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건축의 신-159화 (159/427)

건축의 신 159화

기둥은 꼭 있어야 하는가? (06)

민수가 수업에서 돌아왔다.

“형, 진 교수랑 무슨 일 있었어요?”

어제 일 때문에 무슨 말이라도 있었던가?

“있긴 했지. 왜 그러는데?”

“방금 진 교수 수업을 듣고 왔는데, 그 사람이 형 엄청나게 까던데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구나 했죠.”

어제 진 교수와의 말다툼을 말했다.

“그래서 진 교수가 그렇게 형을 씹어댔구나.”

피식 웃으며 물었다.

“씹어대다니? 뭐라고 하던데?”

그래도 명색이 대학교수인데, 수준 있는 말로 까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민수의 말을 조금 달랐다.

“지난번의 구조대전은 수준이 낮았다고요. 대상을 탈 수준은 아니었다는 말도 있었구요.”

그 외에도 민수는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모두 이 말에서 파생된 비난이었다.

민수의 말에 반론을 제기했다.

“무슨 소리야? 그때의 심사위원이 H대의 노교수님이었다고?”

강구조의 최고 권위자가 왔는데, 그 수준이 낮다니, 그건 허튼소리였다.

수준이 낮은 설계를 현재건설에서 사갈까?

“어쨌든 S대에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였어요.”

난 S대에 전혀 악감정이 없다.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학이 아닌가?

그 재학생들은, 그리고 졸업생들은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의 영재들이었다.

혹여 내가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입시를 칠 수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들어가려고 하겠지. S대라는 타이틀만 가지고도, 사람들이 인정을 할 텐데.’

당연한 생각이었다.

물론 그의 말이 S대의 의견일 리도 없었다.

“흥. S대에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그게 가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S대가 우릴 경쟁자로 생각할 리도 없는데, 무슨 어이없는 소리냐?”

“S대의 생각일 리가 없죠. 진 교수 개인의 생각일 거예요.”

“당연하지.”

진 교수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도 않았지만 심히 기분이 나빴다.

그의 말은 내가 개인적으로 좋게 생각하는 노교수와 다른 심사위원의 권위조차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말이었으니까.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면서 자신을 올리려고 하는 그의 행동이 혐오스러웠다.

왜냐고?

그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거니까.

그 사람이 그동안 쌓아왔던 노력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편협한 생각의 결정체이니까.

“이해가 되냐? S대 나왔다는 사람이 무슨…….”

차라리 이류, 삼류대를 나와서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면 이해라도 하겠다.

“씁쓸하네.”

민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그 말을 들으면서 내내 그랬어요.”

“다른 애들 반응은 어떻던데?”

“MT에 같이 갔었던 애들은 헛소리라고 신경 쓰지 않는데,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믿는 눈치였어요.”

‘씁, 조만간 교통정리가 필요하겠네. 가급적이면 더 이상 교수들은 안 건드리려고 했는데.’

대답 없는 내게 민수가 물었다.

“형, 어떻게 할까요?”

“아무것도 하지 마. 지금 당장은.”

“그럼? 그런 말도 안 되는 비난을 받고 침묵할 거란 말이에요? 형이?”

당연히 대처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응.”

민수가 입을 떡 벌렸다.

“진짜로요?”

“아직은 때가 아니야. 좀 더 기다려 봐.”

그리고 민수에게 펜을 건넸다.

“민수야. 이거 가지고 수업에 들어가라.”

저번 학생회장들을 응징할 때 사용했던 펜이었다. 녹음 기능이 있는 펜.

스마트 폰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이 펜이 최고의 청취 성능을 자랑했다.

민수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형. 완전히 박살 내버리시게요?”

“당연하지. 나한테만 욕을 했다면 간단하게 응징하고 말겠는데, 이건 그게 아니잖아.”

나만을 욕한다면 그건 개인적인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진 교수는 내 주변, 혹은 도움을 주었던 모두를 싸잡아서 비난하고 있었다.

‘내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들었던 거냐?’

사람은 타인에 대해 비판도 할 수 있고, 비난도 할 수 있다.

비판과 비난의 기준은 ‘당사자 앞에서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눠질 수 있지 않을까?

당사자 앞에서도 대놓고 말할 수 있다면 당당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당하지 못한 것이겠지.

물론 욕하기 위해서 억지 논리를 관철하는 것은 논외로 친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과연 진 교수가 학생들에게 했던 그 말을 경남건축학회나, 혹은 노교수 앞에서 할 수 있을까?

‘아닐 거야. 그건 감정적인 비난이지, 논리적인 비판이 아니거든.’

누가 뭘 하든 나와 아무런 상관만 없다면 직접적으로 나를 거론하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충분히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나를, 내가 만들 결과물을 직접적으로 거론한다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내 주변의 다른 모든 사람을 낮추는 것이나 뭐가 다른가?

‘단지 당신의 화를 풀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이해도 안 되고, 용납할 생각도 없어.’

용서?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용서해 준다고?

‘지옥에서나 후회해라.’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은 어린 학생들의 귀로 들어갔고, 그것은 이미 편견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이미 나에 대해 생긴 고정관념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대놓고? 용서?’

장난치나?

사람을 인격적으로 죽여 놓고, 별일 아닌 것처럼 용서를 구해?

‘용서를 구하지도 않겠지만 해줄 생각도 없어.’

그 말을 뱉기 전에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나이 사십이 넘은 사람이?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인생을 헛살은 거지.’

여러 관점에서 봐도, 그는 내 인생에, 그리고 다른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내가 펜을 왜 민수에게 줬냐고?

난 다시 진 교수가 비난을 하리라고 예상했다.

왜 또 그 말을 할 거라고 확신하느냐?

내가 그의 말에 감정적인 대응을 하고, 비난에 약이 올랐다면 다음의 비난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진 교수는 충분히 화가 풀렸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소 닭 보듯 한다면 진 교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비난의 강도를 높이겠지.’

비난은 산울림과 같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반응하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되돌아온다.

그래서 반응을 보일 때까지 욕을 하는 법이지.

***

“성훈아, 들었냐?”

한 교수도 돌아오자마자 그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진 교수 이야기는 그만해요. 지금은 굳이 내가 대응할 필요를 못 느끼겠어요. 지금도 내 일만으로 충분히 바쁘거든요.”

대충 대꾸하며 보던 도면을 정리했다.

난 이미 학생회장이 되었고, 총장이 말했던 박람회를 향해 확실히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나를 향한 비난의 말이 나온다? 그렇다고 그걸 신경 써야 하는가?

그럴 가치가 없었다.

‘이미 처리할 자신이 있는데, 신경을 쓰는 건 낭비죠. 교수님.’

“교수님, 신경 쓰지 마시고 논문이나 고민해 보시죠.”

비릿하게 웃는 나를 보더니, 한 교수가 눈치를 챘는지 씨익 웃었다.

“알았다. 관심 끊으마. 적당히 해라.”

그리고는 뭔가 끄적인 노트를 내밀었다.

“성훈아, 네가 말했던 유치원 안에 대해서 고민을 좀 해봤는데 말이야.”

메모를 가리키며 한 교수가 말을 이었다.

“현수교 방식으로 했을 때, 안쪽으로 몰리는 하중을 감당하려면, 외부 기둥이 엄청나게 두꺼워지든지 아니면 바깥쪽으로 당겨줘야 힘의 균형이 맞는데, 밖으로 당기려면 앙카를 박아야 해. 도면을 보니, 부지가 그럴 정도로 넓지는 않은 것 같던데? 혹시 다른 생각 해둔 거라도 있냐?”

한 교수의 지적은 정확했다.

‘아차.’

내 스스로 해결책을 마련했다는 것에 들떠서 사소한 부분들을 놓쳤다.

“앗, 그건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외부로 보이는 기둥이 아무런 기능도 없이, 볼썽사납게 두꺼워져서는 미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아무 쓸모없는 추물이 될 것이다.

한 교수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소장이 방법을 찾겠지. 하지만 그걸로 인해 무리한 설계가 될 가능성이 많아. 내가 보기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더 나아 보이는구나.”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구조를 바꿀까 하면서 고민 중이었어요.”

“그래? 이미 알고 있었나 보네?”

머리를 긁적이는 한 교수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미처 생각을 못했던 거예요.”

“그럼 왜 바꾸려고 했었는데?”

“이 도면대로 하니까 원하는 디자인이 안 나와서요.”

아이들이 고객인데, 그 아이들의 시선을 훔칠 좋은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디자인?”

“아이들이 눈을 뜨면 오고 싶어 하는 유치원을 만들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떠올라요.”

내 말에 한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야. 양 사이드로 세운 기둥이 너무 거대하니까, 양쪽으로 시선이 몰릴 가능성이 많아.”

기둥의 메스가 크니, 뭘 한다고 해도 유치원 본원 건물로 시선을 돌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심플하면서도 동화적 상상력을 주어야 하는데, 거기서 아이들의 시선을 끌 수 없다면 이 건물의 디자인은 실패가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변경하려고? 대안은 찾았겠지?”

한 교수는 이미 내 대답을 알고 있었다.

내 얼굴에 웃음이 걸려 있었으니까.

그가 나를 재촉했다.

“뭔데? 얼른 말해봐.”

“네, 교수님. ‘이상한 나라의 폴’이라고 하세요?”

사실 그가 알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 봤던 거니까.

하지만 그의 대답을 뜻밖이었다.

“당연히 알지?”

내가 도리어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그걸 아세요? 제가 그걸 봤을 때 교수님은 미국에 계셨을 텐데?”

난 솔직히 그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말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거라 예상했었다.

그는 당연한 걸 뭐하러 묻느냐며 답했다.

“내가 어릴 때 봤으니까 알지. 내가 그거 보고 요요를 샀었거든.”

한 교수 어린 시절에도 방송을 했었나?

‘그가 미국으로 건너갈 때가 1970중반이니, 그전에도 했었다면 봤었겠구나.’

난 철저히 내 기준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내 편견이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던 시절에는 TV가 상당한 고가품이었을 텐데, TV를 가지고 있었다니.

“교수님, 집에 TV도 있으셨어요?”

“응. 우리 집 꽤 잘살았다.”

그가 웃으며 자랑을 했다.

“성훈이, 너 그거 아냐? 옛날 TV는 다리가 달려 있었어.”

그건 못 봤지만 상자 안에 TV가 들어가 있었던 건 기억에 남아 있었다.

70, 80년대의 TV는 상당히 귀중품이었기 때문에,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대한민국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한 교수가 나의 쓸데없는 상념을 끊었다.

“햐! 년도도 기억난다. 1977년 여름방학 때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방송했었지.”

그걸 기억하다니?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그럴 수밖에. 그걸 다 못 보고 미국으로 건너가는 바람에 울었던 기억이 있거든. 하하하.”

그만큼 인기가 있었던 프로라는 말씀이렸다!

‘지금 한 교수 또래들이 대부분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있을 나이지.’

“그럼 버섯돌이 아시겠네요?”

한 교수가 추억을 떠올리듯 빙긋이 웃었다.

“당연히 알지! 내가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아주 좁았다.

그게 내 또래만의 추억이 아니라니, 내게는 약간의 충격이었다.

한 교수가 물었다.

“그런데 그게 왜?”

“음, 버섯돌이처럼 만들려고요. 기둥을 가운데 하나만 설치하고요.”

이 시대의 어린아이들이라면 버섯돌이를 알지 않을까? 혹은 알지 못한다고 해도, 부모들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들에게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머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한 교수가 물었다.

“큭, 추억 팔이 하는 거냐?”

그의 질문에 떳떳하게 말했다.

“그럼 뭐 어때요? 원생들만 잘 모이면 되죠. 건물의 구조미를 살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다른 미라도 살려서 독특함을 만들어내야죠.”

“그래서 무슨 구조를 쓸 건데?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 현수교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 같은데? 버섯을 두 개 만들려는 건 아니지?”

“네, 기둥을 한 개만 만들 생각이에요.”

“엉? 지금 상태에서 기둥을 또 줄인다고?”

“네, 현수교 방식이 아니라, 사장교 방식으로요.”

“사장교?”

거대한 교량을 건너가다 보면, 기둥 하나에서 케이블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다리를 붙잡고 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것을 사장교라고 한다.

현수교처럼 케이블의 장력을 이용한다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하중의 전달 방식이 다르므로 현수교와는 구분된다.

현수교는 빨랫줄처럼 큰 케이블에 낚싯줄처럼 작은 케이블이 내려와서 하중을 전달하므로, 기둥이 2개가 있어야 하지만, 사장교는 한 개의 기둥만 있으면 된다는 차이가 있다.

“그럼 기둥 하나로 모든 하중을 정리하겠다는 거네?”

난 그 하나의 기둥 안에 원장실과 사무실 및 화장실을 배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은 고정으로 남겨두고, 원생의 교실은 모두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고정되는 실들은 모두 내력벽으로 만들어버릴 거예요.”

“그럼 두터운 기둥이 만들어지겠군.”

“네, 보통 일반 빌딩에서도 계단실과 엘리베이터 실은 내력벽으로 만들잖아요.”

내력벽으로 만들어진 실(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한다.

건물의 자체하중과 횡하중을 지탱하는 버팀목 노릇을 한다.

“성훈아, 벽을 밀고 강당을 최대한 크게 만들려면 원장실들이 약간 한쪽으로 치우쳐야 할 것 같은데? 내 말이 맞지?”

“네, 맞아요. 약간 한쪽으로 치우치는 모양이 될 거에요. 버섯도 그런 버섯들 많잖아요.”

“안 될 이유는 없지. 계산만 정확하다면 말이야.”

“하지만 그 걸로는 부족하죠.”

“또 뭐가 필요한데.”

한 교수의 물음에 빙긋이 웃으며,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아기들이 오고 싶어 하는 유치원을 만들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교수의 눈이 내 스케치북에 꽂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