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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신-151화 (151/427)

건축의 신 151화

학생회장(03)

내 앞의 차를 들었다.

“총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무서운 분이시군요.”

“무섭기는 이 사람아. 낼 모레면 관에 들어갈 사람한테 말이야. 허허허.”

전혀 죽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정열적인 웃음을 보이며 그도 차를 마셨다.

“알겠습니다. 그럼 박람회에 참가하겠습니다.”

“결정이 빨라서 좋군. 그럼 나는 좋은 결과를 기다리겠네?”

너털웃음을 짓는 총장에게 물었다.

“그걸 저 혼자서 그걸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럼? 어떻게 하라고?”

“제가 일을 진행하는 데 도움을 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총장님께서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시는 건 너무하시잖습니까?’

총장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보게. 학생회장의 고소 건을 처리해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걸로 부족한가?”

당연히 부족하다.

규모가 큰 박람회일수록 개인 출품은 거의 없다.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품질에서 속도에서.

그러기 위해서는 단체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걸 혼자서 하라고?

“총장님께서 직접 나서주신다면 일이 더 쉬워질 겁니다.”

총장이 양손을 내저었다.

“아니 될 말일세. 나는 개입하지 않겠네. 윗선에서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것은 보기에도 좋지 않고, 노인네의 간섭으로밖에 안 보일 테니.”

그의 사정을 이해했다.

‘정말 숟가락만 올릴 속셈이었군.’

“하고 싶기는 한데, 대놓고 하라고 지시할 수는 없다. 이 말이군요.”

“그렇지. 그런 말이지.”

“총장님께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저더러 하라는 말씀이시군요.”

“어허, 이 사람. 그럴 역량이 되니까, 내가 그만큼 자네를 믿으니까 하는 말이지.”

당황한 총장에게 말했다.

“우리 과 학생들을 동원한다면 당연히 반대가 있겠지요?”

“흠, 약간의 반대는 있을 수도 있겠지.”

‘약간 좋아하시네. 학생들 몇 명을 동원하는데도 얼마나 많은 절차가 필요한데, 학생회의 승인부터 시작해서……. 학생회?’

“총장님. 절 학생회장으로 밀어주십시오. 이미 학생회장은 돌아올 수 없잖습니까?”

총학생회와 이미 협의를 끝내놓은 상황이라면, 그는 돌아와도 설 자리를 잃을 것이며, 그를 위해 투쟁해 줄 동료도 없을 것이다.

“그건 곤란한데……. 학생회장이 없으면 학생회에서 알아서 하는 게 우리 학교에서는 관례라네. 그리고 총학생회와도 트러블이…….”

총장과 눈을 똑바로 맞췄다.

“생각해 보십시오. 일개 학생의 힘으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절차가 필요하고, 그걸 넘어가는 데는 난관이 많을 겁니다.”

“건축과의 역량을 끌어내려면 약간의 난관은 각오해야겠지.”

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일을 편하게 하려면 감투 하나 정도는 있어야죠.”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총학생회가.”

“그게 선행이 안 되면 박람회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일이 학생회의 비위를 맞추면서 일을 진행하기는 어려운 일이죠.”

고민하는 총장에게 쐐기를 박았다.

“그냥 학생회장이 되어버리면 되는 걸 복잡하게 갈 필요가 없습니다.”

박람회 참가는 군침이 도는 것이었다.

구조대전에 이어서 또 하나의 성과물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아무리 구조 공부를 하면 뭐 하나? 그 성취를 눈에 보이지 못하면 오랜 시간을 들여서 타인에게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구조대전 대상의 타이틀이 있으면, 굳이 실력을 증명할 필요가 없지!’

이미 건축협회에서 인증을 받았는데, 무슨 증명이 필요한가?

‘이 박람회도 한국 전통에 대한 실력의 증거물이 되겠지. 그리고 그 대상이 외국인이라면?’

이 말은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이라면 세계에도 내놓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것만 한 리허설이 어디 있겠어?’

문제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집안 단속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학생회라는 걸리적거리는 것들과 드잡이 질을 하고 싶지 않았다.

‘몽땅 다 패서 입원시켜 버릴까? 학생회 임원이 아무도 없으면 다시 뽑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잠시 그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양아치도 아니고,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교수들은 한 교수가 설득하고, 학생들은 내가 설득한다면, 한마음 한 뜻으로 우리 과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입상을 한다면 학교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학생 전체의 실력이 업그레이드된다. 그 자긍심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체념하듯 총장이 말했다.

“알겠네. 총학생회는 내가 설득해 보겠네.”

“그리고 또 해주실 일이 있습니다.”

총장이 말을 꺼낸 것을 후회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나 일수불퇴!

“또 뭔가?”

“다른 학과의 자원이 필요합니다.”

“엥? 그건 또 왜?”

“건축이 뭡니까? 종합예술입니다. 건축에 전기가 필요 없습니까? 미술은요? 세상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 건축입니다. 단지 건축과의 역량만 가지고 완성하라는 말씀이십니까? 학교 망신을 주실 생각이십니까?”

다시금 총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 어때? 틀린 말도 아닌데, 종합예술 맞잖아?’

억지 다분한 말임에도 총장은 반박을 하지 못했다. 잠시 말문이 막힌 사이에 다시금 그를 재촉했다.

이미 얼굴에 철판을 깔은 마당이다.

‘뽑아낼 수 있는 건 다 뽑아내야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여론 몰이를 해주십시오. 다른 학과들의 학과장들을 모아서 말입니다.”

“에잉, 이 사람아. 그건 진짜 무리라네.”

총장을 빤히 보며 웃었다.

“총장님 설득력이야, 제가 잘 알잖습니까?”

‘당신은 이빨이 아주 센 분이시죠.’

“그게 무슨 말인가?”

이 사람 때문에 구조대전을 참가했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제 박람회를 참가했었다.

맨 처음의 시작은 총장이 던진 미끼 때문이었다.

“구조대전에 제가 낚일 정도였는데요. 설마 공대 교수님들 정도야. 전 총장님을 믿습니다.”

총장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총장님, 이 일에 승산이 얼마나 있다고 보십니까?”

승산을 묻는 나에게 그는 관록 있는 웃음을 내보였다.

“자네가 앞장서준다면 충분하다고 보네.”

지금까지 내가 이루어놓은 결과를 총장은 알고 있으니, 충분히 승산을 점치는 모양이었다.

“그럼 저를 믿으시고 밀어주십시오.”

‘흥. 나 혼자 고생할 수는 없지. 총장님. 당신이 최대한 고생하도록, 모든 과의 역량을 끌어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기필코!’

“끄응. 알겠네. 내 그렇게 만들도록 하지.”

“이 일로 총장님께서 얻는 게 뭔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가 흐뭇하게 웃었다.

“보람이지. 후학들을 잘 키웠다는 보람. 교육자에게 그 이상 뭐가 더 필요한가?”

“그런 것 말고 말입니다. 예를 들자면…….”

총장은 능숙하게 내 말을 잘라 먹었다.

“필요 없다네.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돈이나 명예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네. 언제 갈지 모르는데, 그런 것을 탐내겠는가? 오히려 나의 작은 도움으로 크게 날개를 펴는 후학들을 보는 것이 훨씬 더 기분이 좋다네.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해 두게.”

총장을 보며 존경의 미소를 보냈다.

‘와! 입바른 말은 진짜 잘한다.’

그가 내 생각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나는 그렇게 건축과 학생회장 출마를 결정했다.

“성훈 군. 건투를 비네.”

“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일어나는 나에게 총장이 물었다.

“참 성훈 군. 그것 아나?”

“뭘 말입니까?”

“자네가 알리 왕자에게 해준 디자인 말일세.”

‘크윽!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그게 왜요?”

“그게 사우디 가문의 새로운 문장으로 채택이 될 거라고 하더군. 꽤나 국왕의 마음에 들었나 봐.”

“어떻게 저도 모르는 일을 알고 계시는 겁니까?”

“제자 한 녀석이 외교부에 있다네. 모르긴 몰라도 채택이 된다면, 그 파장이 장난이 아닐 걸세. 물론 자네에게는 알리 왕자가 직접 연락을 하겠지만. 허허. 그리고 학생회장의 일은 내일까지 해결해 두겠네. 걱정하지 말게.”

‘발만 넓은 게 아니라, 행동력도 엄청 좋은 양반이네. 적으로 두면 목숨이 백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그리고 그의 정보력 하나만큼은 탐이 났다.

‘이 일을 하면서 총장에 대해서 알아봐야겠어.’

총장실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김성훈은 세계를 활개 치며, 스스로 잘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래의 일부를 알고 있고, 그것이 나만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었다.

일개 학교 총장 따위는 내게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마음 한구석에서는 은근히 무시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그런 놈이니까.’

하지만 알고 보니 모두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던 것이다.

총장은 나처럼 미래를 알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에 못지않은 정보력과 행동력이 있었다.

반면, 내가 아는 미래는 어느 부분에서 변경이 있었을 것이다.

나비 효과!

내가 그렇게 활개를 치고 다녔는데, 변하지 않을 리가 없다.

내 안의 김성훈이 물었다.

‘지난 삶에서 한국의 누가 아라비아 황실의 문장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어?’

대답은 필요 없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미 네가 아는 미래는 변한 거야. 그것도 너 때문에.’

현주를 구한 것도,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 죽지 않은 것 또한 그 범주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미래가 정확할 것인가?

아니면 거대한 인맥을 바탕으로 한 총장이 어렴풋이 예측하는 미래가 정확할 것인가?

정답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나라면 총장에게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성훈이 물었다.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냐?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네가? 그것밖에 가진 것이 없는 네가?’

이빨을 꽉 물고 결론을 내렸다.

“뭐긴 뭐야? 죽도록 달리는 거지. 언제는 안 그랬어? 이미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는 것을.”

김성훈이 측은한 듯 말했다.

‘열심히 달려봐! 바뀌지 않고 남은 미래가 있으면 말해줄 테니.’

***

그 시각, 학생회장은 병원 일인실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서 바나나를 까먹으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감히 개똥같은 놈이 선배라고 갈군단 말이지. 그런 새끼는 졸라 밟아야지. 못 덤비는 법이지.”

침대 옆 탁자에는 진단서가 끊어져 있었다.

‘전치 10주.’

김성훈, 그놈만 잡아서 콩밥 며칠 먹이고 합의 보면 되는 거였다.

“그 새끼 애비 애미, 다 와가지고 무릎 꿇을 때까지는 전혀 합의해 줄 생각이 없거든. 흐흐흐.”

성훈의 팔목에 있던 시계가 눈에 어른거렸다.

“그거 주면 합의해 준다고 할까?”

생각만 해도 회장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먹 좀 세다고 지랄하기는. 병신새끼야.”

있지도 않은 성훈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넌 새끼야. 성인이 주먹질 잘못하면, 영창이야! 개새끼야. 아니, 교도소이던가? 아. 씨. 몰라!”

웅. 웅-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였다.

“예, 외삼촌. 어떻게 됐어요?”

언제나 자신을 귀여워했던 외삼촌이니, 학회장의 목소리는 밝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너, 이 새끼!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전화기가 폭발할 정도로 외삼촌은 화가 나 있었다.

놀라서 침대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왜요?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너하고 싸웠다는 게 세무청장 친척이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확신은 없었지만 그런 사람이 학교에 있었으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아니에요. 절대로.”

-그럼 건설부장관하고도 아무 연관 없어?

“에이, 삼촌도 그런 사람하고 아는 놈이 이런 촌동네 학교를 올 리가 없잖아요. 유학을 갔겠죠.”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기는!

학회장으로서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은 피해자였다.

“외삼촌! 저 맞았다고요. 때린 게 아니라!”

복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수화기를 들고 악을 썼다.

“그냥 일방적으로 쥐어 터졌다고요! 그 새끼 몸에 손도 못 대고 일방적으로요!”

-몰라. 이 새끼야! 조카라고 하나 있는 게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그럼 이렇게 맞고 끝내라고요?”

-너 여기서 안 끝내면! 나는 물론이고, 매형한테도 세무조사 들어갈 기세다. 그렇게 털리면, 너희 아버지 건설회사는 잘될 것 같아? 좋은 말 할 때, 고소장 취하해라. 알았어? 콩밥 먹고 싶지 않으면!

거의 협박에 가까운 말을 쏟아 놓고는 외삼촌은 전화를 끊었다.

“아, 씨발. 이게 뭐야!”

먹던 바나나를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국회의원이라며, 뭐든지 부탁하라며!”

닭똥 같은 눈물이 이불을 적셨다.

“씨발! 이 꼴을 하고 학교를 어떻게 가라고. 엉엉.”

이빨이 뿌드득 갈렸다.

“씨발! 학교 가면 그 새끼가 나 갈아 마시려고 덤빌 텐데.”

성훈의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봐주는 건 한 번이다. 두 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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