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신 158화
기둥은 꼭 있어야 하는가? (05)
일단 완성되지 않은 설계라도 건축사 사무소로 들고 가기로 했다.
차로 다리를 건넜다.
인간의 주변은 모두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저 건물도, 그리고 이 다리도.
‘왜 꼭 건축적으로만 접근을 해야 하지?’
건축이 비바람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라면, 토목은 그 피해를 미리 막으려는 목적이 크다.
위험을 뛰어넘어 그 위험을 극복하려는 노력 말이다.
건축은 지붕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면 토목은 땅 그 자체를 이용하려는 학문이다.
길을 닦고, 댐을 건설하며, 다리를 놓는다.
강에 다리를 설치하기 위해 교각을 수십, 수백 개씩 놓지 않는다. 오히려 개수를 최소화하려 한다.
또한 거대한 하중을 이겨내기 위해 건축과는 다른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된다. 애초에 지붕이라는 한계가 없으니, 더 다양한 방법이 동원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교량은 보를 수십, 수백 배 확대한 것에 불과해.’
단지 그것뿐인데, 교량과 보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명칭과 쓰임새는 다르지만 둘의 기본 개념은 동일하다.
건축에서 보는 지붕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지만, 토목에서는 보 그 자체가 목적이다. 보 위에 바로 도로가 닦인다.
건축에서는 그 보의 하부 공간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니, 그 크기와 두께에 제한이 많으나, 토목에서는 그런 제한이 덜하다.
보의 상부 공간에 도로를 닦기 위함이니, 건축과는 보를 이용하고자 하는 목적 자체가 다르다.
토목에서는 보를 설치함에 있어서 더 다양한 방식이 이용된다.
보의 휨 응력을 이용한 형교, 아치에 줄을 매달거나 보를 올려 하중을 분산시킨 아치교, 케이블의 장력을 이용한 현수교, 켄틸레버를 이용한 켄틸레버교, 사장 케이블을 이용한 사장교 등 다양한 역학적 특성을 이용한 교량들이 있다.
그중에는 움직이는 교량들도 있다.
선개교, 부교, 도개교, 수송교, 승개교* 등.
교각은 건축에서의 기둥과 같다.
‘토목에서는 달랑 기둥 몇 개로 거대한 다리를 만드는데, 건축에서 못할 이유가 뭐가 있지?’
굳이 건축과 토목을 구분할 이유가 내게는 없었다.
건축사 사무소에 도착했을 때 즈음, 어제는 흐릿하게 머리를 맴돌았던 이미지가 명확해져 있었다.
“소장님, 제 생각에는 건축보다는 토목 쪽의 방식을 사용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 그런 생각을 한 건데?”
“아무래도 교량 건설을 할 때는 다리를 하나라도 줄이려고 하잖아요. 안 그래요?”
“그럼 성훈이, 네 생각은 현수교처럼 케이블로 기둥이 받을 하중을 대신하자, 이 말이네?”
“네, 맞아요.”
소장이 손뼉을 짝 쳤다.
“오호라. 그렇게 하면 건물 내부에는 기둥이 하나도 없더라도 지붕이 유지되겠구나. 굿 아이디어!”
‘정확히 이해를 했군.’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성훈이, 네가 방법을 찾아올 줄 알았어.”
“운이 좋았던 거죠.”
소장이 기분이 좋은 듯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용하네. 며칠 새에 그걸 다 생각하고 말이야.”
하지만 교량의 공법들을 일반 건축물에 적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원래 기둥이 박혀야 할 자리마다 케이블을 심어서 하중을 받아줘야 한다는 건데, 위에서 보면 거미줄 같겠다. 그리고 옥상은 거의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해.”
내가 생각한 구조에 대한 소장의 타당한 우려였다.
기둥을 없애는 대신, 옥상을 포기해야 했다.
“옥상을 이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이 구조라면 원장이 원하는 기둥 제거에는 문제가 없겠죠?”
“기둥을 없앤다는 일차적 목적은 완벽히 달성이 되었지. 그래도 아직 문제는 있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아쉽지만 신은 내게 기회를 준 것이지, 능력을 준 것은 아니었다.
‘이왕 주는 것, 좀 푸짐하게 줄 것이지.’
속으로 투정을 하는 사이, 소장이 말을 이었다.
“어떻게 설계가 방향을 잡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케이블들을 고정하기 위한 공간이 따로 필요할 수도 있고, 더 중요한 것은 유치원 건물처럼 안 보일 수도 있어. 오히려 케이블이 드리워져 있으면, 더 세련되어 보이지 않을까?”
소장은 생각이 다른 듯했다.
“성훈아, 유치원의 고객은 아이들이야. 애들 눈높이에 맞춰야지 않겠어?”
‘아차!’
기둥을 없애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바람에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런 부분에서의 소장의 배려는 믿음직스러웠다.
“그럼 일단 시공은 가능하시다는 말씀이네요.”
내 설계를 쉽게 설명하자면, 허공에다가 지붕만 둥둥 띄워두는 형식이었다.
‘흔들리지 않게 케이블 거치대에 다시 수평으로 케이블을 이어서 고정해야겠지.’
그렇게 되면 바람 불면 흔들리지 않느냐고?
그런 소소한 문제들은 설계 과정에서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방법은 존재한다.
이렇게 지붕을 기준으로 해서 외부 벽체가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내부에 벽을 설치하면 되겠지.
“소장님, 이렇게 되면 실제 시공은 시간이 덜 걸리지 않을까요?”
“그렇지. 복잡한 거푸집이 필요 없어. 그냥 평평한 바닥 거푸집 하나 만들어 놓고, 철근 배근하면 되는 거니까.”
“천정 배근하면서 벽체를 만들어도 되겠죠?”
“그렇지. 엄밀히 말하면 조립식이니까, 충분히 가능해. 그리고 기능적인 부분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이 외부 기둥들을 얼마나 애들 눈높이에 맞출지를 생각해 줘.”
“스파이더맨이 사는 집이라고 우기면 안 될까요?”
“하하. 이 친구야. 스파이더맨도 초등학생이나 돼야 통한다구.”
‘그럼 뽀로로가 통하는 나이인가? 예진이는 뽀로로하면 사족을 못 썼는데.’
아직 뽀로로가 나오기는 시기상조였다.
“알았어요. 그건 고민해 볼게요.”
가장 큰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크게 꼽자면 두 가지였다.
외관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
그건 구조를 감춰야 한다는 말이다. 대신 알록달록하게 색을 칠해야겠지.
그리고 실제로 현실에 맞게끔 설계를 하는 것. 그건 건축사사무소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
교수실로 들어갔더니, 진 교수가 와있었다.
“이거 봐, 한 교수. 내가 자네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새로운 논문 같은 건 S대에 맡겨두고, 자넨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한 교수의 미간이 꿈틀한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데, 기분 좋은 사람이 있을까?
한 교수의 화끈한 성격에 곱게 넘길 수 있을까?
‘더 이상 흥분하면, 오늘 논문은 공치겠는데?’
그래서 내가 대신 앞으로 나섰다.
“진 교수님,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진 교수의 당연한 듯한 설명이 이어졌다.
“성훈 군도 알잖나. 이 대학의 학생들도 논문을 쓸 때는 S대 학생들이나 교수들의 논문을 인용한다고. 그게 무슨 말이겠나? 다 그만큼 자료에 신뢰가 가고, 검증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겠나?”
‘우리 대학도 아니고, 이 대학?’
개 눈에는 똥밖에 안 보인다고.
세상 천지에 누가 그런 말을 하는가?
그럼 S대생들은 논문 쓸 때, 꼭 자기네 대학 것만을 참고하겠네.
스스로의 틀 속에 갇혀서 무슨 연구를 한다는 말인가? 그럴 거면 논문은 뭐 하러 쓰고?
개가 들어도 웃을 소리였다.
이런 사람이 교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S대 우월의식에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진 교수님, 우리나라가 그렇게 건축 선진국입니까?”
“그 말이 갑자기 왜 나와?”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하는 말입니다. 십 년 뒤에도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알고는 계십니까?”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 건축의 미래는 굳이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확인하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었다.
2010년에도, 15년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하청이다. 그나마도 중국에 위협을 받는다.
‘누구는 편히 앉아 그림 그려서 돈 버는데, 우리는 허리도 못 펴고 땅 파가며 돈을 번다고. 그렇게 열심히 해도 그들보다 못 번다고.’
그게 왜 그런지 아냐고. 이 양반아.
가진 기술이라고는 콘크리트 만지는 기술밖에 없어서 그렇다고.
왜 우리 후배들은 그림 그려서 돈 벌면 안 되는데?
생각이 틀려먹었다.
글로벌 자유경쟁 시대에 국내에서 서열싸움이라니.
‘지금처럼 제 밥그릇 챙기기도 바쁜데, 건축의 미래를 생각할 정신이 어디 있겠어? 한심한 양반들.’
속에서 천불이 끓어올랐다.
“왜 우리는 그림 그려서 돈 못 벌고, 맨날 흙 만져서 돈 벌어야 하는 건데요?”
“흥. 원래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거야. 몰라?”
‘허허허. 이런 정신머리 없는 양반아. 지금 그 이야기 하는 게 아니잖아! 머리? 손발?’
한 호흡 참고, 진 교수에게 물었다.
“왜 우리나라가 건축 후진국을 못 면하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셨습니까?”
“뭐?”
갑자기 대들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교수님처럼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가 S대가 우리나라 건축 최고라고 했습니까?”
“감히 어린놈이 어디서 어른한테 훈계를?”
‘어른? 빡 돌게 만드네, 어른 같잖은 양아치가.’
살아온 세월로 따지면, 진 교수는 나한테 안 된다. 겨우 마흔 살을 가지고.
“지금 당신! 말 다했어?”
나도 모르게 살기가 피어올랐다.
말로 안 되니까, 나이를 내세우나?
그런 논리력을 가지고, 대학교수를 한단 말인가?
“어. 어. 성훈 군. 아무리 그래도…….”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짜증이 나서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이런 쓰레기하고 지금껏 실랑이를 했단 말인가?
진 교수의 이마에 식은땀이 고여 있었다.
‘긴장했겠지. 맞을까 봐. 그것도 어린놈한테.’
스스로 당당하다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중년이라면, 주먹이 무서워서 물러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제 몸 하나 사리는 데는 이골이 난 인간들.’
내게는 전 학생회장이나, 눈앞의 이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성훈아, 참아라.”
한 교수가 나를 뒤에서 껴안았다.
노려보는 내 눈을 진 교수가 피했다.
내가 학생회를 박살 낸 건, 이젠 건축학과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이미 소문 다 났다.
나 김성훈이. 성질 더럽고, 고집 세다고.
‘교수를 패면 학교 잘리나? 잘리면 건축을 못하나?’
그럴 리가 없잖아. 좀 귀찮기는 하겠지만.
갈등하는 내게 한 교수가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나 아직 너한테 배울 거 많다. 가르칠 것도 많고. 그러니 나를 봐서 참아라. 응?”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자, 한 교수가 나를 놓고 물러났다.
한 교수가 인상 쓰며 말했다.
“진 교수님도 이만 가시죠?”
기가 죽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험험, 그래도 S대가 최고란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이걸 S대에서 봤다면 상패라도 줬을 텐데.
그 말에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허, 그 말씀 똑같이 H대에 가서도 하실 수 있습니까?”
“허 참, 거기서 H대가 왜 나와? 감히 쨉이나 돼?”
당당한 진 교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얼마 전 구조대전 할 때, 노교수님 앞에서는 찍 소리도 못하시는 것 같아서요.”
“그건…….”
그때 일이 생각났는지, 진 교수의 얼굴이 홍시처럼 달아올랐다.
그를 빤히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경남건축협회는 거의 그분 제자들이 좌지우지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만.”
‘어디서 감히 무조건 S대가 최고라는 말을 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모든 부분에서 뛰어날 수 있을까? 학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들이 잘하는 분야가 국민들의 관심을 받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축구나 여자 핸드볼이나 다 잘한다. 그저 관심의 정도가 달라서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니, 그 부분에서 주목받은 것을 가지고, ‘모든 부분에서 뛰어나다’라고 맹신하는 것은 되먹지 못한 우월의식이 아닐까?
‘햐, 이 양반도 고집 세네.’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대꾸를 하고 있지 않나?
참아줬으면 그냥 갈 일이지. 어린놈한테 기가 밀린 게, 그렇게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나를 보며 코웃음 쳤다.
“그래 봐야 대한민국의 중요한 자리는 S대가 꽉 쥐고 있다네. 명심해.”
“그럼 S대가 머리라는 말씀입니까?”
오만한 눈으로 내게 말했다.
“당연하지.”
확인하듯 물었다.
“S대 말고 다른 곳은 손발입니까?”
내 의도는 모르는지, 진짜로 그렇게 믿고 있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한 거겠군요?”
내 물음에 승리자의 눈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렇지.”
“네. 머리가 나쁘니 손발이 고생하는 게 당연하죠. 훗.”
나의 빈정거림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자신이 심한 모욕이나 당한 듯 이를 꽉 물었다.
“진 교수님, 머리가 나쁘면 배워야지요. 아니면 갈아 치우든지. 안 그렇습니까?”
‘진 교수, 그만 가라. 이빨 닳겠다.’
<작가주>
[참조: 국어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선개교[旋開橋(Swing bridge)]
[명사]<건설> 교각 위에서 다리의 바닥 일부가 수평으로 회전하여 열렸다 닫혔다 하여 선박을 통과시키게 되어 있는 가동교(可動橋).
[비슷한 말] 회선교(回旋橋).
*부교[浮橋(Floating bridge)]
교각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배나 뗏목 따위를 잇대어 매고,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서 만든 다리.
[비슷한 말] 부량(浮梁)ㆍ부항(浮航).
*도개교[跳開橋(Bascule bridge, drawbridge)]
[명사]<건설> 큰 배가 밑으로 지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위로 열리는 구조로 만든 다리. 양쪽으로 열려 올라가는 이엽식(二葉式)과 한쪽만 올라가는 일엽식(一葉式)이 있다.
*승개교[昇開橋(Lift bridge)]
[명사]<건설> 선박의 통행을 위하여 다리의 양쪽 끝에 철탑을 세워서 다리 전체를 오르내리게 만든 다리.
[비슷한 말] 승강교.
*수송교[輸送橋(Transporter bridge)]
매우 높은 곳에 교상을 놓은 다리.
교상에는 움직이는 하물대가 매달려 있어 사람과 차량을 운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