산 번화가들을 제외하면 아직도 울산은 허허벌판이다.
복잡한 도로 사정과 밀집한 주택가.
공업도시로서의 발전을 이루었을지언정, 진정한 대도시의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다.
‘내 마음대로 도시를 만들고 싶어. 두바이처럼.’
이미 시장은 내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프랭크와의 만남이라는 목적을 이루면, 그가 아쉬울 것이 없다.
‘나는 팽 당하면 끝이지.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시장도 뭔가를 걸어야지. 그것도 공개적으로.’
프로젝트를 기정사실로 하고, 나 혹은 한 교수가 지휘권을 갖고 싶었다.
그렇게 하려면 그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했다.
‘그걸 도와줄 전문가도 필요하지.’
일부러 공모를 하자고 하는 것도 인재를 조달하기 위해서지. 내 마음에 쏙 드는 인재를.
시장의 결단을 촉구했다.
할 건지, 말 건지.
“단언하건대. 이 프로젝트를 그대로 진행하면, 시장님의 다음 선거는 실패로 끝날 겁니다.”
시민들을 하나하나 납득을 시켜야 합니다.
“왜? 내가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나. 내 선거 경력이 몇 번인지 아나?”
지금은 그의 정치인생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고, 자신을 가질 만했다.
“국회의원 2번 당선, 그리고 여세를 몰아서 울산 시장에 2번 당선이 되셨죠.”
그가 눈매를 꿈틀하면서 물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한다는 말인가?”
“그럼…….”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는 듯, 백전노장이 뜨거운 눈빛을 쏘아 보낸다.
휴. 꼭 말을 해야 알아듣는다니까.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실패는 몇 번이나 하셨는지 말씀드려볼까요?”
그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실적도 없는데 이 상태로 가시면, 다음 선거는 필패! 시장님의 정치 인생은 그걸로 끝!”
“…….”
“더 말씀드릴까요?”
실제로 그의 인생은 그랬다.
시민들에게 괜찮은 시장으로 남은 자라고 했지만, 그건 시장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 한 행동 때문이지. 시장으로 있을 때는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시장도 그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에, 이렇게 매달리는 것이 아닐까?
이 상태로는 다음 선거에서 확실히 낙선한다.
나도 알고, 시장도 안다.
서로 아는 경로는 다르겠지만.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저는 선거 참모가 아닙니다.”
시장은 노련하게 말을 돌렸다.
“도시계획을 묻는 것일세.”
“고작 2년으로 콩 볶듯이 날림 공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5개년 계획을 하되, 중간중간 지속적으로 성과를 시민들에게 보고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만으로도 성과가 될 것이다?”
그래야 시장도 계속 신경을 쓸 것이고.
“네. 확신합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시장이 말했다.
“확실하게 보이는 결과를 내야 할 걸세.”
어차피 시장은 탈출구가 없다.
건축 사업을 많이 일으킨다고 시민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시민들의 뇌리에 남아야 한다.
프랭크의 방문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기회로 보였을 것이다.
‘한동안은 내 말이 먹히겠지.’
이후 시장의 행동은 내가 만들어가는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공모사업 금액은 연간 1,000억 이상이라고 발표하셔야 할 겁니다.”
“알겠네.”
지금의 내 선택은 울산을 바꿀 것이다. 그리고 미래도 바뀌겠지. 적어도 내가 알던 과거에는 울산에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니까.
점점 더 내가 확신할 수 없는 미래가 될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우위를 잃게 될 것이고.
‘그래도 괜찮아.’
이미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1년 전, 마이어와 얘기할 때, 미래의 변화를 겁냈던 나는 이미 없다.
내 결정으로 인해 미래가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면, 나는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