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165화 (165/427)

건축의 신 165화

기둥은 꼭 있어야 하는가? (12)

나는 지금 시장의 집무실에 와 있다.

여직원은 지금 시장이 오는 중이라고 했고, 먼저 들어가 기다리라고 했다.

현 시장은 국회의원을 2번이나 하고, 울산의 초대민선 시장으로 당선되어, 지금 2대째 연임을 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내가 어릴 적, 선거포스터에 이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는 아주 오래 정치판에서 활동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울산이라는 핫플레이스의 시장을 꿰찰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번 임기를 끝으로 그는 당선이 되지 못했고, 울산의 발전은 약간 느려졌었다.

그 4년 후의 4대 시장선거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시정을 살피는 일을 했고, 시민들에게는 괜찮았던 시장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허나 나는 소문을 100% 믿을 정도로 애송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나를 부른 거지?’

일이 뜻한 대로 안 되어서 사과하려고?

그럴 리는 만무하고.

진 교수 편에 서서 나를 억압하려고?

그랬다면 직접 보자고 했을 리가 없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시장실의 문이 열렸다.

얼굴이 둥글넓적하고 인상 좋아 보이는 60대였다.

“오. 성훈 군. 누이에게 얘기 많이 들었네. 곤란한 설계를 멋있게 해결했다고 하더구만.”

그는 들어오자마자 내 칭찬을 늘어놓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달갑지 않았지만 나도 마주 보며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김성훈입니다.”

“앉지. 기다리게 해서 미안허이.”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사실 할 말도 없었다.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왔을 뿐이다.

“미안하게 되었네. 신문사를 건드리는 것은 영 껄끄러운 일이라서 말일세.”

그럼 그것으로 끝난 거지. 나는 왜 부른 것인지?

“그 일로 누이에게 엄청 혼이 났다네. 그 정도 능력도 안 되냐면서, 그러면서 자네가 하는 일이라도 도우라고 하더군. 허허허.”

말을 끝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시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것인가?

시장이? 나를? 왜?

‘선의의 목적으로? 흥. 그럴 리가 없잖아?’

정치인이라고 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것.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무슨 일을 해도 자신의 목적에 어울리게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삼류소설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도 모르지.’

결론은 넋 놓고 있으면, 그의 페이스에 휘말린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도와준다고 해도 내가 반응이 없자,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런데 프랭크라는 건축가가 온다면서?”

“네. 저랑 친분이 좀 있어서 오시는 겁니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을 던졌다.

괜히 그의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속셈을 알고 있는지, 내게 씨익 웃었다.

“누이의 말을 듣고, 한 번 알아봤다네. 퓰리처상에 버금가는 프리츠커상을 탄 사람이더군.”

그 말을 하는 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역시 속셈이 따로 있었구만. 해달라는 것은 안 해주면서 남의 잔칫상에 숟가락을 얹겠다?’

흥. 그게 그리 쉬운 일인지 아십니까? 이 너구리 같은 영감님아!

“그래서 혹시나 시장으로서 도울 일이 없을지 물어보고 싶어서 이렇게 만나자고 했다네.”

“말씀 못 들으셨나 봅니다. 울산에 올 계획은 없습니다.”

“저런. 저런. 이번 일로 울산에 섭섭한 게 많은가 보구만. 그래서 어떻게 할 계획인가?”

그러면서 은근슬쩍 내 계획을 물었다.

‘어차피 알게 될 건데, 말 못해 줄 이유는 없지.’

서울 혹은 부산에서 포럼을 할 것이며, 그 와중에 우리 논문을 언급할 거라고. 그리고 과연 진 교수의 사설이 진실인지, 편파적인 악의인지를 가릴 거라고.

내 이야기가 끝나자, 그가 말했다.

“성훈 군. 나는 건축을 잘 모른다네.”

그냥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의도를 모르니,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만약에 내가 성훈 군이라면 말일세.”

차를 한잔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그 포럼을 유치원에서 하겠네.”

‘응? 그게 무슨 말이지?’

“실제로 자네가 하고자 하는 것은 논문과 건물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의외로 그는 내 마음을 꿰뚫듯이 보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자네가 하는 행동과 추진하려는 방향에는 괴리감이 있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자네는 건축가가 아니라, 정치인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말이지.”

쾅.

그의 말이 내 뒤통수를 치는 소리였다.

‘지금 나는 이 사람에게 그렇게 보이고 있다는 말인가?’

“내 추측이지만, 굳이 그렇게 일을 크게 키울 일이 뭐가 있는가? 자네가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정치가 아니라, 건축이야. 그렇다면 그 무대 또한 유치원이어야 하는 것이지.”

‘아!’

나는 프랭크라는 인물을 불러들임에 설레어서 내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맞는 말이란 건 부정할 수 없군.’

방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라면 처음 만난 사람을 10분도 안 돼서 이렇게 꿰뚫듯이 판단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지.

‘이래서 정치인과 말을 나누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었던가?’

총장에 버금가는 교묘한 어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너구리 같으니.

그 말을 하면서, 내게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자기 말이 먹혔다는 것을 안다는 거겠지.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그가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뭐. 울산에서 한다고 해서 내가 딱히 뭔가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네. 난 그저 내 누이의 부탁을 들어주려는 것뿐이야.”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씀하시죠. 영감님!’

그런 거물을 울산에 데리고 온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프랭크와 악수하면서 사진 한방 박겠지.

그걸 신문에서는 마치 시장이 그를 데리고 온 것처럼 떠들 것이고 말이다.

솔직히 시장이 나서서 홍보를 해 주는 행위로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은 없다. 이득이면 이득이지.

‘하지만 약 오르잖아. 하는 것도 없이 자치단체장이라는 이유로 슬쩍 무임승차하는 게.’

내가 곰이 되는 느낌이랄까?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행사를 준비했는데, 사진은 그가 제일 많이 찍을 테니.

그 왜? 감정적 피해의식이라는 것 있지 않나!

난 뭔가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게 제일 싫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제일 얄밉다.

지금 내 앞의 시장이 그랬다.

그리고 그의 교묘한 화술에 넘어간 나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진다.

‘김성훈. 혼자서 그렇게 잘난 척 하더니.’

이상하게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에게는 이리 휘둘리고 저리 치인다.

총장이 그랬고, 눈앞의 시장에게도 마찬가지다.

연륜이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산이었다.

‘그래서! 네. 하고 따라가라고? 얻는 것도 없이?’

아니야. 그건 김성훈이 아니야.

그의 말이 맞다고 해서, 반드시 그의 말을 따를 이유는 없지. 이 일의 주체는 나 김성훈이라고.

무임승차하는 주제에!

당신이 내게 부탁을 해야지, 뻔뻔하게 그러라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겠다고 할 뻔 했군.’

잠시 마음을 갈무리했다.

“흠. 시장님 말씀에 어느 정도 동감을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그건 사진 한 장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말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시장은 내가 진행하는 이벤트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말하는 걸로 봐선, 지대한 관심이 있는 거라고.’

그럼 나는 서울에서 하는 것이 나을까? 울산에서 하는 것이 나을까?

서울시장이 눈앞의 시장처럼 신경을 써 줄까?

‘아니지. 절대 아니지.’

그렇다면 시장이 손을 내밀 때,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이득 아닐까?

계산은 끝났다.

이왕 부른 프랭크라면 제대로 써먹어야 했다.

‘500만 불을 투자하고 부른 거라고!’

다 넘어온 물고기로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시장이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어. 어. 그래도…….”

“저도 가급적이면 울산에서 하고 싶습니다. 저 울산에서 25년을 살아온 토박입니다.”

그가 말없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는 눈치였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문제?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내가 보기엔 문제가 없어 보이네만.”

“기분 나쁘게 들리실까 봐서 말 못했습니다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눈을 끔뻑하며 내 말을 재촉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내가 기분 나빠 할 일은 없을 걸세. 말해 보게.”

“울산은…… 프랭크에 비해서 격이 모자랍니다.”

“그 말은?”

“프랭크는 뉴욕 시장도 부르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를 모셔오기 위해서 저 나름대로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내 말에 수긍이 가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렇게 쉽게 데리고 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울산은 너무 작지요.”

“흠…….”

서울이나 부산보다 울산이 작다는 것에 무슨 반박을 할 것인가?

무뚝뚝한 눈동자를 굴리며,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시장님. 생각을 해 보세요. 프랭크를 서울도 아니고 울산으로 데리고 오는데, 뭔가 있어야 저도 면이 설 것 아닙니까?”

너구리야. 나 혼자 고생할 수 없다고. 당신도 좀 고생을 해야지.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하면 알아듣기 어렵지 않나?”

“울산에 올만한 명분을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서울 쪽에서는 벌써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르지만.

‘아마 그럴 거야.’

내 말에 손으로 턱을 긁으며, 신음을 토했다.

“흠. 벌써 거기까지 진행이 된 건가?”

눈썹을 으쓱했다.

진행이 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진행될 것이다. 어차피 그의 스케줄은 내가 꽉 쥐고 있으니까.

“아마도 서울로 정해지면, 발표를 하겠지요.”

“흠.”

그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싶었다.

“서울의 몇 군데는 오늘 연락이 오기로 했습니다. 그중에서 한 군데를 선택해야겠죠?”

“그 결정 하루만 늦춰줄 수 있겠나?”

고개를 끄덕이며, 시장실을 나왔다.

***

“엉. 서울에서 할 거라면서?”

계획을 바꾼데 대한 한 교수의 말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유치원이 주가 되는 게 맞더라고요.”

“우리 성훈이, 시장한테 완전 당하고 왔는데.”

큭큭거리며 나를 놀렸다.

“에이. 그건 아니죠? 저도 하나 던져주고 왔는데요. 지금쯤 회의하느라 정신없을 걸요.”

“왜 굳이 그렇게 일을 만들려고 하냐?”

당연히 나올 만한 질문이었다.

“진 교수가 하도 인맥 자랑을 해대서, 저도 좀 만들어 보려고요.”

“그거랑 시장이 일 만드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시장이 얄미워서 약 올리려는 거 아니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것도 없지는 않은데요. 얼굴 한번 본다고 그게 인맥은 아니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한국에서는 그것도 인맥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만.”

한국에서는 같은 학교, 같은 동네라는 것만으로도 인맥이 된다. 아마도 한국 특유의 정(情)이라는 정서 때문이리라.

“아마 프랭크의 강연회나 방송에는 수많은 건축인이 그를 만나고 싶어서 올 거예요.”

‘프리츠커상’*은 높은 건물을 짓는다고 주는 상이 아니다. 그 상은 건축예술에 있어서 어떤 한 획을 그은 사람에게만 수여된다.

건축의 비전을 제시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깨달음이고 각성이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초고수들만이 받는 상이다.

그래서 건축인들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열광한다. 깨달음이란 순식간에 오는 것이라, 고수와의 대화 몇 마디를 통해서도 자신의 껍질을 깰 수 있는 것이다.

‘프랭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자들이 누구일까?’

어중이떠중이들?

만나도 그의 대단함을 알지 못한다.

그의 수준에 근접하는 고수들이 프랭크 주위로 모일 것이다. 나이, 성별, 인종 구분 없이.

한 교수도 나의 말에 동의했다.

“그걸 가려내는 것도 일일 거야. 할 수 있겠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할 수 있다.

왜?

누가 알곡이고, 누가 가라지인지.

나중에 누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 알거든.

‘나도 알아. 그게 사기적인 스킬이라는 거.’

“하지만 그 만남이 한 번으로 끝나서는 의미가 없죠. 뭔가 건덕지가 있어야 계속 교류할 거 아니에요?”

‘얼굴 한 번 봤다고 인맥인가? 어림없는 소리.’

제대로 된 인맥을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를 어필하고 나의 매력을 알려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도록.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함께 교류를 해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

“음. 일리 있는 말이네. 생각 많이 했네?”

울산은 작은 도시지만, 돈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시차원에서 투자를 하는 것은 믿고 덤벼볼 만한 일이다. 절대로 돈을 떼이지는 않으니까.

“그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일을 던져주면 되는 거죠.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을 일을.”

“시장이 하려고 할까? 그렇게 큰일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이 임기를 늘리려고 하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업적을 만들어야 한다.

시민들의 마음에 각인되게끔.

“할 거예요. 지금 그는 업적에 목말라 있거든요.”

‘한평생 살면서 유능한 건축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또 올까?’

나는 감히 장담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 기회를 철저하게 이용해야 한다고.’

왜 울산에 일거리를 늘리려고 하냐고?

건축가에게 건축은 일이 아니다.

놀이이고 도전이며 창작욕의 근원이다.

※ 작가주(위키백과 참조)

프리츠커 건축상 :

(Pritzker Architecture Prize)은 매년 하얏트 재단이 “건축예술을 통해 재능과 비전, 책임의 뛰어난 결합을 보여주어 사람들과 건축 환경에 일관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한 생존한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1979년 제이 프리츠커(Jay A. Pritzker)가 만들고 프리츠커 가문이 운영하는 이 상은 현재 세계 최고의 건축상이다.

이 상은 국적, 인종, 종교, 이데올로기와는 관계없이 주어진다. 또한 건축적 작업을 이루기 위해 들어간 양질의 혁신성과 건축적 사고의 훌륭함이 이 상의 기준이 된다. 건설 기술의 적절한 사용에 대한 기여도 역시 중요 요건이다.

수상자는 100,000 미국 달러와 루이스 설리번이 디자인한 청동 메달을 받게 된다. 프리츠커상은 수상자 선정 과정이 노벨상과 유사하기 때문에 때때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200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총 22명이 수상하였으며, 그중 생존자는 1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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